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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1>
    시모음 2022. 11. 9. 17:12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1>

     

     

    가을이 서럽지 않게 / 김광섭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가을이 자꾸만 깊어가네 / 김설하

    저마다 고운 빛깔로 익어 손짓하는 가을

    떠날 때 떠나더라도 우리는

    이토록 따숩게 손잡을 때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부드러운 가슴 열어 품어줄 것만 같은 구름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동공에 빼곡히 담고 또 담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해도

    아직은 떠나보낼 수 없는 인연들

    갈꽃의 소담한 웃음

    탐스럽게 익어 유혹하는 열매

    눈길 머무는 곳마다 심장 뛰는 소리 들켜가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

    가슴에 가을을 적고 또 적네

     

     

    알밤과 가을 숲 / 박미리

    까칠한 가시 침낭에서도

    시간은 흘러 흘러 가을은 왔죠

    풀벌레 우는 달빛에 누워 하루 또 하루

    그러다 마침내 나의 계절 가을이 왔죠

    나처럼 토실해진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도

    가을을 노래하며 툭,, 또르르

    바람이 지날 때마다

    기별을 넣으면 숲 친구들 몰려와

    우리들만의 파티가 시작되죠

    고생해서 남 주나, 흔히들 그러지만

    아무리 좋은 보석도 혼자서는 의미 없죠

    잘나고 못남 없이 서로 어우러져

    숲을 키우는 아름다운 공생

    그 기쁨 번질수록

    단풍도 불처럼 번져만 가는 가을 숲,

    가을 산에는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거룩한 축제가 있죠

     

    가을 편지 / 황광주

     

    하늘이 높아지고

    채워야 할 가슴 넓어져서

    가을이라 했습니까?

     

    높아진 만큼 멀어지는

    시린 그리움이라니,

    넓어진 만큼 채워야 하는

    타는 갈증이라니

     

    혹시나 여름의 태풍 속에

    애증의 씨앗을

    품고 오지는 않았는지요?

     

    호기롭게 세상을 점령하던

    초록 물결이,

    나약한 갈잎으로 움츠리는

    흑과 백이 공존하는 계절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올 봄을 준비하는 지혜를,

    차갑고 어두운 겨울을 버텨낼

    인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가을 이야기 / 용혜원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숲길을 지나

    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

    우리들이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좋을

    우리들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들 속에

    우리들의 꿈과 같은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호반에는 가을을 떠나 보내는

    진혼곡이 울리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가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잔의 커피와 같은

    삶의 이야기

    가을이 거기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 오광수

    가을이 되면 훨 훨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파란 하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울긋 불긋 산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곳이면 좋습니다

    가다가 가다가 목이 마르면

    노루 한마리 목 추기고 지나갔을

    옹달샘 물 한모금 마시고

    망개열매 빨갛게 익어가는 숲길에 앉아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들으며

    반쯤은 졸아도 좋을 것을,

    억새 꺾어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면

    짓궂은 하얀 구름이 그냥 가질 않고

    지난날 그리움들을 그리면서

    숨어있던 바람불러 향기 만들면

    코스모스는 그녀의 미소가 될겁니다

    가을이 되면

    텅 비어있던 가슴 한쪽이 문을 열고

    나 혼자의 오랜 그리움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다림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 어디론가 훨 훨 떠나고 싶습니다

     

     

    가을날에는 / 최하림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는

    가을날에는 요란하게 반응하며

    소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컨대 조심스럽게 옮기는 걸음걸이에도

    메뚜기들은 떼 지어 날아오르고

    벌레들이 울고 마른 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소리들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저만큼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멀리 사과 밭에서는 사과 떨어지는 소리

    후두둑 후두둑 하고

    붉은 황혼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지나가는 가을 / 백원기

    찬 이슬 내린다는 한로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지나간 여름 뒤따라온 계절

    문밖에 나서면 선선한 바람

    끈적한 땀은 쑥 들어갔네

    발길에 차이는 은행알 보다가

    고개 들어 하늘 바라보면

    바다 같은 파란 하늘에

    조개구름 촘촘히 깔려있어

    바닷가 거니는듯하다

    여름에 피던 꽃 사라지고

    가을꽃 한창인 계절에

    서두는 나뭇잎 너도나도

    채웠으니 비우려는가

    추억의 갈색 낙엽 하나씩

    말없이 떨구고 있다

     

    오래된 가을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억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가을의 기도 / 김나현

    더는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살살이 꽃 살랑이며 눈웃음치듯

    그만큼만 웃으며 살고 싶습니다

    더는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개울가에 흐드러진 하얀 개망초꽃

    들꽃 한 아름이면 나는 족합니다

    더는

    인생이 봄꽃처럼 화려하기를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여린 초록이 철들어 단풍으로 물들 듯

