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갈대에 관한 시모음<1>
    시모음 2022. 11. 3. 21:09

     

    갈대에 관한 시모음<1>

     

    갈대 섰던 풍경 / 김춘수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 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갈대의 마음 / 김재덕

     

    갈대는

    살랑거리던 바람에는 웃었고

    폭풍우에는 굽신거리며 고개 숙였다

     

    그리 흔들며 춤추고 싶었을까

    아니, 세파에 시달리고 괴로워

    더는 흔들지 말라며

    참아야만 했던 화를 감당치 못해

    몸으로 흐느끼는 거다

     

    할퀴고 흔들어도

    잠시 휠지언정 흐트러짐 없는

    묵묵한 절개에

    ,

    우는 것은 바람이었다

     

    꼿꼿하면서 유연한 여유로

    어둑한 그림자가 싫어

    세상 이치에 순응하는 듯한 갈대는

    어릿광대의 초월한 삶이었다

     

    다시 일어설 갈대를 위해 / 목필균

    마른 갈대 울음소리 들었다.
    강가 모래톱, 아우성치는 갈대는
    하얗게 흩어져간 네 흔적 때문에
    겨우내 남은 수액 다 말리며 울어대다가
    어린 물새 둥지로만 남아있는 걸.

    불을 질러라, 마른 갈대 숲에
    메마른 가슴으로 불씨 하나 던져지면
    미련도 도화선이 되어 봄볕에 모두 타버릴 것을.
    잿더미로 남은 빈터, 물새마저 떠나버리고 나면
    새순 밀고 올라올 또 다른 갈대가
    다시 한 계절 시퍼렇게 고개 세우게,

    갈대는 서서 잠을 잔다 / 정군수

     

    갈대가 왜 서서 잠을 자는 지를

    전라도 갯땅 황토현 가는 길

    곰소항 갈대밭에 누워 보면 안다

    부딪히다 서걱이다 목쉰 갈대들

    갯땅에 목숨걸고

    저희끼리 뿌리 얽고 살아도

    피처럼 솟는 서러운 이야기

    바람 불면 소리내어 울 줄 안다

    눈을 맞다가

    갈대가 왜 서서 잠을 자는 지를

    순교자 묘역이 보이는

    서학동다리 인력시장에 가보면 안다

    얼어터진 손등으로 새벽을 기다리다

    종소리 먼저 들으려고

    갈대는 한밤내 서서 잠을 잔다

     

    갈대밭에서 / 박재삼

    갈대가 바람에 쓸려가는 소리

    이 세상이 망하는

    마지막 소리가 있다면

    저런 것인가.

    가을은 열매를 거두련만

    쓰리고 아린

    肝臟은 모조리

    저승을 향하게 하고

    준비한 소리인가.

    마지막 다음에는

    다시 또 처음이 있는

    간단한 이치 앞에 서서

    그 소슬한 바탕 앞에 서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점 모르게 하는

    이 미칠 것 같은 청승의 한때.

    가을 갈대 / 성백군

    바람이 언덕을 지나가면서
    아무거나 쥐고 흔듭니다
    가을바람이거든요

    갈대숲이 술렁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합니다
    어르신네 손끝이 차가우니
    기체후 일향 만강 하시랍니다

    만약
    아직 머리카락이 새파랗거나
    고개가 뻣뻣했더라면 허리를 팍
    꺾었을 텐데
    제 할 일 다 하고도 저 겸손을
    내 아무리 저승사자라고는 하지만
    어쩌지 못하겠노라고 그냥 지나갑니다

    가을 갈대가 생각 없는 나에게
    시를 쓰게 합니다
    백발이 다 되어도 내 속 좁은 옹고집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저 갈대 머리의 고개 숙인 당당함에
    해마다 늦가을이면 계절병이 도져
    몸살을 앓습니다

     

    마른 갈대로 서서 / 목필균 

     

    갈대 숲에는

    어린 물새들이 소리를 낮추어 울고,

    습지 잔물결은 빛을 다한 해넘이에도 흔들렸다.
    쓰러진 허리로도 비스듬히 추억을 빗어대는
    한 무더기의 갈대. 아련한 달빛이
    어둠 위로 떠오른다.

    어깨 시린 겨울밤,
    낮아진 체온만큼 그리운 내안의 사람들.
    바람 따라 일렁거리는 마음의 텃밭엔
    아직 아무 것도 심지 못했다.
    조금씩 키를 높이는 그리움만 마른 갈대로
    서서, 방파제 너머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 있다.

