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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엽에 관한 시모음 <3>
    시모음 2022. 11. 17. 10:48

     

     

    낙엽에 관한 시모음 <3>

     

    떠남-낙엽을 밟으며 / 조병화

     

    떠납니다

    말 죽이며 떠납니다

     

    떠난다, 라는 말처럼

    슬픈 말이 있으랴

    가슴 저리는 말이 있으랴

    그토록 애절한 말이 또 있으랴

     

    떠납니다

     

    , 너와 나의 이 만남

    떠남처럼 무서운 말이 있으리

     

    만나면 떠남이 있음이 이 이승이라 하지만

    떠남처럼 아픈 철학이 있으랴

     

    어찌 이 날이. 

     

     

    낙엽 / 박정원

     

    이별은 다시 헤어질 수 없으므로 아름답다

    죽음은 다시 죽을 수 없으므로 영원하다

    죽음보다 처절한 이별이 어디 있을까

     

    떠나야 할 때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죄없는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세상은 없는가

    늬 아버지를 두고 내 먼저 절대 눈 못 감는다

    내 어찌 갈꺼나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시고도

    마른기침 같은 영혼을 간신히 일으키며

    난 괜찮다 너희 아버지는 진지드셨드냐

     

    바삭거리는 낙엽, 어머니가 밟히네

    몸 하나쯤이야 낙엽처럼 버리는

    세상의 어머니들

     

     

    낙엽시초(落葉詩抄) / 황금찬

     

    꽃잎으로 쌓올린 절정에서

    지금 함부로 부서져 가는 너

    낙엽이여

    창백한 창 앞으로

    허물어진 보람이 행렬의 가는 소리

    가없는 공허로 발자국을 메우며

    최후의 기수들의 기폭이 간다.

    이기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저 찢어진 깃발들

    다시 언약을 말자

    기울어지는 황혼에

    내일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고궁에 국화가 피는데

    뜰 위에 서 있는 나

    이별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문을 닫으라.

    낙엽

    다시는 내 가는 곳을 묻지 마라.

     

     

    낙엽 / 진의하

     

    낙엽

    생명의 영혼은

    비상의 짓푸른 가슴을 안고

    한 생을 온몸으로 춤을 추었네.

     

    살다보면

    그 또한 그런것이지

    지상에서 하늘까지 웃자란 꿈

    뜻 아닌 거친바람에 흔들린 세월

    꿈꾸는 영원이란 내일이 없네.

     

    눈부시게 찬란하던 지상의 무도장은

    해질녘 석양길에 막을 내리고

    다만

    불꺼진 거리에서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는 취객들의 발거름만

    어디론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네.

     

     

    낙엽은 사람의 가슴에 깔리고 / 노여심

     

    수많은 나무

    잎이 진다.

    수없이 많은 잎들이

    슬픔도 모른 채 지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은

    깎여져 나가는 내 손톱만큼의 감정일까?

    잎을 떨구는 나무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한쪽

    단순한 손짓, 그것 뿐일까?

     

    바람은 우~우 낙엽을 불러

    외로운 사람들 가슴에 깔고

    낙엽을 안은 뭇 사람의 고독이

    빈 나뭇가지를 지나 하늘로 간다.

     

    바라만 보는 하늘

    그의 침묵으로 인하여

    되돌아오고야마는 사람의 고독한 말

    우리는 얼마를 더 외로워야 할까?

    차라리 얼음이 얼어버리면 좋겠다.

    쌓인 낙엽도 부서지고

    여린 우리들 가슴도 얼어

    빈가지 겨울눈 보송보송 솜털이나 바라보면 좋겠다.

     

     

    낙엽 지는데 / 채바다

     

    산 빛 노을빛에

    젖어가는 계절아

     

    들판은

    하얀 억새의 노래

     

    바람 한 점도

    사랑해야 할 오후

     

    떠가는 구름도

    붙들고 싶구나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구나

     

    낙엽은 하나 둘

    지고 있는데

     

    산 노을이 붉게

    멀어져만 가네 

     

     

    낙엽 / 정상하

     

    돌아앉은 숲에서 비가 내린다

    비는 모두 날개를 달고

    나무들로부터 날아 내린다

    숲이 무너져 내린다 

     

     

    낙엽을 태우며 / 김은숙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 있네

    붉게 붉게 타오르던 아름다움이다가

    물기 잃은 낙엽으로 가슴에 쌓인

    힘없는 마지막 불빛 파르르 떨기도 하며

    한 줄기 연기로 피어오르는 낙엽더미처럼

    가슴 밑바닥 무거운 재로 깊이깊이 묻어둔

    가을 냄새 담은 이름

    머나먼 침묵의 강 안으로만 흐르다

    세월 저쪽 깊숙이 묻고 묻어 둔

    이름마저 여위고 여윈 내 생()의 덫

     

     

    낙엽에 부치는 노래 / 권영민

     

    가을은

    가을이라서

    늘 쓸쓸한 것이 아니다.

     

    한송이 꽃그루를

    가슴에 품고

    꽃향기 가득

    뜨락을 일구는 여인처럼

     

    한그루

    작은 나무일지라도

    잎새를 피워

    숲을 일구는 그날

     

    홀연히 떨어지는

    선홍빛 낙엽속에

    잘 여문 바람의 빛깔이 인다.

     

    계곡에 흐르는

    여울의 노래는

    낙엽의 길을 예비하노니

     

    이대로 흐르다가

    말없이 스러져도

    맑은 날의 꿈을 가득 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는가.

