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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관한 시모음시모음/주제 2023. 1. 12. 08:35
친구 / 김남조
오늘 아침
불현듯 그 사람 생각 간절하니
그 집에 가서
살얼음 아래 샘물 퍼올려
물동이 채워주리
나의 수첩에
그의 공복 시간과
그가 간혹 울음 울 때를
예측하여 기록하리
겨울 지나면
봄이 오는 당연지사도
감격으로 기다리자 일러주고
때때로 폭풍 덮치는 쓸쓸함도
가슴 쓸어 낫게 할
음악
알려주리라
친구여
전날에 그대가 내게 해준 그대로를
내가 되돌려주리
그대의 사랑 원수 갚아주리
친구에게 / 김재진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 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 닦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 내게 온다면
가만히 네 손 당겨 내 앞에 두고
네가 짓는 미소로 위로하리라.
친구 / 신경림작문 시간에 늘 칭찬을 듣던
점백이라는 애는 남양 홍네 산지기 자식.
협동조합 정미소에 다녀
마루 없는 토담집을 마련했단다.
봉당 멍석에까지 날아오는 밀겨.
십년만에 만나는 나를 잡고 친구는
생오이와 막소주를 내고
아내를 시켜 틀국수를 삶았다.
처녀처럼 말을 더듬는 친구의 아내.
나는 그녀의 아버지를 안다.
자전거를 타고 술배달을 하던
다부지고 신명많던 그를 안다.
몰매 맞아 죽어 묻힌 느티나무 밑
뫼꽃 덩굴이 덮이던 그 돌더미도 안다.
그래서 너는 부끄러운가, 너의 아내가.
그녀를 닮아 숫기 없는 삼학년짜리 큰 자식이.
부엌 앞의 지게와 투박한 물동이가.
친구여. 곳집 뒤 솔나무 밭은 이제
나 혼자도 갈 수 있다.
나의 삼촌과 친구들이 송탄을 굽던 곳, 친구여,
밀겨와 방아 소리에 우리는 더욱 취해
어깨를 끼고 장거리로 나온다.
친구여, 그래서 부끄러운가,
친구에게 / 박두순
친구야
너는 나에게 별이다.
하늘 마을 산자락에
망초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별들
그 사이의 한 송이 별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의 둘레에서 돋아나는
별자리 되어
내 마음 하늘 환히 밝히는
넌
기쁠 때도 별이다.
슬플 때도 별이다.
친구야
네가 사랑스러울 땐
사랑스런 만큼 별이 돋고
네가 미울 땐
미운 만큼 별이 돋았다.
친구야
숨길수록 빛을 내는 너는
어둔 밤에 별로 떠
내가 밝아진다.
친구에게 / 정호승젖은 우산을 접듯
그렇게 나를 접지 말아줘
비 오는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그대로 접으면
젖은 우산이 밤새워 불을 지피느라
그 얼마나 춥고 외롭겠니
젖은 우산을 활짝 펴
마당 한가운데 펼쳐놓듯
친구여
나를 활짝 펴
그대 안에 갖다놓아줘
풀 향기를 맡으며
햇살에 온몸이 말릴 때까지
그대 안에 그렇게
친구 / 홍수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친구여 너는 가고 / 박재삼친구여 너는 가고
너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대신
그 그리움만 한 중량의 무엇인가가 되어
이승에 보태지는가,
나뭇잎이 진 자리에는 마치
그 잎사귀의 중량만큼 바람이
가지 끝에 와 머무누나.
내 오늘 설령
글자의 숲을 헤쳐
가락을 빚는다 할손
그것은 나뭇가지에 살랑대는
바람의 그윽한 그것에는
비할래야 비할 바 못 되거늘,
이 일이 예삿일이 아님을
친구여 너가 감으로 뼛속 깊이 저려오누나.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경숙
보고 싶은 친구에게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어두운 불투명의 고요가 찾아오면
난 버릇처럼 너를 그린다.
너의 모습,
네가 떠난 설움처럼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보고싶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미완성 작품처럼
자꾸만 보고 싶은 너.
