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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해를 보내는 송년 시모음<1> [송년 시]
    시모음 2022. 12. 26. 12:52

     

     

    한해를 보내는 송년 시모음<1> [송년 시]

     

    한 해를 보내면서 / 조윤현 

     

    다난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꿈이 그려지는

    새해를 맞는 연말에

    서산에 지는 해를 보며

    영욕의 세월을 그린다.

     

    지나온 해를 돌아보고

    한 해를 또 보내면서

    고희를 맞아야 하지만

    지는 해가 거듭하면

    미련에 남는 해는 아쉽고

    새해가 또 기다려진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영겁의 세월을 보내면

    무상한 인생 편력은

    또 그렇게 그려지겠지.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가는해 오는해 길목에서 / 경한규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아쉬움과 작은 안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립니다

     

    ? 같은 햇살에

    땅끝이 다시 파릇파릇 되살아나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도

    가던 길 멈추고 별빛 끌어내리면

    이내

    없는 이들의 가슴에 스미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12월의 플렛홈에 들어서면 유난히

    숫자 관념에 예민해집니다

    이별의 연인처럼 22 23 24......31

    자꾸만 달력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한 해 한 해

    냉큼 나이만 꿀꺽 삼키는 것이

    못내 죄스러운 탓이겠지요

     

    하루 하루

    감사의 마음과 한 줌의 겸손만 챙겼더라도

    이보다는 훨씬

    어깨가 가벼웠을텐데 말입니다

     

    오는 해에는

    이웃에게 건강과 함박웃음 한 바가지만

    선물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떠있는 섬과 같습니다

    못난 섬

    멀리 내치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송년의 노래 / 홍수희

     

    먼저 떠나는 너는

    알지 못하리

     

    한 자리에

    묵묵히 서서

    보내야만 하는 이의

    고독한 가슴을

     

    바람에 잉잉대는

    전신주처럼

    흰 겨울을 온몸에

    휘감고 서서

     

    금방이라도

    싸락눈이 내릴 것 같은

    차가운 하늘일랑

    온통 머리에 이고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고 섰는

    송년의 밤이여,

     

    시작은 언제나

    비장(悲壯)하여라!

     

     

    송년의 시 /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 안윤주 

     

    한 해를 보내며

    내 곁에 자랑하고픈 친구가 있는지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몇이나 있는지

    나를 떠나간 친구는 없는지

    떠났다면 왜, 그가 떠나 갔는지

    거짓 없는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새해에는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인지

    꾸밈없는 속내를 떨어내어

    알찬 새해 계획을 세워보자.

     

    건강을 위하여

    나의 키가 줄었는지 자랐는지

    몸무게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바지사이즈가 줄었는지 늘었는지

    흰 머리가 많은지 검은 머리가 많은지

    따져보는 건강의 이력서를 써보자

     

    냉정한 잣대로 존재가치의 지수를 점검해 보자

    눈물이 나도 포기하지 말고

    웃음이 나도 자만하지 말자

    죽는 날까지 노력을 즐겨야 한다는 말

    삶의 이력서 끝자리에 꼭 붙여놓고 살자.

     

     

    세모(歲暮) / 박인걸

    세모를 맞아도 거리는 붐비지 않는다.
    코로나가 창궐한 도시는 비둘기들도 도망쳤다.
    마스크 사이로 내비치는 경계의 눈빛들이
    전선 병사의 눈초리보다 더 매섭다.
    연일 튀어 나오는 확진 자 숫자와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이 고막을 가를 때면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심정이다.
    달력의 마지막 숫자가 지워지던 날에는
    한 해를 조용히 갈무리하며
    다가오는 시간들을 설계도면에 그려 넣고
    두 손을 모으고 예배당에 앉아
    세 가지 소원을 적어 간절히 기도했었다.
    보신각 종소리가 광화문 벌판에 퍼질 때면
    Auld lang syne을 힘주어 부르며
    지인과 어깨동무를 한 채
    불빛 찬란한 도시를 휘젓던 시절도 있었다.
    생애 처음 당하는 팬데믹 공포에
    표범에 쫓기는 가젤이 되어
    새해의 경계선을 두 발로 밟으면서도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
    2020년의 세모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세모에 / 권도중

     

