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낙엽에 관한 시모음<2>
    시모음 2022. 11. 17. 10:25

     

    낙엽에 관한 시모음<2>

     

     

    억새꽃 바람 / 이원문

     

    이맘때면 찾는 언덕

    언제인가 여름날

    그리 시원 했었는데

    이제는 쓸쓸히

    옷깃에 스며야 하는 건가

     

    눕는 억새꽃들

    다른 한곳은 그대로

    나를 기다리는 듯

    돌아서지 못 하는 마음

    쓸어 안아야 했다

     

    다시 찾을 내년 될까

    마지막의 오늘일까

    이 억새꽃 남기며

    되돌아서는 마음

    바람만 쓸쓸히

    옷깃에 스며든다

     

     

    억새 풀 / 박인걸

     

    가을 억새 풀 섶에 서면

    나도 억새인 걸 깨닫는다.

    찬 바람 부는 비탈에서

    이리저리 쏠리며

    억세게 살아온 세월

     

    예리한 칼날 세우고

    스스로를 베며 참아온 나날 들

    피 맺힌 마디에서

    아픈 비명이 들려온다.

     

    짙푸른 젊음

    꼿꼿한 자존심도 사라진

    휘주근한 풍경은

    힘든 삶의 흔적이다.

     

    夕陽의 긴 그림자

    무엇 위해 견딘 세월이던가.

    고운 단풍 낙엽 될 적에

    스스로 스러질 억새풀이여!

     

     

    천관산 억새 무덤 / 권행은 

     

    억새는 언제부터 울고 있었을까

    무덤 위에 억새가 하얗다

     

    자유로운 새의 형식을 버리고

    , 소리만 남은 저것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전령사일까

     

    무덤 속 잊었던 주인의 기억을 살려내다

    하얗게 희어진 말,

     

    무덤의 주인은 글을 써서 밥을 빌었을까

    억새가 붓이 되어

    지워진 무덤의 말을 받아 적고 있다

     

    무덤의 주인이 못다 한 말은 무얼까

    유서에도 없는 말

    꽃이면서 꽃이 아닌 말,

    바람이 세차게 허리를 꺾으면

    억새는

    뻣뻣해지는 붓끝을 더욱 궁글린다

     

    억새는 성긴 살을 풀어

    무덤 속에 슬어 있는 어둠을 지우고

    까만 글씨로는 다하지 못한 말들을

    하얀 붓끝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하늘의 갓*을 버리고

    죽음에 뿌리내린 꽃이, 진짜 꽃이다

     

    병든 몸으로 천관에 깃들었던 추강**의 몸짓인 양

    갓을 잃은 붓 한 자루

    무덤 속 캄캄한 울음을 무덤 밖으로

    하얗게 풀어내고 있다

     

    *하늘의 갓 - 천관(天冠)의 우리 말.

    **추강- 추강 남효온은 24세 때 단종의 어머니인 소릉의 추복(追復)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성종에게 올렸다가

    이를 계기로 벼슬길을 포기하고 평생 술과 시 속에서 방외인으로 유랑하다가 38세 때에 죽었는데,

    말년에 병든 몸으로 천관(전남 장흥)을 찾아서 시를 지은 바 있다.

     

     

    은빛 억새 물결 사랑 / 임하경

    ​꿈을 태우는 고독

    애증의 시간과

    그리움이 있는

    나의 마음에 찬란한

    눈물과 함께  시(詩)로

    남기어 보노라네

    서늘한 하늘아래 

    불현듯 짦게 스쳐가는

    가을이 주는 시간은

    은빛 억새 물결로 춤을추다.

    이렇듯 깊은 향기가

    내 안에 숨듯이

    자리하고 있구나

    이 가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웠는지

    우연히 얻어 걸린

    옛 사랑을 품고가나보다.

     

     

    백두옹(白頭翁)억새풀 / 박유동

     

    하얗게 세어빠진 억새풀아

    남처럼 고운꽃 한번 피워보지 못한 한을

    너는 그토록 저주하고 불만이더냐

    바람광풍 몰아오지 않았는데도

    너는 마구 휘청대고 흔들어대네

     

    천지에 못난 억새풀 다 모였더냐

    구름이 떠가듯 파도가 출렁이듯

    온통 산과 들이 새하얗게 휘덮었는데

    서로 엉켜 못난 팔자 원망하는 듯

    이제라도 불만 당기면 함께 타버리자는 듯...

     

    세상에 이렇게 거창한 순백의 꽃 봤더냐

    누가 감히 못난 억새풀이라 하더냐

    봄에 붉은 진달래가 온대도

    오뉴월 화중왕 목단이 온대도

    지금 여기 억새풀 앞에 턱없이 무색하리라.

