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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小雪)에 관한 시모음 [24절기 시][소설 시] <1>
    시모음 2022. 11. 22. 08:27

     


    소설과 첫눈 / 안도현

     

    소설에는

    첫눈이 내린다는 말을 믿고

    내 안에 눈을 내렸습니다.

     

    약속대로

    그대 손잡고

    눈길 따라 따뜻하게 걸었습니다.

     

    이 여운 이대로

    날까지 춥다는 오늘

    포근하게 보내겠습니다.

     


    소설 / 박상봉

     

    첫얼음 얼고 첫 눈 내리기 시작하는 때
    쌀독에 밑바닥이 휜히 들여다보이는 때
    독을 채우고 있던 쌀이 다 비어지는 때
    고쟁이 확 까뒤집어 보듯이
    불장다본 쌀독 속

     

    궁핍이 날카로운 이빨 드러낼
    목구멍을 간질이던
    밥알이 치욕이라는 것,
    가슴에서 설설 밥이 끓기 시작한다
    소설이라는 설익은 밥이 설설 끓는다

     

    옛날옛적?
    朴자 堧자 함자 가진 집안어른이
    명절날 앞 떡 빚을 쌀이 없어
    가야금으로 떡을 쳤다는 고사처럼
    소설이라는 악기가 살얼음 깨는 소리
    쟁그랑 쟁그랑 밥상 차리는 소리

     

     

    소설(小雪) / 정양

     

    햇살이 비쳐도 하늘에

    더이상 무지개는 뜨지 않는다

    찬바람이 하얀 눈 장만하느라

    천둥도 번개도 무지개도 다 걷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빚은 하얀 꿈들이 얼마나 강물에 빠져죽어야

    하늘에 다시 무지개가 뜨는 건지

    산마루에 산기슭에 희끗거리며

    바람은 자꾸 강물 쪽으로만 눈보라를 밀어넣는다 *

    * 정양시집[철들 무렵]-문학동네,2009

     

     

    소설 언저리  /  강희창

     

    웃닥밭골 바우형네는 즈가베 바램대로 대처론 못 나가고 눌러백혀 올 갈바슴에 팔굉 버덤두 새로나온 진흥으루다 품종을 바꿔 소주밀식한 턱에 호락질에도 벼 여덟 섬을 수확했으니께 제법 흐뭇하였다. 동구로 오가는 질껄가시는 돌팍이 데따 많고 되게 깨끌막져서 숫제 달음박질 치다시피해야넌디 제금난지 십수 년에 원체 읎이 살다봉께 집안 꼬락서니는 개갈 안났지 뭐.

     

    된서리 내리고 한 파수 지났으니 시방 깨구락지도 겨울잠 잘테고 거머리 물린 데가 가려울 쯤이면 말여, 이 동리 으른덜은 탑세기 나는 짚누리 옆에 나앉아서래미 낡은 게타리에 흘러내린 겟말 추시르고 손에 침을 뱉어가매 산내끼를 꼬거나 이엉을 엮던지 안그러면 문풍지를 바르거나 방구락쟁이 구래질에 헐은 배름빡에 맥질을 해야 할때다.

     

     

     

    얼뚱애기 업어 포대기 띠빠 두른 애덜 빗나떨거나 진눈깨비 오면 큰집에 모여 숨바꼭질하던 골방엔 밀대방석을 두른 감자 통발 옆댕이 메주 곰팡내가 부릿부릿 나서는 말이지, 아릿하니 머리채를 땋아 시절스런 조카뻘 가시내 볼따구를 처음 만져 본 것도 거그 골방에서닝께.

     

    내동 자란 머리 빡빡 밀다가 바리깡에 씹혀 줘뜯기면 낫살먹은 분한티 욕지거리 하질 않나 배까티 나갈 때마다 나를 꼬창막대라고 떫게 쑥맥으루다 놀리던 베기 싫은 눔덜은 말여 워쨋던지 후제 반다시 급살맞을 끼라 믿었었지

     

     그쯤이면 오양간에 거적을 둘러치고 짚토매며 콩깍지동 들여놓으면 여물로나 땔감으로 제격인거라 가외루다가 뒤난 염생이나 도야지 뒤붙여야허구 농기는 마치맞게 지름칠을 해둬얀다. 거시기 수건 두른 아주매들은 바텡이를 뒤란에 묻거나 상수리 갖다가 절구에 빵구거나 솔껄 빚어 불 때는 냄새가 무쟈게 좋았으닝께 그러구선 인저 장광에다 정한수를 올리는 집도 더러 있었다

