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에 관한 시모음<2> [1월 시] [일월 시]시모음 2023. 1. 2. 10:15
1월에 관한 시모음<2> [1월 시] [일월 시]
일월 / 유치환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이 없슬소냐머언 미개ㅅ적 유풍을 그대로
성신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임일레라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에 즘생처럼 무찔리기로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에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소냐
1월 / 장태숙새벽을 더듬으며 비가 온다
축축한 한기 겨울 그림자 따라 스미고
성탄절의 설렘과 제야의 가파름이
썰물처럼 사라진 개펄 같은 시간침울한 손가락들 세상의 구멍마다 동그라미를 그린다
딱딱한 가슴팍 깊숙이 후벼 파면
하옇게 부푼 새순 같은
별 하나
소망처럼 건질 수 있을까?묘비처럼 서있는 1월의 썰렁한 어깨에 흘러내리는
긴 어둠의 눈망울에서 죽은 영혼의 냄새가 난다
눈은 먼 곳에서만 내리고
눈은 높은 곳에서만 내리고
1월 판화 / 이인평말죽거리, 생선 좌판의 정씨
겨울 오후
칼 번득이는 인심
단번에 토막토막 잘리는 햇살 담아 주는 정씨생태 국물맛 나는 세상이라도 왔으면
비늘 가지런한 시절이라도 한번 와 봤으면
말발굽 소리에 기쁜 소식 하나 누가 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아직 차다말죽거리, 양재 사거리에서 한빛은행 쪽으로
쏟아지는 겨울 빛이
생선비늘을 번뜩일 때, 가슴 환해진 정씨
세월 토막토막 자른다
생선구이처럼 탄 얼굴로 건네주는
거스름 잔돈 같은 날들이 빛에 젖는다빚진 세상 끄트머리 툭탁 잘린
지느러미 쌓인 통 속으로
에누리 떨어져 나간 세상 주둥이들도 보여
정씨, 발로 툭 한번 차고는
매운탕 얼큰한 웃음 한 봉지씩 담아내는
말죽거리, 생선 좌판
해가 좀 짧다
정월 / 문인수농촌 들녘을 지나가는데 춥고 배고프다
저 노인네 시린 저녁이 내 속에서
등 달 듯 등 달 듯 불을 놓는다
꽃 같은 불 쪽으로 빈 들판이 몰린다
거지들 거뭇거뭇 둘러앉은 것 같다
발싸개 벗어 말리며 언 발 녹이며
구운 논두렁도 맛있겠다
그 뱃속 깊은데 실낱 같은 도랑물 소리
참 남루한 , 어두운 기억을 돌아오는데도 피를 맑히는
이 땅의 神이옵신 그리움이여1월 / 최명진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아래층 노점천막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길을 지나간 구두 굽들의 높이만큼
쓸린 눈 무더기가
외눈가로등 밑에 수북이 쌓였다
창밖은 내내 시시하고
늦게 잦아든 겨울 속으로
꽃처럼 성에가 핀다
더딘 구름 속
찬 햇살이 얼핏 고개를 민다
새벽일을 마치고 온 엄마는 늦은 잠을 잔다
산토끼처럼
발자국처럼
듬성듬성
길은 조용하다
이 도시에서 자란 옆집아이처럼
긴 겨울이 시작됐다
1월의 달력은 두껍고
아직 눈을 털지 못한 녹슨 그네가
빈 놀이터에 나란히 매달려있다
1월엔 수선화 향그럼으로 / 오애숙
눈보라 휘날리는 세찬 들녘의 새해 1월
눈 속에서 피어나는 황금빛의 수선화 물결
가슴에 그 너울 쓰고서 새롭게 피어나고싶어
내 자신의 생각 스스로를 사랑한 만큼 온누리
그 향그러움 휘날리리 새김질해 새 결심하는
찬란한 새 아침이 어둠속 빛을 만듭니다
겨울에 피는 꽃 설중화라는 이름의 꽃
군무진 수선화 바라보니 오늘 그댈 꿈에서
만나고파 봄날의 아지랑이 되고 싶은 마음
1월의 길섶에서 그 향기 가슴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어 내 안 가득 님의 향그러움
따사롭게 봄향기처럼 휘날려 보렵니다
황사 이는 사윈들녘 눈보라 휘날려와
서리발 칼날처럼 핥퀴는 동지섣달인데도
봄이 옆 자리에서 친구하자 속삭이고있어
희망의 황금 날개 빈들에서 화알짝 펼치어
고고한 자태로 눈 속에서 미소 잃지 않는
수선화 향그럼 가슴에 담아 피렵니다
정월 비雨 / 오보영
무슨 맺힌 한이
그리 쌓여서
북받쳐 오르는 눈물
참지 못하고
이리도 펑펑 쏟아 내리니
이 한겨울에..
