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2> [폭설시모음] [함박눈 시모음]시모음 2022. 12. 13. 17:46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2>
폭설주의보 / 서재남
눈이 온다는데
와도 엄청나게 많이 온다고
기상대가 그러는데
어쩌고 있는가 몰라
그 까짓 거 라면박스 보다 못한
콘테이너 지붕 안 무너질라나 몰라
집이고 전답이고
마을을 죄다 휩쓸어 못쓰게 만들고
집채만한 바윗덩이 굴려다
마당 한가운데 처박아 놓고
유유자적 내빼던 지난 여름 그
징하고 징한 놈의 큰물
그 무서운 놈의 물
다시 그 자리에 터 다듬어
얼기설기 뼈대 세우고 지붕이나 얽었을 뿐
사람 들어가 살 집 되려면
미장해야지 장판 깔아야지 도배해야지
어쩌든지 이 겨울이나 무사히 나야지
빈한한 살림살이
부엌 구석에 쌓아 놓고 내려와
늙은 몸뚱이보다 부실한 콘테이너
문짝 밀치고 들어서면
밤짐승처럼 훅 달겨드는 냉기
어서 날 풀려야 살겠다
그런데, 또 눈이 온다네
저 번 보다도 더 많이 온다네
그, 사람 못 살 산간 오지에
해마다 오는 눈이건만
물이라면 이가 갈릴 터
흐르는 물만 무서운가
눈사태는 면해 다행히 무사하다손 쳐도
한 열흘 고립되어 버리면...
구호품으로 받은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살 텐데
전주(電柱)라도 넘어져 버리면...
두 내외 지금 어쩌고 있는지
함박눈이 내린다 / 임영준
우리의 겨울 밤
벽난로 곁에 도란도란
진한 커피 향
찬란한 추억의 창으로
함박눈이 내린다
그리움은 하얀 꿈으로
반가운 손님으로
심혼을 흔들고 가지만
둥지를 틀지 못한
애타는 옛이야기 틈으로
한결같이 오붓한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댓잎들의 폭설 / 전동균
눈 쌓인 금장리 참대밭
휘어져, 한껏
휘어져
마치 이 세상 밖으로 탈주할 것 같은
저 팽팽한 떨림 속에
휙,
새 한 마리 지나가자
순간, 있는 힘 다해
눈을 터는 댓잎들,
제 몸을 때리며
시퍼렇게 멍든 제 몸을
제가 때리며
참회하듯 눈을 터는 댓잎들은
어찌 저리 맑은 빛을 내뿜는지
어찌 저리 곧은 생을 부르는지
속수무책, 나는
갈 곳 없는 죄인인데,
대밭집 곰보노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산으로 간다
어린 손주 약 해준다며
덫 놓으러
폭설 2 / 김정희
저것 좀 봐
지금
무량(無量)의 혼령들이 오고 있어
버선발로
적막강산을 건너는 중이야
눈 속에서 가만히 눈을 열어 봐
수만 겹의 고요가
허공을 밟으며
나를 밟으며
오지
저 아득한
눈 먼
행렬
폭설 / 송연우
질서를 모르는 반란군
정이품송 가지를 부러뜨린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바리케이드를 친다
딸기 상추를 심은 비닐하우스에도 달려간다
지붕을 무너뜨리는 저 힘도
알고 보면 물이다
2004년 3월5일
백년만에 내리는 봄눈
백년 동안 묶여있던 포로들
저 속에서
눈사람이 나온다
나뭇가지로 골격을 세우고
하얀 얼굴 검고 큰 눈의 옛 소년 뒤뜰에 세운다
구름 사이로 나온 햇살
햇빛화살을 쏘아낸다
저 거대한 힘
단단한 힘이 무너진다
폭설 / 김은숙
첫눈은 무장 무장* 쌓여서
빈 들녘은 그대 이름으로 숨죽인다
무장 무장 또 흩날리는 저 춤들 뜨거운데
열리지 않는 길들은 가로눕는다
* 무장: 갈수록 더.
