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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1>[폭설 시] [함박눈 시]
    시모음 2022. 12. 13. 17:37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1>

     

     

    대설(大雪) / 안도현

     

    상사화 구근을 몇 얻어다가 담 밑에 묻고 난 다음날,

    눈이 내린다

     

    그리하여 내 두근거림은 더 커졌다

     

    꽃대가 뿌리 속에 숨어서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어도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뜨거워졌다

     

    몸살 앓는 머리맡에 눈은

    겹겹으로, 내려, 쌓인다

     

     

    폭설2 / 권오범

     

    변방으로 떠돌던 서름한 성깔끼리 우연히 만나

    잠시 못마땅했을 테지만

    피할 수 없어 서로 끌어안고

    잠시 몸 좀 풀었을 것을

     

    차들에겐 기압골 오르가슴 분미물은 치명적이라서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한 채

    만취한 듯

    사지가 뒤틀려 비틀비틀

     

    철석같이 믿었던 지하철마저 덩달아 정신 나가

    이 처참한 북새통을 어쩌라고

    더러더러 손 놓고 하는 말

    바쁘면 다른 방편을 찾아보란다

     

    하늘의 낌새를 감시하며 녹을 먹는 사람들은

    오십 년만의 한풀이 사랑이라고 했다가

    백 년만의 급습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책임을 애매모호하게 희석해버린 하얀 세상

     

     

    눈보라 친다 / 홍해리 

     

    이제는, 우리 다

    끊어 버리라고

    쏟아 버리라고

    털어 버리라고

    씻어 버리라고 

     

    이제는, 우리 다

    풀어 버리라고

    벗어 버리라고

    던져 버리라고

    쓸어 버리라고 

     

    이제는, 우리다

    주어 버리라고

    잊어 버리라고

    울어 버리라고

    웃어 버리라고 

    눈이 내린다

    눈보라 친다.

     


    함박눈 / 최범서 

     

    이 세상

    마음 아름다운 이들 

    하늘나라 나들이

    떠났다가 

    하늘나라 희소식

    전하려고 

    선녀의 날개옷

    빌려 입고 

    흰나비 떼 되어

    춤추며 내려오는 

    함박눈 

     

    함박눈이 내리면 / 권경희

     

    밤새 내린 함박눈으로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나목들은

    차오르는 햇살에 눈이 부시고

     

    창 너머 윤슬처럼 빛나는 설원으로

    꼬깃꼬깃 접어둔 유년의 추억들은

    비밀 서랍 안에서 뛰쳐나와 봉싯거린다

     

    동산 위에 함박꽃을 피운 소나무

    순백의 꽃가루를 산산히 흩날릴 제

    동네 아이들은 동심원으로 뒹굴고

    맑은 웃음소리 산새에 메아리쳤다

     

    마을 앞 실개천 돌 틈 사이로

    맑디맑은 동요가 흐르고

    소복이 쌓인 징검다리 오르며

    시린 발 동동 구르던 까밋한 아이들은

    어디 별 아래서 함박꽃을 피울까

     

     

    함박눈이 내렸네 / 김귀녀

     

    눈이 오지 않는다고

    어젯밤

    투덜대며 깊은 잠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함박눈이 내렸네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던

    순결했던 하얀 마음

    창밖 앙상한 벚나무 가지사이

    소복이 내렸네

     

    아무도 탐 낼 수 없었던

    새하얀 슬픔

    바람 결 따라

    이리저리 흩날린 몸부림 흔적

    오롯이 남았네

     

    천천히, 하얀 길에

    살금살금

    설레는 발자국 살며시 남기며

    회색 눈발 사이로

    조심스레 다가올

    그리운 님 기다린다

     

     

    함박눈 내리는 날 / 김덕성
     
    나그네 같은 생애
    솜처럼 보드러운 함박눈에서
    하얀 마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파란 솔잎위에 핀 하이얀 눈꽃에서
    새로운 꿈을 얻었습니다
     
    비록 향은 없고
    아쉬울 만큼 생은 길지 않지만
    혼신을 다해 임에게 바친 눈길에서
    성스러운 사랑을 배웠습니다
     
    고독으로 잠든 영혼
    비실비실 나약해 진 생애
    개성을 드러낸 듯싶은 눈사람에게서
    난 산 생명임을 깨닫고
    하이얀 인생을 찾았습니다 

     

     

    함박눈 / 박인걸

    창문을 여니
    나비처럼 날아 내리는 눈이
    아무데나 내려 앉아
    하얀 세상을 만듭니다.

    어머니가 깁던
    카시미론 솜이불 보다
    더 포근한 온기가
    가슴까지 덥혀 옵니다.

    눈을 바라보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은
    그동안 걸어온 길이
    너무 추웠나 봅니다.

