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을비에 관한 시모음
    시모음 2022. 11. 11. 12:43

     

    가을비 소리 / 서정주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가을비 소리 / 오세영

     

    바람 불자

    만산홍엽萬山紅葉, 만장輓章으로 펄럭인다.

    까만 상복喪服의

    한무리 까마귀 떼가 와서 울고

    두더쥐, 다람쥐 땅을 파는데

    후두둑

    관에 못질하는 가을비 소리.

     

     

    가을비 / 나상국

     

    미처 떨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어두운 골목길에 갇힌 밤

    밤마다 늘 찾아와 맴돌며 서성이던

    밤손님은 기다려도

    오질 않고

    저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와

    잠들지 못하는 밤의

    긴 머리를 감겨주는

    가을비

     

     

    가을비 / 김시탁

     

    가을비는

    외투보다 가슴을 먼저 적신다

    우체통보다

    사연을 먼저 적신다

    우산을 쓰고도 비를 맞는 사람들

    대낮부터 낮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

    가을비 맞으며 길 떠나면

    발길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다

    사랑이 먼저 젖는다.

     

     

    가을비에 젖어 / 목필균

     

    지천명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

     

    민들레 피어나던 들판을 지나

    탁류로 흐르던 여름 강을 건너

    자줏빛 국화꽃 한 아름 안고

    저물도록 걸어온 불혹의 끝에 선다

     

    늙지 않는 외로움

    지병처럼 끌어안고 가는 길에

    쉼 없이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 추적

    추적- 추적추적

     

    지천명 가는 길 뒤를 밟히며

    비에 흠뻑 젖는 오늘이 시리다 

    *지천명: 나이 쉰 살.

     

     

    가을비 내리는 날 / 안경애

     

    단풍이

    볼그스레 달아오르고

     

    새벽

    내리는 비처럼

     

    참 곱게

    뚝뚝 떨어지는데

     

    또랑 한 감성으로

    낙엽 비마저 젖어들고

     

    마치

    몸살을 앓듯 몸이 떨린다

     

    선홍빛 두통

    그리움을 앓는 거야

     

    그래도

    비가 오니 참 좋다

     

     

    가을비를 맞으며 / 용혜원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얼마만큼의 삶을

    내 가슴에 적셔왔는가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허전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훌쩍 떠날 날이 오면

    미련없이 떠나버려도

    좋을 만큼 살아왔는가

     

    봄비는 가을을 위하여 있다지만

    가을비는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일까

    싸늘한 감촉이

    인생의 끝에서 서성이는 자들에게

    가라는 신호인듯 한데

     

    온몸을 적실 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 때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가을비 속으로 / 이응윤

     

    쏟아져도 슬프지 않는 가을비가 내려요.

    질근대도 외롭지 않는 가을비가 내려요.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내 속, 언제나 등불로 지켜주는

    내 사랑, 당신이

    내 옆에 있으니까요.

     

    가을비 속으로

    더 물들어 갈

    서로 소중할 이유가 내려요,

    생각만해도 행복할 미소

    우리의 사랑이 내려와요.

     

    저 가을비 속으로

    우리 손 잡고 달려 보아요,

    저 길 위에 우리 사랑을 뿌려 보아요.

    저 산과 들, 하늘

    시냇가와 호수들 모두

    더 고운 단풍은 들어올 거에요.

     

    가을비가 내려요.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은

    가을비가 내려요.

     

     

    가을비 / 오정방

     

    창밖에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대지가 젖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이 젖는다

     

    축축한 가을

    쓸쓸한 가을

     

     

    가을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 용혜원

     

    가을에 축축하게 비 내릴 때마다

    나무들은 알몸이 되고 싶은지

    단풍 든 잎새들을 떨궈냈다

     

    비 내리는 길 바라보고 있으면

    고독 속에 신열을 앓던

    외로움 덩어리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거리에 떨어진 낙엽들이

    흥건히 빗물에 젖고

    한산해지는 저녁 무렵

    가을 길을 걷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가을은 왜 우리 가슴에

    짙게 머물다 가는가

     

    세월 가듯 구름 가듯

    모두가 떠나가야 하는

    삶의 의미를 알려준다

     