함박눈이 내릴 때 / 백승학
살다 보면 바람마저
얼어붙고 곱던 햇살들도
어느 먼 곳에만 머물러서
실날같은 가슴으로는
숨죽여 울 수 조차 없는 날이 많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립던 사람아
그날 그렇게 숨죽여 울지도 못하다가
곱은 손가락으로 생채기 난 꿈들을
온 종일 꿰매다가
어두워지는 골목 저 끝에 구부정한 어깨로 걸어나가
추억도
사랑도
눈물도 얼어붙은 하늘에 대고
뭐라고 하셨길래
만 길 허공 저 끝에서부터 얼어붙은
길들을 녹이며
지나온 생애인 듯 멀고 먼 시선위로
오늘
함박눈이 내립니까
함박눈은
말 안해도 다 안다는 듯이
이토록 포근합니까
함박눈이 내리는데 / 임영준
닫혀있는 겨울이
하얗게 열리고 있네요
땅거미에 짓눌린 여명을
어루만져주고 있네요
아직도 천상의 기대가 남아
구원의 손길이 되는데
참회의 주단을 펼치는데
마을은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가 웅크리고 있네요
눈감고 귀 막고 숨죽이고 있네요
그래도 해맑은 아이들과
갈수록 선명해지는 그리움과
지순한 초목들은 반기고 있네요
폭설 / 권경업
어제와 내일로
이어지는 능선길
장막을 가리듯
함박눈 푸슬푸슬 퍼붓는 날
때늦은 라디오의 폭설주의보
조난자 명단에 내가 끼이고
멈추지 않는 눈보라
하루 이틀 사흘
꿈길로만 길이 열려
움트는 봄언덕, 찌르레기 소리
젖은 침낭 안에서 들린다
함박눈의 약속 / 김남기
흰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거리를
하얀 세상으로 만들고
희망을 선물하며
소복이 내리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희망이 넘치는 세상
삶의 안전이
위협 받지 않는 평화를
약속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억압이 일상화되지 않고
가진 자들을 대변하지 않고
대다수 약자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흰 눈이 우리 가슴을
깨끗하고 맑게 만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희망이 넘치는 세상을 위해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다
폭설 / 오보영
제아무리
겉모습이 좋아보여도
불편하게 하면은
외면한단다
제 아무리
하얀 속내 보여주어도
가는 길 막아서면
돌아선단다
폭설 / 김현태
덮어진 세상
차 위에
건물 위에
하늘꽃천사가 불시착합니다
그대에게 갈 수 있는 길조차
길을 잃고
하늘과 땅의 경계도 모호해 집니다
추락하는 꽃들이 쌓이기까지
자그마한 고것들이
스크럼 짜고
차가운 맨 땅에 먼저 누웠을 것을 생각하니
내 사랑 너무나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귀밑머리에 흰머리가
필 때쯤에야
내 사랑도 그대 가슴에 쌓여가련지
그대 생각하며 바라 본
덮어진 세상, 제법 늙었습니다
함박꽃, 함박눈 / 권경업
어느 핸가, 무제치기 위
내 깍지 무릎 위
네 귓볼 내음의 함박눈
한도 없이 쏟아졌다
늦유월이 하얗도록 쏟아졌다
올해는, 그대 없어
신갈나무 알몸이나 덮으라며
함박꽃송이
웬 삼동(三冬)에, 펑펑
이리도 쏟아졌다폭설 / 진영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당가 샘터, 시멘트바닥에
물 한 바가지를 뿌리고
털이 빠지지 않게 솔솔 불어가며
배를 갈라 나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활짝 열어둔 내장 속으로
눈발이 날아들면 깜짝깜짝 놀라
다리를 오그렸다.
눈 속에 푹푹 삽을 지르고
내장을 들어붓고 나자
눈발이 더욱 거세어졌다.
폭설이었다.
눈 속에 빠진 발을 빼내는데
문득, 등뒤에 서 있는 배나무
내 목을 움켜잡을 것 같다.