    그렇게 여생을 곱게 물들이며

    흐르는 물 따라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한때는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던 여름도

    맹렬히 차가운 모진 겨울도 이제는

    더더욱 원치 않습니다

    시리도록 청아한 가을 하늘 우러러

    가을 햇살 같은 사랑 한 줌 나누며

    모두 다 떠나가고 홀로선 나목처럼

    묵언의 겸손으로 고개 숙인 가을 속에서

    가을처럼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왔으니 / 차영섭

    내 인생에 가을이 왔으니,

    나는 나에게,

    곧 겨울이 오리라는 것을 인식시키리라

    내 인생에 가을이 왔으니,

    나는 나에게,

    그대에게 진 빚을 다 갚았느냐고 묻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왔으니,

    살아오면서 남에게 끼친 피해를

    한 점 부끄럼 없이 갚았느냐고 물으리라

    내 인생에 가을이 왔으니,

    어떤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것은 아직도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되묻겠습니다

    후회 없이 잘 살도록

    지금부터 널리 이해하면서 봄을 부르며

    새롭게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겠습니다.

     

     

    가을 편지 / 오애숙

    한 많은 세월의 강아

    갈대밭 사잇길로 휘도라 보매

    아 어찌 이리 빨리 해넘이 속에

    멍울 남기고 있는가요

    푸르던 무성한 잎

    갈 햇살 맘에 너울 쓰고 있고

    앞마당 감나무 홍빛에 물들어

    보란듯 미소하는데

    어이해 겨울 나그네

    모양새 되어 그믐 밤에 갈바

    모르는 양 갈바람 사잇길에서

    슬픔의 너울 썼는가

    홀로 세상 근심 다

    등에 이고 외초로이 서 있나

    백세로 이어진 오색 무지갯빛

    언덕에 올라 앉아 보세

    이제 푸르던 잎들도

    홍빛에 물들어가고 있어

    내 그대에게 단풍잎 하나 따

    연서 한 편 써 보내노니

    소풍나온 인생사

    돌아갈 곳 있어 가슴속

    희망참의 너울 쓰고 행복 꽃

    활짝 피우고 살아요

     

    가을 속으로 가는 길엔 / 김대식

    가을 속으로 가는 길엔

    누렇게 물던 황금 들녘을 추수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흐뭇해 보입니다.

    쪽빛 고운 하늘엔

    여름 지난 구름이 가늘게 흐르고

    서늘한 바람이 익은 곡식을 스치며

    수고한 농부의 이마를 닦고 갑니다.

    가을 속으로 가는 길엔

    단풍이 저마다의 색깔로

    여름의 노고를 서로 치하합니다.

    이제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떨어져도 후회 없다고 자축하며

    이제 긴 휴식을 취할 준비를 합니다.

    가을 속으로 가는 길엔

    이제는 떠나야 함을 아는 철새들이

    분주히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잘 가라는 억새의 손짓이

    좀 쓸쓸해 보입니다.

    가을 속으로 가는 길엔

    또 그대가 가슴 젖게 그리워집니다.

    코스모스 핀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대를 마주쳐

    반갑게 손잡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꿈을 그립니다.

     

     

    가을 들녘으로 오소서 / 박금숙

    그대, 오시려거든

    가을 들녘으로 오소서 나,

    허수아비로 서서 그대를 기다리겠습니다

    들녘 어디쯤 마음까지

    알알이 영글 것 같은 햇살 한가득 이고 섰다가

    색깔 고운 옷 한 벌 지어드리리다

    비록 누더기 차림이나

    그대 찌든 땀 씻어줄 심성 고운 바람만큼은

    넉넉히 모아두었습니다 그대,

    가을 들녘으로 오소서 함께 싹틔웠던 추억

    다발로 묶여질 때까지

    양 팔 벌리고 기다리겠습니다

     

     

    가을 초상[肖像] / 이명희

     

    초록 꿈 버무려 수묵화로 누운 산

    하늘을 이고 선 나무들은 마지막

    한 소절 남은 연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푸르게도 강생했던 여름날의 뜨거움

    아직도 식지 않은 온기의 촉수는

    잎 새 위에서 한껏 키를 키우며

     

    고달픔은 고독한 자의 몫만이 아니었다고

    탁류 같은 그리움 하나

    마음 길 발갛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내안의 나와 마주쳤던 순간들

    지나가는 것은 추억이 아니라

    가슴을 적시는 사랑이라 되 내며

     

    낙엽처럼 가벼워진 걸음

    벽을 넘어선 헐렁한 자유를 찾아

    은자(隱者)처럼 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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