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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에 관한 시모음<2>시모음 2022. 11. 19. 20:39
초겨울에 관한 시모음<2>
초겨울 엽서 / 홍해리
토요일엔 하루 종일 기다리고
일요일은 혹시나 하지만
온종일 소식도 없고,
바람에 슬리는 낙엽, 낙엽,
나겹나겹 낮은 마당귀에서 울고 있다
내 마음 앞자락까지
엽서처럼 와서
그리움만 목젖까지 젖어
네가 눈가에 맴돌고 있지만
성긴 날개로는 네게 갈 수 없어
마음만, 마음만 저리고 아픈 날
솟대 하나 하늘 높이 세우자
뒤뚱대는 여린 날갯짓으로
네가 날아와 기러기 되어 앉는다
비인 가슴으로
나도 기러기 되어
네 곁에 앉는다.
가지산의 초겨울 / 조재완
잎새는 졌다
머물던 가지에 추억만 남기고
바람의 길을 터주며 미련 없이 떠났다
발아래 가랑잎 부서지는 소리뿐
정적을 깨우는 텃새들의 아우성도 멎었다
그토록 성성하던 산등성이가
고슴도치 등처럼 앙상하다
불꽃처럼 피었다가 거품처럼 사라진 숲
삶은 언제나 허무로 향한다
동장군과 맞설 채비라도 하듯
나목은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벗고
벌거숭이 몸으로 울퉁불퉁한 근육을
들어내며 강한 척 허세를 부리고 섰다
가르마 같은 오솔길 따라 내리면
여기는 별천지 무풍지대다
산자락을 지키고 선 빛고운 단풍
계절도 잊은 채 미련처럼 남아서 불타고 있다.
어느 초겨울 길섶에서 / 이범동
새벽 찬 서리에
곱게 물든 단풍잎 칼바람에
꽃비 날리듯 한들한들 휘날리는 초겨울
계절의 소리도 사각사각
만추의 서정이 쌓인 낭만 길
나목(裸木)가지 끝 갈색잎 한,둘의 낙엽들
폭풍한설 하얀 잔설에
얼듯 말듯 진토에 꼭꼭 숨어 있다
봄 오면 신비롭게 새순돋아 꽃피는 생체 풀
잿빛하늘 초록동산 숲속은
사랑 찾아 짝짓는 산새들의 낙원이다
삶에 지친 우리 인생도
물처럼 구름처럼 흘러 흘러
사계절 윤회하다 삭풍 부는 어느 초겨울
한 떨기 복수초로 피었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도 인생의 한 숙명이다.
초겨울 하늘 / 배태성
헐벗은 나뭇가지에
한 움큼씩 매달린
마르고 야윈 잎사귀들이
저녁 어스럼 붉은 햇살에
초라하게 걸려있다.
쓰러지고 주저앉은
힘없이 할킨 억새밭,
움츠러든 국화도
서로 기대어 고개 숙이고
먼길 마다않고 날아온
북녘 기러기는 늪 속에서
추위 털어내느라 바쁜 몸짓이다,
잔비 흐드러지게 뿌리는 삭풍은
휘어지고 비틀어진 낡은 창틀새로
숨 쉴 새 없어 잠 못 이룬다.
초겨울 아침풍경 / 김덕성
너무 춥다
영하의 초겨울 아침거리엔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옷깃을 여민다
누군지 알아 볼 수 없게
목털이로 단단히 싸매고
총총걸음으로 출근한다
모두 바쁘다
아침 해는
밝은 미소로 다가오며
참 춥네요
저를 보세요하고
뜨거운 태양 빛으로
쏟아 놓는 고마운 선물
지금 출근길엔.
사랑의 온기로 화기가 넘친다
초겨울 / 김정윤
발가벗은 가지에
마지막 남은 잎새들이
파르르 몸을 떨며 찾아온 겨울
거칠게 불던 바람이
윙윙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는다
하얗게 뱉어낸 서릿발이
날카로운 날을 세워 바람을
삼키는 강변에
서걱거리는 마른 억새가
반쯤 털려 나간
흰머리를 흔들며 남은 홀씨를
털어 강물에 띄운다
한차례 수초 위로 파문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바람의 뒤를 쫓는 하얀 홀씨는
반짝이는 강물 위에서
삶의 첫걸음을 내딛는 초겨울
초겨울 / 김영길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앙상한 뼈대만 움츠리고 있는
나뭇가지에 찌그러진 나무 잎사귀는
가랑가랑 나무와 이별을 고하는
노랫소리만 바람과 장단을 맞춘다.
