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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 관한 시모음 30시 2024. 12. 21. 07:25
1) 오늘은 동지(冬至)날 / 박노해
오늘은 동지冬至날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차가운 어둠에 얼어붙은 태양이
활기를 되찾아 봄이 시작되는 날
나는 눈 내리는 산길을 걸어
찢겨진 설해목 가지 하나를 들고 와
방안 빈 벽에 성탄절 트리를 세운다
그 죽은 생 나뭇가지에 오늘 이 지상의 춥
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걸어둔다
해가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것은 순환한다 절
정에 달한 음은 양을 위해 물러난다
오늘은 동지冬至날
신생의 태양이 다시 밝아오는 날
숨죽이고 억눌리고 죽어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날
2) 동지(冬天)의 별 하나 / 양채영
미당의 동지 섣달 매서운 새는
冬天의 밤하늘을 비끼어 갔다
그 막막한 빈 자리에
아득한 별 하나
불덩이 같다가도
꽃덩이 같이 환한 별
별의 이름을 내가 지어줄까
뒤돌아보는 깊은 눈빛 같이
겨울밤 하늘의 먼먼 길
언제쯤 내게 와 닿을까
흰 눈발에 묻어서
자작나무숲에 와 내릴까.
자작나무숲에 와 내릴까.
3) 동지행복 / 윤보영
동짓날은
밤의 길이가 제일 길잖아.
길어진 만큼
너를 생각하는 내 생각도
길어지겠지.
보고 싶은 마음에
고생은 하겠지만
고생한 만큼, 내 안의
널 만나는 행복도 늘어나겠지.
4) 동짓날 / 정연복
한 해 중에 밤이
가장 긴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부터는
밤은 짧아지고 낮이
점점 더 길어지리.
생의 어두운 밤도
그렇게 가는 것
흘러 흘러서 가는
세상살이에
끝없는 어둠이나
슬픔 같은 것은 없어
내 가슴속 어둠이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어둠은 내리막을 걷고
빛의 시간이 차츰 늘어나리.
5) 동지섣달 어머니 / 최명운
동지섣달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호롱불은 꺼질 듯 기울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어머니 심지 같았습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밤
어머니는 다듬이 방망이로
心身을 다스렸습니다
정겹게 들리다가 갑자기 빨라지며
리듬과 박자를 맞추며 한을 달랬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쪼들림 때문에
부잣집 옷을 풀칠 다듬이질 해야
그 옛날엔 한 푼을 벌었으며
고구마나 감자가 주식이었으니
콩나물밥이나 무채 밥을 그것도 어쩌다
한 번 해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옛날 동지섣달 그때는
정말 눈이 많이 내린듯하고
계곡에서 부는 삭풍도
더 차갑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새벽녘 산골짜기 덫에서
산토끼 한 마리 잡아올 때는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한 어머니 심기도
활짝 갠 봄날이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밤
어느 곳 어디 추운 곳에서
또 다른 친구가
달을 보고나 있지 않을까요.
6) 동지 다음날 /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밥은 굶지 않는가?
—아이들은 잘 크는가?
7) 동짓날 밤이 오면 /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 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 짖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 새끼 꼬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간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8) 동짓날을 기다리며 / 정민기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꿈속의 새 한 마리처럼
다가온 그녀는 동짓날에 태어났다
아침에 미역국 대신
동지팥죽을 먹을 그녀가
입가에 팥죽 미소를 묻히고
인사를 해줄 것만 같다
긴긴 동짓날 밤처럼 지루한 어둠은
모든 헛된 꿈을 버리고
이루어질 꿈만 꾸게 한다
그녀는 생일인 동짓날 전에 내 시집
한 권을 받으면 뒤표지부터 볼 것이다
그녀의 이름 석 자가
꿈처럼 뒤표지에 적힌 까닭이다
그녀의 생일인 동짓날을 기다리며
또 나는 긴긴밤에 태어날 시 한 편을 꿈꾼다
그녀만큼이나 따뜻한 그녀의 어머니
9) 코로나 19와 겨울밤 / 오애숙
모두들 기다리던
춘삼월 향그럼에
화사한 웃음속의
초청장 만든 들녘
나비는
환희 날개로
프러포즈 하건만
코로나 여파인해
맘의 문 닫은 채로
빚장을 걸어 잠귄
이웃의 그 추임새
긴 겨울
동지섣달을
슬그머니 문여네
10) 동지 팥죽 / 이문조
화산지대
팥죽이 끓어 오른다
뽀글뽀글
새하얀 새알만
퐁당 빠뜨리면
맛있는 팥죽이 되겠지
머리에
흰 수건 두른
어머니
매운 연기에 눈물 연신 훔치며
뽀글뽀글 동지 팥죽을 끓이신다.
