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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을 끝자락(마지막)을 보내는 시 모음<1> [11월 시]
    시모음 2022. 11. 29. 18:31

    11월을 끝자락(마지막)을 보내는 시 모음<1> 

     

    11월의 마지막 기도 / 이해인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사는

    한 송이의 흰 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빛 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 나오리라

     

    어떻게 웃을까

    고통 속에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이는 들으실까

     

     

    11월의 끝 / 목필균

     

    너로 인해 따뜻했던 온기

    마저 지울듯이

    밤새 찬비가 내렸다

     

    소리없이 비워지는 흔적들

    거리에 내려앉아 있더라

     

    비에 젖은 낙엽들의

    선명한 목소리

    은행잎이 단풍잎이

    플라타나스 너른 잎이

    느린 발걸음에 밟힌다

     

    11월이 가려할 때

    눈안에 가득했던 너의 입김

    쿨룩거리며 튀어나가고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 밖에

    빈 나무가 되어 서성거린다

     

    가을을 보내며

    11월 끝자락에 귀울림이 열린다

     

    뜬금없는 휘파람 소리

    다 비워버린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휘파람 소리

    여운이 길다

     

    하늘이 낮게 엎드리고

    찬바람 휘돌아가는 저녁

    플라타나스 너른 잎새가

    갈색으로 부서진다

     

    바스락 바스락

    건조한 얼굴과 가슴과

    바람과 눈물이 부서진다

     

    곁을 떠난 것들이

    손짓해도 돌아올 리 없는데

    휘익 휘익 휘익

    낯선 휘파람이 감출 새 없이

    터져 나온다

     

     

    11월의 마지막 날 / 진장춘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첫눈이 내리다가 비로 바뀌고

    다시 비가 눈으로 바뀌곤 한다.

    가을과 겨울이 시간의 영역을 다툰다.

     

    단풍나무는 화려한 가을 송별회를 하고

    눈바람은 낙엽을 휩쓸며 겨울의 환영회를 벌인다.

    가을과 겨울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위풍당당한 겨울에 가냘픈 가을은 당할 수 없다.

    젊은이들도 첫눈을 반기며 만남을 약속한다.

    가을은 울며 남으로 떠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내년에 오리라.

    계절의 쳇바퀴는 누가 돌리나?

    추동춘하 추동춘하 추동춘하...

    계절의 쳇바퀴를 돌리면서 세월은 간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가고 만물도 흐른다.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서 / 김동규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娼婦(창부)賣笑(매소)같은 까칠한 소리로

    살과 살을 비벼대다 드러눕던 몸짓,

    바람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혼절하는 몸소리로 제 허리를 꺾어

    속 대를 쥐어 틀어 물기를 말리고

    타오르는 들불의 꿈을 꾸며 잠이 든

    늙은 갈대의 가쁜 숨소리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는,

    빠른 걸음으로 노을이 오고

    석양마다 숨이 멎던, 하루를 또 보듬으며

    목 젖까지 속울음 차오르던 소리를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11월이 가는데 / 민경대

     

    우리는 태어날 때 아주 특별한 세 가지 재능을 부여받았다.

    생명, 사랑, 그리고 웃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중한 재능들을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나누는 것을 배운다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 역시 기꺼이 우리와 함께 즐걸운 시간을 보내줄 것이다.

     

    가을 하늘 말고 푸르른데  11월은 가는데떠오르는 풍선같은 생각은

    벽에 똗아 나온 가세에 찔리어떠치고 박살이 나면 고무풍선 터지고

    잔해만이추수가 끝난  논밭에 허수아비 목에 떨어진다

     

     

    이 밤 지나면 12월이다 / 이종인

     

    당신은 늘 다음 기회를 생각하지만

    나는 마지막 인사처럼 살아온 삶이었다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까

    알파요 오메가 말씀조차 모르니

    우리 인생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땀 흘리며 살아왔다는 말은 하지 말자

    뼈 빠지게 노력한 결과로

    남에게 돈 빌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그런 자랑 이제 하지 말자

    자식들 쑥쑥 제자리 잡고 산다는 말 그만 하자

    다만 나는 12월이 두렵다

    각자의 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셈이 아닌 하늘의 셈말이다

    ?

    땅의 주인은 하늘이니까

    주인이 인생을 향해 셈을 하겠다는데

    사람이 무슨 이의를 제기하겠니?

