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에 관한 시모음<6> [12월 시]시모음 2022. 12. 8. 18:16
12월에 관한 시모음<6> [12월 시]
12월에 / 채린(綵璘)
군더더기 없는
그대를 만나고 싶다
경주로 행하는 지름길
어느 길가의 아담한 찻집처럼
녹차를 우려내며
아무 말 없이 우리의 생각을 더하고 싶다
1 더하기 1이 아닌
무한대의 상생의 혼을
12월 공간에
살찌우고 싶다
일 년의 마지막을 여는
새해의 첫 달을 준비하는
따스한 초 한 자루 밝히고 싶다
12월의 詩 / 이명희
파도처럼 철석거리며 지나 간 날들이
한 겹 두 겹 허물을 벗어던진 雪 木처럼
겸허하게 서 있습니다
반성문을 수없이 썼던 일기장에는
물 빛 같은 인연들과 소소하게 나눈 향기
숨죽인 채 엎드려 있습니다
보채는 외로움과 함께 허둥거리며
살아온 시간들 허기짐을 달래려는 듯
노을 속에 빛을 풀어 놓습니다
하루하루를 아껴 쓰고 싶은 달
잠시 뒤를 돌아봅니다
거칠고 노둔한 삶이 눈물 짓습니다.
12월의 안부 / 신경희
서리 맞은 나뭇잎처럼
가슴은 시렸습니다.
당신에게 닿기위해
돌부리에 넘어지며
돌돌거리는 시냇물처럼
굽은길 곧은길을 몇겹을 돌아
강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잠든 후에도
소리없이 흘러가는 세월처럼
묵묵히 바다로 향하는 마음
때로는 세상을 할퀴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전해주는 바람과 친구가 되어
당신에게로 갔습니다.
서리 내린 꽃잎처럼
가슴이 시립니다.
반짝이는 은빛의 수정처럼
당신에게 빛나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눈속에
살아움직의는 하나의
눈꽃이고 싶습니다.
서리내린 얼굴이
차갑기만 합니다.
긴 기다림 저편에 있는
푸른 바다를 기다리며
오늘도 당신께 안부를 묻습니다
12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채
점점 멀어져 가는 시간을 앞에 두고
당신은 무슨 생각에 잠기시나요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멈추지 않고 걸어온 시간을 뒤로하고
당신은 또 무슨 꿈을 꾸시나요날마다 정성스레 가꾸어 온 삶의 밭에
봄날의 푸른 잎과 향기의 꽃
뜨거운 눈물로 익은 보람의 열매를 기억하며
등잔 같은 당신의 겨울밤을 위해
마음의 두 손을 모으고 아늑한 평온을 기도합니다당신은 지금도 당신보다 추운 누구에게
선뜻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지 않던가요
당신의 마음으로 세상은 따뜻해요
얼어붙어 깨질까 두려운 12월의 유리창에
당신을 닮은 하얀 눈이 인고의 꽃으로 피어나는 계절또 한해의 행복을 소망하는
당신의 간절한 기도에 귀 기울이는 동안
나는 작은 물방울의 떨림으로
얼지 않는 당신의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사막에서 길어 올린 한잔의 물이
희망의 정원에 파아란 새싹을 틔울 것을 믿습니다허리를 휘감는 바람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당신에게
은은한 위로의 차 한잔 건네며
이 한마디 꼬옥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한해는 휼륭했노라' 라고..십이월 / 공석진
해가 저물도록 공복이니
긴 밤 눈물로 지새우려네
주섬주섬 길 떠나는 손님처럼
쉬이 기억에서 외면하여
고이 추억으로 남겨두려
십이월은 정녕 아니리
백치 무언극은 끝이 나
극적인 반전은 없었네
서둘러 장막은 다시 올라가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 속
동장군의 머리채를 잡아채
무대 복판으로 내달리리
십이월 산책 / 황동규
쥐똥나무 울타리 밑에서 주워든
얼어 죽은 참새의 별난 가벼움,
빈 뜰에서 싸락눈 맞고 있던
철없이 핀 장미의 전신 추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의 살짝 들린 둔부
를 내리누르던 흑바위 같던 얼굴의 어둠,
이들 때문에 하루를 흐리게 한 죄 없느냐 묻는다면,
물으시는 분과 함께 골목길을 오르겠습니다.
