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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엽에 관한 시 모음<1>
    시모음 2022. 11. 2. 12:08

    그리움의 가을 낙엽 / 도종환

     

    당신이 보고픈 마음에

    높은 하늘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가슴에서 그리움이 복받치는데

    하늘을 올려다 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움의 흔적이

    목을 타고 넘어갑니다

     

    당신 보고픈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까 봐

    하늘을 향해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리움이

    가슴에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파란 가을하늘처럼

    맑은 눈 속에서

    당신 보고파 자아내는

    그리움의 흔적이

    가슴을 적시어 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그리움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처럼

    내 마음에도 고운

    가을의 낙엽을 쌓아보렵니다

    책장 속에 넣어서

    훗날 추억의 가을을 꺼내보듯이

    훗날

    아름다운 사랑의 가을이 되렵니다

     

    낙엽은 한데 모여서 산다 / 이기철

     

    낙엽, 그 이름만큼 시적이고 낭만적인 것은 없다

    때로 추억이다가 때로 노래가 되는 낙엽들

    낙엽은 한데 모여서 산다

    낙엽에 몸을 묻고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이 말을 걸어온다

    저 따뜻한 낙엽의 언어들

    상수리 잎, 꿀밤 잎, 뚜깔 잎, 오리나무 잎, ..느티나무 잎, 둥글레 잎, 싸리 잎, 오동잎

    너는 낙엽 밟는 소리가 싫으냐?

    너는 저 끝없이 말을 걸어오는 낙엽들의 모음이 싫으냐

    너는 보랏빛 연기를 내며 피어오르는 낙엽 태우는 냄새가 싫으냐

    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코에 낙엽 태우는 냄새를 가져가고 싶지 않으냐

    가을엔 낙엽 곁에 앉아보라

    그만큼 따뜻한 것은 지상에 없다

    저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낙엽들

    낙엽은 한데 모여서 산다

    낙엽 / 조병화

     

    세월의 패잔병처럼

    보도 위에 낙엽이 깔려 뒹굴고 있습니다

     

    나는 낙엽을 밟기가 안쓰러워

    조심조심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낙엽은 나를 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me today you tomorrow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낙엽 / 복효근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찬란한

    투신.

    낙엽 / 이해인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낙엽 / 도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 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엽

    낙엽 / 이생진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 정호승

     

    길가에 낙엽은 또 떨어진다.

    인생의 가을이 되면 누구나 퇴비가 되라고,

    인간으로서의 역한 냄새를 스스로 향기롭게

    만들어 보라고 낙엽은 또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나뭇가지에 영원히 매달려 있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그만 땅에 떨어진다.

    아무리 영원히 썩지 않기를 원해도 그만 누구나 썩고 만다.

    다만 그 썩음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낙엽이 나에게 건네 준 말 / 홍수희

     

    어느 날

    차창에 낙엽 한 잎

    노란 몸짓으로 날아오더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에게 건네주는 말

    생각해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뭐겠니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네

    어느 익숙한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아니면......

    머뭇거리는 나에게

    낙엽이 가만히 속삭이는 말

    생각해봐,

    내가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받아 줄 사람이 거기 없을 때

    가슴 저미는 일이야

    두 손에 가득 선물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그 일인 거야

    바람만 불어왔다 불어가 버리는

    혼자 남은 괴로움이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주어진 기회를 붙잡으렴

     

    낙엽송(落葉松) / 박두진

     

    가지마다 파아란 하늘을

    바뜰었다.

    파릇한 새순이 꽃보다 고웁다.

     

    靑松이래도 가을 되면

    홀 홀 樂葉 진다 하느니,

     

    봄마다 새로 젋은

    자랑이 사랑웁다.

     

    낮에 햇볕 입고

    밤에 별이 소올솔 내리는

    이슬 마시고,

     

    파릇한 새 순이

    여름으로 자란다.

    낙엽의 시 / 황금찬

     

    거리의 낙엽이

    발을 묻는다.

