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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날에 관한 시모음<3> [설날 시]
    시모음/계절 2023. 1. 19. 17:20

     

    설날에 관한 시모음<3> [설날 시]

     

    설날 새 아침 / 장수남

     

    설날 새 아침

    때때옷 갈아입고 우린

    엄마아빠 손잡고

    외할머니 댁에 세배

    가던 날.

     

    시골길 걸어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오르면. 넌

    미운 바람개비야.

     

    얼마쯤 기다렸는지

    나 얼싸 끌어안고

    얼굴 발갛게 비벼놓고.

     

    하늘나라 계신

    우리할아버지 얼마나

    화나셨을까. 요 녀석을

    이놈. 하시면서.

     

    놀란 바람개비 꽃바람

    마을 뒷산으로

    나 살려라. 줄행랑.

     

    잠깐 내려다 본

    햇살. 지긋이 눈뜨고

    엄마랑 아빠 그리고 나

    얼굴 호호 불어주었네. 

     

     

    설날 아침 / 김동리

     

    새해라고 뭐 다른 거 있나

    아침마다 돋는 해 동쪽에 뜨고

    한강은 어제처럼 서쪽으로 흐르고

    상 위에 떡국 그릇 전여 접시 얹혀 있어도

    된장찌개 김치보다 조금 떫스름할 뿐

    이것저것 다 그저 그렇고 그런 거지

    그저 그렇고 그렇다 해도 그런대로

    한 해 한 번씩 이 아침에 나는

    한복으로 옷이나 갈아 입는다

     

     

    설날 아침에 / 조남명

     

    매년 오는 새해라도

    새 마음으로 맞이하리

     

    소망을 안고

    꼭 이뤄야 할 일

    마음에 담고 첫 아침을 맞으리

     

    늘어난 만큼 나잇값을 해야 하고

    제 나이 먹는 것만 알며

    애들 머리 크는 것 모르면 안 되느니

     

    핏줄들 모여 조상 기리고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

    술 한 잔 나눌 수 있으니

    그만하면 족하리              

     

     

    설 날 / 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 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으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석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마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고운 세살배기로

     

     

    동심의 설날 / 박인걸

     

    산촌의 그믐밤은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울고

    초가지붕에 몸을 숨긴

    참새들 마져 떨고 있는데

     

    눈썹이 셀까봐 날밤을 세운

    철부지들은 가슴이 부풀고

    십환짜리 세벳 돈 생각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질퍽거리는 눈을 밟으며

    온 마을을 휘젖고

    설의 의미는 몰라도

    한 살 더 먹어 마냥행복했다.

     

    늘화투 윷 놀이

    팔뚝맞기 노래 부르기

    밤을 하얗게 새워도

    여자 애들과 놀아 좋았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 시절 그 마을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고운 그림으로 남아 있다.

     

     

    까치설날 / 최남균

     

    아카시아 둥지서 까치가 울면

    흩어진 윷가락 한목에 잡히듯

    떠났던 형제들 제자리 돌아와

    도, 개, 걸, 윷, 모, 한통속이

    동네가 시끌벅적 판을 짜고

    맨발로 황토 빛 뜰 구르던 날

     

    도리깨질하던 마당에 모여서

    윷가락 하늘 높이 던지던 시절

    혼자서 나뒹구는 법 익혔고

    도, 개, 걸, 윷, 모, 배필 만나서

    세상살이 더불어 사는 법 배워

    걸어온 세월 타작하여 풍성하던 날

     

    전 지지는 불쏘시개 연기가

    꼬리를 물고 온 동리에 어둠이 오면

    부지깽이처럼 바쁘던 어머니도

    도, 개, 걸, 윷, 모, 안방에 둘러앉아

    윷밭에 밤늦도록 뛰어놀던 길이

    저마다 가슴속에 별자리가 되었던 날

     

    고속철도가 놓여도

    되돌아갈 수 없는 날

    오직, 모만 놓아 판치는 세상에

    걸 놓아 걸어서 천천히 가고픈 날

    먼 밤하늘 사라지는 별자리에

    윷처럼 환한 그리움이 빛나는 날 

     

     

    설날 / 손병흥

     