    만약 반론을 제기한다면 그 사람은

    빛과 어둠 중에 어느 소속이겠어? 뻔하지,

    나 어릴 때는 겁이 없었는데

    이제 나이 드니 두렵다

    12월이 되면 말이다

     

     

    11월 마지막 일요일 / 민경대

     

    너무 자주는 말고, 아주 가끔식은 평소에 먹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던 음식을

    스스로에게 한 턱 내듯사먹어 보자.

    건강에 좋은 샐러드 대신, 케첩을 듬뿍 뿌린 파삭파삭한 포테이토 칩을 한 봉지 먹는 것이다.

    그것은 그 동안 그 모든 건강 삭품들을 규칙적으로 먹고

    그토록 근면하게 일해온 우리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

    하나의 산들이 옮겨지고다시 바위를 흔들고

    움직이는 산속에는소나무도 물도 우리를 본다

     

     

    11월 그는 갔습니다. / 하영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길

    20191130

    그는 떠났습니다.

    지구상에서 영영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때라

    모처럼 팔공산 드라이브를 했다

    11월 마지막 날

    나목이 줄선 가로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생각이 만감 하다

    한 해는 이렇게 가는 구나

    쌩쌩 달리는 그 많은 자동차

    뭘 찾아 저토록 바쁠까

     

     

    가는 11월 / 김동기

     

    하늘 보니

    눈이 커진다 빈 그릇처럼

    홀쭉하던 속에 어떤 손님이 와서

    뭔가를 채워주는 이 느낌

    그리고 어디로 떠나려는 듯

    준비가 한창이다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이

    아주 먼 곳을 향하여

    야위어 가고

    그래서 나무는 더 쓸쓸해지고

    농익은 과일들이 배낭에 담겨져서

    겨울공화국으로 가려나보다

     

    갈 테면 가라지

    갈 사람은 가야겠지

    어차피 11월은

    이별을 준비하는 계절이니까

    떠날 바에는 쓸쓸함마저 가지고 가라지

     

    계절은 왜 그리움을 남기는가

    어쩌면 보푸라기 정에 울지도 몰라

    돌아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면서

    긴 밤을 뒤척일지도 몰라

    내 사랑이여

    good bye

     

     

    11월이 지는 날 / 이영균

     

    눈부시게 저무는 저 노을빛은

    땀내며 타들던 산골 그 아궁이 장작불빛 같다

     

    아이의 사타구니가 노릇노릇 익고

    불내를 품은 얼굴엔 졸음이 잔뜩 달라붙을 때쯤

    밥 냄새를 뿜던 장작불 삭은 재속에서 터지던

    알밤의 요란한 웃음

    아버지의 등에 업혀온 장작도

    호주머니에 담겨온 알밤도

    그 저녁 담 넘어 퍼지던 촌락의 냄새도

    노을을 등지고

    그 돌아서서 웃으시던 아버지의 환한 빛인 듯

    11월의 노을빛은 아직 저리 눈부시다.

     

    결실을 내어주고 뿌리 밑 샘까지 말려버린 고목

    그 저녁 빛 속에 학 다리로 환히 서 있다

     

     

    11월이 걸어서 / 이기철

     

    두 나무가 나란히 걸어오는 11월에게

    10월을 데리고 오라고 말할 순 없으리

    마지막 홑옷까지 다 벗은 30일에게

    20일에 입었던 옷을 입고오라고 말하진 못하리

    이미 깃털이 두꺼워진 재두루미에게

    날개를 가볍게 하라고 말하진 못하리

    호수는 이미 명경이 되었고

    돌을 던지면 하늘은 유리 깨지는 소릴 낸다

    체온이 떨어진 낙엽에게

    초속으로 달려가 짐승의 발을 덮어주라고 말할 순 없으리

    12월을 일찍 장만한 개여울에게

    눈 내린 날의 모직 재봉을 부탁하진 못하리

     

     

    11월의 마지막 / 김대식

     

    어둠을 타고 몰래 들어와

    아침저녁으로 서성이던 겨울이

    이제는 한낮에도 서성댄다.

     

    그토록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가을이

    무대를 거두고

    머뭇거리던 가을은

    떠날 채비를

    바삐 하는데

    매서운 삭풍이 휘몰아치며

    마지막 낙엽마저 떨구고 만다.

     

    갈 곳도 없이 무작정 내몰린 낙엽이

    후미진 구석으로 몰려서 노숙을 하고

    미련 남은 가을이 낙엽에 숨는데

    잠자던 서릿발이 일어나

    숨은 가을마저

    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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