봄에관한 시모음 20편

하늘과호수 2025. 3. 29. 21:49

<1>

그대는 봄인가요 / 오광수

 

그대!

봄인가요?

 

그대는

갈 곳 없는 낙엽들을 보듬어서

연녹색 옷으로 지어 입히며

하늘 사랑을 가르치는

남풍입니다.

 

그대는

파란 하늘을 떠다니며

종다리를 불러내어

보리밭 이랑 사이 사이에서

사랑을 속삭이게 하는

아지랑이입니다.

 

노란 개나리가

숨어있질 못하고

삐죽 삐죽 길거리에 나옴은

그대의

발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며

돌 틈에 쭈그리고 있던 개울물이

소리치며 흐르는 것도

그대의 노래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하얗게 눈 덮힌 곳에서는

가끔 찬바람이 매섭고

응달은 잡은 손을 놓지않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아이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그대는

조용히 조용히

걸어오는 봄인가요?

 

 

<2>

가는 봄 3/ 김소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 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3>

봄이 오는 길 / 이혜진

꽃 감성,

봄 햇살, 파란하늘,

모두가 빛이고 사랑이네

물 오른 가지위에

꽃잎은 접어 숨을 고르고

따뜻한 숨결 , 힐링 속에

자유를 그린다.

눈 부신 햇살 너머로

피어나는 사랑

다소곳이 꼭 다문 입술 어느 순간

향기가 흐르고

연보랏빛

그리움에 찬 아가씨

계절의 꿈을 꾼다.

<4>

봄은 왔는데 / 이정하

진달래가 피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집 담 모퉁이에선 장미꽃이 만발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겨울이었지요, 눈 쌓인 내 마음을

사륵사륵 밟고 그대가 떠나간 것이.

나는 아직 겨울입니다.

 

그대가 가 버리고 없는 한 내 마음은 영영

찬바람 부는 겨울입니다.

 

<5>

봄 따러 가자 / 장근배

 

봄은 예쁜 것들을 많이도 가졌지

여름, 가을, 겨울 또한 그렇긴 하지만

별 주우러 가듯 봄 따러 가자

 

바구니 들고 가면 봄이 웃을 거야

호미까지 가져가면 흉볼지도 몰라

눈 크게 호흡 깊게 발걸음 경쾌하게

 

맨손으로 나서 봄 따러 나서도

, 새싹, 바람, 연초록, 새의 노래 ……

우린 봄 담기 넉넉한 가슴을 가졌잖아

 

()이 꽃단장을 지우는 해 질 녘

꼬르륵 싫지 않은 허기 몰려올 때

주워 담은 봄 꺼내 소중히 만지며

호박떡처럼 물든 하늘 한입 먹어도 좋지

 

숨어 있던 별이 톡톡 튀는 저녁엔

연녹에 누워 봄의 언어로 노래 부르자

 

공중 향하던 노래가 U Turn으로 돌아

내 노래는 네 가슴에 내려 향기가 되고

네 노래는 내 가슴에 내려 꽃이 될 거야

 

<6>

오는 봄 가는 봄 / 하영순

 

화창한 날

솔솔 부는 바람 따라

봄 떠나기 전에 봄 찾아 길을 나셨다

벚꽃은 지고 말았다만

복사꽃이 곱다

 

양포 감포 구룡포 포항 호미 곳

바다를 겨드랑에 끼고

달리고 달렸다

산천은 울긋불긋 곱게 수놓은 양탄자 같았다

 

애당초 누가

이 나라 이 국토를 금수강산이라 말 했을까

참으로 아름답다

 

먼 길 돌고 돌아 내 집에 찾아드니

베란다에 재스민 천사의 나팔꽃이 쌍 나팔 분다

봄도 사랑도 먼 곳에 있지 않고

집안에 있었다.

 

꽃잎에 입 모아

불러본 옛 임의 노래

내 쉴 곳은

내 집 집 내 집뿐이라고

 

<7>

봄에 읽는 시 / 신현복

 

봄을 알려거든

내밀한 발소리가 분주한 들로

나아가 나부터 깨어나자

 

봄은 가장 외로웠던

길이 아닌 곳부터 더듬어

한 곳 소홀함이 없이 찾아온다

 

싹을 틔우고

강인하게 키우려 비바람에

냉정하게 흔들다

 

끝내

사랑 받는 꽃으로 피워내고

조용히 제 자리로 돌아가는 봄은

 

분명 아름다움이다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피도록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 살고 싶다

봄의 정기를 받아 그리 살다가

그리 살았다 하고 싶다.

<8>

봄이 트는 날에는 보고싶다 / 신경희

겨우내 삼켜두었던 한마디가

목이아프다.

가지를 털어대는 새 발자국

시려운 설경의 가지 끝에

 

겨우내 남겨두었던 한마디가

목이아프다.