     

     

    낙엽 / 한정숙

     

    가을이면

    낙엽이고 싶다

     

    한 치 더 자란 가지에서

    푸르른 녹음이었던

    한 해의 보람을 다하고

     

    눈물 같은 가을비가

    지나가고 나면

    잎새는 붉어지고

    떠날 기약은

    가까워 온다

     

    물든 새 옷일랑

    수의로 입고

    이승보다 더 좋은 데로

    옮겨가리라

     

    바람이 부른 대로

    계절의 섭리 대로

    짐 벗어 가벼운 가을

     

    훠어이 훠어이 떠나는

    한 잎

    낙엽이고 싶다  

     

     

    낙엽 / 홍수희

     

    내가 오로지

    내 마음의 간난(艱難)에 지쳐

    가던 길 휘청일 때에

     

    하늘은 어찌하여

    저리도 푸른지 알 수 없어라

     

    마땅히 나눠줄 것이 없는

    내 비인 슬픔의 손을 들어

    사랑이여, 너를 흔들어 깨우나니

     

    가을은 어찌하여

    저리도 넉넉한지 알 수 없어라

     

     

    낙엽을 보고 / 이정우

     

    (1) 가을에 나뭇잎마다가

    손을 무릎 아래로만 흔들며 떨어지는 것은

    되돌아볼 수 없는 높이가

    그 위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 멀리 드높은 그분의 하늘을

    눈 위의 눈썹으로나

    더러는 손사래로도 가려서 발돋움해 보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항상 제 욕심일 뿐이다.

    이 가을에,

    나무는 제 잎새들을 하나씩 둘씩 아래로

    조용히 타일러 보냄으로써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난과 진실을

    증언해 마지않는다.

     

    (2) 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들 모두

    이미 나뭇가지를 떠난 뒤에 들리고,

    나뭇잎 진 가지 사이로

    겨울하늘의 비가 온다.

    빗소리도 함께 들린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

    더 많이 들린다.

    이 가을의 시간ㅡ

    이승을 떠날 수도 없이, 남은 이는

    낙엽을 보고 배운다.

    스스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서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늘이 얼마나 더 높은지를 알게 된다.

     

     

    시나브로 낙엽은 지고 / 송정숙

     

    가슴 고운 빛

    아름다운 낙엽 된다

     

    첫 번

    그 달콤한 입맞춤 단풍잎 물들이고

    너의 속삭임 은행잎을 수줍게 한다

    우리 웃음은 국화꽃 피우고

    안개 내려앉은 길가에서 잠시 쉬고 있다

     

    머리 쓰다듬던 손길

    늦장미에 얹혀있고

    코스모스 꽃잎사이 사랑이 설레인다

    가만히 보면 아프기도 하였지만

    그러므로 더욱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었다

     

    풀벌레 가을 감을 알아

    그렇게 울어대고

    나무는 이따금씩 손짓을 하지만

    시나브로 낙엽은 지고

     

     

    낙엽을 쓸며 / 양봉선

     

    널브러져

    나뒹구는

    단풍 이파리

     

    쓸어 담으며

    찌든 마음까지

    함께 비우고

     

    그 중

    눈에 들어오는

    고운 잎 골라

     

    책갈피에

    꽂으며

    희망을 싹 틔우리.

     

     

    추분을 지나는 낙엽은 / 류외향

     

    추분을 지나는 낙엽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감추고 있는가

    저리도 즐겁게 무덤으로 몰려가는 낙엽이

    열어 놓은 길 위로

    거듭되는 안개,

    사람은 마음의 가장 엷은 쪽이 안개에 젖는다

     

    추분을 지나는 사람의 마음은

    한 그루 나무를 톱질한다

    시간의 순라꾼들이 밑동을 차며 지나가고

    잘 단장된 장례 행렬이

    흙을 실어 간다

    마음이 가라는 쪽이 어딜까

    마지막으로 빈 나뭇가지가

    조금 뒤척인다

     

    차가운 날이 시작되고

    새들의 목발질 소리,

    허공의 두꺼운 웃음소리

    들으며 조금씩 흔들리고

    조금씩 젖으며

    약속하지 않은 곳으로 간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바람이 슬쩍 옆구리를 찌르며 묻는다

     

     

    낙엽 / 최해춘

     

    가을 햇살 사연 담은

    엽서 한장이

    허공에 메달려 두리번 거리며

    어느 님의 빈가슴에

    안기울까 살핀다

     

    갈바람 불어 와

    속삭이는 소리에

    혼자서 낯 붉히고 떨어져 내려

    괜한 어깨 툭 치고

    몸을 숨긴다

     

    거리마다 뒹구는

    가을 엽서에

    사랑과 이별과 그리움의 사연들이

    발갛게 노랗게

    물들어 있다

     

     

    낙엽 / 조주환

     

    플라타너스잎에 숨었던 늦가을 까투리들이

    연신 푸덕이며 운동장에 내려앉는다.

    몇 놈은 피묻은 날개로 곤두박혀 떨어진다.

     

    푸드득 산 등을 날아 하늘에 가 닿던 것들

    푸른 지느러미 같은 그 죽지는 부러진 채

    우수수 허공을 흔들며 영혼들이 떠난다.

     

    삶과 죽음을 가른 나뭇가지의 높이로

    약간의 현기증 같은 여윈 꿈이 퍼덕인다.

    숙연한 노을이 깔리는 이 지상의 빈 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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