    솟구치는 기운 희망찬 큰 뜻 가득히 품고서

    새해 온 세상을 비추이며 떠오르는 태양처럼

    올 한해 좋은 일 행복한 일들을 만들 수 있길

    행복 건강 넘쳐나 만사형통 복된 나날 되기를

    행운이 가득 차고 평안 소원성취도 기원해보는

    그리운 부모형제 친지 분들 찾아뵙고 세배하며

    설빔 차려입고 조상 음덕 기리는 풍습 익힌 뒤

    소중한 추억 덕담 명절음식 고향소식 간직한 채

    못내 아쉬운 귀가 길에 차마 발걸음 떼놓질 못해

    다시금 뒤돌아보던 아련한 그 시절 유년의 뒤안길 

     

     

    아주 오래된 소년의 설날 / 강효수

     

    아주 오래된 소년은

    설날엔

    부침개 뒤집는 뒤집개가 된다

    북어포 자르는 톱이 된다

    과일 깎는 과도가 된다

    접시가 된다

     

    아주 오래된 소년은

    설날엔

    허리 아픈 며느리가 된다

    갈 곳 없는 노숙자가 된다

    약오른 노모의 샌드백이 된다

    눈물이 된다

    도망 다니는 쥐가 된다

     

    아주 오래된 소년은

    설날엔

    아무래도 좋단다

    좋다고 희희낙락거린다

    떡국도 잘 처먹는다

    하늘에 연이 된단다

     

    혀차는 노모는

    저거 언제 철들려나 한다

     

     

    설 날 / 최홍윤

     

    나, 어린 시절에는

    까치설날 설렘에 밤을 지새우며

    어서 어른이 되고자 했었다

    벅찬 숨을 몰아 쉬며 하얀 발자국 따라

    손꼽아온 세월의 수레바퀴

    세밑 입춘이 지나고

    얼음장 밑에 다정히 흐르는 물소리

    홀로움에 익숙했던 눈동자가

    물안게 걷힌 동구 밖에 외로이 머물고 있다

     

    설이 뭐기에,

    머나먼 길, 살 냄새 맞으러

    세세손손 영혼들이 모여들어

    그믐밤을 새하얀 게 지새우는가

    설 날이 무슨 날이기에

    목로주점 나그네의 시름은 깊어 가고

    병원 중환자실에도 이슬이 맺히는

    늙어서도 그토록 그리운 날인가?

     

    오늘 저물고,

    내일이 오고, 내일은 언제나 새 날인데

    설 날은 더 더욱 새로운 날인가 보다

    설 날!

    가슴 뭉클한 언어가

    삼백 예순 날을 지칠 줄 모르고

    비상했으면 좋겠다.

     

     

    설날 풍경 / 고은영

     

    아버지 정갈한 두루마기 앞섶이

    유난히 차 보이고

    대님 매던 서툰 손놀림에

    여명의 장 닭소리 아직 생생한데

     

    희망을 두레질하는 차례상에는

    언제나 생소한 얼굴들이

    낡은 액자에 오랜 고화로 박힌 채

    살폿 웃거나 근엄하다

     

    쪽진 머리 저 여인은 고조 할매

    흑백의 두루마기 아스름 저 시무룩한 고조 할배

    구레나룻 여덟 팔자 유난히 쌔근한

    저 남자 우리 할매 멋스러운 지아비

    서른한 살 과부든 우리 할매

    할배 바라보는 눈매가 붉어 애처롭다

     

    묵시적 가족사

    태어나 얼굴 한번 구경 못했다

    피붙이라고 살가운 말 한 마디 없었다

    어느 시공에도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고

    만날 수 없던 운명 호적에나 묶여 있을까

     

    설날 아침

    휘적휘적 저 눈길을 걸어 온 조상 들

    우리 집 안방에 진귀한 고화 전시에 나란히 앉아

    한껏 밝은 얼굴로 따끈한 떡국을 드시는 중

     

     

    설날 / 이문조

     

    온 가족이 다 모인

    집은 행복하여라

     

    설날이면

    더욱 쓸쓸해지는

    어머니 아버지

     

    살기가 힘들어

    못오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행여나

    행여나

    동구밖 서성이는

    그리운 모정 하나.

