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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고사리 이렇게 드세요
    좋은글 2024. 1. 10. 13:53
     
    요즘 이른 아침 고사리를 꺾으려고 산속 여기저기를 헤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제주도 소방안전부에서는 제주도 내의 고사리를 채취하다가 너무 열중한 나머지, 방향감각을 상실하거나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했다고도 한다. 풀 속에서 살짝 올라와 있는 고사리를 꺾는 재미도 좋을 뿐더러 몸에 좋은 영양 성분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때는 고사리 괴담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고사리에 독성물질이 많으니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황당한 정보가 나돌기도 했다. 식품화학을 공부한 필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왜곡된 정보가 시민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물론 고사리에는 타킬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독성물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브라질이나 볼리비아에서 소를 방목해 키웠는데 방광 종양으로 인한 혈뇨를 보이고 위 종양도 나타나 그 이유를 조사한 결과 소들이 목장의 들에 있던 고사리를 2-3년 동안 지속적으로 먹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고사리를 생채가 아닌 나물로 섭취하고 있는 동양인들에게 그로 인한 중독사례나 임상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가끔 소량씩 섭취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이어 내려오는 고사리 조리 방법을 보면 그 과정 중에 이미 독성물질이 충분히 제거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추측일 뿐 지금까지 고사리의 조리 과정 중에 독성물질이 얼마나 제거되는지 과학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확인된 적이 없었고, 더구나 요즘은 냉동고 사용으로 고사리를 말려 저장하기 보다는 생 고사리를 냉동보관하면서 먹는 경우가 많아 독성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조리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그에 관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생 고사리를 시간별로 가열하여 비교해 보았더니, 5분만 가열하여도 고사리에 함유돼 있던 타킬로사이드가 60%이상 제거되며, 남아있는 타킬로사이드도 2/3는 이미 독성이 없어져서 발암성을 잃은 테로신 B(Pterosin B)라는 물질로 전환돼있었다. 고사리의 독성물질인 타킬로사이드(Ptaquiloside)는 열에 약하고 물에 잘 녹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열시간이 길다고 독성물질이 더 많이 제거되지는 않았고, 5분 이후에는 완만하게 감소하였다. 이는 가열시간보다는 가열의 유무가 중요하며, 추가적으로 물에 담가 주는 시간과 담그는 물을 여러 번 갈아주면 훨씬 효과적이었다. 5분간 가열한 다음, 그 물을 버리고 새로운 물에 12시간동안 담가 두면 88%, 그리고 침지하면서 여러 번 물을 갈아주면 최대 99.5%이상 제거됨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고사리를 삶아 물에 오랫동안 불려서 독소 성분을 상당부분 제거한 후에 조리하여 먹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생 고사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따뜻한 봄이 되었다. 고사리는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장운동을 촉진해 변비를 예방하며, 시력을 보호해 주는 비타민 A도 함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철분과 칼슘이 들어 있어 빈혈과 골다공증을 예방해준다.
     
    이처럼 고사리는 영양학적으로 우리 몸에 이로운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에 독성물질만 잘 제거해서 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생 고사리는 곧바로 조리하지 말고, 반드시 5분간 데친 후 그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을 최소한 4번 이상 바꿔주면서 12시간 동안 담가놓은 후에 조리해야 한다.
     
    고사리가 많이 자라는 제주는 지금 고사리 장마가 들었다고 한다. 초봄에 1주일동안 계속 비가 오고나면 고사리가 여기저기서 엄청 올라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갑자기 생고사리 깔고 칼칼하게 끓인 조기탕이 생각난다. 오늘 미리 생고사리를 사서 물에 담가 둬야겠다.
     
    이향희
    광주보건환경연구원·식품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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