11) 동천(冬天) / 서정주(未堂)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12) 동지 (冬至) / 김옥자
첫눈이 펑펑 내리는 동짓날
마음은 이미
고향 언덕으로 달려가
포근한 어머님 품에 안긴 듯
깊은 밤 참새처럼 지저귀며
구들목에 모여 앉아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함께 즐겨먹던 팥죽의 별미
천지 신명님께 조상님에게
자식들의 앞길에
식구들의 건강을 사업의 번창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생각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이 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의 미래에 호화로운 삶보다
소박한 꿈을 키우고 싶어요
13) 동지 팥죽에 빛인 삶 / 하영순
김치에 된장찌개
평생을 길 드려진 혀
어쩌다 한번 맛본 외식
아련한 미각도 한 두 번
느끼하고 느글거려
담백하고 깔끔한 김치 맛을 돌아본다
외식에 의존 하는
직장 생활
때만 되면 어찌 괴롭지 않으리
보글보글 끓는 된장 냄새
사랑이 있고
너그러움이 있는 아늑한 주방
그 속에서
몇 해를 보냈던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두 손 모아
참회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알을 비빈다
14) 엄마의 베틀 / 하영순
내 어릴 때 어머니는
동지섣달 긴긴 밤 늘 물레를 자았지
솜 꼬치로 실을 뽑아 모아둔
무명 실
베를 날아 베틀에 걸어
한 올 한 올 역어 베를 짜서
우리 옷을 만들어 주셨지
우리는 호롱불 아래서
그 실로
양말도 짜고 장갑도 짜고
그러다가 나이론 양말이 나왔지
이것이 우리 삶의 역사
천년 섬유
무명이 요즘 다시 좋아 지면서
추억속의
어머니 베틀이 생각난다.
15) 동지섣달 / 한재만
무성영화의 푸른 필름들이 먼저
하얀 달빛에 빼앗기고 있어요
타다 남은 붉은 노을 빛이 길을 잃고
벌거벗은 기억의 살 몇 점 마저
길섶 질경이의 뿌리 아래에서
방황해요, 얼굴 없는 바람의 검이 쏜살같이
우리들의 건강한 입맞춤을 가르고
아버지의 아버지 적 풍장이 입을 벌려
한 점 점액을 강탈해 가요
칼바람을 토해 내며
거구로 일어서는 저 어둠의 수렁,
봄은 아직도 기별이 없어
16) 동지 / 김상현1
새벽녘까지 잠이 없는 밤엔
찬 서리 내리는 뜨락에 나와
새벽달 보듯 하려고
남겨둔 홍시를
무슨 원한이 깊기로
저리도 찍고, 찢고, 헤집어서
내장만 걸어두었는지
까치소리 요란한 아침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섣달 감나무 피투성이 듯
나는 또 뉘 마음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느라 뒤척이는 밤이면
까치소리 마냥 요란한 나날들에 대한
참회가 깊다.
17)동지팥죽 / 이영균
저 달은 해마다 동짓날 밤
팥죽 싣고 긴 은하수강 건너간다네
애 동지엔
팥죽을 쑤지 않아
불빛 죽여 숨어 가느라 밤이 어둡고
중 동지엔
죽 쑤어 사방 나누느라
불 밝혀 가느라 은하수 길 밝고
노 동지엔
죽을 많이 쑤어 차고 넘쳐
달빛 가려져 은하수 건너기 캄캄하다네
동짓날 죽었다던 망나니 역신
팥죽 먹고 오늘 밤만 피하고 나면
일 년 동안 무병 한다네
작년엔 먹기 싫어
새알심이 한 알 남겼는데
한살 더 먹고
역신 쫓아버리려면
올 노 동지엔
새알심이 두 알 더 먹어야겠네
18) 가보지 않으려는가 / 권경업
지리산서부터 한달여를 걸어왔는데도
능선엔 사람 그림자
본 일이 없고 노루 산토끼 오소리 너구리 산돼지들이
까마귀 부엉이 방울새 박새떼와 어울려 놀고 있는
반도의 등줄기를
동지여
그대 가보지 않으려는가
능선 아래 자락과 골에는
동네마다 때맞추어 저녁 연기 피워올리고
거기 동지와 나의 얼굴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어매와 아배 이웃과 친구들이 도란도란
정겹게 지내는 곳
우리 손잡고 가보지 않으려는가
아마 북풍이 멎어들 때쯤이면 우리는
소백산 국망봉을 지나
태백을 넘고 두타 청옥이 보석처럼
빛나는 봄능선에서
창랑주 먼 바다로부터 던져 올려지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으리라
붉은 해 더 밝게 뜨는 아침에 통일을 기원하면서
흰머리뫼까지 가보지 않으려는가
설령 그것이 꿈일지언정
우리 가보지 않으려는가
19) 동지(冬至)의 시( 詩) / 서정주
시베리아의
카츄샤 마슬로봐의
二萬名分의
남긴
호흡 같은 날.
