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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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에 관한 시모음시모음 2024. 11. 22. 20:28
소설(小雪)에 젖다 / 김영란 사람들이 잠든 새벽 기대처럼 눈발 흩날리어쌓인 낙엽을 골고루 적시고 푹푹 빠지는 내 그림자도 충분히 젖었다몇 몇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나도 혹시 거기 서 계실까 아무도 없는 뒤를 쭈빗거리며 돌아보았다단 한 순간 잊은 적 없다는 거짓말처럼 먼저 죽은 당신의 온기처럼 까맣게 휑했다아직 살아 있는 내 관절보다 더 지친 마음 속으로 소설(小雪)이 내리어 기도처럼 조용히 내리어 등이 시리어빛보다 먼저 마음을 켜들고 길을 나섰다먼저 떠난 당신에게도 가야 할 먼 길이 있는지심호흡 다지고 눈 감아야만 겨우 넘어가는 장면가끔 겪기도 하시는지아니면 이 세상에는 없는 것 같은 신의 통제 아래 낡고 오래된 그 방식대로 지루하게 따뜻하시려나내 발자국에 으깨진 낙엽 웅크린 제 뿌리 덮은 길걸었다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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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大寒)에 관한 시모음<1> [계절 시] [대한 시]시모음/계절 2023. 1. 19. 22:48
대한(大寒)아침 비오는 소리 / 허세광 아름다운 24절기 대한(大寒) 가장 춥다고 하는 절기(節氣)지 보슬보슬 겨울비 내려 내 마음을 스르르 녹이는듯 이제 겨울을 매듭지으려하네. 유별나게 맹추위가 엄습한 해 지구를 한(寒:한파)과 서(暑:무더위)로 만물을 힘들게 한 겨울 24절기 마지막 날 끝자락 함초롬히 봄을 재촉하는 비 산새들이 날개 펼치며 얼었던 입을 떼고 반가워 하는 지저귐 겨우내 추위에 떨던 나뭇가지 새소리에 기지개를 켠다. 이제 봄이 오면 호미 메고 터밭에 냉이 달래 부추 돌나물 머위 캐고 상추 봄배추 씨앗뿌려야지 벌써 마음이 봄 문턱에 와 있네. 깊은 겨울 / 박인걸 대한 추위가 사납던 날 힘 있는 새들은 어디론가 숨고 병든 비둘기만 거리를 헤매다 어느 골목길에서 동사를 했단다. 들꽃이 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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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에 관한 시모음<2> [24절기 시] [소한 시]시모음 2023. 1. 6. 09:32
소한(小寒)에 관한 시모음 [24절기 시] [소한 시] 소한 / 장정혜 소한 추위가 창문 아래서 떨고있다 양력 일월 오일이네 어느해 그다지 춥지않던 오늘 결혼식을 했었지 그 날부터 가볍지 않은 삶이 시작되었어 아주 먼 길이었어 까마득하게 생을 마감한 꽃들이 떨어지고 낭만의 가을 단풍이 낙엽되어 딩굴어 절망으로 닥아오면서 내가 내가 아니었음이 서러웠어 먼 길 걸어오면서 이제 어둠이 내리기 전에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행한 잘못도 고백하고 흰동자로 바라보게 되던 사람들께 후회하는 삶 접으라고 말 해 주고싶다 그땐 소한이나 일월 오일이나 밤하늘엔 별이 총총 했는데 아! 보고싶다 그때 그 밤하늘 소한(小寒) 밤 / 박성우 장작불을 쬔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외할매와 외할매 흰 머리카락을 뽑아 화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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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大雪)에 관한 시모음<1> [대설(大雪) 시] [24 절기 시]시모음 2022. 12. 7. 06:25
대설(大雪)에 관한 시모음 [대설(大雪) 시] [24 절기 시] 대설(大雪) / 안도현 상사화 구근을 몇 얻어다가 담 밑에 묻고 난 다음날, 눈이 내린다 그리하여 내 두근거림은 더 커졌다 꽃대가 뿌리 속에 숨어서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어도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뜨거워졌다 몸살 앓는 머리맡에 눈은 겹겹으로, 내려, 쌓인다 대설(大雪) / 정양 마을 공터에 버스 한 대 며칠째 눈에 파묻혀 있다 길들이 모두 눈에 묻혀서 아무 데나 걸어가면 그게 길이다 아무 때나 들어서면 거기 국수내기 화투판 끝에 세월을 몽땅 저당잡힌 얼굴들이 멸칫국물에 묵은 세월을 말아 먹고 있을 외딴집 앞 눈에 겨운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 덜프덕 눈더미 내려앉는 소리에 외딴집 되창문이 잠시 열렸다 닫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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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에 관한 시모음 [24절기 시][소설 시] <1>시모음 2022. 11. 22. 08:27
소설과 첫눈 / 안도현 소설에는 첫눈이 내린다는 말을 믿고 내 안에 눈을 내렸습니다. 약속대로 그대 손잡고 눈길 따라 따뜻하게 걸었습니다. 이 여운 이대로 날까지 춥다는 오늘 포근하게 보내겠습니다. 소설 / 박상봉 첫얼음 얼고 첫 눈 내리기 시작하는 때 쌀독에 밑바닥이 휜히 들여다보이는 때 독을 채우고 있던 쌀이 다 비어지는 때 고쟁이 확 까뒤집어 보듯이 불장다본 쌀독 속 궁핍이 날카로운 이빨 드러낼 목구멍을 간질이던 밥알이 치욕이라는 것, 가슴에서 설설 밥이 끓기 시작한다 소설이라는 설익은 밥이 설설 끓는다 옛날옛적? 朴자 堧자 함자 가진 집안어른이 명절날 앞 떡 빚을 쌀이 없어 가야금으로 떡을 쳤다는 고사처럼 소설이라는 악기가 살얼음 깨는 소리 쟁그랑 쟁그랑 밥상 차리는 소리 소설(小雪) / 정양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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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입동立冬 시모음카테고리 없음 2022. 11. 6. 17:15
입동 / 이외수 달밤에는 모두가 집을 비운다. 잠 못들고 강물이 뜨락까지 밀려와 해바라기 마른 대궁을 흔들고 있다. 밤 닭이 길게 울고 턱수염이 자라고 기침을 한다. 끊임없이 이 세상 꽃들이 모두 지거든 엽서라도 한 장 보내라던 그대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서 지금 쓸려가는 가랑잎 소리나 듣고 살자. 나는 수첩에서 그대 주소 한 줄을 지운다. 입동 / 나상국 저번 날 서리 내리더니 가는 가을이 아쉬운지 아니면 서둘러 다가오는 겨울이 싫은지 가을비 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경계가 모호한 비가 내린다 쉬 잠들지 못하고 온 밤을 서성대는 밤길 중량천 변을 따라 갈대밭을 저벅저벅 적시며 내린다 이 밤이 새면 입동인데 겨울 눈은 오지 않고 겨울비인지 마지막 가을비인지 모를 비가 입동을 향해 걸어가며 내린다 입동 /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