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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 관한 시모음<2> [겨울 시] [12월 시] [십이월 시]
    시모음 2022. 12. 8. 18:55

    겨울에 관한 시모음<2> [12월 시] [십이월 시]

     

     

    겨울 여행 / 용혜원

     

    새벽 공기가

    코끝을 싸늘하게 만든다

     

    달리는 열차의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들판은

    밤새 내린 서리에 감기가 들었는지

    내 몸까지 들썩거린다

     

    스쳐 지나가는 어느 마을

    어느 집 감나무 가지 끝에는

    감 하나 남아 오돌오돌 떨고 있다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삶 속에 떠나는 여행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홀로 느껴보는 즐거움이

    온몸을 적셔온다.

     

     

    겨울 끝에서 / 오광수

     

    겨울에 쓴 일기에는

    날짜가 없습니다.

    행여나 기다림이 지질까 봐

    날짜를 좇어버렸습니다.

     

    말라있는 시린 가슴이라도

    한숨 한 줌이 꼭 필요할때

    눈물은 눈 앞에서소리를 잊고

    손톱은 입 안에다 감추고 살았습니다.

     

    발에 밟혀 뒹구는 여린 언어들의 비명이

    겨울 길에서 하얗게 얼어가는 날

    햇볕이 조금 더 가까이 온 둑방길에 앉아

    그래도 가슴은 뛰고 있나 만져 봅니다

     

     

    겨울 담쟁이 / 최영희

     

    봄날에 지녔던 푸르던 꿈과 소망

    길을 가다

    담장에 달라붙은 겨울 담쟁이 앞에 발을 멈춘다

    내가 살아온 길만큼

    담쟁이 살아 낸 길도 복잡하다

    생각에 잠긴다

    볕을 따라 오르다

    밤에는 달을 보고 별을 보고

    앞만 보고 살아 냈을

    핏기 마른 가슴, 연민으로

    코끝이 싸아-하다

     

    부서지는 겨울 햇살

    빨랫줄에 삶아 빤 옷가지를 털어 넌다

    내 낡은 팬티가 햇살에 웃고 있다

    담벼락에 매달린

    마른 담쟁이, 그 싸아-한

    느낌으로…

     

     

    겨울에 읽는 하얀 편지 / 오광수

     

    당신을 향해 기도하고 잠이 든 시간

    밤새도록 당신이 써 보낸

    하얀 편지가 하늘에서

    왔습니다.

     

    잠 든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걸음 소리도 내지않고

    조용히 조용히 그렇게 왔습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큰지 온 세상을 덮으며

    "사랑해!"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당신도 내가

    그립답니다.

    당신도 내가 보고 싶답니다.

    당신도 내가 너무 너무 기다려 진답니다.

     

    새 날을 맞이하며 창을 여는

    순간부터

    한참을 일하는 분주한 낮시간에도

    당신은 언제나 나를 생각한답니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 눈물 방울져 떨어지면

    닿는 곳 점 점이 쉼표가 되어

    쉬어가면서 읽고 또 읽습니다.

     

    넘어져 하얀 편지속에 폭

    안기면

    당신은 나를 더욱 꼬옥 안고

    "많이 사랑해!" 하는 느낌이 옵니다.

     

    하얀 편지를 읽는 이 행복한 시간.

    마음속에서 피어난 하얀 입김으로

    "나도 당신을 많이 사랑합니다."

     

     

    겨울여행이 남긴 스케치 / 오광수

     

    모과나무 서 있는 마당 한쪽

    이젠 더 갈 곳 없는

    가을 사연 몇 장이

    모질게 따라오는

    찬바람을 피해

    하얗게 몸을 숨기며

    퇴색의 잠자리에 들고 있다

     

    널어놓은 빨래들은

    북어같이

    흔들거리고

    며느리가 많이 떨었던 모양.

    소죽 삶는 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다

    이 집 어른 마실 갔다오기 전에

     

    저걸 걷어야 할 텐데......

     

    잠깐 따스함에 마당에 떨어진

    뒹굴고 있는 고드름 몇 조각 위로

    넘어가는 햇볕이

    마지막 빛을 뿌리고

    곧 불어올 차가운 눈바람만 믿고

    아직 달려있는 추녀 끝의 몇 놈은

    의기양양 뾰쪽한 날을

    세운다

     

    지붕 위로 흰 연기 뭉실

    동네에는 밥 냄새로 가득한데

    "손님. 방이 따시남유?"