길뜬 지 달포가 넘는 내 石榴 가지의 루비들은
얼마 전 無欲 色界의 그 친정에 들러
골방 錦枕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고,
간 봄의 내 草原長堤의 쑥대밭의 翡翠들은
몇 달을 가서 쉬고
無雲天에서 다시 내려올 채비들을 하느라고
수런거려 쌓는다.
아아 내 키만큼한 翡翠의 空閨.
아아 내 아내의 키만큼한 비취의 空閨.
친정 간 내 아내와 남은 내 키만큼한 翡翠의 空閨.
아아 내 아들의 키만큼한 루비의 空閨.
아아 내 며느리의 키만큼한 루비의 空閨.
친정 간 내 며느리와 남은 내 아들의
키만큼한 루비의 空閨.
돋아날 민들레의 將來의 肉身을 재고 있는 대신
千里의 冬至旅行을 나도 다니어 오리.
20) 冬至나물 / 김시태
小寒 지나 이맘때쯤
흰 눈이 쌓일 때면
그 길고 가느단 꽃대가
곧게 곧게 솟아올라
노오란 꽃 피우는
冬至나물!
뭐 그리 이쁠 것도
탐스럴 것도 없지만,
그래도 겨울 한철
우리 고장 식탁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別味.
어쩌면, 내 촌스런 사랑도
바로 그 冬至나물 김치의
그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영영 잊지 못하는 것일까.
21) 동지(冬至) / 김석송
茶禮는 마치었다
우리는 팟죽 상을 바닷다
家族一同이……
입울 속에서부터
팟죽:노래를 부르던
일곱 살 먹은 어린
누의동생까지
그러나 未久에
어린 누의동생은
수저를 노코
우두커니 안젓다-
할머니가 보시고
「아가 왜 안 먹니?」
하고 부르시엇다
「한 그릇 다 먹으면
한 살 더 먹으니까……」
어린 동생은 이러케 부르지젓다
우리는 모다 크게 웃엇다
그리고 팟죽은
마츰내 不足했다
22) 동지(冬至) / 유창섭
긴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저 끝에는
늘 푸른 바다에서 빨간 태양이
솟아 오르고 있을까요
투명한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앞뒤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 그 터무니 없는
붙잡아 둘 수 없는 생각들 쫓다가
석 잠인지 넉 잠인지 자다가 일어나
다시 환생하는
하얀 햇살 안고 들어가
문을 닫은 숱한 사연의 고치들
수북이 쌓아놓고
갈 길 찾아낼 수 있기를
빌면서
그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눈 발, 어둠으로 쏟아져도
아무데에나 닿을 수 있는
하얀 길이 보이는 밤입니다
23) 동지冬至 달 기나긴 밤을-
시집읽기17 황진이 / 한명희
언니 언니 진이 언니
오늘따라 밤이 왜 이리 길으우
울리지도 않는 전화통
부수지도 못하고 붙어 서 있수
이 뒤숭숭한 심사
아무리 날씨 탓일까
허기사 추적추적 비오는 날은
생각이 갑절로 많다우
하고픈 마음이야
애써 끊어낸다지만
오늘 일당 공친 건 어쩌우
현지처 노릇하는 언니 팔자
부럽수
24) 동지밤 / 박남준
개울물 소리 저리 시리도록 푸르른가
동지 까만 밤 부쩍이나 귀는 밝아져서
산 아랫마을 뉘 집 개가 짖는다 먼 장닭이 운다
눈이 오는가 누가 오는가
처마 끝 알전구 불을 밝혀두었나
심심한 날이 또 밝아오는가?
