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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눈에 관한 시모음<1> [눈 시] [첫눈 시]
    시모음 2022. 11. 30. 20:37

     

    첫눈에 관한 시모음<1> [눈 시] [첫눈 시] 

     

    첫눈 내리는 아침 / 안희선

     

    지난 밤,

    한 겨울의 기나 긴 추위가

    뼛 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아직도, 내 가슴에

    속절없이 살아있는 하얀 그리움

     

    그곳에 날아가 못 박히는,

    눈물겨운 그대가

    아침 햇살처럼 따스합니다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 정호승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은

    너와 처음 만났던 도서관 숲길이다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던

    버스 종점이다

    아니다

     

    버스 종점 부근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지 위의 까치집이다

    아니다

     

    네가 사는 다세대주택 뒷산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어나던 강아지 무덤 위다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었다 진 원추리의 이파리다

    아니다

     

    외로운 선인장의 가시 위다

    아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소년의 똥무더기 위다

    아니다

     

    초파일 날

    네가 술을 먹고 토하던 조계사 뒷골목이다

    아니다

     

    전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서 있던 명동성당 입구다

    아니다

     

    나를 첫사랑이라고 말하던 너의 입술 위다

    그렇다

     

    누굴 사랑해본 것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던

    나의 입술 위다

    그렇다  

     

     

    을지로의 첫눈 / 박목월

     

    을지로 6가 로터리를

    버스로 건너는 그 순간

    날카로운 것이

    쇠랑쇠랑 뿌렸다.

    그것은

    첫날밤의 불빛에 대하여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니 첫 대면의

    부끄럽고 수줍은 대화에 대하여

    속삭이기 시작했다.

    5가에서는

    첫 아이의 칠국과

    산모방의 훈훈하고 비릿한

    분위기에 대하여

    소근거렸다.

    처음으로 죄를 저지른 새벽의

    깊은 참회와

    네 시의 첫 종소리와

    아니, 죄를 고해한 수요일 밤 예배와

    처음으로 불이 붙은

    신앙에 대하여

    4가에서 3가까지

    속살거렸다.

    그것은 2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길을 떠난 나그네의 고달픔과

    처음으로 발견한 바다의 불빛에 대하여

    소근거렸다.

    무엇이나

    처음의, 그 황홀한 신선함

    정결한 도취.

    하지만 그것은

    을지로 입구에 이르러

    버스가 방향을 바꾸려는 그 순간

    문득 입을 다물었다.

     

     

    첫눈이 내립니다 /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당신의 첫눈이고 싶습니다 / 이 채

     

    간절한 내 마음이

    당신의 첫눈으로 내릴 수 있다면

    잎 다 떠나보낸

    빈 나목으로 서도 좋겠습니다

     

    당신의 처음이란 이유로

    당신의 마지막까지 젖어들 수는 없을까요

    당신에게 이르는 길에

    처음으로 피는 눈꽃이고 싶습니다

     

    신비스럽도록 맑고 고운

    당신의 첫눈이 되어

    하얗게 나를 비우고

    당신의 추운 겨울부터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꽃 피고 새 지저귀는

    하늘 푸르른 날에

    당신의 맑은 샘터로 남아

     

    다시 첫눈이 올 때까지

    목마른 당신이라면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한 방울의 그리움으로 살고 싶습니다.

     

     

    단풍잎 지기 전에 첫눈이 / 장수남

     

    첫눈.

    넌. 어쩜. 벌써왔니.

    내가 자리 비켜주면,,,?

    난. 아직 서둘러 갈 순 없어

    겨울새 기다릴 거야.

    새 옷 하얗게 입혀놓고

    뜨겁게 포옹하면

    넌. 날 어쩌자는 거니.

    우린 기다릴 수 없는 극적인 만남.

    선택하지 않는 이별은

    내안에 채워진 소중한 것들을

    밤샘 눈꽃 피워가며

    하나하나 너에게 꺼내주는 거야.