    나처럼 추운 사람과
    경치 좋은 찻집에 앉아
    지나온 이야기들을
    오순도순 나누고 싶습니다.

    털장갑을 끼고
    하얀 눈을 흠뻑 맞으며
    목적지 없는 길을 걸어도
    마냥 행복할 것만 같습니다.

     

     

    폭설 / 고은영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을까

    이 시간이면 환해야 할 창에 빛이 실종됐는지 어둡다

    나는 방안에 불을 켜고 창문을 열었다

    잿빛으로 충만한 지상에 온통 눈이다

    , 함박눈이 세상을 지우고 있다

     

    문명의 흔적들이 앙상하게 뼈대만 드러낸 채

    간신히 자기 형태를 지키느라 안간힘이다

    커피를 내리고 향긋한 헤이즐럿에 취한 채

    아침 시간을 내내 창가에 앉아있다

    도심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무지하게 쌓이는 눈을 본 적이 몇 번이던가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금은 노래를 불러라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아무리 폭설이 쌓이고 또 쌓여도

    우리가 살아 있음을

    매몰되는 것들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신음

    나무들은 절명의 노래를 부른다

     

    들어보게나

    이대로 서서

    우리는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추상의 얼굴로

    빙하기를 맞는 끔찍한 주검을 기다리거나

    이 하얀 겨울의 심안에

    발아하는 봄의 내음을 듣기도 하며

    완벽한 삶을 기다릴 때도 있다네

     

    내 영혼의 들창에 새해 벽두부터

    세상을 탈환하는 눈의 함성들이 들려온다

    눈의 무게에 눌린 나무들이 소스라치며

    두텁게 내려앉은 눈덩이들을 후드득 털어내고 있다

    눈은 폭설이 되어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주검은 저 흰 눈처럼 깨끗한 것일까

     

    누군가 빨간 우산을 받쳐들고

    저 폭설의 새벽을 걷고

    활처럼 펼쳐진 상록수 가지에

    철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등장하고

    , 아 도심은 교통이 마비되고

    사람들은 출근길에 매몰된 출구를 찾아

    종종거리며 삶을 타전하고 있다

     

     

    폭설 / 나상국

    하늘이 미쳤나 보다
    지랄병에 염병이라고 하더니
    짝사랑도 모자라 상사병이 깊어
    해가 되는 줄도 모르고
    밴댕이 속까지 몽땅
    며칠 밤낮 가리지 않고
    잠시 쉼도 없이
    다 쏟아 놓는구나
    높은 코를 어루만지더니
    두 개의 봉오리를 지나
    호수 깊숙이
    저러다가 말겠지
    내심 기다려 보아도
    브레이크가 파열되었는지
    지치지도 않는지
    이성을 잃은 것인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게
    하늘이 저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

     

     

    폭설 / 박태강

     

    들에는 하얀 이불
    겨울호수의 부드러운 비단 펄침
    나무엔 눈꽃 피었는데
    그래도 펑펑 소리없이 내린다

    수북히 쌓인 눈앞에
    너무나 작은
    인간의 힘
    보잘것 없어 발을 묶어 버려

    약삭 빠른 사람들
    보잘것 없는 힘으로 가다
    미약한
    인간 한계를 느끼고

    인간이 자랑하는 자동차
    도로 마다 뒤엉켜
    맥없이
    무너지는 작은 힘

    너의 위대함
    가슴으로 파고들어
    미혹한
    인간의 한계 스스로 느끼며

    너의 아름다움
    위대한 위력에
    사람의 보잘것 없음이
    더욱 너를 돋보이게 하네

     


    함박눈 / 최이인

     

    바람 뒤따라 가는 솜털보다 힘없는 것아
    떨어지는 벚꽃 잎보다 더 멋없는 것아

    부지런히 한결같이 끊임없이
    정신 차리고 다가오면

    얼음처럼 차갑게
     부리고 달라들면
     
    온 땅이 새하얗게 네 마음대로 꾸며지는구나
    더럽고 꼴 사나운 것도
    네 이름으로 깨끗이 지워지는구나

    바람 한끝 들이키지 못하면
    한 순간 사라지는 사람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네 예쁜 솜씨에
    몸을 떨고 서 있다.  

