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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겨울에 관한 시모음<3>
    카테고리 없음 2022. 11. 19. 20:53

     

    초겨울에 관한 시모음<3>

     

    초겨울 엽서 / 홍해리

     

    토요일엔

    하루종일 기다리고

    일요일은 혹시나 하지만

     

    온종일 소식은 없고

    바람에 슬리는

    낙엽, 낙엽!

     

    나겹나겹

    낮은 마당귀에서 울고 있다

     

    내 마음 앞자락까지

    엽서처럼 와서

    그리움만 목젖까지 젖어

    네가 눈가에 맴돌고 있지만

     

    성진 날개로는

    네게 갈 수 없어..

     

    마음만,

    마음만 저리고 아픈 날

     

    솟대 하나 하늘 높이 세우자

    뒤뚱대는 여린 날개짓으로

    네가 날아와 기러기 되어 앉는다

     

    비인 가슴으로

    나도 기러기 되어

    네 곁에 앉는다

     

    초겨울에 온 편지/ 김용관

     

    하늘이 써 준 편지를 들고

    가슴에 춤사위로 앉아

    잠시 사연도 말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낮선 사네의 가슴인가보다

    복상사(腹上死)를 당한

    여인네의 기막힌 가슴일까

    펑펑 우는 것을 보면

    속마음이 그리도 아픔이 있었더냐.

    바람 등에 업혀 가는 구름과

    구름 등에 업혀 가는 향기처럼

    못다 한 눈꽃의 설음이 타고 있는지

    겨울 까마귀는 뿌연 하늘에서 울고

    내게 온 초겨울 편지는

    거짓말을 못하고 운다.

     

    초겨울 연가 / 손병흥

     

    밤새 추위에 떤 채 이른 아침나절 날갯짓하며

    눈 뜬 낯선 하늘 향해 정갈한 목소리로 지저귀는

     

    좀체 흔들리거나 그늘조차 찾을 수 없는 생경함

    가슴에 묻어둔 추억 조금씩 꺼내어 흩날리는 잎사귀

     

    코끝이 찡한 찬 공기 스며든 더욱 앙상해진 가슴팍

    추워진 날씨 앞세워 다가선 새벽 쓸쓸한 낙엽의 정취

     

    앙상해진 나목들의 서러움 사무치도록 저려오는 시절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 온몸으로 버티고픈 마무리 산책길

     

     

    초겨울 연가 / 오애숙

     

    가을날의 정취도

    소슬바람사이에 풍성함도

    사라져 버린지 이미 오래

    가끔 비폐한 낙엽

    정착지 못 찾아 이리저리

    헤메이는 방랑자로 떠 돌 때

     

    공명되는 찬공기에

    움츠려 들며 설레임 찾아든다

    옛 추억 속 따사로운 손길

     

    다시 느낄 수 없는

    내 어머니의 다정스런 마음

    가슴에 아련히 떠 올라

     

    내 아이 냉랭한 가슴에

    파묻고 너를 사랑해, 속삭이며

    따사롭고 고운 맘 전한다

     

     

    초겨울 추억의 향기 / 고은영

    이맘때였을 것이다

    일출봉 능선에서 말똥을 줍거나 아니면

    집과 가까운 오름에서 겨울의 땔감을 줍던 날들이

    바람은 억새밭을 휘젓고 날마다 일출봉 바위를 조금씩 깎아 먹었다

    파도 소리에 마을이 하루종일 덜컹대고 하잔 했던 거칠고 메말랐던 겨울

    간간이 진눈깨비가 세찬 바람에 오름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동짓달

    이리저리 휘돌아 내리던 추위 속에도

    억새 향은 코끝을 문대고 어지럽게 흩어졌다 다시 모였다

    바람의 중심에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감하던 가난

    바람의 중심에서 생을 깁던 나날들

    징그러운 바람 매서운 바람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초겨울 숲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허리춤에 망태를 두른 할머닌 말똥이나 소똥을 줍기도 했고