발자국을 따라 산밑까지 내려온 나무들이
갑자기 발자국을 잃어버리고 어리둥절
무릎까지 차 오른 눈 속에서
발목을 빼내지 못하고 눈 속에 서 있었다.까만 폭설 속을 / 김금용
눈발은 늘 따뜻하려니 했어요
오후 세 시의 하늘이 폭설로 새까맣게
덮히는 건 마법의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새해 새 날 한가운데서
종로 2가 한복판에서
눈보라 그 쏟아지는 분노 속에서
길 잃고 차량들 뒤엉키는 혼돈 속에서
내 길의 절망을 보고 말았지만
붙잡아 일으키는 손길은 없었어요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울리지 않고
다 어디로 간걸까요
사랑하는 이들은 어디서 몸을 숨기고
지붕 낮은 처마 밑으로
미처 고드름 되지 못하고 흘러 떨어지는
슬픔의 바다
킬킬거리며 도깨비춤 추는 걸까요
발밑에서 미끄러지는 약속을
내 안의 부정으로부터 되잡아 일으키며
까만 폭설 속을 계속 걸어가야 할까요
다시 햇살 나오고
풍성한 설국 하얗게 열릴 거라고
아직 따뜻한 내 가슴 안에 품고 걸어가야 할까요폭설 / 박가월
내가 찾아간 발자국도
폭설에 묻혀버린 인멸의 길이다
너를 적막강산에 두고 찾지 않았다고
야속하다 곱씹으며 원망하겠지
너를 찾다 네 아버지 고견을 듣고
아픈 너의 산사 앞에 서성인 내 마음에
눈물도 고드름으로 굳었다
눈이 녹는 삼월이면 산사 앞뜰에
석설石雪이 된 발자국을 보고
내가 산사를 돌고 돌았다는 것을 알리라
그땐 나는 이미 심경은 정리되고
네가 알지 못한 외딴 섬에서
녹아버린 눈처럼 그리움조차 지웠으리.
폭설 / 진태숙
1
일천 삼백 년 전 물고기자리별 나의 전생이 수미산 황금천에서 유영을 즐기다 잠잘 적에도 떠 있던 눈을 감아야 뜨는 거라는, 알 수 없는 화두의 찌를 건드려 지느러미 뼈 부레 금빛 비늘까지 썩썩 훑어내린 전생록을 읽었다.
2
감은사 풍탁에 매달린 금물고기를 보고 오는 날, 비늘 같은 눈이 떼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이 다 지워져 버렸다. 길을 읽지 못해 눈을 버리고 걸음을 버리고 발자국도 버리고 길마저 버리고 버림받으면서 금물고기의 눈을 닮은 별을 생각했다. 쨍쨍쨍 눈을 감고 울고 있던 풍탁을 떠올렸다.
3
감은사 동탑 금동사리함 전각에 매달린 서기 7세기 금물고기 위로 풍탁소리 같은 눈이 오는 날, 젖은 나의 몸에서 씻겨지는 물비린내 소리를 듣는다. 내 몸이 가볍게 날린다.
<55>
함박 눈 / 허정자
펑펑 솥아 진다
거리는 어두웠지만
가로등 불빛아래
춤을 추듯 내린다
우산을 마주잡은 손
동영상의 한 폭
합창하듯 웃는 소리
발자국 따라간다
신작로로 자동차 불빛
하늘의 수채화 그린다
곱고 아름답다
놀라운 신의 창조
함박눈에 취해 버린 밤길 / 권동기
미칠 듯이 눈이 내립니다.
까무라칠 듯이 눈보라가 휘날립니다.
사무실 창문틈으로 날아든
눈송이는 삭막한 편집실에 대한 반항으로
희디 흰 꽃송이로 만개합니다.
창밖의 눈보라는 마천루를 삼킬 듯이 내립니다.
함성으로 이어진 퇴근의 문꼬리는 터지고
선두지휘 하나 없음에도 포장마차에 걸터앉아
신들린 듯이 소주잔을 부딪칩니다.
