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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2>시모음 2022. 11. 9. 17:18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에 관한 시모음<2>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김준엽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가을 노트 /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추일미음 / 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축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낙엽빛깔 닮은 커피 / 이해인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잎 두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잎 두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 오십시오
낙엽빛깔 닮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마음을 향기롭게 피어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우리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 질러
노을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구석 벤치에
어둠이 오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리움과 서러움이
노랗게 밀려 오기도 하고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붉어진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고독 같은 설렘이 번지겠지
아, 가을이여!
낙엽이 쏟아지고 철새가 떠나며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가을이래요 / 박목월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이래요
하늘 높고 물 맑은 가을이래요
울타리 수숫대를 살랑 흔드는
바람조차 쓸쓸한 가을이래요
단풍잎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바람은 가을을 싣고 온대요
밤이 되면 고운 달빛 머리에 이고
기러기도 춤추며 찾아온대요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
가을 저녁 / 김현승
긴 돌담 밑에
땅거미 지는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로 그리는 무거운 가을 저녁
짙은 크레파스의 가을 저녁
기적은 서울의 가장자리에서
멀리 기러기같이 울고
겹친 공휴일을 반기며
먼 곳 고향들을 찾아 가는
오랜 풍속의 가을 저녁
사는 것은 곧 즐거움인 가을 저녁
눈들은 보름달을 보듯 맑아 가고
말들은 꽃잎보다 무거운 열매를 다는
호올로 포키트에 손을 넣고 걸어가도
외로움조차 속내의처럼 따뜻해 오는
가을 저녁
술에 절반
무등차에 절반
취하여 달을 안고
돌아가는 가을 저녁 ㅡ
흔들리는 뻐스 안에서
그러나 가을은 여름보다 무겁다!
시간의 잎새들이 떨어지는
내 어깨의 제목 위에선 ....
가을 사랑의 의미 / 도지현
낙조에 물든 저 아름다운 바다
태양은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떠나면서도 저렇게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난다
여름날의 그 푸른 나뭇잎도
가을이 되니 남은 열정으로
사랑의 붉은 물을 들이고
아름다운 빛깔로 변해가는데
사람도 마찬가지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농익은 아름다움이 더 농염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가을은 숙성한 사랑의 계절
오래 발효시킨 와인 맛 같은 것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요로워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계절이다
가을 / 이서윤
가을이 왔습니다
퇴근길 어스름한 들판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노을이 쏟아 놓은 각혈은
연초록 여름을 물들였고
길가 코스모스가 흐느적 거리면
한 무더기 고추잠자리떼
바람타고 넘실 춤을 춥니다
해 지는 풀 섶에 앉아 우는
풀벌레 울음소리 따라
길이 하나 둘 살아납니다
먼 들 끝에서 일어나는
불 빛 찾아 헤매는 반딧불처럼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가는
노을 언덕에서
영롱한 이슬이 살며시 발등 적시는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이 가을 서정이 설레게 합니다
초 가을 저녁
호반 위에 떠있는
빛을 두손에 가득 담아
당신계신 하늘 위 띄워 놓고
새벽녘 물안개 되어
바람속에 가득 담긴
이 가을을 품에 안고
당신 가슴으로 달려갑니다.
가을 인생을 생각하면서 / 이완례
푸르렀던 날들 추억 속에 잠들고
찬 서리에 맥없이 뒹구는 낙엽 같은 가을 인생이
왠지 서럽게 흔들리는 그리움 너머로
푸르름에 가슴 벅차도록 환희로웠던 날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눈물처럼 가슴에 흘러내린다.
꽃잎은 떨어져도 다시 피어 날 수 있지만
인생은 하나 같이 한 번으로 시작해
한 번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알뜰히
챙겨야 할 시간인가? 헤아려 본다.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말하는 모습에서 정이 흐르고
마음이 햇살처럼 따스한 사람은
표정에서 온기가 느껴지듯이
기왕이면 한 번뿐인 인생길에서
이기적이 아닌 넉넉한 이타심으로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 줄 알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향기로움으로 채워져
푸르렀던 날 못지않게 풍요롭고 환희로운
내일이 윈윈으로 펼쳐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인생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알뜰한 정 아낌없이 나누며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생기로운 마음의 텃밭을 함께 일구어 간다면
한번 왔다가 한 번으로 끝나는 인생일지언정
가슴 뿌듯한 여한 없는 인생길이 되리라
고운 눈으로 보면 잡초 속에 핀 꽃도
곱지 않은 꽃이 없듯이
이제
노을 앞에 서 있는 우리 모습에서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고운 눈으로 미운 것도 예쁘게
예쁜 것은 더욱더 예쁘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노을 길을
힘차게 걸어가리라 마음 먹어본다.
이 가을에 너는 / 안재동
나는 너에게
아무 것도 아니지만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가을이 짙어갈 때면 늘
불그스레한 단풍잎에
샬로메에게 보낸 릴케의
연시 한 수를 우표삼아 붙여
갈바람에 띄워 전하고 싶다
황금빛 들녘이
노을로 붉게 타오르면
단걸음에
치자나무 서 있는 쪽으로 난
네 방 창문 앞으로 달려가
목청 높은 풀벌레가 되거나
청아한 가을 하늘의
쪽빛 구름으로 떠돌다
스잔한 바람에 밀려
들길을 지나가는 너의 옷깃이나
스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을새 날개짓에 놀라 떨어지는
떡갈나무 갈색 잎새들은
오래도록 너에게 전하지 못한
내 시린 마음의 부스러기
햇살 부신 아침이면
심장을 갓 박차고 나간 선혈처럼
솟구치는 그리움이
저녁이면
소금에 저려진 고등어처럼
정맥을 타고 되돌아온다.
나는 너에게
아무 것도 아니기에
내가 너에게서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기에
내가 너에게
마음을 보내고 싶은
그런 가을이다
여느 때처럼
나는 오늘밤도 창문 활짝 열고
농익은 단풍잎을 스친
빛깔 고운 바람에 가슴 설레며
새하얀 종이에
너에게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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