    더러 삭정이도 꺾어 놓았다

    할머니가 꺾은 삭정이를 한 곳으로 모아 놓는 귓가

    잔솔 사이 바람이 온 숲을 잔인하게 매질하고

    둔탁한 할머니 손끝에 묻어 있던 날것들의 비린내

    숲은 후벼 패인 상처로 하루종일

    처절한 비명 소리를 지르며 하얗게 하얗게 쓰러져 누웠다

    씩씩하고 강인한 할머니 몸뻬 바지는 하드롱지처럼 질기고

    그 겨울 오름 들의 거리는 하눌신폭 만큼이나 멀고도 험해 보였다

    어느 생이 그토록 한이 많기에 바람은 표독하게 독이 올라 징징거렸던지

    바람의 날개로부터 풍기던 겨울 숲의 향기 거친 바람 냄새 마른 말똥 냄새

    진눈깨비 후두두 솔가지에서 쏟아져 내리면 싸한 송진 냄새

    저 오름의 능선에서 억새들은 반항하는 몸짓의 뜨거운 설움에 억 억대고 울었다

    서러움을 내색하지 않던 할머니는 의식의 지층을 구태여 들춰내지 않고도

    생을 육질로 풀어내던 삶의 궁극적인 슬픈 암호 같았다

    낡은 사진첩을 헤매도 흔적이 없는

    혼돈이 질펀한 영혼의 표면에 황홀한 숨결처럼 젖어드는 향수(鄕愁)

    오래전에 그녀가 있었으나 그녀는 이제 추상명사로 들어가 꽃잠에 빠졌다

    유년에 징그럽게 읽어주던 오름의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데

     

     

    초겨울 외출 / 오보영

     

    이미

    겨울이 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햇살이 좀 비추길래 괜찮을 줄 알고

     

    몸 감싸줄

    외투도 걸치지 않고 길을 나섰더니

     

    마음까지 시려오네

     

    불어닥친 찬바람에 길 옆 가로수

     

    그나마 붙어있던

    몇 잎 남은 잎새마저 다 떨어져나가고

    혼자서

    앙상하게 떨고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렇기도 했지만

     

    그새 밍크털로 온 몸 휘감고

    기름기 낀 얼굴 땀닦으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아무래도

     

    남아있던 내 온기마저 다 빼앗긴 것 같아

    순간

     

    가슴이 더 얼어붙었었나보네

     

     

    초겨울 내 사랑 / 유일하

    초겨울 밤하늘 별빛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점점이 빛을 발하고

     

    말없는 저 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묵묵하게 바라본다

     

    고개든 내모습이

    살포시 얼굴 맞대어

    별님의 품으로 다가간다

     

    언제인가 그대의 따스한 곳에

    내 마음 백조 되어

    저 창공을 박차고

    자유의 품속으로 영원히 날아볼까

     

     

    초겨울의 단상 / 박성환

    초록 이파리 파릇파릇 움트며

    따스한 행복함에 양지 녘 아지랑이처럼

     

    아롱아롱 환한 고운 미소 피어오르는

    꽃 피던 봄날도 꽃 피고

    새가 울고 꽃향기에 춤추던

    벌 나비 푸르고 푸른 시절의

     

    무덥기만 하던 여름날도

    어느덧 지나가 버리고

    황금 들녘은 벼 이삭 무거워서

    고개 푹 숙이고

    단풍은 무엇이 그리도 수줍어

    붉게도 물이 들더니

     

    가을은 달 밝은 밤

    기러기 따라가고

    재촉하는 가을비 바람에 낙엽도

    하나둘 어디론가 말없이 다 떠나 버리고

     

    찬바람만 횡 하니 풍경소리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구나!  

     

     

    이미 시작된 초겨울 / 임영석

     

    출근길 창밖에 보이는 가로수

    쌓인 낙엽 이리저리

    찬바람에 날고

     

    곱게 물들었던 아름다운 단풍

    쓸쓸히 휘날리는 잎새

    갈색 겨울 길

     

    어느덧 찾아온 차가운 초겨울

    찬바람 떨고 있는 모습

    짓궂은 바람결

     

    마음도 흔들 앙상한 가지마다

    어느덧 허전한 마음결

    움츠린 서리발

     

    낙엽 우수수 날리는 이미 겨울

    11월의 차디찬 바람에

    옷깃 세웁니다!