그래!
실컷 울으렴
소리 내어 울부짖으렴
답답한 네 속 다 풀릴 때까지
맘껏 퍼부어 대렴
1월 1일 / 이영광
새해가 왔다
1월 1일이 왔다
모든 날의 어미로 왔다
등에 해를 업고,
해 속에 삼백예순 네 개 알을 품고 왔다
먼 곳을 걸었다고
몸을 풀고 싶다고,
환히 웃으며 왔다
어제 떠난 사람의 혼령 같은
새 사람이 왔다
삼백예순 다섯 사람이 들이닥쳤다
얼굴은 차차 익히기로 하고
우선 들이었다
모두 같이 살기로 했다
무얼 머뭇거리느냐고 빈집이
굶주린 귀신처럼 속삭여서였다
1월의 기도 / 박찬일
어느 날
요원한 지구별에서 한 주기의 순례를 끝내고
마지막 숨결이 바람으로 흩어지는 날
그리고 제 마지막 호흡이 신께 도착하는 날
삶이 고단하였다 분노하게 하지 마시옵고
소나무위에 걸린 눈처럼 아름다웠다 말하게 하소서
걸어온 모든 일상이
재난과 악의 빙판길 위험으로부터 생겨난
경계의 두려움이 아니라,
일출에 대한 경외심에
절로 무릎 꿇게하는 두려움.
당신께 바치는
거룩한 순종에서 솟구쳐 나오는
경건과 경외의 두려움이게 하소서
바라옵건데
몰라서 아니 두려웠다하여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고
두려워 상대를 먼저 죽여야 하였다
말하지 말게 하시고
홀로 걸어왔다,
신을 모른다 말게 하소서.
언젠가 그토록 오고 싶었던 오늘이자
내일이면 다시
추억의 오늘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오늘의 해가
뜨고 있나이다.
부디 오늘도
스스로 미물되는 일 없게 하시옵고
땅이 멀고, 하늘이 스스로 높은 줄 알아
신을 닮은 얼굴
부끄럼없이 걸어왔다
말하게 하여 주소서.
훗 날 제게
「네가 떨고 있느냐?」
물으시면
「동행하고자 하였으나,
언제나 못미침으로,
정녕 두려워 떨고 있나이다.」
경건히 대답하게 하소서.
세상 다수가
눈물 많은 삶들이옵니다.
티끌 날리는 바람에서도
그들 모두가 맑은 눈물로 자기 눈을 씻어내어
바로 보고
옳은 말 가려 듣고
바른 입으로, 바른 길 걸어가도록
1월의 걸음을, 아침을
부디
기억하게 하소서.
