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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에 관한 시모음시모음 2024. 11. 22. 20:28
소설(小雪)에 젖다 / 김영란
사람들이 잠든 새벽 기대처럼 눈발 흩날리어
쌓인 낙엽을 골고루 적시고
푹푹 빠지는 내 그림자도 충분히 젖었다
몇 몇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나도 혹시 거기 서 계실까
아무도 없는 뒤를 쭈빗거리며 돌아보았다
단 한 순간 잊은 적 없다는 거짓말처럼
먼저 죽은 당신의 온기처럼 까맣게 휑했다
아직 살아 있는 내 관절보다 더 지친 마음 속으로
소설(小雪)이 내리어
기도처럼 조용히 내리어
등이 시리어
빛보다 먼저 마음을 켜들고 길을 나섰다
먼저 떠난 당신에게도
가야 할 먼 길이 있는지
심호흡 다지고 눈 감아야만 겨우 넘어가는 장면
가끔 겪기도 하시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는 없는 것 같은 신의 통제 아래
낡고 오래된 그 방식대로 지루하게 따뜻하시려나
내 발자국에 으깨진 낙엽 웅크린 제 뿌리 덮은 길
걸었다
신이 계신 쪽부터 밝아지는 하늘을 몇 번 바라만 보았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소설(小雪) / 강보철
다시 만날 것들을 위해 덮는다.
밤사이 허옇게 태어나
해가 뜨면 작은 입김도 못 이겨
스스로 제 몸 사위며
몽글몽글 씻기는 얼굴
어제의 고달픔이 흉터로 남을까
밤사이 허옇게 덮고 있더니
고개 드는 한 줄기 햇살에
쓱, 무거운 눈꺼풀 문지르며
말갛게 눈을 뜨는 몸
숨 가빴던 계절이 운다
차가운 바람결에 숨죽여
보내는 이 가슴 깊은 곳에서
엉엉
해가 솟는다.
한두 방울 날리던 눈
고달팠던 세월을 다독이는지
떠나는 아픔
떠나보내는 서러움
다시 만날 것들을 위해 덮는다.
소설(小雪) / 박우영
눈내리기 시작하는 소설이 되었으니
가랑잎은 굴러가고 살얼음이 어는구나
올해농사 수확한것 안정하게 보관하고
외양간을 고쳐주고 두엄까지 손질하세
지붕에는 이엉엮어 새집으로 단장하고
창호지는 교체하고 문풍지도 달아주세
싸릿대로 울타리를 튼튼하게 고쳐주고
본격적인 겨울준비 정성껏 마쳐주세
소설 언저리 / 강희창
웃닥밭골 바우형네는 즈가베 바램대로 대처론 못 나가고 눌러 백혀 올 갈바슴에 팔굉 버덤두 새로 나온 진흥으루다 품종을 바꿔 소주 밀식한 턱에 호락질에도 벼 여덟 섬을 수확했으니께 제법 흐뭇하였다. 동구로 오가는 질껄가시는 돌팍이 데따 많고 되게 깨끌막져서 숫제 달음박질 치다시피 해야 넌디 제금난 지 십수 년에 원체 읎이 살다봉께 집안 꼬락서니는 개갈 안 났지 뭐.
된서리 내리고 한 파수 지났으니 시방 깨구락지도 겨울잠 잘 테고 거머리 물린 데가 가려울 쯤이면 말여, 이 동리 으른덜은 탑세기 나는 짚누리 옆에 나앉아서래미 낡은 게타리에 흘러내린 겟말 추시르고 손에 침을 뱉어가매 산내끼를 꼬거나 이엉을 엮던지 안 그러면 문풍지를 바르거나 방구락쟁이 구래질에 헐은 배름빡에 맥질을 해야 할때다.
얼뚱애기 업어 포대기 띠빠 두른 애덜 빗나떨거나 진눈깨비 오면 큰집에 모여 숨바꼭질하던 골방엔 밀대 방석을 두른 감자 통발 옆댕이 메주 곰팡내가 부릿부릿 나서는 말이지, 아릿하니 머리채를 땋아 시절스런 조카뻘 가시내 볼따구를 처음 만져 본 것도 거그 골방에서닝께.