    새벽 하얀 길목엔 누가 배웅할까.

    첫사랑 서러운 눈빛이

    붉은 잎 새 눈시울 적시고

    돌아서면 너는 하얀색 그리움으로

    혼자 남아있을까.

     

     

    첫눈 / 이해인

     

    함박눈 내리는 오늘

    눈길을 걸어

    나의 첫사랑이신 당신께

    첫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언 손 비비며

    가끔은 미끄러지며

    힘들어도

    기쁘게 가겠습니다

    하늘만 보아도

    배고프지 않은

    당신의 눈사람으로

    눈을 맞으며 가겠습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오광수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빨간색 머플러로 따스함을 두르고

    노란색 털 장갑엔 두근거림을 쥐고서

    아직도 가을 색이 남아있는

    작은 공원이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갈께

    네가 오면 앉을 벤치에

    하나하나 쌓이는 눈들은

    파란 우산 위에다 불러모으고

    발자국 두길 쭉 내면서

    쉽게 찾아오게 할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온 세상이 우리 둘만의 세계가 되어

    나의 소중한 고백이

    하얀 입김에 예쁘게 싸여

    분홍빛 너의 가슴에선

    감동의 물결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두 눈 속에

    소망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내 모습이 자리하면

    우리들의 약속은

    소복소복 쌓이는 사랑일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내게 당신은 첫눈 같은 이 / 김용택

     

    처음 당신을 발견해 가던 떨림

    당신을 알아 가던 환희

    당신이라면 무엇이고 이해되던 무조건,

    당신의 빛과 그림자 모두 내 것이 되어 가슴에 연민으로 오던 아픔,

    이렇게 당신께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짐을 나는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사코 거부할랍니다.

    당신이 내 일상이 되는 것을.

    늘 새로운 부끄럼으로

    늘 새로운 떨림으로

    처음의 감동을 새롭히고 말 겁니다.

    사랑이,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랑을 이끌어 낼 사람 어디 있을라구요.

    기막힌 별을 따는 것이 어디 두 번이나 있을법한 일일라구요.

    한 번으로 지쳐 혼신이 사그라질 것이 사랑이 아니던지요.

    맨처음의 떨림을 항상 새로움으로 가꾸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그것은 의지적인 정성이 필요한 것이지요.

    사랑은 쉽게 닳아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대한 정성을 늘 새롭히는 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 생애에 인간이 되는 첫관문을 뚫어주신 당신이 영원

    으로 가는 길까지 함께 가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당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당신처럼 귀합니다.

    당신의 사랑도, 당신의 아픔도, 당신의 소망도, 당신의 고뇌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당신 하나로 밤이 깊어지고 해가 떴습니다.

    피로와 일 속에서도 당신은 나를 놓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기도, 명상까지도 당신은 점령군이 되어 버리셨습니다.

    내게,

    아, 내게

    첫눈 같은 당신. 

     

     

    첫눈 생각 / 김재진

     

    입김만으로도 따뜻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기다리는 눈은 안 오고 손가락만 시린 밤

    네 가슴속으로 내려가

    너를 깨울 수만 있다면 나는

    더 깊은 곳 어디라도 내려갈 수 있다.

    종소리에 놀란 네가 잠에서 깨고

    잠옷바람으로 언뜻 창 밖을 내다볼 때

    첫눈 되어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색하며 기뻐하는 너를 위해

    이 세상 어디라도 쌓일 수만 있다면 좋겠다.

    햇빛에 녹지 않는 응달이 되어

    오래도록 네 눈길 끌었으면 좋겠다.