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물건만 잔뜩 문밖에 내논 쓸쓸한 가게들을 지나
힘없이 싸우고 있는 두 여자를 지나
줄기는 말랐어도 늙은 호박 하나 늠름히 앉아 있던
지금은 비어 있는 슬래브 대문지붕을 지나
시든 줄기 두셋 꽂고 잠든 꽃자리들을 지나
쥐똥나무 울타리까지 가겠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것이 설레게 하는군요.
쥐똥나무에는 여태 까만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십이월에는 / 홍수희
어서 빨리
구유를 만들어야겠네
구멍 숭숭 뚫린 바람벽에는
진흙을 개어 덧바르고
시종 부스럭대는 황소와 나귀에게는
마른풀이라도 실컷 먹여야겠네
어서 빨리
구유를 만들어야 하겠네
가장 깨끗한 지푸라기를 골라
폭신한 잠자리를 만들어드리고
아기 깨실라 십이월에는
걸음도 살금살금 걸어야겠네
부디 화려한 요람은 마다하시고
무시 받는 구유에 누우시는 아기
소외된 이 가슴에 누우시는 아기
어서 빨리
구유를 만들어야 하겠네
거치른 기억은 곱게 다듬고
모가 난 욕심은 둥글게 깎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금발의 아기
편히 쉴 구유를 만들어야겠네
십이월(十二月) / 김현승
잔디도 시들고
별들도 숨으면,
十二月은 먼 곳
窓들이 유난히도 다스운 달…
꽃다운 숯불들
가슴마다 사위어 사위어,
十二月은 보내는 술들이
갑절이나 많은 달…
저무는 해 저무는 달,
흐르는 時間의 고향을 보내고,
十二月은 언제나
흐린 저녁 終點에서 만나는
그것은 겸허하고 서글픈 中年…
12월의 기적 / 성백군
앞이
겨울이라 추울 텐데
마지막 달이라 기회가 없을 텐데
들녘이 그동안 채웠던 것들을 다 비워내고
나무들이 옷을 벗는다
항복일까 회개일까
목숨 걸고 해 보자는 것일까
1, 2, 3, 4, 5, 6, 7, 8, 9, 10, 11, 12월이
순서라면
12월 다음은 13월인데 1월이라니
기적이다
12월은 예수님의 죽음, 십자가의 대신 속죄고
1월은 부활이다
12월 31일,
해의 마지막이다
결단하자. 몇 시간 안 남았지만
제야의 종소리 듣기 전에 완전 죽어 보자
새해에 부활을 위해 우리들도 자연처럼
12월의 기적을 만들어 내자
12월에 서서 / 목필균
웃는 얼굴 두드리면 슬픈 소리가 난다는데
슬픈 얼굴 두드리면 웃음소리가 날까
삼재 고역이 붙는다더니
한여름 땀방울에 지친 육신
병실에 묶어놓고 가을 문 열더니
붉은 산 걸어보지 못하고
첫눈을 맞으며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
12월에 서서
열릴 때나 닫을 때나
무심히 건너가는 세월
새해 햇살 위해
합장으로 올리는 기도
강건한 몸으로 복지어 올리겠다는
마음 밭이 흥건해 진다
12월의 마음 / 이원문
며칠의 12월인가
무엇인가 잃은 것 같아
돌아보면 아니고
보낸 달 거스르면
기억조차 희미 하다
잡아보는 12월
보내야 하는 12월
잃어버린 처음 달력
나머지장 어디 갔나
11장 반 모두 잃었단 말인가
찾아보는 그 많은 날
빈 주머니에 숨어 들고
찾는다던 그 욕심 어디에서 무엇 하나
남은 시간 그 며칠
나뭇가지에 걸친다
12월의 코스모스 / 박우복
가늘게 목을 내밀고
애처롭게 햇살을 마신다
팔랑거리는 꽃잎 사이로
찬바람이 밀려오면
수줍은 인사도 못하고
몸을 가누기에 바쁘다
무슨 죄목으로
12월에 피어나
옥살이를 자처할까
지켜보는 마음 속을
눈물로 채우면서12월의 노래 / 이해인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12월의 엽서 / 이해인
12월엔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 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주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곷 한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 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 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 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주기로 해요12월의 시 / 구상나무
12월엔 산속 깊은 곳
장작불로 방 따뜻하게 지피는
하얀눈 소복히 쌓인 산골짜기 산막으로 가고싶다.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나무 장작 한토막 한토막을 불속에 집어 넣으며
정답게 이야기 나누었던 그리운 모습들을
훨훨 타오르다가
숯이 되어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하나 둘씩 떠 올려 보고 싶다.