    가을비가 내리면

    단풍으로 물든 이야기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가을 빗속을 걸어 들어가며

    사랑하는 이와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걸으면

    아픈 자국을 남겨놓고 떠나는

    가을도 쓸쓸하지만은 않다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마지막 가을비 / 전상순

     

    늦가을까지도

    마음이 젖어 있고 쓸쓸한 걸 보니

    사랑을 하고 있군요

     

    아직

    외로움이 방울지는 걸 보니

    사랑을 더 바라고 있나 봐요

     

    낙엽 지고 고개 떨구는

    비의 그리움을

    어찌해야 할까요

     

    그대는,

    그리움에 아파하는

    세상 모든 것이니

     

    가슴마다

    시냇물이 유유히 흐르고

    귓가엔 알알이

    행복에 풀파도 치는 소리 듣고 싶어라

     

    그대여,

    늦도록 쏟아내는

    단풍 같은 눈물에

    좋은 것만 있어라.

     

     

    가을비와 떠나고 싶어요 / 이채

     

    촉촉히 내리는 날이면

    바람도 젖어 버린

    외로움으로 떠나고 싶어요.

     

    나는 비를 따라...

    비는 나를 따라...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데

    누군가 저만치 서 있을 것 같아

    가을이 젖어가 듯

    그리움도 젖어가고

     

    참 난감한 표정으로

    창밖의 작은 잎새 하나

    말을 걸어와요.

     

    너 쓸쓸해 보여

    너 너무 쓸쓸해 보여

     

    가을비

    쓸쓸히 내리는 날이면

    추억마저 젖어 버린

    그리움으로 떠나고 싶어요.

     

    나는 비를 따라...

    비는 나를 따라...

     

     

    가을비 / 홍인숙

     

    얼마나 참았던 설움이면

    소리 없이 안으로만 감아 도는가

     

    실핏줄 마디마디 방울진 눈물

    한자락 햇살 뒤에 숨어 내리는 너

     

    실바람에 초조한 가을꽃처럼

    채 마르지 않은 낙엽처럼

     

    사노라면 모두가

    떠나고 싶지 않은 것 뿐

     

    어차피 지상의 것들은

    네 눈물 속에 지고 피는 것을

     

    가을꽃도 낙엽도

    우리들의 삶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떠나가면서

     

     

    가을비 / 최다원

      

    가을날의 휴일아침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다

    막 도착한 가을이 나뭇잎을 물들이고

    포근하게 느껴오는 바람한줄기가

    소나무 가지 끝에 머문다.

     

    한껏

    찌푸렸던 회색 구름이

    갑자기 굵은 비가 되여 내리고

    소나기는 온몸을 적셨다

     

    한때는 나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지

    예고 없이 다가온 소나기 같은 사랑은

    피할 수도 없이 모두 적셔 두고

    구름사이로 미소 짖는 태양처럼

    시치미를 떼였었지

     

    가을비속에

    퇴색한

    그리움하나

    어제 밤 고요히 흐르던 달처럼

    창백하다 

     

     

    가을비 / 조병화

     

    무슨 전조처럼 온종일

    가을비가 구슬프게 주룩주룩 내린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다 시름없이

    떨어져서 축축히 무심코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밟힌다

     

    순식간에 형편 없이 찢어져서

    꼴사납게 거리에 흩어진다

     

    될대로 되어라, 하는 듯이

     

    그렇게도 나뭇가지 끝에서

    가을을 색깔지어 가던 잎새들도

    땅에 떨어지면, 그뿐

    흔들이 버리고 간 휴지조각 같다

     

    아, 인간도 그러하려니와

    언젠가는 나의 혼도 그렇게 가을비 속에

    나를 버리고 어디론지 훌쩍 떠나 버리겠지,

    하는 생각에 나를 보니

     

    나도 어느새, 가을비를 시름없이

    촉촉히 맞고 있었다. 

     

     

    늦가을비 / 황금찬

     

    늦가을에

    내리는 비 때문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

    여름비처럼 세차지 않고

    다정한 두 사람의 밀어같이

    은혜롭다.

     

    가을비를 부르며

    종로나

    명동을 걸어본다.

