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가을에서야 / 이해인 [가을 시]

하늘과호수 2022. 11. 21. 22:13

 

내 나이 가을에서야 / 이해인 [가을 시]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 바래고,

향기도 옅어 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