    억새 / 박남준

     

    꽃이 있었네. 하얀꽃
    하얗게 새어서, 새어서 죽어 피어나는 꽃

    바람 부는 들녘의 언덕에는 하얀 소복으로 바람 날리며 너울
    거리는 억새들의 잔잔한 한숨이 묻혀 있다 이 땅을 일구며
    지켜온 할머니의 그 할머니의 정결하고도 기막힌 삶들의
    숨결 같은 억새밭의 곁에 서면 어데선가 나타나는 새하얀
    꽃상여의 행렬

    흔들리며 흔들리며 물결쳐 오는 그 애잔하던 울음

     

    갈대밭에서 / 박재삼

     

    갈대밭에 오면
    늘 인생의 변두리에 섰다는
    느낌밖에는 없어라.

    하늘 복판은 여전히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지만
    쓸쓸한 것은 밀리어
    이 근처에만 치우쳐 있구나.

    사랑이여
    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울먹이면서, , 흐느끼면서,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소리로
    몸채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

    갈대 숲에서 / 복효근

     

    이것은
    모지러진 가슴마다
    부서지는 이성의 방언들을
    하늘로
    하늘로 흩어날리는
    오랜 그리움의 상형문자다

    이렇게
    뼈마디 무너지도록
    흔들려야 하는 것은
    한 오라기 실핏줄까지
    흔들어야 하는 것은
    뜨건 곳에 뿌리박은 그 까닭으로

    두드려도
    두드려도 닫혀진
    사람의 마을엔
    사랑만 꽃잎지고
    모로 돌아선 목숨들의
    모질은 풍경을 위하여
    죽도록 살고 싶은 날들을
    가슴께엔 칼잎을 감추고

    하얗게 목이 쉰 발음기호
    꽃잎으로 흩뿌리며
    목이 기-인 그 까닭으로
    또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조난신호처럼
    이렇게 흔들어야 하는 것이다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갈대를 위하여 / 강은교

     

    아마 네가 흔들리는 건 하늘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키 큰 바람이 저 쪽에서 걸어올 때
    있는 힘 다해 흔들리는 너

    연분홍 살껍질을 터뜨린 사랑 하나
    주홍빛 손을 내밀고
    뛰어오는 구나

    흔들리면서
    그러나 결코 쓰러지지는 않으면서

    흔들리면서
    그러나 결코 끝나지는 않으면서

    , 가장 아름다운 수풀을
    살 밑, 피 밑으로 들고 오는 너

    아마 네가 흔들리는 건
    흔들리며 출렁이는 건
    지금 마악 사랑이
    분홍빛 손을 내밀었기 때문일 것이다

     

    갈대 숲에서 / 김기홍

     

    작은 새의 날갯짓에도
    갈대는 흔들린다.
     
    하나의 뿌리에
    한 줄기로 서지 못하는 습성으로
    흔들리는 하나는 또 하나를 흔들고

    흔들리지 않으려 몸살하는
    갈대는 더 많은 숲을 흔들어
    더 깊은 수렁에 잠긴다.

    숲의 중심 마저 흔들려
    깨침도 안정할 수 없는가
    미미한 바람 소리에도
    몸을 뒤척이는 갈대여

    이다지 중심이 흔들리는 것은
    변방의 아주 작은
    사사로움에서 시작되었다.

    갈대 / 이상식

     

    갈대를 누가 줏대 없다 했던가

    서로가 의지되어 꺾이지 않고

    푸른 공간 화선지에 일필휘지로

    주야삼경 지나도록 쓰고 또 읽기를

    글씨공부 이토록 평생을

    쉬지 않고 하지 않는가

     

    갈대를 누가 연약하다 했던가

    찾아드는 철새들 품에 안아 보듬고

    넓은 시야 바라보며

    강한 젖줄 이어가지 않는가

     

    갈대를 누가 추하다 했던가

    힘에 부쳐 한 세상 다할 즈음이면

    가진 것 훌훌 벗어 내려놓고

    백발 한 올 한 올 흩날리며

    바람 따라 마음 따라

    승천하는 모습 장엄하지 않는가

     

    갈대밭에서 / 김종제

     

    바람에 쉽게 꺾어진다고

    결코 외면하지 말아라

    눈비에

    굳세게 저항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고개 돌리지 말아라

    흔들리면서 살아온

    어머니의 가는 허리 같다

    키 낮추면서 살아온

    아버지의 헤진 무릎 같다

    무엇 때문인지

    묻지 않아도 알리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뿌리채 뽑혀나갈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냈으니

    물 가까운 곳에 너희를 낳아

    대를 이어

    문패 하나 걸어놓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냐

    그러니 너희들

    폭풍우에도 매달려 있어라

    눈보라에도 굴복하지 말아라

    살아 남아서

    하늘을, 땅을, 이 가을을

    흔들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갈대가

    어제의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오늘의 나와 당신이고

    내일의 우리 아이들이다

    내 삶이 온전하게 들어있으니

    부둥켜안고 살겠다고

    갈대밭으로 한참을 걸어간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