     

    빈 커피잔에 담기는

    가을 벌레소리

     

    여름 여인은 싸늘한 모래 위에

    발자국만 남기고

    지금 어디쯤

    걸어가고 있을까?

     

    다시 돌아올까.

    그 발자국으로

    여인아!

     

    기다리는 마음은

    아직도 심중에 채 피지 못한

    사랑의 꽃봉오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시 가을비가

    머리 위에

    내리지 않는다 해도

    나는 결코

    후회하진 않으리라. 

     

     

    가을비 낙엽 위에 / 황금찬

     

    어제 낙엽이 지더니

    오늘은 종일 비가 온다.

     

    가을비는 낙엽 위에 내리고

    그 위에 다시 낙엽이 쌓인다.

     

    이 길로 누가 걸어갔을까?

    오늘엔 내가 가고

    내일은 또 누가 걸어가리가.

     

    가을비는 낙엽 위에 내리고

    그 위에 다시 낙엽이 진다.

     

     

    가을비는 내리고 / 김점희

     

    쪽빛 하늘,

    붉은 단풍에 취해

    사래 들려

    떨구는 빗방울

    소리도 없다

     

    촉촉히 젖어드는 대지는

    말이 없고,

    방울방울 받아 마시는 강물은

    목 마르지 않아도

    삼킬 수 밖에

     

    내 사랑

    언제 쯤 단풍으로

    다가올까?

     

    젖을 때 젖고,

    붉을 때 붉었으면 좋으련만.

    흔들리지 않고

    늘 푸른

    그대가 밉다.

     

     

    가을비 / 민경교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 속에

     

    앙상한 가지에

    맥없이 걸려있는

    슬픈 단풍잎

     

    단풍잎 타고

    내려 맺힌 물방울

     

    물방울 속에

    찌그러진 얼굴들

     

    세월 따라

    흘러가는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늦가을비 / 권경업

     

    조개골에 신음이 들려요

    뭇나무들 잎 진 자리에

    늦가을비 쓰리고 아려

    돌아서 흐느끼는 신갈나무

    서럽게 우는 개옻나무

     

    약초캐는 하 씨 토방에도 들려요

    귀머거리 마누라 귀기울이는

    팔 하나 잃어버린 마흔 몇 해 전

    달빛소리재 그 가을비

    아직도 쓰리고 아려

     

     

    가을비 / 반기룡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양철 지붕을

    툭툭 건드리며 하염없이,

     

    어느 때는

    라르고로 아디지오로

    어느 때는

    모데라토로 비바체로

     

    가을비는 영물인 듯 합니다

    음악의 빠르기를  이미 몸에 익힌 듯

    박자를 맞추며 대지를 애무합니다

     

    그 소리도 다양합니다

    후두둑 후두둑

    살랑 살랑 

    부슬부슬 

    주룩주룩

     

    오늘은 가을비를 바라보며

    노래 연습을 항하사 처럼 했습니다 

     

     

    가을비를 보며 / 오광수 

     

    이 비오면

    모 진이 군화신고 성큼 성큼 다가오려나?

     

    창을 두드리는 가을소리가

    이젠 많이도 애처로운데......

     

    처음엔 하나 둘 예뻐도 보이더니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에게

    무엇이 바쁜지 빗줄기는 고함을 친다.

     

    "보일러 좀 올릴까요?"

     

    커피 한 잔으로

    함께 가을비를 바라보고 싶은

    아내의 음성을 들으니

    아까부터 몸에 한기가 도는 것 같다.

     

    "그래야겠네."

     

    커피 향이 가득한 방안에서

    가을비를 함께 보는

    아내의 미소가 더 따뜻하다.