     

     여태껏 농사지며 사는게 여간 빡시고 대간허지만서도 집집이 가차워 이마를 맛댄 듯 지침만혀도 문을 열어보게될 헹편이었는데 한편짝으루는 툇마루에 벙거지 눌러쓴 할아배덜은 화롯불 돋워가매 댕강강 대꼬바리 털면서 우덜한티 우스갯소리하던 따신 나날에 멱살 잡힌 엄동이야 엥간헤서는 제 까징게 힘 못쓰고 수이 지나갈 밖에.

     

     

    소설(小雪) / 강보철

     

    다시 만날 것들을 위해 덮는다.

    밤사이 허옇게 태어나

    해가 뜨면 작은 입김도 못 이겨

    스스로 제 몸 사위며

    몽글몽글 씻기는 얼굴

     

    어제의 고달픔이 흉터로 남을까

    밤사이 허옇게 덮고 있더니

    고개 드는 한 줄기 햇살에

    쓱, 무거운 눈꺼풀 문지르며

    말갛게 눈을 뜨는 몸

     

    숨 가빴던 계절이 운다

    차가운 바람결에 숨죽여

    보내는 이 가슴 깊은 곳에서

    엉엉

    해가 솟는다.

     

    한두 방울 날리던 눈

    고달팠던 세월을 다독이는지

    떠나는 아픔

    떠나보내는 서러움

    다시 만날 것들을 위해 덮는다.

     

     

    소설(小雪) / 조현동​

     

    소소소소

    내리는 소설(小雪)에

     

    설설설설

    기어가는 우리들

     

    소소소소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설설설설

    떨고 있는 우리들

     

    기어가고 있든

    떨고 있든지 간에

     

    소설(小雪)에

    소설(小雪)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해프닝들은

     

    그냥 그대로가

    다 소설(小說)같은 얘기들

     

     

    소설(小雪) / 유홍준

     

    하늘에서도
    빗자루로 쓸 수 있는 것이 내려서 좋다
    동글동글 손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이 내려서 기쁘다
    잠시겠으나
    그늘 쪽 어깨에만 눈을 얹고 구층 석탑처럼
    묵묵히 서 있고 싶다
    이 겨울은
    창호지같이 얇은 서러움으로 죽(竹)을 칠까 붉고 푸른
    깃발처럼 펄럭여볼까 아니야 아니야 울타리 쪽으로 밀어붙여놓은 눈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것이나 바라보아야겠다

     


    소설 / 권혁재

     

    막교대 철야를 마치고 돌아와
    아내가 남기고 간 찬밥을 먹는다
    아내의 고단한 체취가
    개수대에 걸린 밥알 같이
    퉁퉁 부어오르는 신새벽
    작은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만큼이나 기대했던 형편은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보다 느려
    좀체 피지를 못한 채
    밀린 공과금, 밀린 잠으로 쏟아진다
    내 작아진 가슴 위로
    작은 눈이 내린다
    앞으로 차츰 큰 눈이 내리고
    추위도 살벌하게 닥쳐올텐데,
    저녁 막교대를 위해 나는 다시
    한잠을 붙인다
    아내가 남기고 간 찬밥 위로
    작은 눈이 쨍하게 내린다.

     


    소설(小雪) / 김학주
     
    "소설(小雪) 추위는 빚을 내서도 한다"는
    속담처럼 겨울이 겨울다워야 할 텐데
    추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손돌 바람이라도 불어 주면
    조금 춥다 시퍼
    눈치만 살살 보던 눈도 펑펑 내려줄 텐데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음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작년에 떠났던 칼바람은 오지 않고
    늦가을 훈풍에 철모르는 꽃들만 피고 있으니
    눈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꽃도 싫어라
    첫눈 약속은 어디 갔나?
    소설(小雪)에는 눈 꽃이 좋아라

     

     

    소 설 / 가혜자

     

    생명을 잉태하던

    땅위에

     

    가을 소풍떠나

    엄마땅 품에 안겨품에

    잠들은 낙엽위에

     

    서서히 얼음으로 덮어

    간간히 햇님 놀러와도

    썩어지고 거름되어

    새 땅되어

    새 생명 품고

    새봄 그대찾아 오겠지요

     

     

    소설(小雪) / 김영길

     

    계절은 소설을 지나 매서운 바람이

    가슴속을 파고 들어온다.