     

     

    첫눈 2 / 홍수희

     

    첫사랑도 저렇게 왔다

    아마 내 기억으론

     

    깊이 잠들었다

    막 깨어난 이른 아침

    나도 몰래 변해 버린 세상

     

    어제의 지붕도

    어제의 가로수도

    어제의 기억도 내겐 없었다

     

    이미 내 세상을 덮어 버린

    너의 그윽한 눈빛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가슴은 몰래 쿵쿵 뛰었다

     

    그러나 그 소리 은밀하여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었으니

    금서(禁書)의 책장을 넘기듯이

    숨어서 너를 바라보았다

     

    마주치면 소스라치는 내 영혼

    순결의 무늬가 너무 투명한 까닭에

    너의 이름 한 자도 조심스레

    불러야 했다

     

    첫눈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천사의 고운 날갯짓

    이 세상 티끌 한 점 다 지우고

     

    첫사랑은 나에게 그렇게 왔다

    첫눈처럼 소리 없이 나를 덮었다

     

     

    첫눈 / 박남수

     

    그것은 조용한 祈禱.

    주검 위에 덮는 純潔의 보자기.

    밤 세워 땅을 침묵으로 덮고

    사람의 가슴에, 뛰는 피를

    조금씩 바래주고 있다.

    개구장이 바람은 즐거워서 즐거워서

    들판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눈발은 바람따라 기울기도 하지만,

    絶對의 沈默은 조용히 조용히

    지붕 위에 내리고, 혹은

    나뭇가지 위에 내리고,

    혹은 人類의 가슴에도 내리는가.

     

    아침 동이 트면, 세상은

    빛나는 흰빛으로, 汚濊를 씻으라. 

     

     

    첫눈 / 강은교

     

    첫눈이 내린다

    흙에 닿으면 흙으로

    눈물로 닿으면 눈물로

    내리는 족족 녹으며

    자꾸 내린다

     

    웬 슬픔들 여기엔 이리도 많은지

    동구 밖 넓은 길 훠이훠이 떠돌다가

    더는 몸 비빌 곳 없어

    찾아오신 넋들

     

    구름 위에서 구름이 부서진다

    바람 앞에서 바람이 부서진다

     

     

    첫눈 / 홍해리

     

    하늘에서 누가 피리를 부는지

    그 소리 가락 따라

    앞뒷산이 무너지고

    푸른빛 하늘까지 흔들면서

    처음으로 처녀를 처리하고 있느니

    캄캄한 목소리에 눌린 자들아

    민주주의 같은 처녀의 하얀 눈물

    그 설레이는 꽃이파리들이 모여

    뼛속까지 하얀 꽃이 피었다

    울음소리도 다 잠든

    제일 곱고 고운 꽃밭 한가운데

    텅 비어 비어 있는 자리의 사내들아

    가슴속 헐고 병든 마음 다 버리고

    눈 뜨고 눈먼 자들아

    눈썹 위에 풀풀풀 내리는 꽃비 속에

    젖빛 하늘 한 자락을 차게 안아라

    빈 가슴을 스쳐 지나는 맑은 바람결

    살아 생전의 모든 죄란 죄

    다 모두어 날려 보내고

    머릿결 곱게 날리면서

    처음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불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홀로 혼자서 빛나는 너

    온세상을 무너뜨려서

    거대한 빛

    그 無地한 손으로 언뜻

    우리를 하늘 위에 와 있게 하느니.

     

     

    첫눈 / 목필균

     

    첫눈이 왔다는데 흔적이 없다

     

    깊이 잠든 사이 소리없이 내리다

    사라진 눈

     

    네게 가는 길을 지우고

    낡은 기억을 지우며

    그렇게 함박눈 내리면

     

    뽀드득뽀드득 눈 밟으며

    발자국을 남기면

    기억의 길을 찾아갈 수 있으려나

     

    첫눈을 만나지 못한 날

    텅빈 그리움 길을 열며​

    하늘 가득 쏟아지는 함박눈이

    가슴으로 쌓여든다

     

     

    첫눈 / 서정윤

     

    보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먼저 눈발이 날린다.

