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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풍에 관한 시모음 <2>...20 선
    시모음 2022. 11. 10. 08:39

    단풍에 관한 시 <2>...20 선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숲속을 가며 / 오세영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단풍연가 / 유한나

     

    살아 온 날보다

    남아 있는 시간을

    더 사랑해요

     

    지나 온 나날

    눈물겨워도

    비장한 사랑으로

    불타올라요

     

    무성한 근심 위로

    가을이앉아

    다독여 주는 군요

    적막한 외로움 곁에

    찬바람이 불어와

    어깨를 껴안는 군요

     

    사랑하자구요

    가을엔 물들자구요

    노랗게 빨갛게 새빨갛게

    빛고운 색깔로 짓이겨져

    한 잎의 단풍이 되어요

     

    벚나무 잎새로

    은행나무 잎새로

    갈참나무 잎새로

    알록달록 물들어 떨어져서

    정신없이 굴러가며

    세상의모든 가을이 다할 때까지

    사랑해요.

     

     

    단풍 / 나태주

     

    숲 속이 다,

    환해졌다

    죽어 가는 목숨들이

    밝혀놓은 등불

    멀어지는 소리들의 뒤통수

    내 마음도 많이, 성글어졌다

     

    빛이여 들어와

    조금만 놀다 가시라

    바람이여 잠시 살랑살랑

    머물다 가시라.

     

    뻘건 단풍 (전라도풍으로) / 오세영

     

    누가 저렇고롬 뻘건 물감을

    찌끌어 놓았다야

    천지 사방 불붙었당께

    어쩐당가.

     

    이녁 피지 못해

    퇴깽이, 여시 묏도야지.....

    몽땅 불괴기 되겠시야.

    오매 징한 것.

     

    산신령 을마나 배고팠으면

    꾀복쟁이 아들 콩서리하듯

    늦가을 원 산 거시기 한다당가.

     

    성냥개비 긋듯

    환쟁이 화판에다 붓끝 찍찍 그어

    윗다 왼통

    불붙여 놓았소잉.

     

     

    단풍나무 아래서 / 이해인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다

    문득 그가 보고 싶을 적엔

    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마음속에 가득 찬 말들이

    잘 표현되지 않아

    안타까울 때도

    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세상과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저절로 기도가 되는

    단풍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면 행복합니다

     

    별을 닳은 단풍잎들의

    황홀한 웃음에 취해

    남은 세월 모두가

    사랑으로 물드는 기쁨이여

     

     

    가을 단풍 / 용혜원

     

    붉게 붉게 선홍색 핏빛으로 물든

    단풍을 보고 있으면

    내 몸의 피가

    더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 잎사귀가 어떻게

    이토록 붉게 물들 수가 있을까

    여름날 찬란한 태양빛 아래

    마음 껏 젊음을 노래하던 잎사귀들이

    이 가을에

    이토록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을 다 못 이룬 영혼의 색깔일까

     

    누군가를 사랑하며

    한순간이라도

    이토록 붉게 붉게 타오를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사랑일 것이다

    떨어지기 직전에 더 붉게 물드는

    가을 단풍이

    나에게도 사랑에 뛰어들라고

    내 마음을 마구 흔들며

    유혹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단풍, 혹은 가슴앓이 / 이민우

     

    가슴앓이를 하는 게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대낮부터

    낮 술에 취할 리가 없지

     

    삭이지 못한

    가슴 속 붉은 반점

    석양으로 타오르다 마침내

    마침내 노을이 되었구나

     

    활활 타올라라

    마지막 한 잎까지

    아쉬워 아쉬워 고개 떨구기엔

    가을의 눈빛이 너무 뜨겁다

     

     

    단풍 / 박태강

     

    그 당당하던

    푸르름은 어디에 가고

     

    무안을 당했느냐

    꾸중을 들었느냐

    얼굴이 빨개져서 보기 좋구나

     

    빨개져도 놓지마라

    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되느니

     

     

    단풍 / 정연복

     

    하루의 태양이

    연분홍 노을로 지듯

     

    나뭇잎의 한 생은

    빛 고운 단풍으로 마감된다.