     

     

    함박눈 / 강인호

     

    유난히 눈이 많던 어느 해 겨울밤
    눈길을 밟아 다녀간 도둑 있었다
    흰 쌀을 흘리며 달아난 발자국이
    광에서 사립문 밖으로 선명했다
    뒤따라가려는 아버지 말리신 건
    욕심 많다 소문났던 할머니셨다
    고맙게도 밤새도록 함박눈 내려
    그 발자국을 모두 지워버렸었다 

     

    暴雪 / 이진숙

     

    눈송이만한 그리움이라도 남아있는 걸까,

    아슴하게 솟구치는 불빛들이

    가로등을 스치는 눈발에

    발갛게 멍이 든다

     

    길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모든 것이 사라진

    비어있음이 눈부셔

    고개 숙인 채

    나도 하얗게 눈이 된다

     

    어디만큼이나 온 것일까,

    가늠할 수도 없는 포근함이

    서러워

     

    왈칵 눈물 쏟아지는,

     

    스쳐 가는 바람이여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 속에 부러지는

    나의 가지들,

     

    툭툭

    눈 터는 소리, 소리

    들릴 뿐

     

     

    폭설의 뒤안길 / 최홍윤

     

    북동기류 탓에

    눈이내린다기에 짐작은 했지만

     

    연 사흘의

    폭설일 줄은 미처 몰랐네

     

    눈송이가 꽃잎같이

    빈 나뭇가지에 내려앉을 때는

     

    그리운 사람 그리워

     

    다정한 밤을

    눈송이처럼 속삭이려 했는데

     

    깊은 산중에 바람이 일고

    눈보라 몰아칠 때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다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네

     

    허리춤을 재는 폭설의 뒤안길에는,

    백두대간 동녘 땅 골 골에는,

     

    세밑 그리움은 돌아눕고

    기다림은 몸져누웠네!

     

     

    폭설 暴雪 / 박유동

     

    금년은 경인년 백호랑이해라 하네

    용맹과 위엄을 떨치더냐

    새해 벽두부터 폭설을 퍼붓네

    산에 들에 마을에 강에 길에

    평펑 함박눈이 펑펑......

     

    온 세상천지가 새하얗게 휘덮었네

    작년 한해 소의 굼뜬 발자국도 지워버리고

    노란 황사도 말끔히 시처가고

    인풀렛 공포의 독균도 깊이 묻어버리고

    몸싸움하는 국회 의사당지붕도 덮어버렸네

     

    지난 한해 힘들고 어려웠던 일 다 잊으란다

    슬펐고 억울한 일도 다 잊으란다

    오직 청신한 대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백포 같은 하얀 눈 위에 새 발자국을 찍으란다

    새 발자국 찍고 새 길로 걸어가란다!!!

     

     

    폭설 / 이상국

     

    ()을 하다 배고프면 국수를 먹었다

    처음에는 두 형님과 소리가 엇갈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은 어우러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살다 이렇게 가는구나 하며
    나는 속으로 아는 체를 했다

    꼬질대가 휘도록 눈은 퍼붓고
    차일 밖에서 마른 눈을 삼킨 개들이
    컹컹 기침을 했다

    문상객들은 눈을 털며 들어와
    양초나 문종이로 부조를 하고는
    피가 비치는 돼지고기에 독한 소주를 먹으며
    내년 농사 걱정을 했다

    눈은 잠처럼 쏟아지고
    영정 속의 어머이는
    졸리면 형들에게 맡기고 들어가 자라 했으나
    나는 추우면 화롯불을 쬐다가 다시 곡을 했다

     

     

    함박눈 오는날 / 권승주

     

    그대는

    함박눈 펑펑 쏟아 지는 날

     

    사립문을 열고 떠났어요

     

    십 일자 를 그려놓고

    두 발자국 에는

    하얀 눈이 쌓이고

     

    부엌에 놀던 강아지

    살랑 살랑 따라가며

    짖어대던 소리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고통스러운 슬픔을

     

    함박눈 오는날 은

    싫어요

     

    그대는

    내 사랑보다

    도시의 불빛이

    더 좋은가 봐요

     

    기다립니다

    함박눈 오는 날

    둥지찿아 올 거예요

     

    함박눈 타고 천사처럼

    하늘에서

    내려 올거예요

     

     
    함박눈 / 정세훈

     

    소리없이
    다가오네

    그 모습
    허름한 당신 같아

    두 손 모아
    받쳐드니

    손가락 사이사이
    저리도록

    못내 서러운 사랑이 되어
    말없이 스미어드네.

     


    함박눈 / 김대식

     

    아직도

    낙엽에 눈물 담을 추억이 남았더냐.

     

    아직도

    구절초 한 묶음에

    아련한 그리움을 담을 향수가 있더냐.

     

    찬바람 된 서리에도

    사라지지 않은

    이슬이 맺혔더냐

     

    모두를 하얗게

    겹겹으로 덮어버리고

    그렇게 철석같이 잊기로 하고선

    또 함박 같은 그리움만 쏟아 대느냐.

     


    폭설 / 김향숙

     

    꽃 나비는 꿈이었을까
    눈 내리는 배경은 태초부터였을까

    뒷산 소나무들
    눈사태 막고 선 허리가 휘고
    힘에 부친 가지들 부러지는 소리

    숲에 들어 눈에 홀린 사람의 이야기처럼
    커다란 창문 앞에 선 채
    나는 고립되었다

    봄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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