가로등이 흰천을 두루고 기쁨에 찬
하이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립니다.
일심된 남녀직원들의 볼마다 홍조빛에 그을린 듯
술잔 돌아가는 순간에도 함박눈이 뜨겁게 내립니다.
거리마다 신음소리에 꾸벅이는 자동차 바퀴마다
흰 비단결은 무참히 짓밟히고 이저리 튕겨도
술잔속의 메아리는 꺼질줄을 모릅니다.
함박눈에 취해버린 밤길에는
네온사인도 한몫되어 춤을 춥니다.
늘어 선 포장마차에는 인파들로 북적대며
쏟아지는 눈보라에 환호성을 터뜨립니다.
미칠 듯이 눈이 내립니다.
눈이 내립니다.
<50>
폭설(暴雪) / 윤성택
눈은 도시를 배회하다가 어느 불 꺼진 창문 앞에서
주르륵 흘러내린다, 같은 영화를
또 볼 수 있는 사람은 영화가 그에게서
살아 본 적 있어서가 아닐까
사람이 그리울 때는 눈발이 가로등 불빛을
아득히 어루만지는 새벽이다, 느낌은
훗날 어느 날을 꺼내와 잠시
여기에 나부끼는 것이다
추위는 몇 겹 추억으로 번들거리는
빙점에서 어두워진다, 이 겨울이
내게 와서 그렇게 끓는다
손이 따뜻한 이는 서늘해지는 자신에게 한 번쯤 울어본 적 있는 사람
카메라를 쥐고 있는 이는 제 시력을 천천히 순간으로 잃어가는 사람
시를 쓰는 이는 단 한 번 만난 자신에게 고요히 늙어버린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으로 사랑하는 밤,
한 사람이 밤새 걸어가듯
이 겨울이 내게 와서 상영되는 것이어서
오늘 밤 그 사람에게 눈이 내리는 것이다
<51>
대설 주의보 속을 걸으며 / 김길남
서울에 눈이 펑펑 쏟아 집니다
기상 관측을 새로 시작한 1937년 이후 최고의 기록으로
서울에 25.8cm라는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오랫 만에 옛날의 생각이 떠 오릅니다
20여년전 요맘때의 일입니다
나랑 친구는 지리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화엄사를 지나 오르고 있을 때 라듸오 에서는
지리산 일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코재 근처에 다달으니 제법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노고단 근처에 이르니 어두어둑 밤이 찾아 옵니다
이 곳에서 옛 날 선교사들의 별장터로 옮겨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관리사무소에 들르면 폭설에 입산통제라고 가던 길을
막을 것이 분명하여 그 곳을 모른 체 통과하여 임걸령을 지나고
삼도봉, 연하천을 지나 벽소령 근처를 지나는데
앞서 간 발자욱들은 하나도 없고 쌓인 눈은 허벅지까지 찹니다
선비샘에 이르러 눈 쌓인 산행이 이리 힘 듦을 느낍니다
산행을 접고 판쵸우의를 큰 나무들을 지탱하여
비박 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밤새 소록소록 눈이 계속 옵니다 조금씩 두려움이 왔습니다
기인 밤이 가고 하얀 눈 속에서도 칠흑같은 여명이 옵니다
장비들을 다시 챙기고 출발을 서두릅니다
덕평봉을 오르는데 셀 수 없는 설벽에서의 추락으로 땀이 비오 듯 합니다
세석평전에 올라 두껍게 쌓인 적설량으로 천왕봉으로의 진군을 포기 합니다
동남쪽 거림마을과 길상사를 향해 하산길을 재촉합니다
눈 길을 걸을 수 없어 설영(눈 수영)을 합니다
내리막 길이라 파 묻히지 않고 서서히 잘 도 내려 갑니다
길상사 부근에 도착하여 평온을 회복합니다
입었던 옷들이 물 속에 빠졌다 나온 듯 물쩍 거립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억척스러운 모험(?) 산행으로
그 옛 그 곳을 같이 오르던 그 친구는 지금 내 곁에 없습니다
오늘 눈이 퍼엉 펑 쏟아지고 있는 북한산 길을 오르면서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을 뱉아 그려 봅니다
<52>
폭설 / 김서곤金瑞坤
구름도 흐느끼는 운두령 깊은 밤에
흰 치마 펄럭이니 동백꽃 지려는가
월광도 시름에 젖어 고개 돌려 우는구나.
