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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설(大雪)에 관한 시모음<2> [24 절기 시] [대설(大雪) 시]
    시모음 2022. 12. 7. 06:37

    대설(大雪)에 관한 시모음<2> [24 절기 시] [대설(大雪) 시]

     

    대설 / 한성국  

    매번 약속을 빵구 내더니
    이번은 제대로 지키었구나
    기겁하여
    송년회를 취소 한다는 총무의 문자
    걱정되어
    내려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전화
    발길을 막아버린 푹푹 쌓인 핑계거리
    다들 오지 말라고 다음에 오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집에서는 왜 연락이 없지?
    조금더 기다려 볼까? 가만
    오지 말라고 하지 않은 유일한 이곳
    그렇다
    하마터면 갈 곳이 없을 뻔 했다
    집에 빨리 가야겠다
    전화가 오기전에
    후다닥 뾰~옹

     

     

    大雪 후 / 김경윤

     

    연 사흘 내린 눈으로

    땅끝 가는 길도 광주 가는 길도 모두 막혔다

    그날의 눈은 계엄군보다 무섭게

    모든 마을과 길목을 얼게 하고

    지붕들과 들판을 덮고

    잦은 정전으로 귀와 눈을 막아버렸다

    섬으로 가는 배들도 닻을 내리고

    청해다방의 석유난로는 붐비는 사람들의 훈김으로

    심지를 낮추어도 좋았다

    땅끝여관에 든 장꾼들은 봇짐을 풀지 않았고

    떠돌이 목수들도 연장대신 화투패를 돌렸다

    밤이 깊을수록 거칠어진 눈발 속에서

    얼지 않는 바다만 밤새 뒤척였다

    세상이 일순 흰 이불 속에 잠든

    그 사흘 간의 낮과 밤이 지나고

    새로 맞은 아침은 갓난애기의 귓볼처럼 눈부셨다

    참으로 황홀한 정지의 시간이었다

    일생에 한 번은 꼭 이런 아침을 볼 일이다

     

     

    대설 / 고재종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꺽는 것이다

    또 한잔 꺽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

     

     

    대설 / 김경렬

     

    고뇌의 천둥 타니 온 천지 백야 일세

    가난한 흥부 동네 마음양식 채워주고

    달빛에 모두 부자네 설원에 첫발 두렵네

     

    천지간 월백설백 세상이 동색일세

    서생으로 나서 한 획 등한시 했는데

    화려한 노후 기댈까 그 져 후회뿐인 걸

     

    대설(大雪) / 엄원용

    오늘은 대설
    절기 따라 눈이 내린다.
    온 마을과 마을
    부드럽게 감싸며
    토닥이며 덮어 내리는 눈
    한여름 이글이글
    지독하게 타오르던 욕망들이
    한꺼번에 흰 치마폭 속에 포근히 잠재워
    잠시 부끄러움 가릴 수 있겠다.
    이제야 순수 하나쯤 품어볼 수 있겠다.

     

    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거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레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대설(大雪) / 康城 목원진

     

    온난화이라 떠들썩한데

    모르는 것 아니나 급기야

    날려 쌓여든 눈송이 송이는

    무엇 할 거 없이 새하얗게 덮이었다.

    되풀이하는 계절 이야기

    조금 기온이 올랐다 하여 야단

    흰 세상 보고 곱게 보이나 걷는데

    달리는데 내 사정 불편타 소리 소리

    하얀 눈 녹아 물이 되는 생명수인데

    누리는 며칠을 못 참아 왁자지껄 한다

    어느 학자는 남극이 눈이

    많아 녹아 바다 높이 올리면

    수몰되는 나라, 탄산가스 때문이라

    온 세계 정치가들 머리 짜고 있는데

    하늘이 보아 너무 우스워 듬뿍 내렸나

    다른 학자는 요즈음 다른 설을 주장함은

    태양 맞는시간 길어 일어나는 현상이라한다.

    온 우주 지구 자연의 섭리는

    원래 정하여져 있는 것이거늘

    세 치밖에 안 되는 혀 나름이며

    위정자 모이면 땔감 줄이자 하니

    발전도상의 나라들은 딴청을 하면서

    부자나라 응분의 부담 갖고 하시오 한다.

