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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3>
    시모음 2022. 11. 9. 17:25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3>

     

     

    가을 저녁에 / 김소월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가을 편지 / 이성선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 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워가고 있습니다

    그 빈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 김용택

     

    사랑의 온기가 더욱 더 그리워지는

    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

    산 그늘도 묻히면

    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 얼굴이

    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

     

    내 안에 그대처럼

    꽃들은 쉼없이 살아나고

    내 밖의 그대처럼

    풀벌레들은

    세상의 산을 일으키며 웁니다

     

    한 계절의 모퉁이에

    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

    한없이 걷고 싶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

    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낙엽이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앉아 있는 마음일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추풍에 부치는 노래 / 노천명

     

    가을 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 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 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 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 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가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가을엔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하소서 / 이채

     

    가을엔 마음의 등불 하나 켜 두게 하소서

    하루의 아픔에 눈물짓고

    이틀의 외로움에 가슴 쓰린

    가난해서 힘겨운 나의 이웃이여!

    그 가녀린 빛이 무관심의 벽을 넘어

    우리라는 이름의 따뜻한 위로가 되게 하소서

     

    가을엔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참아낸 긴 시간들이 알알이 익어갈 때

    우리 살아가는 인법도 이와 같아

    인내와 믿음과 기다림의 눈물 없이

    어떻게 사랑을 말할 수 있으리오

     

    가을엔 따뜻한 가슴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같은 비바람을 거치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나무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을 위하여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누구를 위하여

    건강을 잃고 신음하는 그 누구를 위하여

     

    가을엔 비움의 지혜를 깨닫게 하소서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기보다

    지는 낙엽의 겸허함을 바라보게 하소서

    욕망의 늪은 그 깊이를 모르고

    욕심의 끝은 한이 없나니

    하늘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가을 향기 / 박서영

     

    자유로이 흘러가는

    저 구름처럼 기약 없는

    그리움을 그리고 또 지운다

     

    흔들리는 갈대

    바라보면 더 설레는 가을

    다 채색으로 피우는 단풍 꽃

    스스로 담았다

     

    비우는 연잎처럼 어느 날은

    마음에 담았다가

    부질없다 싶으면 비운다​

     

    한들거리는 구절초

    가을 향기 전해 주는데

    미련이 남은

    여름 잔상이 심통을 놓는다

     

    들국화처럼 향기 뿜으며

    예쁘게 물들면 좋으련만

    사랑하는 이들처럼

     

     

    가을 저녁에 / 서정윤

    누군가 슬픈 얼굴로 흔들리고 있다.

    조금만 더 슬픈 얘기를 하면

    눈물이 되어 구를 노을의 눈빛을 본다.

    미처 지쳐 있는 별빛 먼 여행으로

    오늘은 어제의 다시 한번일 수 없고

    그리움의 전설은 언제나

    나의 옆에 처연히 쓰러지는

    퇴색한 얼굴로 떠오른다

    이름이 떠나는 저녁

    누구에게나 건강한 노을,

    다정하나 단호한 표정을 기다리며

    슬픔은 잠시 잊어두자.

    사람 사는 삶이 쉬운 것만은

    아닐지라도 가슴 아픔은 늘상

    비 오게 하고……

     

     

    떨잎(낙엽)에 쓰는 가을 / 박해옥

     

    바람은 지긋이 불고

    나뭇잎 아르르 지니

    햇살 들눕는 자락자락 볏짚 빛이네

     

    하늘만 쳐다봐도 애수가 동해

    여울에 띄워진 낙엽처럼 섧으나

    성한 욕망 떨어내는 가을나무아래 서면

    돌 뿌리 걷어차던 급한 요구들

    솔래솔래 빠져나가니 버림의 계절 맞네

     

    창밖 풍경이 시리즈로 열리니

    잔잔히 생각던 사람도 밀물로 찾아 들어

    오래 품을 수 없었던 그리움

    괜스레 말도 많아라

    여적 먹은 마음은 건 다짐 이었네

     

    내 뿔로 날 받으며 살아온 세월

    돌아보면 후회도 깊고 화도 솟치어

    미뤄온 울음에 목이 메이지만

    돌다리 같던 삶 무사히 건넘에

    장(壯)함만 싶고 생각도 익어가네

    가을 끝에 핀 꽃 같은 절반의 존재지만

    이 주름계급장도 헛 것은 아니었네

     

     

    그대의 가을 집 / 이효녕

     

    가을 햇살을 따라가니

    단풍이 물든 세상뿐이네

    거기서 도토리 알 줍는 다람쥐 만났네

    살면서 겨울에 배가 고프면

    언제나 찾아오라고 말 하였네

     

    어느 날 고추잠자리 따라 들녘에 가보았네

    노랗게 익은 호박 줄기로 감긴 옥수숫대

    바람결 따라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네

     

    실개천 흐르고 해가 지는

    들국화 피는 작은 흙길에서

    억새가 손짓하며 말 하였네

     

    코스모스 활짝 핀 그리로 가보게

    안마당 붉은 고추 가득 널린

    아주 작은 오두막

    그대의 가을 집으로

     

     

    그해 가을 / 김낙필

     

    그해  가을 문턱에서

    다리를 절며 세월에 묻혀가던  날

    지나가던 바람을 만났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인 줄 알았다.

    그 바람에 깨물린 자리가 덧나고 번져서

    지금 죽을 병이 되어버렸다

     

    이 때쯤 되면

    여지없이 죽을 듯 아파져서

    정신도 내려놓고 무작정 산다

    고쳐보려고 애를 끊이고

    별별 짓꺼리 다 해봐도 영영

    약이 없다

     

    이제 나는 그 바람곁에서

    그 바람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물린 자리를 고치려는

    우매한 짓은 하지 않는다.

     

    느끼는 아픔 그대로

    죽지 않을만큼 그 정도로

    살아내려 하고있다.

    아린  가을날에

    쓰디쓴 상처로 다리절며

    단풍나무 목발을 짚고 간다.

     

    묻지마라.

    그해 가을 문턱이

    얼마나 시렸는지는

     

     

    가을 앞에서 / 이상진

     

    계절의 문을 열고

    가을 앞에 섰다

    여름의 습한 열기는

    바람스미는 자리마다

    그 뜨거움을 내려 놓고

     

    아직은 못다 한

    열정의 한낮 뜨거움은

    푸른 들판을

    노오랗게 물들이고

     

    산자락

    원두막 곁 알알이 맺혀

    수런수런 되던 열매들 속으로

    빨갛게 숨어든다

     

    어둠이 골짜기를 번져 갈 때

    아쉬운 미련의 끝이

    산꼭대기 붉은 석양이 되어

    하나 둘 소멸하는 여름

     

    그 무리한 정열도

    이젠 냉철한 이성 앞에

    고개 숙여 익어가야하는

    가을앞에 섰다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 홍수희

     

    잊어줄 것은 잊어주자

    나무도 한 해를 고개 숙여 감사하며

    품었던 아픔 품었던 오해

    훌훌 벗어 가볍게 서지 않느냐

     

    한 발만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보이지 않느냐

    상처 입기 쉬운 우리 마음도

    저마다 제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싸리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비워버린 가슴으로 다시 만나자

    바람 씽씽 부는 겨울벌판에 서서

    뜨거운 손을 붙잡고 울자

     

    우리 다시 그리운 이름이 되자

    한때는 나를 슬프게 했던 사람이여

    사람이여,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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