우리가 이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떤 연인보다도
아름답고 다정한 미소를 나누자.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친구,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이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가고 있다.
울어 본 적 있는 친구가....
내 친구는 / 윤보영가까이 와있어도 부담 줄까 봐
선뜻 연락할 수 없는 사람
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
휴대 전화기만 귀찮게 만드는 사람
산이 좋아 산에 와 있어도
물이 좋아 계곡 물을 보고 있다가도
마음속에 담아 둔 모습 꺼내보게 하는 사람
안부 문자 보내놓고
바쁘면 답 안 해도 된다고 적어놓고
바쁜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휴대전화기만 보게 하는 사람
바쁜 일 때문에
시간이 훨씬 지나 식당에 와서도
"식사는 했을까?"
시장기보다 안부가 궁금하게 하는 사람
차 한 잔 같이 하고 싶은 사람
만났던 날과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하다
가끔 지하철역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
되돌아와도 기분 좋고
발걸음이 가볍게 해주는 사람
봄, 여름, 가을, 겨울 구분 없이
내 안에 활짝 꽃이 피게 해주는 사람
함께 그 꽃을 보고 싶은 사람
생각만 해도 향기가 나는 사람
친구에게 / 최복현
친구야
널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어
나를 멀리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네가 밉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미웠어
이렇게 비가 오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울 땐
자꾸 네 생각이 나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우정이란 걸 넌 아니?
사랑보다 더 깊은 추억을
새겨 준 친구야
친구 / 천양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쓸모 없는 친구 / 김광규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빚 갚을 돈을 빌려주지도 못하고
승진 및 전보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아들 딸 취직을 시켜 주지도 못하고
오래 사귀어 보았자 내가
별로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눈치챘을 터이다
만나면 그저 반가울 뿐
서로가 별로 쓸모 없는 친구로
어느새 마흔 다섯 해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친구 / 문정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외로운 벗에게 / 조병화
고독하십니까,
운명이옵니다
몹시 그립고 쓸쓸하고, 외롭습니까,
운명이옵니다
어이없는 배신을 느끼십니까,
운명이옵니다
고립무원, 온 천하에 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계시옵니까
그것도 당신의 운명이옵니다
아,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전생의 약속인 것을
그곳에 그렇게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는 것도
이곳에 이렇게
가랑잎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도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뜨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이리로 한 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잔 먹세
어깨를 잠시 꽃게처럼 내리고, 순대국이 끓는
중앙시장 정순집으로 기어들 수도 있고, 레테라는 집도 좋지
밤 12시가 넘으면 포장마차 로진으로 가 꼼장어를 굽지
해직교사가 무슨 돈으로 술타령이냐 묻고 싶겠지만
없으면 외상이라도 하지, 외상술 마실 곳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이 아니던가
갑자기 자네는 부담스러워질지 모르겠네, 이름이야 까짓것
개똥이면 어떻고 쇠똥이면 어떻겠는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오기만 하게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꽃이 필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향기 속에 숨겨진 내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걸 너는 아니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로 하시던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나는 날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향기 속에 숨겨진 내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걸 너는 아니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꽃이 필때 꽃이 질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친구가 된다는 것 / 이동식
친구가 된다는 것은
작은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꽃병에 꽃을 꽂는 일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나
방의 분위기를 환히 살려 놓을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듯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런 작은 일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아껴 주는 마음을 간직하는 거예요
친구가 된다는 것은
수학처럼 골치가 아프지도 않고
과학처럼 딱딱하지도 않은
가을날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는
아리따운 소녀의 감성 같은 거예요
언제나 가장 좁은 간격에 서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그것이
친구가 된다는 거예요
친구에게 / 서윤덕
구구절절이 내 모든것을 이야기해도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내편이 되어주는 좋은 너
신이 내게 주신 축복중에 축복은
너를 내 친구로 만나게 한거라 생각해
스산한 가을 바람 불어올때에
내가 향 좋고 따뜻한 차 만들어 갈께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며 삶을 이야기하자
너로 인해 가을이 행복하고
다가올 겨울도 춥지 않을거야
우리 오래도록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자
언제라도 기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