     

     

    대설 / 햇살 이해수

     

    다정이 넘친다는 천궁에서

    목화솜을 바리바리 싣고

    차가운 이승으로 찾아온 큰손님

     

     

    사진리 대설 / 고형렬

    ​하아얀 눈이 마당을 여드레 내리고 나니
    눈이 정말로 무서워졌다. 아흐레 만에 날이 드니
    눈물이 나는 오후였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선처럼
    해도 우물우물 빨리 서산으로 지려 하고
    마을은 오랜만에 빨간 불빛들을 서로 볼 수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친구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언제나 어둡고 높고 촌스럽기만 하던 설악산이
    시진리하고는 바닷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산이
    그날 처음으로 야산이 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하고는 아무일도 없는데 거만하게 하늘로 솟았던
    산이 순하디순해져서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육백 미터 팔백 미터 산과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눈으로 평지가 된 것처럼 신지붕이 야트막하였다.
    몇개의 봉우리만이 흐릿한 윤곽을 드러내고
    산은 정말 별볼일없는 어촌일지라도 인가 쪽으로 다가왔다.
    뽀야니 떡가루를 뒤집쓰고고 잠든 눈 속에 내려앉아서
    눈주목 눈측매 눈잣나무가 아주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모든 형상과 색이 파묻혀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사진리에서 그 끝까지가 고요, 고요였다
    공룡 청봉이라는 것들이 눈앞에서 잡힐 듯하였다.
    후우 세게 입김을 불면 날아가버릴 듯이 작아져서
    마치 산을 사진리에서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오후 이후 이때까지 설악이
    그처럼 낮아지고 아름다운 적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해 지고도 한참을 설광 때문에 새벽 같았다.
    발간 등불과 후레쉬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마을
    사진리는 그제서야 사람 사는 마을이 되었다.
    아흐레 동안 산이 눈 속에 파묻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은 사실은 그날 내다본 동해는
    무슨 일인지 물 속에 다니는 고기 소리가 날 듯이
    맑게 개인 하늘 아래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눈도 한 송이 쌓이지 않고, 그만으로 흐르고 있었다

     

     

    大雪 / 편부경 
     
    널 처음 만난 건
    간성 못미처 돌배가든 부근
    신발끈 꽁꽁 동여매고
    반짝이는 눈빛은 충혈되어 있었네
    억새 혼자 냉가슴으로
    미동도 않을 때
    나무에 걸터앉아 날 바라본 건 너였네

    그날 밤 넌
    나보다 술이 세더라
    새벽까지도 퍼부을 작정이었지
    한발짝도 허락지 않던 얼큰한 분노에
    난 잠들 수도 없었네

    비틀거리며 속초 지나 봉포 아야진에 갔었네
    작은 배들 움츠리고 어깨를 떨던 사이로
    네가 잠시 사라지고 난 아무래도 좋았네
    백도를 돌아나온 파도가 청간정 절벽에서 부서질 때
    기억으로는 그쯤이었네
    마지막이다
    시작도 없을 거라며 우린 우리의 이름으로
    숙박부를 기록했네 한가롭고 격렬하던 한 때
    잠잠해진 어깨 너머로 바다가 육지로 오르는 걸
    처음 보았네
    마지막은 어디쯤일까 네 안에 갇힌
    나의 네 안에


    삭막을 가리면서
    바람이
    집배원처럼
    백지를 뿌리는 밤

    우체통 알종아리가 눈발 속에 더 붉다

     

     

    대설 주의보 속을 걸으며 / 김길남

     

    서울에 눈이 펑펑 쏟아 집니다

    기상 관측을 새로 시작한 1937년 이후 최고의 기록으로

    서울에 25.8cm라는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오랫 만에 옛날의 생각이 떠 오릅니다

    20여년전 요맘때의 일입니다

    나랑 친구는 지리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화엄사를 지나 오르고 있을 때 라듸오 에서는

    지리산 일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코재 근처에 다달으니 제법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노고단 근처에 이르니 어두어둑 밤이 찾아 옵니다

    이 곳에서 옛 날 선교사들의 별장터로 옮겨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관리사무소에 들르면 폭설에 입산통제라고 가던 길을