     

     

    억새와 갈대 / 백원기

     

    냇가에 피어있는 억새와 갈대

    사촌 간이라 그런지 생김도 비슷하고

    나란히 있는 모습 보기 좋구나

     

    억새는 은빛이나 흰옷을 입고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 옷을 입었다

     

    보기에는 갈대가 험하게 보여도

    억새가 고개를 반쯤 숙일 때

    갈대는 고개를 푹 숙이더라

     

    억새에 손가락 베인다는 말처럼

    착하고 예쁘다고 함부로 할 일 아니며

     

    거무튀튀한 갈대는 온종일 고개 숙여

    흔들흔들 생각 없이 착하기만 하기에

     

    "파스칼" "팡세"에서

    인간을 나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했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격을 달리했다

     

     

    억새의 비가(悲歌) / 김병근

     

    푸른 시절 억센 줄기 목마름은

    시절時節 풍파 견뎌낸 톱날 같은 잎 떨구고

     

    하얀 포자胞子 긴 바람에 실어

    생식生殖 터전 찾아 산천山川을 넘는다

     

    나목裸木의 외로운 고독마저도

    개울물 빙속 차디찬 눈물마저도

    ()길조차 사치인 양 도도했던 너

     

    억새는

    어느 날 공기마저 시린 들녘에

    서걱서걱 고달픈 울음을 토하고

     

    노을 짙은 저물녘

    산에서 내려온 냉랭한 산풍(山風)에도

     

    은빛 물결 그리움인 양

    마른 몸을 마구마구 흔들어 댄다

     

    누런 줄기 곧게 세운 자존심은

    달빛 스치는 바람을 타고 봄 찾아 별을 쫓는데

     

    봄은 깊은 잠 속에 있네

     

     

    억새 / 안정순

     

    나뭇잎 곱게 물들고

    갈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들의 향연

     

    여린 풀잎으로 피어나

    원대한 꿈 키워가며

    한 점의 피톨이 소진하도록

     

    그 한 몸 불태워

    한 줌의 재가 될지언정

    굽히지 않는 곧은 심지

     

    우리의 천 년의 역사가

    너의 몸속에

    하루 같이 흐르고 있는 걸

     

    작은 실바람에도

    몸부림치는 이 세상에

    네가 있어 든든하구나!

     

     

    마른 억새꽃의 눈물 / 최원종

     

    마른 억새꽃

    바람에 앙상한 손가락만 남았구나

    지난가을 희뿌연 억새의 꽃잎에

    흔들리던 마음도 바람에

    모두 떠났는지 아무도

    찾지 않는 억새밭에는

    짹짹 거리는 참새가족의

    놀이터가 되어 온종일

    수다스러운 소리가 겨울바람을

    마주하고 있다

     

    소복이 내린 눈밭

    앙상한 억새도 추워하는지

    실바람에도 파르르 떨면서

    짧은 겨울의 햇살

    앙상한 가슴에 품으려 조용히 눈을 감고

    추위 속에 따스함을 느끼고 있네

     

    겨울 찬바람의 뭇매에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메마른 억새

    산등성이 화려하게 수를 놓던 시절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찬바람에 꺾여진 억새

    메마른 억새는 겨울의 찬바람에도

    허리까지 덮여 오는 하얀 눈밭도 외면한 채

    꺾어진 허리 부르르 떨며

    아픔을 하소연해도

    들어주는 이 하나도 없어

    홀로 쓰러져 가는 억새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억새꽃의 늪에서 / 강건호

    가을엔 흠뻑 젖는다.
    홀로선 이 가을 흔들리는 정서 위에서
    쓸쓸함도 외로움도 사랑도 그 무엇도

    저 흔들어대는 여인네의 고갯짓에
    눈부신 황홀감에 빠진 조리개

    타다타다 지 목숨까지 다 태워버린
    외롭게 불 밝히던 촛불처럼
    노을빛에 녹아내린 금빛 물결이
    그리움으로 녹아내린다.

    몸 구석구석 깊이 파고드는 간지러운 바람
    초록 사랑 얘기 나누며 달콤하게 먹었던 꿈이여
    바람이 등을 툭툭 건드리면 묵힐 때로 묵힌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듯 토해내는 그리움

    희뿌옇게 흩날리는 눈물은
    당신 향한 그리움의 나비라오.