    그 낙엽을 밟으며 가고 있다.

    어디쯤에서 발을 멎을지

    나는 그것을 모른다.

     

    여름을

    잎, 그늘에서

    노래하던 매미와 나비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비어 가는 가지에

    눈같이 솓아지는

    저 허무감.

     

    계절이 바뀌면

    이 가지에

    잎이 새로 피리라.

    종달새도 날고

    두건도 밤을 새우리.

     

    다시 낙엽이

    길을 메울 때

    그 때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낙엽이제葉篇 二題 / 김춘수

     

     

    眉壽 지난 이무기는 죽어서

    용이 되어 하늘로 가고

    놋쇠 항아리 하나

    물먹고 가라앉았다.

    지금 개밥 순채 물달개비 따위

    서로 삿대질도 하고 정도 나누는

    그 위 아래,

     

     

    그가 그려준 산은

    짙은 옻빛이다.

    그런 산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볼 때마다 지긋이 내 어깨를 누른다.

    없는 것의 무게다.

    죄를 짓고

     

    간이 크다는 것은

    간이 바람맞았다는 그 뜻이다.

    우스리강을 건너면서 라스코리니코프는

    새삼 깨닫는다.

    강을 다 건너자

    으루나무숲을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온산을 울렸는데도 겨우

    들쥐가 한 마리 죽어 있다.

    죽음 곁에는 아무도 없다.

    죽음은 제 혼자 울다가 바람이 되어

    제 혼자 어디론가 가버린다.

    시베리아는 너무 넓고 너무 춥다고

    라스코리니코프는 새삼

    깨닫는다.

    눈 위에 철새들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너무 寞寞하고

    발이 너무 시리다고,

    가을 낙엽 사라짐처럼 / 용혜원

     

    늦은 밤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일은 즐거움이다.

    어둠이 아무도 모르게 스며드는 것처럼

    그리움이 엉겁결에 다가와서는 떠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잠들고 꽃들마저 잠들어 내일 필 이 시간에

    빛나는 별처럼 너의 모습은 또렷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친구야!

    우리 목숨하나 가지고 사는데

    한 목숨 바램이 왜 그리도 많은 지 모르겠다.

    우리의 이상, 우리의 꿈은 한 갖 노래였었나

    그리도 멋진 스승도 떠나가고

    밤새도록 읽어내렸던 소설책도 먼지가 쌓일 무렵

    우리는 이마에 골이 패고 우리의 가슴은 좁아지기만

    하는가 보다

     

    친구야!

    내일을 이야기하던 우리들의 정열도 일기속에

    파묻히고 우리들 곁에 수 많았던 벗들도

    가을 낙엽 사라짐처럼 떠나가버리고

    너와 나 둘이 남았구나.

     

    친구야!

    이 밤 무엇을 너에게 써 보낼까?

     

    낙엽 쌓인 길에서 / 유안진

     

    한번 더

    나를 헐어서

    붉고 붉은 편지를 쓸까 봐

     

    차갑게

    비웃는 바람이

    내팽개친 들 또 어떠랴

     

    눈부신 꿈 하나로

    찬란하게

    죽고만 싶어라

    낙엽을 밟으며 / 박인걸

     

    황갈색 잎들이 너부러진

    겨울 산 비탈길을

    낙엽에 발을 묻고 걸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짧은 삶을 짙푸르게 살다

    일제히 쏟아졌지만

    낙엽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숨 쉬고 있다.

     

    제 몸을 흰 눈에 버무려

    긴긴 겨울을 나면

    발효된 잎들은 거름으로

    숲의 양식이 된다.

     

    주고받고 또 주는

    섬김의 원리가

    억수만년 숲을 지탱하는

    생명력이었으리.

     

    생성과 소멸의 순환 법칙이

    시계 태엽처럼 감겨있어

    일정하게 돌아가는 자연 섭리에

    나그네는 그냥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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