     

     

    설날 아침에 / 서지월

     

    얼음 꽁꽁 언

    시냇가 논둑에서 연날리던 시절

    가고 없어도

    새배하러 새벽부터 일어나

    아버지 어머니께 절 올리던

    대청 마루바닥

    얼음장 같이 발 시리긴 해도

    그때 그날들이 그리운 것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알겠네

     

    장롱에서 몇 번씩이나 꺼내 입어보던

    때때옷과

    설 전날밤 자면 눈썹이

    흰눈 내린 먼 산처럼 허옇게 센다는

    어른들의 말씀 감쪽같이 속았어도

    신기하기만 하던 그때 그 시절,

    되돌릴 순 없어도

    생각하면 명경처럼 늘 맑고 환하게

    비쳐오는 어린날의 아버지 어머니

    잊을 수가 없네

     

    지금은 먼 산자락

    차거운 흙 속에 계시고

    아이들이 줄줄이 아빠 엄마 하며 따라도

    다가오는 세상은 더 무섭기만 하고

    매냥 눈내리는 설날이 와도

    자식보다 이승 뜨신 부모님생각에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나는 알겠네

     

     

    고향집 설날 / 오정방

     

    세상일 접어두고

    고향집 찾아가서

     

    설빔으로 차려입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웃음꽃

    맛있는 음식

    배가 절로 부르리

     

    타관서 멍든 상처

    고향가서 치료받고

     

    그립던 일가친척

    만난 곳이 낙원이라

     

    덕담에

    훈훈한 인정

    해 지는 줄 모르리

     

     

    설날에 / 김경숙

     

    댓돌 위에 신발이 늘어갈수록

    신명나서 분주해진 어머니는

    불혹을 넘긴 딸들 아랫목에 앉히고

    준비하신 음식 내오기 바쁘시다

    혼자 지내신 외로운 나날들

    그동안 하고픈 말 어찌 참으셨는지

    손주들 알아듣지 못하는 구수한 사투리로

    지난 일들을 생중계 하신다

    먼 친척 애경사며,

    동네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

    서울에 살고 있는 옆집 아무개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대서사시는 밤을 밝힌다

    이 밤 지새우고 나면

    댓돌 위에 신발들 모두 떠나고

    한 켤레 빈 공간 넘나들며

    기약 없는 날을 세고 계실 텐데

    밤새 내린 눈은 어머니 마음 아는지

    댓돌 위에 소복이 쌓여

    서둘지 말고 떠나라 일러준다 

     

     

    설날을 기하여 / 임영준

     

    그나마

    원단(元旦)을 디디는 여명(黎明)이

    풀뿌리를 어룬다

     

    깃털 하나쯤 남았는지

     

    예정된 수순일지라도

    변환점인 것을

     

    못이기는 척 따라야 하는

    마지막 행진일지도 

     

     

    설날이 되면 / 윤고영

     

    겨울 중심으로 냉기가 흐른다

    시베리아에서 멀리도 건너와

    창문을 달그닥이는 천애의 바람

    모레 글피면 설날

    그동안 아는이들께 안부도 못 전했구나

    중심에서 멀리 떠나온게지

    나목의 겨드랑이를 집적대는

    천진한 겨울바람을 본다

    장난끼로 건드려보는 이겨울의 저잣거리

    그곳에도 지금

    아릿한 설날이 연기처럼 피어 오를까

    그뭄날 별무데기 초롱했던

    고향있는 하늘이 어데쯤인지

    고독한 기억의 주파수에

    귀 기울이고 있으려나

     

     

    2000년 설날에 / 이길원

     

    세기가 바뀐다고

    미국도 유럽도

    TV 마다 모두 소란스러운데

    내 가슴만 싱겁다

    해마다 설날이면 가슴에 새기던 다짐도

    수없이 하던 맹세도

    이 설날엔 없다

    가슴 속이 비어 있다

    누구에게 세배하기도 받기도 싫다

    하늘 깊은 곳 바라보는 눈길만

    그저 휑하다

    모두 기다리는 새 천년인데

    웬 일일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는 뜨고 지고

    바람 불고

    마음 흐르고

     

     

    설날 / 손정모

     

    자오선이 평소에 어디를 지나건

    솔바람 소리에 깨어나는 산울림처럼

    천체는 동에서 서로 기울기 마련이리라.

    졸면서도 되풀이되는 타성의 발자취에

    결코 이대로 둘 순 없다며

    선조들, 지혜의 칼날 갈았네.

     

    정월이 하필이면 겨울인 것은

    춘삼월의 환희를 기약함일까?