1월 / 노정혜
임인년 새해
호랑이 닮은 기상으로
한해 시작
1월 새봄이 걸어오고 있다
한아름 꽃 바구니 안고
열두 달 희망
무엇을 채울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원하는 것 전부
안을 수 있는 긴 시간
하늘이 나 위해
열두 달 주셨다
희망
씨 뿌려 땀 흘려 열매 맺아
곳간이 가득 채워
아이들 등록금
가년한 자식 시집 장가
가을 오면 잔치 잔치 열리네
꿈이 있는 1월
대망의 꿈을 꾼다
꿈은 살아서 맹호처럼 달린다12월과 1월이 깍지를 끼다 / 김관호
늘 그러하듯 또 한해가 간다
화들짝 지는 숲이 아픔이다
미련에 떠난 꿈이 고통이다
되려 담담한 네가 눈물이다
외려 나약한 내가 진통이다
늘 그랬듯이 또 한해가 온다
1월 1일 일요일―곡두 1 / 김민정
낮에는 도끼와 톱을 봤고
밤에는 꿩과 토끼를 봤다.
시에다 씨발을 쓰지 않을 것이고
눈에다 졸라를 쓰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눈 내렸다.
‘머리’로 가 붙을 수 있는 대목은 다
덮이었다.
더도 덮일 것이다.
쑥차 마시면서
쑥대머리 들었다.
1월 1일 / 김행숙
공중으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면 신비롭습니다. 손바닥만한 고무풍선에 공기를 모으면 점점 부푸는 것, 점점 얇아지는 것…… 꼭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놓치면 영영 잃어버리는 것……
추운 겨울밤 손바닥을 오므려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길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지붕 위로 둥둥 떠오를 거예요. 이들은 언젠가부터 마음에 공기가 가득해진 사람들이었어요. 지붕 위에서 수레를 잃은 노점상과 지갑을 잃은 취객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에요. 두 사람은 허공에서 잠시 얼어붙은 허깨비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겠습니다.”
“형씨, 혹시 담배 가진 거 있습니까?”추운 겨울밤 손바닥을 비벼서 불을 피울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기다란 불꽃 같을 거예요. 우리가 감추는 꼬리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재를 보면 오늘이 1월 1일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도 꼭 이랬어요. 그날도 나는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걸을 했어요. 아침에 본 거울처럼 그가 나를 슬프게 건너다보고 있었어요.
1월 / 강영은
하얀 눈 위에 점점이 찍혀있는 콩새 발자국
눈 내린 隱喩의 아침
말의 行間에서 걸어나간 마침표를 본다 / 오은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되었습니다
2월엔
여태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추위 탓으로 돌립니다
어느 날엔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었습니다
3월엔
괜히 가방이 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늘리고 싶습니다
벚꽃이 되어 내 이름을 날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엔 문득 사탕이 사고 싶었습니다
4월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참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는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6월은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7월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봅니다
그간 못 쓴 사족이
찬물에 용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때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8월은 무던히도 무덥습니다
온갖 몹쓸 감정들이
땀으로 액화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살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9월엔 마음을 다 잡아보려 하지만,
다 잡아도 마음만은 못 잡겠더군요
10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책은 읽지 않고 있습니다
11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12월엔 한숨만 푹푹 내쉽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추위가 매섭습니다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몰라보게
주량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잔고가 바닥났습니다
지난 1월의 결심이 까마득합니다
다가올 새 1월은 아마 더 까말겁니다
다시 1월,
올해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1년만큼 더 늙은 내가
또 한번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월에 있을 다섯번의 일요일을 생각하면
각하(脚下)는 행복합니다
나는 감히 작년을 승화시켰습니다1월 / 조동범
당신은 조금 더 늙었고, 이전의 것들은 모두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저물녘이 사라지려 할 때 어둠은 어느
곳을 배회하는가. 그러나 당신은 남해의 섬을 바라보며
지나간 것들을 애써 호명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조금 더 늙었고, 신성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일몰은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해안선을 따라 씻기지 않는 피비린내는 누군가의 전생을
흐느끼려 하는가. 실패한 상륙작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무너진 다리마다 오래전에 사라진 이들의 흐느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초등학교 교정의 텅 빈
그네와 침묵을 거듭하는 누군가의 동상을 떠올리려 한다.