세월의 바퀴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걸까?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햇님과 인사하는
아침이요 뒤를 돌아보면 밤하늘
별들이 인사하는 저녁을 맞는다
세월이 바쁜 일이 있는지
내 마음이 급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은
청춘의 삶이 용솟음치는
그대로인데 세월은 너무나
빨리도 변하여 가는 것 같구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는데 석양에 해는
저물어 가고 갈 길은 너무 많이 남아
지는 해를 붙잡아 놓을
방법을 찾아보고 싶구나
초겨울 문턱에서 / 노주천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건 욕심이고
이리저리 틀어지고 어긋나도
길이란 삶은 꼭 그리 나쁜 것 만도 아니더라.
욕심을 고쳐가면서
깊이있게 변해가고 있음을 알고
네가 품고 있는 마음으로
펼쳐지는 소박한 꿈
돋을볕사이 빛갈림으로 비친 작은 바람
덧거친 세상 좋은 기억만 흘러라
살갑게 다가온 이 계절
선한 것만 간직하자.
초겨울 연가 / 홍대복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같이
공원 벤치에 내려앉은 초겨울
헐벗은 나목 잔가지로
살며시 걸터앉는 따스함에
그리움은 아슴아슴 사색에 젖는다
서서히 다가오는 땅거미처럼
고단한 여정 아쉬움 남긴 채
저녁연기 피어나는 향수에 저문다
초겨울의 편지 / 조순자
향기로운 푸른 그대
낡은 시간 속에
산화된 꽃이 되어
하햫게 부서지고
맑은 사슴 눈망울은
기다림과 한숨으로
혜안(慧眼) 마져 무뎌져
칼바람에 흔들린다
빨갛게 신음하던 단풍이
하늘 끝에 누운 날
하얀 눈꽃 속에
수줍은 입맞춤의 그대 그리워라
눈내리는 사막을 걸을지라도
망각의 강물을 마실지라도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지
수많은 날들을
꿈속에서 만났던 그리운 사람아!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긴 편지를 쓴다
그대에게 드리는 초겨울의 헌사(獻詞) 를...
초겨울날의 첫눈 / 김대용
북새 풍이 불어와
가녀린 나뭇가지 휘날리고
묵묵히 흐르는 계곡물
살얼음에 움츠린 피라미는 떨고 있어.
고즈넉한 산자락에
비탈진 바위틈
아스라이 서 있는 감나무
붉게 농익어진 감 까치발에 서성이며
푸르렀던 이파리
한 줌의 낙엽으로 넋이 되어
길섶에 방황하여
달과 별빛이 물들어 시린 맘 안아주고
맑은 하늘에는
새하얀 첫눈이 내려와서
처음 본 순간
눈이 부시어 어루만져 입맞춤하였네
초겨울에 서성인다 / 신동현
겨울은 정지된 화면이다
내 안으로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던 추억들도
힘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멈춘다
내 영혼 근처에서 내리던
첫눈은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바람에 펄럭이는 산등성이의
오색 깃발들이 맹수처럼
포효한다
나는 내 힘으로 바람을 막아보려
하지만 바람은 아버지 얼굴처럼
근엄하다
바람이 되어 날아간
얼굴들이 되돌아와
나를 맴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침을 한다
모든 것이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계절
사무치는 그리움을
뜨거운 심장 속에 품은
작은 새순이 오색 깃발되어
바람에 펄럭인다
봉인한 기억 / 김정자
끈으로 묶어 멀리
밀쳐 내버렸다고 여긴 기억
한지에 싸맨 문풍지의 현란함을
녹음해 주세요 메시지로 남겨지던
싸늘한 초겨울 주말 거리
겨울쯔음 그친 낙엽비
누군가의 발에 밟혀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 어딘지 모를 곳으로 뒹굴었다
초음파로 인쇄된 바삭한 잎은
밝히지 않는다 바람도 묻지 않았고
얼음이 내는 소리를 듣고
바르르 떨고 있는 입술은 술잔에
키스를 나누고 그 자리에서 꼭 껴안고
나직이 들리는 호흡
초겨울 바람 / 하영순
길바닥엔 낙엽이 뒹굴고
거리엔
호걸이 휩쓴다
언젠가는
너나 저와 같을 걸
한 번쯤 돌아보는 자세가
아쉬운 계절
정지된
보일러는 없는지
산유국 허탕한 기침소리
간이 시리다
허기진 서민!초겨울 단상(斷想) / 강한익
한줄기 된바람
고목(古木)의 우듬지에
마지막 잎새를 날려 보내며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고
이승에 머물러야 할 시간
길지 않음을
일깨워 준다.
아등바등 살아온 긴 세월
뒤돌아보니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허망한 삶
가슴을 짓누르고
둥지 속에 몸 감춘
까마귀 애잔한 울음소리
심장 속에 파고들며
굴곡진 삶을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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