    호롱불 피워오는 주인의

    목소리에

    객 앞으로 달려오던

    산골 땅거미가 마루 밑으로 들어간다

     

     

    겨울 이야기 / 최영희

     

    돌아앉은

    도시의 숲에선

    새들이,

    가난한 새들이 울고 있다

     

    허름한 골목

    군고구마 장수의 드럼통 속에선

    하루 분의 불꽃,

    타는 불꽃이

    얼음 새 되어

    작은 굴뚝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새는, 새는

    낮은 산 구름이 되고

     

    비탈져 오르던 언덕배기

    그곳엔, 먼 옛날

    우리들의 이야기

    눈이 되어 하얀 눈이 되어

    지금도 가난한 우리들의 지붕 위에

    하얀,

    이야기로 내린다

    가난했던 우리들의

    긴,

    겨울 이야기

     

    화롯불 다독이며

    옛 이야기 들려 주시던

    할아버지,

    그리워지는 날

    어찌 또, 눈은 저리도,

    저리도 오는가

    눈은,,,

     

    초겨울 엽서 / 홍해리

     

    토요일엔 하루 종일 기다리고

    일요일은 혹시나 하지만

    온종일 소식도 없고,

    바람에 슬리는 낙엽, 낙엽,

    나겹나겹 낮은 마당귀에서 울고 있다

    내 마음 앞자락까지

    엽서처럼 와서

    그리움만 목젖까지 젖어

    네가 눈가에 맴돌고 있지만

    성긴 날개로는 네게 갈 수 없어

    마음만, 마음만 저리고 아픈 날

    솟대 하나 하늘 높이 세우자

    뒤뚱대는 여린 날갯짓으로

    네가 날아와 기러기 되어 앉는다

    비인 가슴으로

    나도 기러기 되어

    네 곁에 앉는다.

     

     

    겨울 안부 / 반기룡

     

    쨍쨍쨍

    깨질듯한 얼음판에서

     

    물귀신이 두렵지 않던

    시절이 아슴아슴

    뇌리속으로 다가오는구나

     

    겨울이면 얼음지치기로

    한나절 몽땅 소모해버리던

     

    동심의 시절이

    목구멍에 걸려

    사레를 할 듯 하구나

     

    콧잔등에서

    피가 주르르 흐르며

    핏멍울이 온몸을 칭칭 감고

     

    며칠 끙끙

    소리를 이끌며 학교가던

    모습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구나

     

    이젠 지난

    추억의 길 모퉁이에서 그 시절을

    반추하며 겨울 안부를 묻는다

     

    그 때 흉터는 아직도 건재한지

    아니면 수술 자국만 희미하게 남아

     

    지난 시절 불러

    가끔 희희덕거리지는 않는지

     

    겨울이 가기전

    우체통에 겨울 안부

    한 무더기 푹 찌르고 가려무나 !

     

     

    겨울나무에게 / 권달웅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귀를 자르겠다.

    사나운 바람을

    듣지 못하도록,

    눈이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혀를 자르겠다.

    모진 추위를

    말하지 못하도록,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차단하겠다.

    고통받고 살아가는

    들어도 침묵하고 살아가는

    추운 세상을

    네가 알지 못하도록,

     

     

    겨울나무 / 정연복

     

    나무도 엄연히

    살아 있는 목숨인데

     

    겨울 추위가

    어찌 고통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인내심으로

    버티는 거지.

     

    쌓인 폭설에

    덩치가 큰 나무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걸 보면

     

    나무라고 해서

    천하무적은 아니지.

     

    긴긴 겨울

    모진 북풍한설

     

    온 힘을 다해

    눈물겹게 견디면서

     

    새봄의 연초록 새순을

    몸 속에 기르는 거지

     

     

    겨울로 가는 바닷가에서 / 오광수

     

    꿈같은 사랑의 미련 때문에

    하얗게 진이

    다하도록

    파도가 발버둥을 치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까맣게 흔적이 없는 늪에 앉아

    푸념조차 퇴색해버린

    몽돌을 붙잡고

    묻고 또 물으며

    지난 계절의 흔적을 뒤져봐도

     

    당신이 내게 한 황홀한 고백이,

    내가 당신에게 속삭이던

    밀어가

    까만 젖꼭지 같은 잔돌이 되어

    이제는 좌르르 다른 소리를 내는데

     

    아침에 보이던 환한 얼굴은 어디 가고

    머리칼로 물기 가득 뿌리면서

    잔뜩 몰려온 바다 안개들이

    날름날름 그 소리마저도 삼켜버린다.

     

     

    겨울편지 / 반기룡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남해 바닷가

    그리움의 열병이 마구 망치질 하면

    더욱 달려 가고픈 마음의 고향

     

    오늘 문득 그곳을 생각하며

    그대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너무 소식 전한지 오래되어

    손은 굳었지만 마음만은

    용암처럼 펄펄 끓어 오르지요

     

    올 들어 처음 써보는 편지이기에

    맞춤법도 사랑스런 단어도

    삼삼하게 피어오르진 않지만

    그대 향한 그리움은

    쨍쨍 깨지는 얼음처럼 바삭거려요

     

    함께했던 추억의 그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그리움이 뭉글몽글 피어오르네요

     

    겨울의 초입에서 쓰는 이 편지는

    그대에게 바치는 나의 전부랍니다

     

     

    겨울일기(함박눈) / 목필균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은 온통 은빛 속에 있습니다

     

    깃털로 내려앉은 하얀 세상

    먼 하늘 전설을 물고

    하염없이 눈이 내립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과

    따끈한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다면

    예쁜 추억 다 꺼내질 것 같습니다

     

    하얀 눈 속에 돋아난 기억 위로

    다시 수북히 눈 쌓이면

    다시 길을 내며 나눌 이야기들

     

    오늘 같은 날에는

    가슴으로 녹아드는 눈 맞으며

    보고싶은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하얀 겨울의 노래 / 오광수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어 좋습니다.