    오늘 새벽 아침도 인자한 햇님은

    천지일월 광명이 밝고 따뜻한 웃는

    얼굴로 나타나시었다.

     

    이 영광된 공간

    이 즐거운 공간

    이 기쁜 공간

    이 찬란한 공간

    이 무한한 공간

     

    이 공간에 피조만물이든지

    삼라만상에 나타난 형성이든지

    성분의 찬란한 요소의 조화든지

    학문의 제도로 이루어진 과학이든지

    햇님의 광명이 없으면 볼 수가 없다.

     


    小雪에 가난한 집을 지나며 / 이우식

     

    바람 찬 쓸쓸한 골목 가난한 집이 한 채
    굴뚝에선 연기 안나고 토담은 기울었네
    말라 썩은 처마끝에 고드름 눈물짓는데
    노인의 기침소리만 창 너머로 더해진다.

     

     

    小雪過貧家(소설과빈가)

     

    寒風窮巷一貧家(한풍궁항일빈가)
    煙突無煙牆壁斜(연돌무연장벽사)
    枯朽檐端氷株淚(고후첨단빙주루)
    老翁咳喘隔窓加(노옹해천격창가)

     


    소설(小雪) 유감 / 임영준
     
    걸맞지 않아서
    사람 사는 세상인가

    소설에 제대로 한번
    눈가루 비친 적 있던가
    들숨 크게 권한 적 있었나

    그래도 사람들은 오가는데
    기대하는 소식은 깜깜이고
    음영만 짙게 깔린다

    돌부리라도 차고 싶었는데
    핑계가 생겼다 

     


    소설 (小雪) / 김정희

     

    한밤중 바람이 창을 두드릴 때 어쩐지 네가 올 것 같아서
    떠나지 않는 바람 등 떠밀어 보내고 달빛으로 내 방을 밝혀두었지
    그리움에 지친 날 몰래 엿보았더냐?
    달빛이 지 몸을 아랫목에 뉘이고서야 이리도 애달픈 네가 온 줄 알았더니
    내가 보낸 그 바람 뒤에 너는 숨어 다녀갔구나.
    겨울 시작한 밤
    살며시 오는 너를 보지 못하고
    네가 떠난 새벽,
    홀로 달빛 헹구며 서성거린다.

     

     

    소설 / 권오범

    가문의 번창 명 받고
    소모품으로 태어나
    무성하게 경쟁한 추억
    제각기 갈무리한 이파리들

    이별이라도 섭섭찮도록
    성깔대로 하나하나 끌어안고
    불콰하게 뭉그적거리던
    가을이 갔다

    태곳적 약속 앞세워
    매섭게 식식거리며
    칼같이 들이닥친
    동장군 콧김 무서워서

     

     

    소설 / 장광규

     

    입동은 지났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겨울은 이제부터다

    기후변화 기상이변으로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는

    옛말은 옛말이 되어간다

    아직 못한 김장도 서두르고

    월동준비를 하는 시기다

    겨울 양식인 김장을 하고 나면

    무 잎사귀와 배추 잎을 엮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시래기를 만든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

    알몸을 드러내는 나무들이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어둠은 일찍 찾아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설(小雪) / 김정윤

     

    작은 겨울로 들어선다는 절기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맞는다는

    속설이 있다

    어머니는 솜 바지를 깁고

    무와 배추를 거두어

    김장김치를 담그고

    호박을 썰어 줄에 널고

    시래기를 엮어 헛간에 건다

    겨우내 온돌방 땔감준비며

    소여물 볏집을 챙기며

    겨울 채비를 서두르신다

    소설 때는 추워야 이듬해

    농사가 잘된다는 말은 지금은

    어디에서도 들어 볼 수가 없어

    가슴만 먹먹해진다.

     


    소설(小雪) / 최재환

     

    방문 굳게 걸어 잠그면
    추위도 밖에서 주춤거릴까.
    결 고운 조약돌 하나
    햇볕 따스한 石床에 올려
    찻물 끓기를 기다리다.

    돌려 받은 세월이
    삶을 앞지르기 전에
    빈 손으로 돌앉아도
    하늘을 거역지 않고
    밀린 빚이나 지워얄 텐데.

    온 갖 시름이 물 속을 어지럽힐 때 쯤
    찾잔을 뎊히는 입김처럼
    눈발이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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