겨울 무덤속의 메아리

작은 무덤가에 뿌려진 전설

 

잔서리 가지마다 봄이 트나니

가난이 지고 난 꽃의 아름다움이라

겨우내 움켜쥐었던 한마디가

목이아프다.

 

겨우내 잊으려고 했던 말,

산에서 들에서 봄이 터져나오듯

내 뜰에서 그렇게 봄은 튼다.

....

<9>

봄이 그냥 지나요 / 김용택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 있어요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 데 꽃 피어날 거예요

생각해 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울면

밤세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가더라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새 봄이 그냥 가고 있어요

<10>

봄아, 오너라 / 이오덕

 

먼 남쪽하늘

눈 덮힌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앞에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밑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 물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가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오너라

<11>

/ 유안진

저 쉬임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 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랭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따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꾹뻐꾹 사랑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춤 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12>

겨울꽃 피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 / 곽재구

나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외로울 때가 좋은 것이다

물론 외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충분히 견뎌내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아파하고 방황한다

이점 사랑이 찾아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랑이 찾아올 때

그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사랑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호젓이 기뻐하며

자신에게 찾아온 삶의 시간들을

충분히 의미 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13>

봄이 오면 풀꽃들은 / 박노해

봄이 오면 풀꽃들은 햇살이 감싸주어서가 아니라

추위가 얼려 주어서 싹이 튼다.

봄이 오면 풀꽃들은 하늘이 끌어올려서가 아니라

대지가 밀어올려서 자라난다.

봄이 오면 풀꽃들은 누가 키워주어서가 아니라

간절한 뿌리 힘으로 꽃 피는 것이니,

사람아, 희망의 사람아 풀꽃처럼

땅속의 뿌리를 다지며

스스로의 힘으로 함께 피어나라

 

<14>

봄 아침 / 이기철

 

뿌리들이 부스럭거리며

이불 개는 소리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며

일어서는 들판

이른 설거지 끝에 콧노래 부르며

마실 나오는 개울물

푸른 방석을 깔고 앉아

하늘의 젖병을 빨고 있는 능선들

팔소매 걷어올리고

햇볕을 수혈하고 있는

어린 나무들

 

<15>

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샛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 속에서 초록잎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나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를 드러낸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뭐든

새로이 하려 드네

심지어 여러 갈래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 묵은 화분도

 

<16>

/ 이외수

봄은 겨울을 가장

쓰라리게 보낸 사람들에겐

가장 뒤늦게 찾아오는 해빙의 계절이다

 

비로소

강물이 풀리고 세월이 흐른다

절망의 뿌리들이 소생해서

희망의 꽃눈들을 피우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 햇빛이 가득해도

마음 안에 햇빛이 가득하지 않으면

아직도 봄은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겨울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17>

희망의봄 / 김사랑

 

지금은 눈내리는 이월

흐르는 물은 얼어

잠시 멈추어 있지만

 

날이 풀리면

다시 흘러 바다에 가리

 

겨울나기 중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애태워 기다리지 않아도

눈녹은 자리를 찾아 봄은 온다.

 

햇살은 고요하고

행복은 저만큼에서 온다.

 

그대여, 이월이다.

꿈을 꾸고 있다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라

 

봄이다,

희망의 노래를 불러라

행복을 꿈꾸어라

용기를 가져봐라

아직 그대는 젊다.

 

<18>

/ 용혜원

겨우내 눈보라 몰아쳐도

바람이 불어와도

잠잠하기만 하던

빈 들판에

새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초록이 물들고 있다

 

겨우내 기다려온 봄이

일순간에 온 들판에

퍼지고 있다

 

봄이 오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포근한 햇살이 퍼지는

봄 하늘 아래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꽃향기가 내 가슴에 가득해진다.

 

<19>

봄 밤 / 김용택

말이 되지 않는

그리움이 있는 줄 이제 알겠습니다

말로는 나오지 않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봄빛처럼 야위어가고

말을 잃어버린 그리움으로

내 입술은 봄바람처럼 메말라갑니다

이제 내 피는

그대를 향해

까맣게 다 탔습니다

 

<20>

꿈같이 오실 봄 / 오광수

 

그대!

꿈으로 오시렵니까?

 

백마가 끄는 노란 마차 타고

파란 하늘 저편에서

나풀 나풀 날아오듯 오시렵니까?

 

아지랑이 춤사위에

모두가 한껏 흥이 나면

이산 저 산 진달래꽃

발그스레한 볼 쓰다듬으며

그렇게 오시렵니까?

 

!

지금 어렴풋이 들리는 저 분주함은

그대가 오실 저 길이

땅이 열리고

바람의 색깔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서 오세요.

하얀 계절의 순백함을 배워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메마름을 버리고

촉촉이 젖은 가슴으로

그대를 맞이합니다.

 

그대!

오늘밤 꿈같이 오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