     

    한 번 지상에 오면

    또 한 번은 돌아가야 하는

     

    어김없는 생의 법칙에

    고분고분 순종하며

     

    나뭇잎은 생을 접으면서

    눈물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의(壽衣)

    단풍잎을 입고서

     

    한줄기 휙 부는 바람에

    가벼이 날리는

     

    저 눈부신 종말

    저 순한 끝맺음이여!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 되느니

     

     

    가을 단풍 / 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 여름 폭양 아래 핀

    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내 심장 속에 있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내 상처에 맞는 약 또한 세상에는 없었다

     

    나의 몸은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어

    바람이 조금만 두드려도 은은한 슬픔을 울었다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다리 아랜 여전히 강이 있었다.

     

     

    단풍 / 이정하

     

    바람이 내게 일렀다

    이제 그만 붉어지라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 없다고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내 몸을 불태우겠다고

    사랑아, 네가 미워서 떠나는 것이 아님을 믿어다오

    떠나는 그 순간, 가장 불타오르는 내 몸을 보아라

    줄 것 다주고 가장 가벼운 몸으로

    나무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이 아름다운 추락을

     

     

    단풍 / 박인걸

     

    꽃이 피었다.

    새빨간 꽃이 피었다.

    높은 산비탈 단풍나무마다

    황홀한 꽃이 피었다.

     

    불이 붙었다.

    밝은 빨강불이 붙었다.

    연기 없이 타는 불길이

    골짜기마다 힘차게 타오른다.

     

    가슴마다 깊이 맺힌

    붉은 사연이 아니다

    구겨진 슬픔의

    뼈아픈 눈물방울이 아니다.

     

    살며 사랑하며

    따스하게 살아 온 행복을

    붉은 색깔에 담아

    감사의 엽서를 쓰고 있는 거다.

     

    한 잎 두 잎

    편지가 흩날리고 있다.

    고마움을 담은 메시지가

    멀리까지 배달되고 있다.

     

     

    가을, 단풍을 시집보낸다 / 오광수

     

    혼사 날 앞두고 그 놈의 날씨 때문에

    제대로 갖춰 보내질 못하는구나.

     

    여름볕에 그을은 손등이

    아직도 검은빛이 도는데......

    보내온 혼서(婚書)로 보아선

    시 가문(媤家門)은 사가(士家)인 듯 싶다만,

     

    혼서(婚書)는 잘 간직하여라.

    일부종사(一夫從事) 했음을

    죽어서도 가져가느니

    바알갛게 수줍은 너의 볼이 어여쁘구나.

     

    이젠 신랑 오면 떠나야될 몸

    그동안 정든 곳, 휘 둘러보렴

    남겨진 부모 걱정일랑 말고

    두고가는 동기(同氣)가 눈에 밟힐 텐데......

     

    시집살이 모진 것이야 참아야하고

    다 너 하기 달린 것 아니냐?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하얗게 눈 오는 날 달래 주려니

     

    노란 저고리, 빨간 치마 펼쳐놓고

    제대로 갖춰 보내야 할 텐데......

     

     

    큰일 났다, 단풍 든다 / 김종제

     

    곱디고운 저 속살

    슬쩍 곁눈질로 훔쳐보는데

    속에서 불이 일어난다

    불끈 솟아오른 저 기운에

    단걸음에 달려왔는지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넘어갈 듯 가쁘다

    그저 한 번 손잡아 보고 싶어서

    그저 한 번 안아보고 싶어서

    뜨거운 눈길만 주고 있는데

    이심으로 동했는지 전심으로 통했는지

    저고리 매듭을 풀고

    슬며시 치마 걷어 올리는 당신

    가볍게 안아 숲 이불 위에 눕히는데

    눈 감고 입술 벌린 육신이

    너무도 진하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마음이

    너무도 가파르다

    절벽의 나무는 오늘 더욱 꼿꼿하고

    계곡의 물은 전보다 더욱 세차고

    눈 시린 가을의 시월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것인데

    정말 큰일 났다

    당신 몸에도 내 몸에도

    색색으로 단풍들고 있다

     