날아가는 새들에게도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들에게도
12월이, 1월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는 못 하겠지만
깊어 가기만 하는 어둔 밤길 따라
아궁이 속 사그러지는 숯불 속에 묻어 둔
하나, 둘 구워지는 구수한 밤톨처럼
살며 느꼈던 정들을 한겹 두겹 벗겨 내며
내 눈길 속에 다가오는 사람들의 따뜻했던 인정들을
다시 한번 생각 하면서
새해에는 나도 그들에게 따뜻한 장작 숯불처럼
참 인정 많고 서글서글한 좋은 사람이였었노라고
기억 되었으면 좋으련만
12월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 가는구나.
12월의 첫 차 / 박진표
햇살 아래
눅눅한 마음
툭툭 털어
가지런히 널어 놓고
가만히
두 눈 감고
불어오는
바람이 들려주는
겨울 이야기 들어봅니다
바람과 구름은
세월을 데려오고
시간은
초침과 분침 업어
무거운 삶의 무게
잠시 잊고
눈을 감아 마음을 비우라 합니다
값없이 내려주는
한 줌 햇살이 고맙고
나를 위하여 허락한
하루의 모든 삶의 노래가
가슴 시리게 마음을 닦아줍니다
마음으로 듣는 노래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고
배부른 희망 욕심껏 가슴 채우며
행복한 마음으로
12월의 첫 차를 탑니다
섣달의 마음 / 이원문
날 가까워지는 줄 모르고 기다리는 마음
섣달그믐 초하루면 다들 모이겠지
저놈의 손주놈들 뭐 그리도 좋은가
끝으로 막둥이 왠 종일 보채대고
큰놈들 옷 사달라 투정하며 졸라대네
쌀말이나 퍼내야 설쉘 것인데
쌀독에 쌀은 얼마나 있는지
큰일에 쓰고 나면 봄 양식이 모자랄 것인데
어멈은 이 시할미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뭔 말을 하면 참견한다 싫어 할 것이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둘까
밭떼기 하고 논 마지기나 부쳐 먹던 것
초하루 지나 보름이면 또 얻어야 할 것인데
아범은 그 논 마지기를 더 부쳐 먹을 것인지
하루 한 달 다른 몸 눈 쌓여 못 나가니
끼고 앉은 화롯불만 식어 가는구나
12월 / 최대희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당신에게 주기로 한 사랑
너무 아꼈습니다
용서하세요
바빴다는 건 핑계일 뿐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게으름을
반성합니다
새로 도착할 새해는
당신을 위해 쓰겠습니다
마치 장독대 위
소복이 쌓인 눈처럼
맑고 정갈한 사랑을
동짓달 기나긴 밤을 / 황진이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바밍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여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에 관한 시모음<2> [겨울 시] [12월 시] [십이월 시] (2) 2022.12.08 겨울에 관한 시모음<1> [겨울 시] (4) 2022.12.08 12월에 관한 시모음<5> [12월 시] (2) 2022.12.08 대설(大雪)에 관한 시모음<2> [24 절기 시] [대설(大雪) 시] (1) 2022.12.07 대설(大雪)에 관한 시모음<1> [대설(大雪) 시] [24 절기 시] (1)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