회고할 수 없는 과거만이 당신의 미래를 예감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회한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한다.
세상은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하니 당신은 이제 조금 더
늙어버린 당신의 미래를 어루만지기로 한다. 사이렌이
울리는 거리마다 국경일의 추모객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슬픔은 이제 쓸모없는 사랑처럼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당신은 조금 더 늙었으므로, 해안선의 출렁이는
파도와 어둠이 장악하기 시작하는 수평선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늙어가는 개와 산책하는 밤이 깊어가면 이웃들의
죽음은 어느새 당신 앞에 당도하는가.
몰락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금 더 늙어버린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끝도 없이 침묵하는 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아니면 말을 잊은 당신의 음성인가. 그러나
당신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한다. 당신은
그저 조금 더 늙어갈 뿐이고, 장례식장을 나서는 순간
잊히는 모든 슬픔처럼 과거와 미래는 떠올리지 않기로
한다.
이별을 준비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익숙하다.*
이전의 모든 것들을 후회하지 않기로 한 당신의 다짐
역시 매일 밤 유효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고요하고
거룩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오늘밤은 당도할 것이다.
그곳에는 어느새 조금 더 늙어버린 당신이 있다. 연인의
손을 잡고, 그 무엇도 후회하지 않는, 당신이 있다.
1990년 1월 1일 / 손진은
돈 몇만 원이 늘상 문제였다
쇠고기 몇 근과 정종 한 병의 남편 자존심에 매달려
새해 첫날부터 우린 처가행에서 그렇게 언성을 높이고
멀어진 마음 비인 행간 위에 눈발이 퍼붓고
눈은 내려 우리들 시야까지 흐려 놓았다
길은 어디에서 끝나며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인가
이제는 평지와 개울 바닥 구별할 수도 없게 된 언덕길
미끄러져 버둥거리는 차량이 보였고
조심조심 그 길 더듬고 가는 버스에 실려
투덜거리는 엔진 소리처럼
우리들 마음속의 한 부분도 고장이 나 있었을까
버스에 내렸을 때
앞선 아내와 어린것 시린 어깨 위로
어둠과 함께 몰려와 내려 쌓이는 흰 눈
멀리 가물거리는 마을 불빛은 우리들 불안을 다독거리는데
안쓰러이 아내와 어린것 어깰 보듬어 주면
그들에게 작은 어깨 하나 되 주지 못한 지난 시절의 회오가
눈발이 되어 내 앙가슴 파고들고
길을 끌어안고 내려올 것도 같은 마을 불빛은 아직 멀고
그래도 산등성이 길가의 가문비나무 고로쇠나무 같은 것들
처가댁 식구처럼 손 벌려
축복처럼 눈덩일 풀썩 던져 주는데
첫날 첫길을 우린 그렇게 갔다
이제는 가천(假川)이 되어버린 가천(佳川) 바닥을
조심스레 내어 디디면서
더러 엎어지는 아내의 손목 끌어당겨
불안하게 흔들리기도 하면서
1월이면 / 곽종철
시작이 반(半)이라는 달
무엇이든 하면 된다고
마음속 깊이 새기는 달
많은 꿈을 그려보는 달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젖 먹을 때 힘까지 다하자며
다짐하고 다짐하는 달이지.
이 맹세 변치 말자며
작심삼일로 끝나지 말자고 빈다.
너도 그렇게 빈다.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한(小寒)에 관한 시모음<1> [24절기 시] [소한 시] (1) 2023.01.06 새해에 관한 시모음<5> [신년 시]...새해 아침에 / 김남조 외 (1) 2023.01.03 1월에 관한 시모음<1> [일월 시] [일월 시] [정월 시] (1) 2022.12.31 새해에 관한 시모음<4> [새해 시] [신년 시] (2) 2022.12.31 한해를 시작하는 새해(신년)에 대한 시모음<3> (2)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