바람도 자고 가는 한 많은 고갯마루
임 오실 춘삼월은 쉬 넘어 찾아올까
영산홍 꽃잎 따다가 병풍 세워 두려한다.
<53>
함박눈 오는 날엔 정동진행 기차를 탄다 / 김흥기
함박눈 오는 날엔
정동진행 기차를 탄다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가
함박눈처럼 부를 때
그곳으로 가야한다
소나무 침엽 사이로
모래틈 사이사이로
내 그리움처럼 쌓일 때
정동진 역사 낡은 창가에서
함박눈 나리는 저녁 플랫폼 바라보면
흑백필름처럼 아련한 나레티지(naratage)
잊었던 추억이 눈물로 흐리기 전에
막기차가 영화처럼 떠나기 전에
우리는 약속처럼 가야한다
함박눈 오는 정동진역으로.
<54>
<39>
함박눈 / 정형균
함박눈 송이송이
앙상한 가지 하얀 꽃 피어
삭풍에 부러진 가지 썰렁한 잎
고개 숙인 벚나무
하얗게 물들인 이월
숨죽여 기다리는 사랑이어라
길가 은행나무 설화 피고
보름달 한눈에 들어와
공원에 살포시 펼쳐있노라
눈꽃향연
길가 맑은 물 얼어
숨결은 끊이지 않고 졸졸 흐른다.
<40>
폭설(暴雪) / 홍윤표
소나무는 올곧은 소나무보다
찔레같은 소나무가 손타지 않고
자연 값을 받는다(노송이라 할까)
나무 속으로 살 속으로 끼어 드는 바람
어제는 쉰해 만에 바위가 얼고 산이 얼었다는
사나운 폭설이란 말이 분분하다
도로가 막히고 인도가 막히고
사람들은 만날 길이 없어 제자리서
오줌만 누웠다
죄지은 듯 살 속까지 삽입하는
바람 때문에 바다에선 섬을 위해
기도를 하고 큰절도 했다
시시(時時)로 무거워지는 자연의 원리
가지마다 짐을 지고 천길을 걸어야 하는
밤은 소나무를 용서치 못했다
사납게 내치고 허리까지 동강내 버린
천지의 사나움 곳곳곳
태초에도 사나운 존재였을까 아니다
그저 유순하게 내숭떨며
우주만 걸었을 게다
<41>
큰 눈 내리는 날 / 곽재구
한때
나는 눈이
사이비 혁명이 숨결을
닮았노라 생각했었다
긴긴 사랑의
한숨소리도 아니고
마디마디 뼈 시린
고통의 눈빛도 아니고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빛나는
백합의 골짜기는 더더욱 아니고
그럭저럭
상심한 강물을 따라 흐르다
상심한 강물 속에 저문 육신을 눕히는
하, 이 세상의
하찮은 그리움의 부스럼딱지
이거니 했다
그러했거니
동무여
오늘밤은 네가 관장하는
이 세상 넓은 과수원 위에
이 세상 사람들이 채 알지 못하는
그리운 과일들의 이름을
새록새록 새겨다오
더 따뜻하게
더 순수하게
더 믿음직하게
온 세상을 뒤덮는
새하얀 약속의 불기둥을 보여다오.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4> [폭설 시] [눈 시] (1) 2022.12.13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3>[폭설 시모음] [함박눈 시모음] (1) 2022.12.13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1>[폭설 시] [함박눈 시] (0) 2022.12.13 겨울에 관한 시모음<2> [겨울 시] [12월 시] [십이월 시] (2) 2022.12.08 겨울에 관한 시모음<1> [겨울 시] (4)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