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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겨울 시모음
    카테고리 없음 2022. 11. 6. 14:44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초겨울 아침 / 정유찬

     

    왜 그리도

    서러운지

     

    바람에

    잎새를 모두 바쳐

    앙상한 나무

     

    강물은 냉정하고 무심한 듯

    차갑게 지나가고

    모이를 찾아

    이리저리

    후드덕거리는 새들

     

    찬 공기에

    코끝이 찡 하면……

     

    그냥

    아름다워 서글펐던 것이리라

    그 허전함은

    아마 싸늘한 바람 탓이리라

     

    심장이 저려오는

    상실의 아픔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초겨울 아침

    한적한 강가에서

    나는 내게 말하고

    또 말한다

     

     

    초겨울 낙엽 / 유일하

    찌근거리던 만추도

    살며시 꼬리 감춘 날

     

    모가지 내민 초겨울바람

    심장에 엄습하여

    사랑싸움하고 있다.

     

    보고픔의 혈관타고

    그리움의 뇌혈관으로

    깝죽거리다가 멈췄다.

     

    정말 사랑의 바람이

    시려오는 것일까

    흰눈 툭툭 털고

    다가올 사랑아!

    사랑한다 말해다오.

     

    가는 세월 때문에

    보르르 떨려오는 청춘이

    조락의 낙엽을 타고

    산등성이를 휘감아

    넘어가는 노을빛에

    넋 없이 바라보다가

    눈시울 붉어질라

     

    초겨울 저녁 /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

    부더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

    바람이 불어도

    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 한 계절

    온통 머리 풀고 울었던 옛날의 일들

    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에 감추고

    흰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

    가지에다 휘감는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초겨울 밤 내리는 비 / 고은영

    불빛에 노출된 물체의 그림자들
    싸늘한 노상에 기다랗게 누웠다
    아, 선연하게 외로움 타는 어둠도
    그리움의 예각을 치켜세우는 모서리
    저 끈적이는 빗소리는 왜 이리 적막한 것이냐

    비 색깔의 음악을 듣는다
    한 많은 여인의 흐느낌 같은 음울한 멜로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해 묻고 싶은 밤이여
    무채색 표정으로 잃어버린 언어를 되뇌는
    너의 무게를 말해다오

    크림쇼의 밤 풍경처럼 은유의 시어들이
    활자가 되어 밤의 거리를 떠돌지만
    작은 조각 하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인제 와서 그리움의 형상들이
    명백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는 왜 울고 싶은 것인가

     

    초겨울 입문 / 박종영


    산 벚꽃 움이 봉곳하게 솟아
    송곳처럼 날렵하다
    만져보니 날랑 하게
    잡히는 것을 보면
    어느새 겨울채비를 마쳤는가 보다

    그 옆 속절없이 피어 웃고 있는
    겨울동백 볼록한 가슴이
    몰래 마음 여는
    청상(靑孀)의 입술처럼 붉다

    야금야금 찬기운 틈새 엿보는
    양지쪽 이팝나무 몇 그루도
    듬성하게 서툰 꽃망울 감추고
    찬바람 밀어낸다

    요즘 같이 허전한 시간으로
    산허리 감고 오는 구절초 냄새,
    그 향긋함이 그리워지는 오후마다
    낭창 하게 취하고 싶은 것은 어떤 기다림일까?

     

     

    초겨울 바람 / 김내식

    회색빛 하늘이 몹시 차가워
    기러기도 어디론가
    흔적이 없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대간줄기로 쫓기던 칼바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 대숲에 내려온다

    바람에 저항하는 파도는
    피로의 거품 일으키나
    전의를 잃지 않고
    틈새의 갈매기
    호수로 날아든다

    호숫가를 걸어가며
    내 나이같은 초겨울이
    세월의 바람으로 떠밀어도
    두 다리에 힘주고
    천천히 걷는다

     

    초겨울 / 김지하

    이 계절
    참되다

    잎새 떨어진 나뭇가지들
    뼛속에서 한겨울 어귀찬
    바람 소리 꿈꾸고

    감추어진 온갓 아픔들
    모두 드러나
    죽음이 죽음에게
    생명의 비밀을 속삭이는 때
    아 초겨울

    병든 남편이
    병든 아내를 간호하는 잿빛 나날의
    갇힌 방으로부터
    포근한 남쪽
    돌아갈 길은 끊기고
    흰 눈은 아직 내리지 않고
    조용한 기다림
    이 계절 참되다.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도종환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 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는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 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초겨울 장미 / 안종환

     

    임 떠난 자리에서

    무너진 가슴으로

    서성이는 이처럼

    아직도

    못 다한 사랑 남아 있길래

    추위도 잊은 채

    저렇게 주춤거리며 서 있는 게지

     

    뙤약볕에 서서

    생을 달관한 선지자처럼

    홀로

    그 기나긴 여름날들을 지키던

    너의 초연함

     

    아름다웠던 시간들 반추하면서도

    가끔은 회오에 젖는 듯

    상념에 사로잡힌 네 모습 위로

    살아 온 날들의 추억이 역류 한다

     

    삶이 꿈이라서 일까

    스러져가는 운명 앞에서도

    끝내

    초조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너

    피처럼 검붉은 얼굴

    한 꺼풀씩 땅에 떨어져

    마침내

    마지막 하나 남은 기다림마저 무너진 채

    주검같은 앙상한 가지만 남을지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넘어지지 않을 너

     

    동토의 날 지나

    그 현란한 자태

    타오르듯 다시 피어 나는 날

    넉넉한 마음으로

    싱그러운 훈풍이 되어주고 싶어라

     

     

    초겨울 잡목(雜木)숲 / 박희진

    여름엔 도무지 속을 안 보이던

    초록의 불투명체, 거대한 숲이

    순순히 옷 벗더니, 살도 벗고

    썰렁한 공간에 뼈까지 드러냈네.