    하얀 눈꽃이 조용히 내리면

    매섭게 설치던 찬바람도

    아침에 보이던 산새들도

    덩달아 가만히 숲으로 와서

    사락 사락 노래를 들으며 쉬다 갑니다.

     

    겨울에는 하얀 노래가 더 좋습니다.

    두 손을 입에다 호호 모으고

    가만히 혼자서 부르면

    하얀 입김으로 피어올라

    처마 끝 고드름 녹는 소리와

    살랑살랑 박자를 맞추며 날아갑니다.

     

     

    겨울 가로등 / 목필균

     

    때로는 지켜보는 사랑도 가슴 저밀 때가 있다.

    마주 향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겨울 밤 맨발로 서서 남의 발등을 비추는 가로등.

    밤안개에 번지는 그 불빛이 더욱 슬퍼질 때가 있다.

    영원히 시들지 않은 종이꽃 처럼, 시들지 않았어도 품을 수 없는 그 사랑의 향기. 

    그 질긴 목숨만큼 길게 아파서 지켜보는 눈도 젖어든다.

     

     

    겨울산에서 / 정석권

     

    겨울 산

    마른 나무들

    행복하다

     

    버릴 수 있는 것

    모두 버렸으므로

     

    메마른 나무들

    의연히 서 있는

    겨울 산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눈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눈앞에서 세상이

    바뀌고 있으므로

     

     

    겨울산 / 김완하

     

    얼음 계곡을 가슴에 품고

    불덩이 하나 뜨겁게 삼킨 산,

    침묵하고 침묵하는 저 산자락이

    잡목들 싸리나무 함께 기르는

    저 넉넉한 모성의 산자락이

    이렇게도 나무들 발가벗겨

    혹독한 바람 앞에 몰아세우다니

    그 뿌리를 얼음에 파묻다니

    기어이 차고 올라가 하늘 한 자락

    저토록 선명하게 자를 수 있다니

     

    하늘과 닿은 저 분명한 산자락.

     

     

    겨울산 / 정일근

     

    첫눈 맞고 있는 겨울산을 보면

    흰털 세운 한 마리 산짐승 같으니

    부드럽게 웅크린 등줄기나

    가슴께로 바짝 당겨놓은 살진 허벅지

    이놈아, 하고 톡톡 치면

    웅크렸던 몸 기지개 한 번 펴고는

    산길 따라 세차게 달려갈 것 같으니

    이 땅 어느 산을 올라도

    모든 길은 백두에 닿는다는

    백두대간의 큰 꿈을 아는가

    첫눈 내리는 날 한반도 모든 산줄기들

    흰털 하얗게 곧추세워

    하얀 능선 위를 달려가고 있으니

    그놈의 등에 덥석 올라타는 꿈이여

    겨울산과 한 몸의 날렵한 산짐승 되어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튼튼한 등뼈를 밟고

    한걸음에 달려가는 즐거움 꿈이여.

     

     

    겨울산 / 정연복

     

    산은

    늘 말이 없지만

     

    겨울산은

    더욱 고요하다

     

    저 큰 몸집으로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도

     

    제 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양

     

    있는 듯 없는 듯

    영원을 살아가는

     

    온몸이 너른 가슴이고

    다소곳한 귀일 뿐

     

    말없는 산

     

     

    겨울 채비 / 정하선

     

    바람은 차고 아침 서리 매서워져

    텃밭 무 걷이를 했습니다.

    어떤 것은 아내의 매끈한 종아리 같고

    어떤 것은 큰아이 장딴지처럼 굵고

    옛적 나의 젊은 아버지가 하던 방식으로

    무릎팍 길이만큼 땅을 파고 묻습니다

    그늘에 앉아 아내와 무청도 엮습니다

    한겨울 눈이 폭폭 내려 쌓이면

    시래기 무청과 땅에 묻어둔 무를 꺼내

    서억-썩 썰어 넣고

    아직 도축장 도장이 파랗게 찍혀

    돗바늘 같은 털이 숭숭 남아 있는

    돼지고기 한 근 썰어 넣고

    청국장을 끓여내면

    먼 데서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개 짖는 소리도 컹컹 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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