내동 자란 머리 빡빡 밀다가 바리깡에 씹혀 줘뜯기면 낫살 먹은 분한 티 욕지거리 하질 않나 배까티 나갈 때마다 나를 꼬창막대라고 떫게 쑥맥으루다 놀리던 베기 싫은 눔덜은 말여 워쨋던지 후제 반다시 급살맞을 끼라 믿었었지
그쯤이면 오양간에 거적을 둘러치고 짚토매며 콩깍지동 들여놓으면 여물로나 땔감으로 제격인 거라 가외루다가 뒤난 염생이나 도야지 뒤붙여야허구 농기는 마치맞게 지름칠을 해둬얀다. 거시기 수건 두른 아주매들은 바텡이를 뒤란에 묻거나 상수리 갖다가 절구에 빵구거나 솔껄 빚어 불 때는 냄새가 무쟈게 좋았으닝께 그러구선 인저 장광에다 정한수를 올리는 집도 더러 있었다
여태껏 농사지며 사는게 여간 빡시고 대간허지만서도 집집이 가차워 이마를 맛댄 듯 지침만혀도 문을 열어보게될 헹편이었는데 한편짝으루는 툇마루에 벙거지 눌러쓴 할아배덜은 화롯불 돋워가매 댕강강 대꼬바리 털면서 우덜한티 우스갯소리하던 따신 나날에 멱살 잡힌 엄동이야 엥간헤서는 제 까징게 힘 못쓰고 수이 지나갈 밖에.
소설(小雪) / 권기일
하얀 행복이
하얀 사랑이
하얀 꿈처럼
소설 같이 내려라
하얀 너에게
소설(小雪) / 김효기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11월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인데
눈 대신 추적추적 비가 내리네
남은 절기 헤아려보니
대설과 동지
한파가 몰아치는 소한과 대한이 남아있네
어느새 임인년(壬寅年)의 끝자락에 와있었네
또 한 해가 바람처럼 지나가는데
손에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네
제대로 된 시(詩) 한 줄 쓰지 못했구려
무심한 세월만 셈하는
노년의 시간은
번개보다 빠르게 흘러만 가네
소설 / 권혁재막교대 철야를 마치고 돌아와
아내가 남기고 간 찬밥을 먹는다
아내의 고단한 체취가
개수대에 걸린 밥알같이
퉁퉁 부어오르는 신새벽
작은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만큼이나 기대했던 형편은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보다 느려
좀체 피지를 못한 채
밀린 공과금, 밀린 잠으로 쏟아진다
내 작아진 가슴 위로
작은 눈이 내린다
앞으로 차츰 큰 눈이 내리고
추위도 살벌하게 닥쳐올 텐데,
저녁 막교대를 위해 나는 다시
한잠을 붙인다
아내가 남기고 간 찬밥 위로
작은 눈이 쨍하게 내린다.
소설(小雪)을 맞아 / 김난석
지난 세월 내내 다독이고도 휘적거릴 것 없이
그렇다고 사붓사붓 머뭇거릴 것도 없이
철벅 철벅 걸어오는 이 누구던가
톡 톡 톡
메마른 창문 두드려보지만
일그러진 눈길 차갑기만 한데
하얗게 피워내지 못한 눈물
서러워 말지니
내일이 오늘이 되듯 어제가 오늘이지 않는가
시간은 시간을 잡아먹으며 소멸할지라도
기억은 기억을 낳으며 소생하는 법
물 밑에 스며들어 내일로 피어나리라.
소설(小雪) / 김재덕
밤사이 찬 이슬이
낙엽에
사뿐하다
애끓는 눈물일까
서릿발
통곡인가
햇살은 빈둥대다가
얄밉게
사라진다.
소설(小雪) / 김정희
한밤중 바람이 창을 두드릴 때 어쩐지 네가 올 것 같아서
떠나지 않는 바람 등 떠밀어 보내고 달빛으로 내 방을 밝혀두었지
그리움에 지친 날 몰래 엿보았더냐?
달빛이 지 몸을 아랫목에 뉘이고서야 이리도 애달픈 네가 온 줄 알았더니
내가 보낸 그 바람 뒤에 너는 숨어 다녀갔구나.
겨울 시작한 밤
살며시 오는 너를 보지 못하고
네가 떠난 새벽,
홀로 달빛 헹구며 서성거린다.
