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小寒)에 관한 시모음<2> [24절기 시] [소한 시]

 

 

소한(小寒)에 관한 시모음<2> [24절기 시] [소한 시]

 

소한 / 장정혜
 
소한 추위가 창문 아래서 떨고있다
양력 일월 오일이네
어느해 그다지 춥지않던 오늘 결혼식을 했었지
그 날부터 가볍지 않은 삶이 시작되었어
아주 먼 길이었어 까마득하게
생을 마감한 꽃들이 떨어지고
낭만의 가을 단풍이 낙엽되어 딩굴어
절망으로 닥아오면서
내가 내가 아니었음이 서러웠어
먼 길 걸어오면서 이제 어둠이 내리기 전에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행한 잘못도 고백하고
흰동자로 바라보게 되던 사람들께
후회하는 삶 접으라고 말 해 주고싶다
그땐 소한이나 일월 오일이나
밤하늘엔 별이 총총 했는데
아! 보고싶다 그때 그 밤하늘

 

 

소한(小寒) 밤 / 박성우

 

장작불을 쬔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외할매와 외할매 흰 머리카락을 뽑아 화롯불에 던져보던 산골 꼬맹이와 그새 마흔일곱이 된 내가 장작불을 쬔다
 
톡톡 타오르던 장작불은 이내 시들고 외할매와 산골 꼬맹이와 옛날이야기는 흰 머리카락 타는 소리처럼 사라지고 나는 그만 잠을 청하러 간다

 

소한小寒 / 최서림
 
겨울소나타로 두드리는 눈발
악보같이 펼쳐진 벌판
재두루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4분음표 모양, 외발로 서 있다
긴 부리로 서로 부비며 한기를 털어주고 있다
비올라 소리가 난다
고사리 같이 움추러든 마음들
도르르 펴진다
얼음장 밑 돌미나리
머리를 디밀고 있다

소한에게 / 권오범

 

생일 하루만으로는 체면 안 서는 듯
안날 뒷날
한 사날 씩 싸잡아
여봐란듯이 오들거리도록 치루는 허례허식

까닭 없거들랑 봄 처녀 징검돌 건너듯
사부랑삽작 건너뛰지
핑계마저 꾸어왔는지
기어이 힘 빼 문 소갈머리

이름값 하려니
어쩔 수 없다 치자
허나 서슬 퍼런 그대 입김으로 인해
주눅 들어버린 세상은 어쩌란 말이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그대 고집 영 못마땅하니
어지간하면 하루빨리 성깔 접을 수는 없겠는가
스트레스 참다 참다
혈전증 도져 실신해버린 수도라도 살리게

 

 

소한 / 장광규

해가 바뀐 1월 초순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는
스물세 번째 절기
소한은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이 있듯 이때가 가장 춥다

소한을 전후해 눈도 많이 내리는데
눈을 상서로운 것으로 여긴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

동지가 지나면서부터
긴긴 겨울밤은 점차 줄어들고
태양을 보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추위는 계속 이어지지만
마음은 벌써 봄을 향하여 걷는다

 

소한(小寒) 무렵 / 홍신선

 

팔달산 밑 외채 농가형 단층집 시멘트 담 밑에
종신(終身)이라도 보러 온 듯 눌러앉아
시든
쑥부쟁이꽃

여태껏 그 무슨 말 못할 우환에
속 태웠는지
저 모르는 사이 남들에게 걸림돌 되지는
않았었는지
웬 숱한 낙심(落心)들로
저리 얼굴 푸르딩딩 질린 사색(死色)인가

등 뒤에 얹힌
수천 톤급 폐함 같은 폭삭 삭은
하늘이
치매 앓아 웬갖 일 까맣게 잊은 듯
잡생각 없는 단색으로 투명하다

아버지 가신 날.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 하영순
  
일 년 24절기 중 동지 지나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비라도 쏟아 졌으면 겨울 가음이라도 해갈하련만
날씨만 우중충하다
수은주는 내려가고
서민의 고뇌는 높아만 간다.
냉기류는 정가나 재계나
풀릴 기미가 없다
뭐가 그리도 원한이 많아 칼을 가는지
얼어붙은 이 땡에 봄은 언제 오려는지
꽁꽁 언 얼음장 밑에도
물은 흘러만 간다.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소한 / 사방천史方天

 

아침에 문을 열고 밖을 나서니

온 세상이 티끌 하나 없이

순백한 세상이로다.

 

혹시나 하고 다시 들어와

거울을 보니 내 팔십 평생

걸어오며 세월에 시달려 바랜

머리와 어찌도 저리 똑같은가?

 

다사다난하던 경자년에 시달리고

신축년이 한숨 쉬는 바람에

억겁의 세상 지났으니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고

백설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하늘에서 보내주신 선물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