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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4>
    시모음 2022. 11. 9. 17:33

    기을을[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4>

     

     

     

    가을은 깊었다 / 나태주

     

    짤랑짤랑 가을햇빛

    소리하기 시작하면

    가벼운 가을햇빛에 등이 밀려

    먼길 한번 떠나자

     

    가다가 가다가 서리에

    시들은 호박줄기 만나면 절하고

    무찔러진 고춧대 만나면 또 절하고

     

    낯선 마을 초상집 들러

    꺼이꺼이 울음 한 자루 퍼질러 내놓고

    낯모르는 상주한테 절하고 나오면서

    붉은 눈시울로 건너다보는 산천은

    얼마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인가!

     

    올해도 아, 가을은 깊었다

    살아있는 목숨은 또 얼마나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이겠는가!

     

    돌아오는 길

    빈집 마당에 감나무 만나면

    따는 사람 없어 혼자서

    붉어진 감들을 올려다보며 절을

    하면서 또 하면서 돌아오자.

     

     

    가을이 가는구나 / 김용택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가을 햇볕에 / 김남조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참다 못해

    가슴 찢고 나오는 비둘기떼들,

     

    들꽃이 되고 바람 속에 몸을 푸는

    갈숲도 되네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지고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가을 엽서 / 성낙일

     

    가을이 물들고 있습니다

    산과 들만 물들이는 게 아니라

    가을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물들이고 있습니다

     

    물든다는 건

    닮아 간다는 것

    가만히 가을을 맞고 있으면

    어느새 나도 가을을 닮는 것을 느낍니다

     

    폭풍의 여름을 견뎌낸 이는

    가을에 고개를 숙이고

    제 몸을 온전히 그에게 맡깁니다

    가을은 더욱 성숙해 질 따름

    늙고 병드는 이는 없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에게

    향기가 납니다

    비로소 나는

    사람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 용혜원    

       

    손톱 끝에 봉선화물이 남아 있을 때

    가을은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

     

    이 가을 길을 그대와 함께

    걷고만 싶습니다

    낙엽을 밟으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을엔 시가 더 많이 써집니다

    갈색 빛으로 물든 낙엽이 하나 하나가

    시 한 편입니다

    높고 푸르기만 한 하늘이

    시 한 편입니다

    고독해 보이는 사람들 표정 하나 하나가

    시 한 편입니다

     

    이 가을 길을 그대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찬바람이 불어도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어느 사이에 우리들 마음도

    갈색 빛으로 곱게 물들어

    한 편의 시가 됩니다

     

     

    내속의 가을 / 최영미

     

    바람이 불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이 없어도

    뒹구는 낙옆이 없어도

    지하철 플랫폼에 앉으면

    시속 100킬로로 달려드는 시멘트 바람에

    기억의 초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흩어지는

     

    창가에 서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

    따뜻한 커피가 없어도

    녹아드는 선율이 없어도

    바람이 불면

    오월의 풍성한 잎들 사이로 수많은 내가 보이고

    거쳐온 방마다 구석구석 반짝이는 먼지도 보이고

    어쩌다 네가 비치면 그림자 밟아가며, 가을이다

     

    담배연기도 뻣뻣한 그리움 지우지 못해

    알미늄 샷시에 잘려진 풍경 한 컷

    우수수..

    네가 없으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

    팔짱을 끼고

    가을...

     

     

    가을 편지 / 유안진

     

    들꽃이 핀다

    나 자신의 자유와

    나 자신의 절대로서

    사랑하다가 죽고 싶다고

    풀벌레도 외친다

    내일 아침 된서리에 무너질 꽃처럼

    이 밤에 울고 죽을 버러지처럼

    거치른 들녘에다

    깊은 밤 어둠에다

    혈서를 쓰고 싶다.

     

     

    가을 맑은 날 / 나태주

     

    햇빛 맑고 바람 고와서

    마음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벼 벤 그루터기 새로 돋아나는

    움벼를 보며

    들머리밭 김장배추 청무 이파리

    길을 따라서

     

    가다가 가다가

    풍의 골짜기

    겨우겨우 찾아낸

    감나무골

    사람들 버리고 떠난 집

    담장 너머 꽃을 피운 달리아

    더러는 맨드라미

     

    마음아, 너무 오래 떠돌지 말고

    날 저물기 전에 서둘러

    돌아오려문

     

     

    가을의 끝 / 김명인

     

    더 이상 시들 것 없는 벌판 속으로

    바람이 몰려 간다 풍찬노숙의

    쓸쓸한 풀꽃 몇 포기 아직도 지지 못해서

    허옇게 갈대꽃 함께 흔들리는 강가

    오늘은 우주의 끝으로

    귀뚜르르 귀뚜라미 교신하는 가을의 끝머리에 선다

    또 우리가 누릴 수 없어도 날들은 이렇게

    흘러가고 흘러가리라

    이마에 물결치는 강굽이 바라보며 눈썹 젖으면

    캄캄했던 세월만 저희끼리

    추억이 되고 아픔이 되고 한다

    그러므로 소리 죽여 흐느끼는 여울이여

    억새 가슴에 저며 서걱이는 빈 들판에 서서

    이제 우리가 새삼 불러야 할 노래는 무엇인가

    저기 위안 없이 가야 할

    남은 길들이 마저 보인다

    그러니 여기 잠시만 멈춰 서라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黃菊)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에 아름다운 사람 / 나희덕

     

    문득 누군가 그리울 때

    아니면

    혼자서 하염없이 길 위를 걸을 때

    아무 것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단풍잎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어질 때

    가을에는 정말

    스쳐가는 사람도 기다리고 싶어라

     

    가까이 있어도 아득하기만 한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미워하던 것들도 그리워지는

    가을엔 모든 것 다 사랑하고 싶어라

     

     

    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햇살 / 오광수

    등 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 신가요?

    설레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아슴 남아있는 그 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젊었을 적

    내 향기(香氣)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 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 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반짝 윤이 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香氣)도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香氣)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香氣)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어머니 품 같은 가을 / 주응규

    몸소 땀 흘려 농사지으신 햇곡식으로

    손수 밥상 차려 두시고

    이제나저제나 올까

    기다리실 것 같은 어머니

    들국화 그윽한 향기 피어 퍼지듯

    어머니 내음이 풍겨오면

    보고파 흐느끼던 마음이

    내달려 간 그리운 고향 집

    맨발로 뛰어나와 반가이 맞아 주시던

    어머니는 온데간데없으시고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땀내

    저린 어머니 모습은

    뒤주간 옆 늙은 감나무에

    홍시로 농익어 있습니다

    넉넉한 가슴을 내어주는

    풍성한 가을은

    어머니 넓은 품 같습니다

     

     

    꿈꾸는 가을노래 / 고정희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깇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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