소설 / 김태운
실눈에 붙들린 새벽 창으로 새 세 마리 기웃거린다
까무잡잡한 것이 까마귈까 까칠한 것이 까칠까 싶었는데
사실은 희끄무레한 비둘기들이다
마치 삼족오의 족적 같은 그들이 이끄는 궤적 너머로 온통 하얀 장관이 흐릿한 내 시선을 실컷 물어뜯고 있다
아마도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천지를 넘어 백두대간을 타고 바다를 건너 한라산을 오르더니
마침 이 절기에 어김없이 서리꽃 눈꽃 만발한 것이겠지
어느새 해뚫음무늬 속으로 하얗게 묻혀버린
저 세 점의 조짐들은 분명,
새날의 길조임에 틀림없으렷다
며칠 후, 대설 즈음이면
그 절정이겠고
小雪소설 / 나상국
24절기 중 20번째 절기
소설이란다
얼음이 얼고
땅이 언다는데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오랜 시간 주고받던 편지
뜨문뜨문 오던 답장
그리고 긴 파열음
시베리아 벌판처럼
꽝꽝꽝 얼어 버렸는데
어느 날부턴가
수신인 없는 곳으로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며
지새웠던 수많은 밤
그해 그 겨울 어느 날
쓰다만 편지지 위에
추적추적 하염없이
비가 내렸었지
아마 그날도
소설이었을 거야
오늘처럼
저렇게 창밖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었지
소설과 첫눈 / 안도현
소설에는
첫눈이 내린다는 말을 믿고
내 안에 눈을 내렸습니다.
약속대로
그대 손 잡고
눈길 따라 따뜻하게 걸었습니다.
이 여운 이대로
날까지 춥다는 오늘
포근하게 보내겠습니다.
소설(小雪) / 유홍준
하늘에서도
빗자루로 쓸 수 있는 것이 내려서 좋다
동글동글 손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이 내려서 기쁘다
잠시겠으나
그늘 쪽 어깨에만 눈을 얹고 구층 석탑처럼
묵묵히 서 있고 싶다
이 겨울은
창호지같이 얇은 서러움으로 죽(竹)을 칠까 붉고 푸른
깃발처럼 펄럭여볼까 아니야 아니야 울타리 쪽으로 밀어붙여 놓은 눈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것이나 바라보아야겠다
소설(小雪)에 비를 맞는다 / 정민기
첫눈을 맞으며 그 눈이 만든 숫눈길 걷다
내리는 눈에 발자국이 사라지는 길을
보고 싶었는데 연락한 적 없는 비가 내린다
너에게 가는 듯한 바람이 잠시 저수지 옆에 서서
눈물 같은 비에 젖어도 하염없이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에 노을처럼 눈시울 붉어진다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소설(小雪)에
집 앞 가로등과 우두커니 나란히 서서
예정에도 없던 비를 회초리처럼 맞는다
구름 병실에서 퇴원하는 비의 마음은 어떨까
굳이 여기까지 불어온 바람을 돌려보내고
작은 길에서 큰길로 비처럼 하차한다
우산 없이 내리는 비를 다 맞는 여자를 기다리다
외돌토리로 돌아가는 길은 숫눈길을
뽀드득뽀드득 이를 가는 듯 밟을 수 있을까
마음에 아무것도 첨부하지 않은 사랑이
소설(小雪)에 비를 맞으며 오랫동안 걷고 있다
소설(小雪) / 윤여진
소란스러운 건 싫어요
이 방엔 남겨진 소음이 너무 많거든요
잠이 들기 전, 방의 밝기보다 바깥이 더 환해지면
내가 누운 베개 안쪽에도
곧 눈이 도착할 거라, 숨을 몰아쉬는 잎들이
납작 엎드린 채 말해주었어요
그가 벗어두고 간 양말 한 짝을
허리를 굽혀 주웠을 때
벗은 발과 분주할 그의 아침을 생각해요
모서리부터 깨지는 방 한가운데서
달력을 세어보며
이상하다, 잠긴 목소리를 다듬으면
그림 속, 제일 큰 나무에 목맨 의자가 흔들려요
아랫배엔 흰 피가 도는 것 같아요
손을 넣으면 축축한 음지가
내가 만든 그늘로 들어와 볼래요?
고개를 돌리면 눈 내리는 소리가 뺨에 닿아요
눈은 힘껏 쥐기도 전에
가장 여린 피부 안쪽으로 녹아들어요
슬픔은 어느 쪽으로 돌고 있는가요
골똘해질 때 나는 생생해져요
뒤척이는 소리 하나 없이
나 혼자 그의 이름을 불러요
이번이 처음이라는 듯
놀란 입을 한 손으로 가릴 때
미처 가리지 못한 눈동자를
베개를 더듬거리다 마주칠 때
거짓말은 언제까지 미끄러질까요
계절이 미처 알려주지 않는 게 있어요
매일 한 뼘씩 덮이는 바깥의 일을 모른 체해요
처음 보는 밝기를 찾아 맞추고 몸을 눕혀요
두 귀를 꼭 잠근 묵묵한 잠이 있고
그늘을 배에 올린
내가 누운 자국이 있어요
희미해지기 전에
남은 소음을 다 가져가 줘요
곧 더 많은 눈이 내린다, 했거든요
小雪에 가난한 집을 지나며 / 이우식
바람 찬 쓸쓸한 골목 가난한 집이 한 채
굴뚝에선 연기 안 나고 토담은 기울었네
말라 썩은 처마 끝에 고드름 눈물짓는데
노인의 기침 소리만 창 너머로 더해진다.