     

     

    초겨울 / 허기숙

     

    가을이 떠나니

    더 차가운 바람이

    가슴에 안기네요

     

    희미한 오훗 길

    낙엽 떨어진 거리는

    너무 쓸쓸할 뿐이고

     

    흔들리는 거리는

    그리움만 가득안겨

    허전한 마음이지만

     

    하얀꽃이 피는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넣어

    포근한 마음을 안고 싶어요

     

     

    초겨울인가 / 이정순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비가 오려는 듯하고

     

    바람만이

    쓸쓸히 낙엽을

    거리로 휩쓸고 지나간다

     

    곱게 핀 들국화

    오돌 오돌 떨면서

    고개를 푹 숙여 안타깝고

     

    길가를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무늬를 놓아가는 거리

     

    이리도

    곱고 아름다운데 비가

    오면 어쩌나 마음이 아프다

     

     

    산사의 초겨울 / 김용근

     

    멀리서 손짓으로 유혹하던 파란하늘

    훌쩍 야윈 그리움 안고

    답하지 않음을 핑계로 퇴색되고

    출렁이는 단풍물결을 후광 삼아

    호객행위 일삼던 산사입구

    흥겨운 장사치 손놀림 멈춘 지 오래다.

     

    뜸한 발길 하나 둘 세며

    웅크린 노점상의

    허우적거리는 동면의 늪엔

    낮은 포복으로

    사각거리는 낙엽들의 아우성만 가득

     

    그 위

    높이 비행하는 이름 모를 새

    절개지에 홀로 서 사색을 즐기는 소나무와

    견주는 잔잔한 고독의 여진에 취해

    예견되는 사는 날까지의

    그렇게 힘겨운 삶에 지친 육신

    문득 예 뉘어 볼까 하니

    칼날 같은 매서운 바람 꾸짖어 오고

    땡그랑 땡그랑 산사의 그윽한 풍경(風)소리에

    속절없는 애환만 녹아내린다

     

     

    초겨울 비 / 박동수

     

    계절이 떠나가는 것처럼

    머물지 못한 사랑

    슬픔 잊으려

    초겨울비가 회색 빛으로 내리고

    그리운 마음의 열기

    하늘 허물며,

    찬비로 내리네

     

    바람처럼 강물처럼

    떠나간 것들이

    초겨울 비바람에 날리며

    추적 이는 이 밤

    버릴 수 없는 추억이

    풍지 바람으로

    가슴속을 얼리고 있네.

     

     

    가을 그리고 초겨울의 문턱에서 / 김용호

    가을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가득 채워졌던 산과 들도 애써 수고한 손길에게
    모두 되돌려주고 허허롭게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이 된다.

    붉은 단풍으로 아름답던 나무들
    낙엽 우수수 털어 내고

    자신의 발치에 누워
    침묵하는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툭툭 떨어지고
    털리는 소리로 바쁜 계절

    떨쳐버릴 것 다 털고 선 나무들 풍상에 시달린 만큼
    덤덤하게 서서 푸른 하늘만 바라본다.

    모두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계절
    가을은 자꾸 저물어 가는데

    찬바람 부는 초겨울의 문턱에 서서 계절이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초겨울 아침 / 오탁번

     

    첫눈이 내린 초겨울 아침
    지난 봄에 시집간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 저 아기 가졌어요

    눈을 뒤집어쓴 나뭇가지들이
    아기예수의
    하얀 베내옷 입고
    옹알옹알 옹알이한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등알처럼
    나뭇가지마다
    눈송이들이 반짝인다

    -- 저 아기 가졌어요
    첫눈이 내린 초겨울 아침
    지난 봄에 시집간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초겨울 보슬비 / 최해춘

    까치 걸음 내 딛으며
    겨울 오는 길목에
    밤 마실 간 소녀처럼
    빗님이 오시네, 아작아작 오시네.

    식어가는 햇살을
    여윈 등에 들쳐 업고
    솔솔하게 적시네,시리도록 적시네.

    새초롬한 손길로 씻어내리는
    모닥불로 흩날린 가을의냄새
    잔잔히쓸어안고
    보슬비가 오시네, 하염없이 오시네.

    바람 찬 계절이 저기 온다고
    갸느린 숨결을 거두어 안고
    봄이 잠든 깊은 곳에 스미어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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