     

     

    가을비 / 박기원

     

    바람 불어요

    쉴 새 없이 바람을 읽는

    나무와 같이

    얼굴은 내 마음을

    가을바람의 모습으로 읽고 있어요

     

    비가 올 것 같아요

    벌써 떨어진 이파리들은

    검은 아스팔트 위를

    아프도록 뒹굴고

    이 계절을 떠나려 해요

     

    우산도 없이

    바람이 쓸고 간

    젖은 가슴을 걷고 있어요

     

    벌레 먹은 낙엽의

    섬유질 그물 같은

    걸어 온 발자국을

    바람이 울고 지나가요

     

    이 비가 그치면

    찬바람 불어 와

    예민하여진 감각을

    울릴 것 같아요

    울음보다도 지금은

    비가 오는 것이

    눈물 같아요

     

     

    가을비 / 가영심

     

    무엇이 우리에게

    낯선 고독을 견디게 하는가

     

    수락산 벼랑끝에서

    흔들리는 단풍잎들

    붉은 핏줄로 툭툭 터지며

    서러운 혼으로 죄다 탄다

     

    가을비에 젖어서 스러져가는

    젊음의 피는 죽음을 사랑하는지

    은둔의 시간 속에서

    두려움은 목발을 짚고 오지만

     

    모닥불 속으로 타들어 가는 뼈들의 고뇌처럼

    가을 비에 젖어서

    하나씩 잃어가는 젊음의 피여.

     

     

    가을비 커피 / 이정자

     

    안개에 휩싸인 계명산이

    툭, 툭, 안개를 걷어차고 일어나

    창가에 들어와 앉는다

    후두둑 빗방울이

    대지의 품으로 마구 뛰어드는 사이

    가을은 소리 없이 내 찻잔에도 녹아들었다

     

    이런 날이면

    도란도란 말의 꽃을 바람처럼 피우고 싶다

     

    내 삶의 창가에 다가와 나와 마주 앉았던 사람들

    사랑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빵을 이야기하자던 사람들

    은은히 배어나오는 내면의 향기를

    나에게까지 전이시켜 놓듯 지나간 아름다운 사람들

     

    오늘 여기에 마주 앉아

    커피에 가을을 크림처럼 녹여

    함께 마시고픈 이름들,

    푸드득, 되살아 온다

     

     

    창밖에 가을비가 내리네 / 이채

     

    무수히 쌓인 낙엽위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무일 없을 수 없는 순간의

    내 슬픈 애인은 비에 젖고 젖어 가네

     

    가을에 묻히지 못한 떡잎 하나

    오래전 무덤이 된 가슴에서

    그리움 한 채 집을 짓고

    눈물이 핑그르 돌아

    내 슬픈 애인은 또 비에 젖고 젖어 가네

     

    내 슬픈 애인이 가을비로 내리면

    나는 낙엽이 되리오

    흠뻑 젖은 그 속삭임 같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창밖에 가을비가 내리네

     

     

    가을비는 내리고 / 김윤진

     

    주절주절 할 말도 많은가

    속내를 털어놓던 빗줄기는

    더욱 큰 소리를 냅니다

    잔뜩 흐려진 하늘을 보면서

    곧 화를 볼 줄 알았지요

    목에 찬 감정을 숨기며

    입을 꼭 닫더니

    지난밤에는 떠들썩했습니다

     

    슬픔을 감추던 얼굴은

    일그러짐이 심히 깊었고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가을비는 소란스레

    밤이 깊도록 내리니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넉넉히 풀어놓는 가을이기에

    조금씩 너그러울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을 닮은 가을비도

    조용히 다녀갈지 혹, 모를 텐데

    그렇게 느껴서겠지요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

     

     

    가을비 우산 속 / 이두형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때문에

     

    흐르는 세월따라 잊혀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 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 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잊어야지 언젠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

    나 혼자서 잊어야지 잊어봐야지

     

    슬픔도 그리움도 나 혼자서 잊어야지

    그러다가 언젠가는 잊어지겠지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 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가을비(秋雨)/ 강승희

     

    서늘한 바람 먹구름 몰고 와
    찬 비 뿌리니 

     

    덥혀진 땅 식히고 냉기 토해 내는데
    놀란 가슴 달래는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 흠뻑 물마시며
    겨울채비 서둘고

    저무는 석양 노을에 졸고 있던 수탉은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향해
    목청 돋우어 노래하네.  