     

     

    억새의 환유 / 김종제

     

    쉬이 부러지지 아니하고

    가볍게 끊어지지 아니하고

    ()를 이어

    억세게 살아온 민초다

    누구는 민둥산 억새를

    50년대 해방군 인민들에게

    벌건 대낮, 광장에서

    대나무 창살로 찔려

    애꿏게 목숨 잃은 반동들이

    흘린 흰 핏자국이라고 하고

    누구는 화왕산 억새를

    80년대 간첩 잡는 사복들에게

    칠흑 한밤, 밀실에서

    주먹에 맞고 고문을 당해

    가엾게 요절한 학생들이

    흘린 눈물 소금이라고 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가을 저것들이 있어서

    내몸에

    비바람이나 눈보라 안 들어차게

    지붕을 이었으니

    농사도 짓고 허기도 면하게

    마소를 먹였으니

    오늘은 산 정산에 올라가

    억세고 굳센 목숨들을 보리라

    승리의 깃발 흔드는 것을 보리라

    광목천에 남쪽의 나와

    북쪽의 네가 서로 부둥켜 안은

    그림 그려 넣은

    대동제 걸개를 보리라

    천지인의 고구려 벽화를 보리라

     

     

    억새의 노래 / 정종명

     

    옷 깃에 스며드는 젖은 삭풍이

    영글어 무르익는 가지를 흔들며

    색을 입히는 계절

     

    여린 몸매에 질긴 잎새 은빛 꽃

    뽑아올린 억새가 바람 안고

    억샌 삶의 한 풀어 천상에

    하늘하늘 손 흔들고 섯다

     

    이를 듯 평화로운 산등선에

    머리 풀고 앉은 할미 고된 삶을

    펼쳐 놓고 젊은 날의 영화

    그리움에 잠들지 못하고

    밤새 사부작사부작 뒤척인다

     

    민둥산 넓은 분지 촘촘히 선 억새

    깊어가는 가을밤 별빛 노래가 흥겹다.

     

     

    억새꽃 / 임영조

     

    가을바람 소슬한 날

    산언덕에 오르니 문득

    하얀 웃음소리 들렸다

     

    어느듯 한청춘 가고

    이제는 하릴없어 심심한 노인들이

    야위고 시린 등을 서로 기댄 채

    저마다 서걱서걱 살아온 생애

    색 바랜 來歷을 자술하고 있었다

     

    자식도 품안에 자식이지

    늙마에 남는건 빈손뿐이야

    末年이 깨끗하려면

    두 손 훌훌 털고 가벼워야 돼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순은빛 백발만 머리에 이고

    그래도 마음만은 홀가분한지

    하하하하하하..............

    온몸으로 하얗게 웃고 있었다

     

     

    억새꽃의 바다 / 이원문

     

    이 먼 바다의 작은 섬

    다녀간 이 있나요

    이곳의 이 억새꽃

    찾는 이 있었나요

     

    억새풀로 모진 바람

    꽃 피워도 누워야 하는

    이 섬의 억새꽃

    누가 한 번쯤 관심이 있었는지요

     

    누워서 꽃 피웠고

    꽃 피워도 누워야 하는

    이 작은 섬의 억새꽃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아무도 없어요

     

     

    억새풀이 되어 / 김해화

     

    우리 억새풀이 되어야 써

    칼날처럼 뜻 세운 이파리로 바람까지도

    비겁한 하늘이라면 하늘까지도

    목 베어 거꾸러뜨리고

    서 있어야 써. 우리 억새풀이 되어

     

    사랑과 미움을 가릴 줄 알아

    사랑이라면 뿌리째 뽑혀 죽어도 좋은 복종으로

    미움이라면 그런 사랑까지도

    사정없이 썸벅썸벅 베어버리는 반란으로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넷

    넷보다는 더 많이 더 많이 모일 줄 아는

    억새풀

    바람 사나울수록

    어둠이 깊을수록 또렷이 깨어나

    소리지르며 눈 부릅뜨는 풀

     

    여리디여린 풀 아니고

    뼈 있는 풀

    우리 억새풀이 되어야 써

     

     

    억새꽃 / 유강희

     

    억새꽃이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명절날 선물 꾸러미 하나 들고 큰고모 집을 찾듯

    해진 고무신 끌고 저물녘 억새꽃에게로 간다

    맨땅이 아직 그대로 드러난 논과 밭 사이

    경운기도 지나가고 염소도 지나가고 개도 지나갔을

    어느 해 질 무렵엔 가난한 여자가 보퉁이를 들고

    가다 앉아 나물을 캐고 가다 앉아 한숨을 지었을

    지금은 사라진 큰길 옆 주막 빈지문 같은 그 길을

    익숙한 노래 한 소절 맹감나무 붉은 눈물도 없이

    억새꽃, 그 하염없는 行列을 보러 간다

    아주 멀리 가지는 않고 내 슬픔이 따라올 수 있는

    꼭 그만큼의 거리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억새꽃도 알고 보면 더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제 속에서 뽑아올린 그 서러운 흰 뭉치만 아니라면

    나도 이 저녁 여기까진 오지 않았으리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겨울에 관한 시모음<2>  (0) 2022.11.19
    낙엽에 관한 시모음 <3>  (1) 2022.11.17
    억새에 관한 시모음<2>  (0) 2022.11.17
    가을비에 관한 시모음  (2) 2022.11.11
    가을비와 커피에 관한 시모음  (0) 2022.11.1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