25) 동짓날의 추억 / 고지영
아침부터 내린 눈이
하루 종일 내린다
시래기국밥도 감지덕진데
오늘은 동짓날
얼마나 기다린 날이든가
해 질 녘 동무들과 팥죽 동냥 나선다
들통 들고 이집 저집 동네 한 바퀴
똥개에게 쫓기고 그래도 반 통은 얻었다
다들 어렵다는 보릿고개 시절이건만
있든 없든 인심은 참 좋았다
자기 발등만 쬐며 졸고 있는 전봇대
골목 처마 밑에 둘러앉아
추위도 아랑곳없이 얻은 팥죽
꽁꽁 언 손으로 퍼서들 먹는다
입가에 팥죽이 뒤범벅 서로 얼굴 쳐다보며
웃는 웃음꽃이 눈 내리는 동짓날 긴긴밤
골목 하늘에 울려 퍼진다.
26) 동지 팥죽 / 강고진
해마다 동짓날
옛 추억이 그려진다
동지 팥죽을 끓이시기 위해
어머님은 새벽부터
부엌에 나가셔서 새알을
만들어 아궁이에
불을 짚 피시고
팥죽을 끓이시기 위해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팥죽을 쑤셨던
동짓날 그날을
그리울 때면 어머님의 팥죽을
맛있게 먹었던
옛날이 눈에 선하니
마음속에 그립고 그려진다
27) 동지(冬至) / 강성은
누군가 내 얼굴 위에 글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글자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 얼굴은 얼마나 넓은지
글은 얼마나 긴지
나는 앞서간 글자를 잊고
밤새 그의 손길을 따라갔다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사이 누군가 빗자루로 내 잠을 저만치 쓸어놓고
나를 먼 데로 옮겨다 놓고
나는 저만치 쓸려갔다 쓸려오고
그 위로 눈이 쌓였다
그의 밤은 얼마나 긴지
나의 밤은 얼마나 긴지
끝없이 계속되었다
28) 동짓날 / 강순옥
해마다 동짓날이면
소매 걷어붙이고
나이만큼 새알 옹심 만들어
앞 뒷집 채반으로 나르는 날
산촌에 달빛이 길어져
햇빛이 짧아지는 것일까
오늘 밤 잠자면 눈썹 희어진다고
어머니는 새알 옹심 만들게 한다
아직도 깨알 같은 새알심 추억
산골 담부락 밑에 놀고 있어
집 모퉁이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팥죽 쑨 날 좀도독 잡는 날이다
온 집안 형제자매 나이만큼
밤새워 빚어도 부족한 새알 옹심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는 나이 새알
땡 동!
옆집 초인종 울리며
나이 한 살 슬그머니 들어온다.
29) 동짓날 향연 / 강순옥
한해 마무리 양은 대하에
둘려 않아 새알심 만든다
안방 건너방 사랑채 촛불 켜 놓고
집집이 장작불에 동지 팥죽
가마솥에 쑤어 한해 마무리한다
집안 곳곳에 붉은 팥죽 뿌려놓고
나이만큼 옹심이 새는 오남사녀
무사태평 기원하며 화롯가 모여든다
깊은 밤 굴뚝 연기 달빛에 하늘하늘
오동나무에 걸쳐 부엉새 부엉부엉
겨울바람 뿌려놓은 팥죽 망보다가
꽁꽁 언 고사리손 볼 비벼 가며
아랫목에 뒤엉켜 밤새워 조잘조잘
군고구마 동치미 곁에 두고
옛이야기 듣는다
30) 동짓날 풍경 / 김귀순
빛과 어둠이 공평한 동짓날
붉은 팥으로 쑨 새알 없는 걸쭉한
선혈 빛 팥죽을
둥지를 돌며 금줄 치듯 뿌린다
인간 세상을 호시탐탐 엿보려는 잡귀들
범접도 못 하리라
새해도 둥지 안의 삶은 무탈하리라
간절한 염원 주문 외듯 하고
늘어진 몇 가닥 수양버들 가지에
세월의 흔적을 아쉬워하는
그저 바라만 봐도 애잔해지는
평생지기와 마주 앉아
팥죽 한 대접에 노부부는
서로의 측은지심을 담고
듬성듬성한 안타까운 몇 가닥에
미련의 세월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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