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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얼굴 / 안국훈시 2023. 12. 16. 22:24
싸가지 없는 얼굴 / 안국훈 누구나 인의예지 네 가지 필요하고 인생에서 소중한 게 돈 건강 친구 세 가지 있는데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면 행복하지 못하다 싸가지 없는 얼굴 만나면 한두 번도 아니라 양심까지 없어서 보기조차 안쓰럽지만 종종 그런 사람과 함께 하려니 복장 터진다 같은 말을 해도 버릇 없이 말하고 하는 행동도 염치가 없는 사람 애초부터 싹수가 노랗거나 뿌리가 물컹하니 썩은 게 틀림없다 소중한 가치를 안다면 말이 바뀌거나 행동이 바뀌지 않거늘 살다 보니 싸가지 없는 놈보다 일 못해도 착한 사람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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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아무는 시간 / 강재현시 2023. 12. 10. 18:20
상처가 아무는 시간 / 강재현 종이 날에 슬쩍 베인 손가락이 아무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처가 깊이 파일수록 아무는 시간은 그만큼 더 오래 걸리겠지요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연고도 바르고 밴드라도 붙여줄 수 있지만 상대의 억새풀 같은 말과 행동에 베인 마음은 아무리 아리디아려도 약 한 번 발라줄 수가 없습니다 몰매를 맞는다고 맷집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장독으로 죽게 되듯,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강하게 후려친다고 마음이 독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맑고 투명할 때 오직 자신의 심장에서만 스며 나오는 빨간약 한 방울 "천사의 눈물"이 흘러나오는 때가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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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심야의 기도 / 박화목 [크리스마스 시]시 2022. 12. 23. 22:55
크리스마스 심야의 기도 / 박화목 지금쯤 가난한 마을 외딴 주막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가 외롭게 태어나셨지요. 온 인류를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가 왜 그런 곳에서 호화주택이 아닌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셨는가를, 우둔한 자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지금쯤 베들레햄 차운 한 들밖에서 밤을 허비며 서성이다가 아픔을 겪다가 홀연히 비쳐오는 한 줄기 빛을 목자들은 보았겠지요. 하늘 영광의 노래를 들었겠지요. 마음이 고단하고 슬프고 답답한 자 저 목자들처럼, 삶의 귀한 경험에 부닥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라앉혀 기다리게 해 주십시오. 지금쯤 밤 하늘을 보고 별들을 보고 땅의 운명을 쫓던 동방의 박사는 이상한 별을 보자 뭔가를 깨달았겠지요. 하여, 새 슬기를 찾아서 온갖 미련을 버리고, 천신 만고의 먼 나그네길을 훌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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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가에서 1 / 전병조시 2022. 12. 14. 16:36
겨울강가에서 1 / 전병조 겨울강가에 서면 빛이 가난하여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 썰매를 탄다 은어의 날개 위에 반짝이는 불임(不姙)의 삶, 프리즘을 통하여 복제된 시작과 중간과 끝이 보이지 않는 안달난 일상들이 자꾸만 미끄러지며 썰매를 탄다 어젯밤 꿈이 현실적 전망으로 바뀌고저 오늘로 이월시킨 이 손때 묻은 하루 허리가 휘어지고 거품이 굳도록애 휘저어도 내일이 없는 이 천막같은 하루 라면을 끓이다가 문득 불어오는 찬바람에 두 손을 데어버린 먹다남은 일상들이 뱃머리를 중심으로 팽그르르 맴을 돈다 겨울강가에서 2 이별이란 그리 슬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바람 속에 흩어지는 먼지의 일상일 뿐 너 멀리 보내고 항시 가슴 아파했던 것은 그리움이 아니라 한 조각 굳어진 체념의 눈물이었다 날마다 침몰하며 침묵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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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우리 만나리 / 김영근시 2022. 12. 13. 18:35
눈처럼 우리 만나리 / 김영근 눈처럼 우리 만나리. 삶에도 겨울이 있으니 마음이 추워지면 서로의 손을 잡고 삶의 추위를 녹이리. 눈처럼 우리 만나리. 어둠이 짙어지고 찬바람 매섭게 부는 날 꿈이 흔들리고 외로움이 가슴을 파고들 때 서로를 향한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따뜻하게 서로를 부둥켜안으리. 눈처럼 우리 만나리. 삶의 봄이 언제 올지 모를 가난한 시기에는 아담한 텃밭에서 만나 호미와, 괭이 들고 서로를 위한 꿈의 씨앗을 뿌리리. 눈처럼 우리 만나리. 서로의 가슴 속에서 눈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질지언정 서로를 위한 사랑의 존재가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