    막을 것이 분명하여 그 곳을 모른 체 통과하여 임걸령을 지나고

    삼도봉, 연하천을 지나 벽소령 근처를 지나는데

    앞서 간 발자욱들은 하나도 없고 쌓인 눈은 허벅지까지 찹니다

    선비샘에 이르러 눈 쌓인 산행이 이리 힘 듦을 느낍니다

    산행을 접고 판쵸우의를 큰 나무들을 지탱하여

    비박 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밤새 소록소록 눈이 계속 옵니다 조금씩 두려움이 왔습니다

    기인 밤이 가고 하얀 눈 속에서도 칠흑같은 여명이 옵니다

    장비들을 다시 챙기고 출발을 서두릅니다

    덕평봉을 오르는데 셀 수 없는 설벽에서의 추락으로 땀이 비오 듯 합니다

    세석평전에 올라 두껍게 쌓인 적설량으로 천왕봉으로의 진군을 포기 합니다

    동남쪽 거림마을과 길상사를 향해 하산길을 재촉합니다

    눈 길을 걸을 수 없어 설영(눈 수영)을 합니다

    내리막 길이라 파 묻히지 않고 서서히 잘 도 내려 갑니다

    길상사 부근에 도착하여 평온을 회복합니다

    입었던 옷들이 물 속에 빠졌다 나온 듯 물쩍 거립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억척스러운 모험(?) 산행으로

    그 옛 그 곳을 같이 오르던 그 친구는 지금 내 곁에 없습니다

    오늘 눈이 퍼엉 펑 쏟아지고 있는 북한산 길을 오르면서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을 뱉아 그려 봅니다

     

     

    대설주의보 / 정철훈



    물이 끓고, 주전자에서는 물이 끓고, 세상이 끓고
    하얀 김이 서려 노인 몇은 뿔테안경을 벗고
    눈시울을 닦았다
    하늘은 이내 폭설이라도 퍼부을 듯 어둑히 내려앉고
    점방 난롯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뽑다 만 낮은 목청을 주섬주섬 가슴에 주어담았다
    그들은 실패한 혁명 따위, 도시에서 돌아온 삶 따위에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듯 귀를 후비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옛 사랑에 대해서도, 파산에 대해서도,
    선거에 대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마을 우물을 하나 더 파야겠다거나
    막힌 도랑을 치워야겠다거나
    올 겨울에 죽을 노인을 거명하며
    언 땅을 파야 하는 지난한 장례를 걱정할 뿐이었다
    시궁창이나 구정물 같은 세상의 마지막 흐름에 관해
    북망산에 묻은 아무개가 지금쯤 충분히 썩었는지에 관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있었다
    아무개는 붉은 잇몸을 뒤집으며 실실 웃고
    아무개는 누런 이빨을 꽉 문 채 막걸리 사발을 돌렸다
    마침내 눈이 내리고
    문틈을 울고 가는 바람앞에서
    그들의 발음은 자주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입김을 불어 성에 낀 유리창을 닦는 나를
    그들은 눈짓으로 핀잔하였다 그뿐이었다
    누가 누구를 앞세웠다느니
    누가 누구의 뒤를 따라갔다느니
    모든 삶이 죽음에 뒤섞이고 있었다
    그들의 심장처럼 주전자에서는 물이 끓고
    내리는 눈을 우두커니 쳐다보며
    나는 아무 말도 붙이지 못했다
    누군가 초례를 마치고 신행 가던 길이
    다시 누군가의 상여로 돌아오듯
    나는 떠돌았던 지난 생이 부끄러웠다
    무엇이 우리를 그 밤에 살게 하였을까
    어허, 눈이 내리는데
    눈이 내가 걸어온 길을 지우는데
    내가 무엇을 더 서러워할 것인가
    텅 빈 점방에서 주인장도, 주전자도 깜박 잠이 들고
    물이 혼자 끓고 있었다 

     

     

    대설에 눈을 기다리다 / 五龍김영근

     

    그대 기다리듯

    대설에 눈을 기다리고

     

    그대 그리워하듯

    대설에 눈을 그리워하고

     

    그대 사랑하듯

    대설에 눈을 사랑하네.

     

    많은 눈이 내린다한들

    대설인데 그 누가 뭐라 하리.

     

    그대 기다리고

    그대 그리워한들

    그 누가 뭐라 하리.

     

    겨울 내내 내리는 눈보다도

    그대를 더 많이 사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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