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_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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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寒波)에 관한 시모음<1> [한파] [추위]시모음 2022. 12. 19. 16:52
한파(寒波)에 관한 시모음 [한파] [추위] 한파2 / 권오범 애정결핍증 걸려 죽은 영혼들인지 따듯한 품속이 그리운 듯 막무가내로 파고드는 징글맞은 것들 강물 만나 뛰어들려다 밤새 거절당해 제풀에 지친 게 분명하다 가라앉지도 못한 채 서로서로 허옇게 끌어안아 되레 강 이불이 된 걸 보면 마루밑에서 서성대던 맥주병 속으론 도대체 어떻게 들어갔을까 숨 막히는 사랑 감당 못해 폭발해버린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한파 / 오보영 얼어버렸다 모든 게 다 숲도 나무도.. 산새 울음도 다 그쳐버렸다 휘몰아친 북풍 회오리에 마구잡이 파헤치는 두더지들 등살에 숲에 사는 모두의 머리가 가슴이 다 굳어버렸다 한파 / 나상국 갈대가 길게 드러누워 가만히 숨죽이던 밤 달빛은 저리도 처연한데 저 멀리 골짜기 헤매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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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 시모음 [추위] [강추위]시모음 2022. 12. 19. 16:34
강추위 시모음 [추위] [강추위] 강추위 / 최남균 웅그리는 것은 식어가는 밥알의 추억 탓 갈탄 난로에 빙 둘러앉은 양은 도시락 기다려지는 마음 까맣게 애태우며 창가 엷은 커튼에 ‘철수♡영희’ 입김 서려 있는 네 번째 수업시간 고래고래 들이지르는 빈 종소리 교실 안 가득 훈김을 빼면 시끌벅적 한 끼 거른 강추위 도시락 뚜껑 젖히면 하얀 밥알 등가죽에 찰싹 달라붙어 방과 후 얼마나 추웠던지 도시락 통 속에서 달가닥거리던 강추위 강추위 / 박인걸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시베리아의 헥토파스칼이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또 한 번의 시련을 안겨준다. 냉기는 살갗으로 파고들어 뼛속까지 송곳으로 찌를 때면 삶의 곤고함을 되뇌며 겨울 한 복판을 걸어야 한다. 강마저 얼어붙고 밤하늘의 별들마저 창백한데 겨울 초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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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관한 시모음<1> [추위] [한파]시모음 2022. 12. 14. 16:49
추위에 관한 시모음 [추위] [한파] 첫 추위 / 박인걸 살을 베는 듯 한 바람이 그 해 한강교를 건너던 사내의 양 볼을 쉼 없이 후려치던 새벽바람은 내 생애에 가장 혹독한 시련이었다. 소총을 들고 전선을 누비는 어느 병사의 비장함처럼 생존(生存)을 위한 현실의 벽을 넘는 일은 악몽(惡夢)이었다. 악착같이 헤쳐 나가야 할 숲은 길 없는 원시림(原始林)같아 초라하게 피다 지는 한 송이 들꽃이 그지없이 부럽기만 했다. 한 해 겨울 새벽을 고스란히 등잔불처럼 흔들리며 걷던 기억이 첫 추위가 옷솔기로 파고들 때면 심장 주위가 갑자기 아파온다. 북극 추위 / 백원기 하루 스물네 시간 함께 해 고마운 줄 모르고 마시던 공기 모르는척해서 야속한가 엊그제부터 심술을 부린다 영하 이십 도까지 내려앉아 얼음장 같은 냉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