     

    나무들의 이렇듯 굵거나 가는

    무수한 뼈마디가 기기묘묘하게

    섬세한 모양을 이루고 있을 줄야.

    그 뼈마디에 이름도 모를 새가 앉는구나.

     

    나는 이젠 완연한 잿빛의 나이건만

    아직도 주책없이 눈먼 수렁 속에

    흐느적거리면서 살고 싶다니.

     

    오늘은 초겨울 숲속에 단좌하여

    나도 뼈 있는 사람임을 보여야지.

    청춘의 상실을 슬퍼하지 말 일이다.

     

    초겨울밤에 / 신남춘

     

    붉어진 해를 삼키는 것은

    바다가 아니다

    우주를 야금야금 먹어대는

    어둠 이었다

     

    만물을 꿀꺽 삼킨 어둠 속

    자동차 불빛이 달리는 길

    알몸이 된 은행나무는

    나뭇잎 몇 잎을 달고

    부들부들 몸부림을 친다

     

    찬 서리 토해내는 한 밤중

    댓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살을 에는 칼바람이 일고

    모두가 잠든 세상은

    고독하고 쓸쓸하다

     

    희뿌연 별빛이 가득

    오스스 떨고 있는 밤

     

     

    <69>  

    초겨울 / 도종환

     

    올해도 갈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70>  

    초겨울 정취 / 박희홍

     

    봄여름 내내 그토록

    왕성하게 푸르던 잎

     

    혼인날 신부처럼 곱게

    오색 무지갯빛으로 단장하고서

    하객을 반갑게 맞이하더니

     

    기운이 점차 쇠해가니

    추레해진 몸뚱이를 씻고

    갓 나온 여인처럼

    하얀 속살 드러낸 나무들

     

    지치고 노곤하여

    이제 긴 잠을 자려

    슬그머니 눕더니

     

    말없이 잠들었다고 서운해 말고

    따뜻한 기운 밀려오면

    다시 함께 한세상 살아보자 한다

     

     

    <73>   

    초겨울 문턱에 / 이범동

     

    저무는 가을

    초겨울 문턱에 서서

    계절이 남기고 간

    세월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본다

     

    가을은 산야 곳곳에

    오색 빛깔로 곱게 타올라

    풍성하게 인생을 꽃 피우는 바뿐 계절

    저토록 드높던 청명한 하늘도

    싸늘한 찬바람에 저 만치 멀어져 가고,

     

    그렇게

    잿빛 하늘높이 처량하게

    나뒹굴던 낙엽도 한잎 두잎

    심연 속에 허전히 흩어져 슬피 운다

     

    허허롭게 쓸쓸이

    강풍에 툭툭 떨어진 낙엽

    풍상에 시달리며 선 나무도 각각

    운명의 뿌리를 찾아 숙면하는 길목이다.

     

    초겨울 / 김영길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앙상한 뼈대만 움츠리고 있는

    나뭇가지에 찌그러진 나무 잎사귀는

    가랑가랑 나무와 이별을 고하는

    노랫소리만 바람과 장단을 맞춘다.

     

    세월의 바퀴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걸까?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햇님과 인사하는

    아침이요 뒤를 돌아보면 밤하늘

    별들이 인사하는 저녁을 맞는다

     

    세월이 바쁜 일이 있는지

    내 마음이 급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은

    청춘의 삶이 용솟음치는

    그대로인데 세월은 너무나

    빨리도 변하여 가는 것 같구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는데 석양에 해는

    저물어 가고 갈 길은 너무 많이 남아

    지는 해를 붙잡아 놓을

    방법을 찾아보고 싶구나

     

     

    초겨울날의 첫눈 / 김대용

    북새 풍이 불어와

    가녀린 나뭇가지 휘날리고

    묵묵히 흐르는 계곡물

    살얼음에 움츠린 피라미는 떨고 있어.

    고즈넉한 산자락에

    비탈진 바위틈

    아스라이 서 있는 감나무

    붉게 농익어진 감 까치발에 서성이며

    푸르렀던 이파리

    한 줌의 낙엽으로 넋이 되어

    길섶에 방황하여

    달과 별빛이 물들어 시린 맘 안아주고

    맑은 하늘에는

    새하얀 첫눈이 내려와서

    처음 본 순간

    눈이 부시어 어루만져 입맞춤하였네

     

    당신이 그리운 날 / 이순재

    찬바람

    문틈으로 스미는 초겨울

    당신의 따스한 가슴이

    그리워집니다

    나 어릴 때 당신은

    해가 질 때면 연탄불

    이방 저 방 분주하게

    갈아 놓으시며

    따듯한 아랫목은

    내 새끼 웃음이라

    좋아하셨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그런 당신은

    가난을 힘겨워 않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따듯한 사랑이셨지요

    낙엽은 바람에 날리고

    찬바람이 노을을 때릴때

    노을은 왜 그리 측은 한지

    그리움은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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