     

    낙엽 모이던 금호강변 어디

    지금쯤 그대는

    내 속에 앉는다.

     

    키 큰 미루나무 빈 가지에

    올해 깬 까치가

    자꾸만 설레이고

    맨발로 달려오는 소식들

    내 마음

    먼저 반갑다.

     

    그리운 마음 그 어디서

    눈발 날려 부른다.

     

     

    마지막 첫눈 / 정호승               

     

    마지막 첫눈을 기다린다

    플라타너스 한그루 옷을 벗고 서 있는

    커피전문점 흐린 창가에 앉아

    모든 기다림을 기다리지 않기로 하고

    마지막 첫눈이 오기를 기다린다

     

    첫눈은 내리지 않는다

    이제 기다린다고 해서 첫눈은 내리지 않는다

    내가 첫눈이 되어 내려야 한다

    첫눈으로 내려야 할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파 걸어가는 저 거리에

    내가 첫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야 한다

     

    오늘도 서울역까지 혼자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들렸다

    땅에는 저녁별들이 눈물이 되어 굴러다니고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어

    나는 오늘도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별들이 첫눈으로 내린다

    가장 빛날 때가 가장 침묵할 때이던 별들이

    드디어 마지막 첫눈으로 내린다

    커피전문점 어두운 창가에 앉아

    다시 찾아올 성지를 기다리며

    첫눈으로 내리는 흰 별들을 바라본다

     

     

    첫눈 / 장석주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온몸 얼어 저 첫눈이 빈 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 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첫눈 /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첫눈 / 정호승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는 일이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나는 네가 흘렸던

    분노의 눈물을 잊지 못하고

    너는 가장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길 떠나는 나를 내려다본다

    또다시 용서해야 할 일과

    증오해야 할 일을 위하여

    오늘도 기도하는 새의

    손등 위에 내린 너

     

     

    첫눈 오던 날 / 용혜원

     

    첫눈 오던 날 새벽에

    가장 먼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것처럼

    그대에게 처음 사랑이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날들이

    그대와 살아가며

    사랑을 나눌 날들이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늘 간절한 마음으로

    그대를 위하여

    두 손을 모읍니다

    그대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늘 아쉬운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그대에게 은총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첫눈같이 고운 당신 / 이채

     

    첫눈같이

    고운 당신이 내립니다

    당신으로

    세상은 하얗고 아름답습니다

     

    참 고운 당신이

    하얀 눈이 되어

    나뭇가지에 내리면

    나는 한 마리 겨울새가 되어 앉습니다

     

    유난히도 맑고 고운

    당신의 미소와 포근한 손길에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새는

    당신 가슴에

    둥지를 틀고 말았습니다

     

    당신 품에 잠들어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하얀 겨울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첫눈 오는 날 그대를 만나고 싶습니다 / 이채

     

    첫눈이 오면

    새하얀 눈이 소복히 내리면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깨고

    기도하는 하얀 천사처럼

    그대에게 순백의 고운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가 들을까

    하늘에서 춤을 추 듯

    가벼운 날개짓으로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 앉아도

    첫눈 오는 날엔

    어디선가 그대 목소리가 들립니다

     

    누가 볼까

    바람에 나부끼며

    나뭇가지에 고요히 내려 앉아

    어느듯 투명하게 사라져 버려도

    첫눈 오는 날엔

    어렴풋이 그대 모습도 보입니다

     

    흩날리는 눈꽃 그 길목에서

    먼저 와 그대를 기다리고

    저만치 다가오는 그대에게

    지난밤 몹시도 보고팠던 간절

    이미 손짓으로 부르는 하얀 그리움으로

    첫눈 오는 날 그대를 만나고 싶습니다

     

    백설의 그리움이 쌓이고 쌓인

    첫눈 오는 날

    언젠가 그 길목에서

    선 채로 꽁꽁 얼어붙은

    그 겨울날의 눈사람처 럼

    하얀 기다림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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