     

     

    거리에 가을비를 세워두고 / 류시화


    시월은 안사돈들이 나란히 나와서

    혼례의 촛불을 밝히는 달,


    우리나라의 단풍은 이 한 달을
    북에서 남으로 걸어서 내려오느니
    휴일에는 한줄금 비를 데리고

    빗속에 우산을 들고
    플라타너스 잎 지는 거리에 나서면
    우중충한 소문들도 잠시 귓전에서 멀어진다


    우산 하나로
    헛되고 욕된 세상을 비껴갈 수야 없지만

    새벽마다 길섶 찬 이슬로
    더욱 맑아지던 풀벌레의 울음소리


    이 차가운 빗속에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리

    거리에 가을비를 세워두고
    찻집에 들러 혼자라도 좋으니​

    잘 끓인 커피 한잔을 천천히 맛보며


    월명 시인의 제망매가
    몇 구절을 떠올리고 싶느니.  

     

     

    가을비 내리는 날 긴 이별 / 전영애

     

    봄은 새싹을 돋게 하고

    여름날에는

    짙푸른 날개를 펴고

    깊게 묻힌 흙덩어리에

    촉촉이 빗방울이 내려앉는다

     

    묵묵히

    자리 매김 하는 자연처럼

    분수에 맞는 행동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마저

    땅에 떨어뜨린 처량한 모습

    힘에 버거운 짐

    툭툭 털고 싶어지는 심사이구나

     

    가려무나

    떠나 보낸 아쉬움

    미련조차 두지 않으려 하니

    가을비 내리는 날

    긴 이별을

    이쯤에서

    운명의 장난으로 접어두자

     

     

    가을비 / 박재삼

     

    가을 아득한 들판을 바라보며

    시방 추적추적 비 내리는 광경을

    꼼짝없이 하염없이 또 덧없이

    받아들이네

    이러구러 사람은 늙은 것인가

     

    세상에는 별이 내리던 때도 많았고

    그것도 노곤하게 흐르는 봄볕이었다가

    여름날의 뜨거운 뙤약볕이었다가

    하늘이 높은 서늘한 가을 날씨로까지

    이어져 오던 것이

    오늘은 어느덧 가슴에 스미듯이

    옥타브도 낮게 흐르네

     

    어찌 보면 풀벌레 울음은

    땅에 제일 가깝게 가장 절절이

    슬픔을 먼저 읊조리고 가는 것 같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노래할까나

    아, 그것이 막막한

    빈 가을 빈 들판에 비 내리네

     

     

    가을비 속으로 / 목필균

     

    체온을 낮추고 있다

    창문 가득 기웃거리는 빗방울

     

    스치는 찬기로 오소소 돋는 소름

    동공속으로 잠기는 우수

     

    온기없이 견디는 밤에

    신열이 오른다

     

    따뜻한 목소리

    서늘한 눈빛이

    포근한 가슴이

    만지고 싶다

     

    출렁거리던 그리움

    싸늘한 커피잔에 넘친다

     

    추적거리는 비가

    선명하게 그려낸 얼굴

     

    맥박이 낮아지고

    체온이 떨어지며

    넘치는 그리움 속으로

    온몸이 내려앉는다

     

     

    가을비가 내릴 때 / 백운호

     

    안녕하세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처량하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날은 죠지 윈스턴의

    음악보다는 차라리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게 마음 편합니다.

     

    가을을 발라드의

    계절이라고도 하죠

    그의 노래 어떤 노래 몇구절은

    그 어떤 시보다

    그 어떤 그림보다 호소력이 있습니다

     

    커피를 한잔 태우세요

    그리고 낙엽 딩구는 교정을

    내려다 보며 또 커피 한잔을 태우세요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보며

    따뜻한 갈색커피를 마시며 말없이

    바라보고 나지막이 이야기 해보세요.

    그리고 볼륨을 조금 올리고

    조용필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그의 Q 라는

    노래를 아세요 ?

    사랑 눈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그래요

    눈감고 잊어버립시다

    돌아서서 잊어버립시다

    다시는 울지 맙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네요

     

    커피잔이 줄어듭니다

    가을이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낙엽은 비가 그치면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날 것입니다 

     

     

    가을비 / 김인숙

     

    빗소리가 들린다

     

    빗소리 하나만으로

    설레는 커피 향기를 마시며

    가을 길을 함께 걷고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자꾸만 뒤돌아보며 손짓하는

    아쉬운 안녕을 적시며

     

    저 높은 곳에서

    이 낮은 가슴에

    촉촉한 노랫소리 가을비가 내린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