    강가에 드리워진 물안개처럼

    내막 알 수 없을지라도

    날 잡고 마음 가다듬어 여는

    새해의 첫 날이여.

     

    설날 / 김길남

     

    겨울이 오면서 부터

    기다려지는 명절 설날

    그때는 그리 기다렸었지요

    어렸을 적 이야기

    좀 색 바랜 옷 벗고서

    새 옷 입고 의기양양

    밖에 나갔더니 모두다가

    새 옷 자랑

    동네 어른들께 새배하려

    몰려간다

    주머니엔 새뱃돈이 듬뿍

    행복이 한가득한 얼굴들이다

     

    지금은 옛날 기억하며

    손들에게 되 갚는 시절인 것을 ..........

     

     

    설날이 오면 / 정세일

     

    설날이 온다는 소리에 누이와 나는 다리건너편으로 마중을 갑니다.

    설날은 마음이 급하고 강을 건너오기전에 우리는 벌써 색동옷을

    입고있습니다.

     

    설날은 돌아오면서 길게길게 구비진 고갯길마다

    고향에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아온 달을

    동네 길 어귀마다 걸어주면서

    새벽하늘따라 달려오는 설날은 올해도 어김없이 달주머니속에

    선물을 안아가지고 옵니다.

     

    그 달주머니속에는 할머니털신도 들어있고

    실로짠 할머니조끼가 들어있습니다.

    눈이 큰달은 고갯길을 돌아올 때

    올해도 커다란 눈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도 까맣게 두고왔던

    고향은 반가운 삽살대문이 가슴을 열고

    바둑이와 함께 마중을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갈수록 겨울논에선 졸졸졸 숨쉬는 소리가 가슴이 시원하고

    신작로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잃어버렸던 고향의 고동을 돌려줍니다.

     

    세뱃돈이 불었다 / 김길남

     

    설날 아침에

    자식들

    그리고 조카들이 우르르 몰려 와

    세뱃돈을 뿌렸다

    날이 바뀌고

    제자랑 후배들이 몰려 와

    세뱃돈을 놓고 간다

    몇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이 행사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난 제자랑 후배들께

    풍족한 지식을 옮겨 주지도

    못했는데 ...........

    어허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뱃돈이 불었다

     

     

    숲 속, 작은 설날 / 정윤목

       

    솔잎, 가랑잎더러

    "시끄러워, 바스락거리지 마"

     가랑잎, 솔잎에게

    "아니냐, 내가 아니라구, 조기를 봐

     다람쥐야 그 놈이 자꾸 내 몸을 들썩여 그래"

     

    바람 휘익

    화들짝 솔잎이며 가랑잎이며

     

    "고것들 대단히 오도방정 떠네

    요란들하구먼 먹을 것도 없으메,

    앗따, 저 굴참나무 동네로 가야겄어,"

    다람쥐 쪼로롱 쪼로롱 산모롱이 길 떠나

    뵈지 않아 영 볼 수 없어

     

    솔잎, 가랑잎더러

    "왜 이리 조용해 쫌 부지런히 손 좀 놀려봐"

    가랑잎

    "내 몸 들썩여 먹잇감 구하던 고 쪼끄만 놈

    다시 오질 않네 그립네,"

    솔잎

    "그려 내 몸 찾아들던 송충이도 요 즘

    통 뵈질 않아 나두 그립네"

     

    기다림, 또 기다려

    그리움 숲 속 정적 길러갈 때

    하나의 기쁜 비명 말없이 고요로만

    조상님네 봉곳 오른 젓가슴들 기다림이니

    구름아저씨 말없이

    "호연지기 길러라 나날이 길러라"

    수염 매만지며 하늘 높이 느릿느릿 하얗다

     

     

    설날에 / 이진숙

     

    마른 가지에 눈꽃 핀

    그 어떤 날의 환희를 말하지 말자

    우울한 계절의 눈빛을 따라 떠도는

    서러움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자

    강이 강을 따라서 길이 길을 따라서 흐를 때에도

    세월이 덧없다고 말하지 말자

    접시 뽀얗게 닦아

    식기 건조대 위에 얹어놓듯

    우리들의 추억 하나 둘

    가슴에 얹어두지 말자

     

    모든 시작은 아름답고 또한 슬픈 것,

    사라져 가는 것,

    지쳐 쓰러지는 그 때까지

    우리들의 사랑같은 건 더더구나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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