小雪過貧家(소설과빈가) / 이우식
寒風窮巷一貧家(한풍궁항일빈가)
煙突無煙牆壁斜(연돌무연장벽사)
枯朽檐端氷株淚(고후첨단빙주루)
老翁咳喘隔窓加(노옹해천격창가)
입동立冬과 소설小雪 사이 / 이현우
입동入冬과 소설小雪 사이
이 산 저 산 단풍들 때 비켜있던 갈참나무
서리꽃이 만발한 늦가을 숲속에서
다투어 홍장하고 적멸에 든다.
소설(小雪) 유감 / 임영준
걸맞지 않아서
사람 사는 세상인가
소설에 제대로 한번
눈가루 비친 적 있던가
들숨 크게 권한 적 있었나
그래도 사람들은 오가는데
기대하는 소식은 깜깜이고
음영만 짙게 깔린다
돌부리라도 차고 싶었는데
핑계가 생겼다
소설小雪 / 정희정
바람은 늘 가장 아픈 곳을 향해 불고
북풍한설 바람이 불어닥치면
천지에 가득 퍼지는 싸늘한 공기
가을이 날아와 앉으려다 소스라치며 날아간다.
바람이 불거나 해가 지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시간이 태연한 척 이곳을 지나가지만
또 한 번 허공이 출렁거렸다.
종종걸음치던 공간 적요하고 고즈넉한
그 아득한 적막에 기대여
숨은 듯 보일 듯 잠시 하늘이 얼비치고 간
한 계절이 꿈틀 하얀 호흡을 한다
소설 / 장광규
입동은 지났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겨울은 이제부터다
기후변화 기상이변으로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는
옛말은 옛말이 되어간다
아직 못한 김장도 서두르고
월동준비를 하는 시기다
겨울 양식인 김장을 하고 나면
무 잎사귀와 배춧잎을 엮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시래기를 만든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
알몸을 드러내는 나무들이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어둠은 일찍 찾아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설(小雪) / 최재환
방문 굳게 걸어 잠그면
추위도 밖에서 주춤거릴까.
결 고운 조약돌 하나
햇볕 따스한 石床에 올려
찻물 끓기를 기다리다.
돌려받은 세월이
삶을 앞지르기 전에
빈손으로 돌 앉아도
하늘을 거역지 않고
밀린 빚이나 지워얄 텐데.
온갖 시름이 물속을 어지럽힐 때쯤
찻잔을 덥히는 입김처럼
눈발이 가슴을 파고든다.
소설(小雪)을 지나다 / 홍정순
은행잎 지고 겨울비 오는 날
일 피해 사람 피해 찾은 시골집
첫서리 오고, 김장하고 마늘 심은 후
서리태 타작한, 이맘때
바깥 풍경은 나만큼 촌스럽다
누워서도 보기엔 감나무가 최고다
들창에 세 든 지 오래된 모습이라 그렇고,
가지가지 종잘종잘,
새 소리를 달고 있어서 더 그렇다
마늘 심은 밭을 지나는 바람 같은 소리
매점매석 했다 해도
눈감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감나무 그늘에서 자라 감 먹고 살아 온 그 소리는
전대 풀고 나온 나를 창문 앞에 서게 했다
이파리 다 떨군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철물점 연탄난로를 쬐던 거칠고 곱은 손들이 보인다
먹고사는 일에, 온전히 한 해를 다 보낸 발자국소리 들린다
보일러 소리, 냉장고 소리,
창문을 치고 두드리는 계곡 바람 거친데
풍경은 거짓말처럼 소설(小雪) 무렵을 지나고 있다
소설(小雪) / 조현동
소소소소
내리는 소설(小雪)에
설설설설
기어가는 우리들
소소소소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설설설설
떨고 있는 우리들
기어가고 있든
떨고 있든지 간에
소설(小雪)에
소설(小雪)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해프닝들은
그냥 그대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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