     

    가을 단풍은 내 님 모습 / 전인재

     

    아기손 빨갛게 물드네
    저 멀리 내님이 방긋 미소 지으시네
    아기손 물 들더니 바람에 흔들리네
    저 멀리 방긋미소 내 님 가물가물 거리네

    아기손 바람에 떨어지네
    멀어저간 내 님 모습 보이지 않네
    아기손 떨어저 뒹구네
    내 님 대신해 내가 발버둥 친다네

    아기손 밟히는 소리 아스락 거리네
    내 님 떠나가 내가슴 억장이 무너지네
    곱디곱던 아기손 그립네
    곱디고운 내 님 모습 그립네

    가을은 그렇게 웃다가 울다가
    그렇게 겨울를 맞이 하겠지.

     

     

    단풍 / 이명희

     

    온 몸이

    전율토록

    그렇게

    짜릿했다

     

    터질 듯

    가슴 터질 듯

    그렇게

    황홀 했다

     

    찰라에

    영혼을 담아

    죽어도 좋을

    그 순간.

     

     

    단풍의 이력  송용일

     

    떨어져 낙엽 되니 발아래 구르네

    가슴 타본 이파리들 지난 흔적이 뚜렷하다

    단풍나무 떡갈나무 감나무 다양한 그들

       지나치려니

    꽃들이 하던  생각이 난다

    눈길이라도  번쯤 주고 가지

    그대들 한번쯤 몸바쳐 태워본  있는가

    이들에 무심하다는 것은

     삶에 쫓긴다는 것이지

    낙엽되어 구를때 이력이 흔적이려니

    꽃들이 하던  되새겨

    어느  눈길이라도 한번 주려나

     

     

    단풍 단상 / 이필종

    손바닥 같은 단풍이 손을 들어 보일 때

    안녕 이라는 말 대신

    그리움의 눈짓을 보내고 싶다

    가을이 곱게 물들어 혼자서 바라보기에는

    꽃단풍이 황홀하다고

    무서리 내린 아침에 그리움을 꺼내보며

    지난 밤 내내

    여울져 가는 가슴을 달랬노라고

    단풍잎에 보고 싶다는 말을 꾹꾹 눌러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다

    이 가을이 다 지기 전에..

     

     

    속리산 단풍 / 장은수

    붉은 아우성 들려오는

    단풍숲에 누우면

    어느새 창공에 날아가는

    철새 무리에 섞여 긴 고독 흐른다.

    올벼로 빚은 맛있는 술병을

    허리에 차고

    색색이 흔드는 손 있어 찾아가니

    깊어 가는 가을 서러워하며

    붉은 눈물 흘리는가.

    천황봉에 살포시 내려앉은

    청단풍 익는 소리

    문장대 바윗돌 아래 숨어

    초록 별빛에 반짝인다.

    작은 잎 뾰족이 내밀고

    투명한 아름다움 뽐내는

    속리산 단풍놀이

    고운 임 맞이할 준비가

     

     

    가을단풍 / 반기룡

    1

    취객 한 사람이

    산으로 걸어 들어간다

    온통 산이

    술에 취한 듯 붉게 물들었다

     

    2

    현상수배된 방화범이

    일년 만에 체포 되었다

    가을 산도 아름답군

    불지르면 붙잡히리에서

     

    3

    색동저고리 입은 아낙이

    낭창낭창 걸어가고 있다

    저고리를 벗겨보니

    빨갛고 노란 물감이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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