    새벽 졸린 출근길 지친 밤 퇴근길로

    기댈 언덕 없이 지치도록 뛰었다

    뜻으로 안 되는 인생 또 한 해가 저문다

    그림자 짙은 골목 부산한 발걸음들

    이 겨울 내리 울고 봄싹으로 돋을 수 있다면

    필요한 돈만큼이나 간절한 소망이여

    연하장도 카드도 내년에는 보낼게요

    뿌리를 내리고픈 이 연대를 아십니까

    내 사랑 무거운 만큼 진실로 힘을 주소서

     

     

    세모(歲暮)의 창가에 서서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하지만 이제는 올해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

     

    미운 정 고운 정 들었던

    시간들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동그라미의 마음으로 살자.

     

     

     세모(歲暮) / 정연복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새해 첫날을 맞이했던 게

    엊그제 일만 같은데

     

    올해도 정말이지 꿈같이

    바람같이 흘러갔다.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들

     

    세모같이 앙칼진

    마음으로 지낸 날들이 많다

     

    좀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는 올해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

     

    미운 정 고운 정 들었던

    시간들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동그라미의 마음으로 살자. 

     

     

    세모(歲暮)의 창가에 서서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밤하늘에 펼쳐본 한해 / 김영래

     

    하루종일 희뿌연 하늘로

    시야를 가리던 날씨가

    어둠이 깔리자

    도시의 네온 불빛과

    황사가 겹쳐 희로애락의

    혼란 스럽던 사연을 덮어 버리고

    고요함 으로 위장을 하며

    아름다움으로 빤짝거린다

     

    고속 도로를 달리듯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과

    느리게 살려는 느낌의 마음과

    줄다리기를 하던 시간도

    12월 마지막 달이 되면

    비로서 한해를 되돌아 보는

    신호등처럼 멈춰서 상념에 잠긴다

     

    만감이 교차하는 정리의 달이며

    분주함을 추수려 보는 반성과

    미로 같은 질곡의 의미를

    밤하늘에 펼쳐놓고

    찬 바람과 섞어 음미해보는데

     

    방한복으로 무장한

    눈매 깊숙이 외로움의

    그늘이 서려 있는것 같아

    편치않는 마음에

    가슴이 싸~하게 저미어온다.

     

     

    저무는 이 한 해에도 / 이해인

     

    노을빛으로

    저물어 가는

    이 한 해에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들녘의 볏단처럼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이

    태양이 떠오르듯

    오늘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제 마음의 하늘에 환희

    떠오르시는 주님

     

    12월만 남아 있는

    한 장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시간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속에

    초조하고 불안하게

    서성이기 보다는

    소중한 옛친구를

    대하듯 담담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떠나는

    한 해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색동설빔처럼

    곱고 화려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결심들이 많은 부분

    퇴색해 버렸음을 인정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이면서도

    제 마음을 갈고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허영과 교만과

    욕심의 때가 낀

    제 마음의 창문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창문이

    더럽다고 비난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위선자였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기도의 밑거름이 부족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침묵의

    어둠 속에서

    빛의 언어를

    끌어내시는

    생명의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선물로 주신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생명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용서를 청하기보다

    변명하는 일에 더욱 바빴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 마다,

    주님 제 안에 고요히 머무시어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남에 관한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사랑만이

    세상과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당신의 삶 자체로

    보여 주신 주님

     

    제 일상의 강 기슭에

    눈만 뜨면 조약돌처럼

    널려 있는 사랑과 봉사의

    기회들을 지나쳐 간

    저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용서하십시오

     

    절절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암울한 시대탓을

    남에게만 돌리고

    자신은 의인인 양 착각하는

    저의 오만함을 용서 하십시오

     

    전적으로 투신하는

    행동적인 사랑보다

    앞뒤로 재어보는

    관념적인 사랑에 빠져

    상처받는 모험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도

    극히 선택적이며

    편협한 옹졸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보편적인 인류애를

    잘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다

    나열하지 못한

    저의 숨은 죄와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제 작은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제 작은 그릇엔

    다 담을 수 없는

    무한대이며

    무한량의 주님

     

    한 해 동안 걸어온

    순례의 길 위에서

    동행자가 되어 준

    제 이웃들을 기억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처음인 듯 새롭히는

    소나무 빛

    송년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의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

     

    아멘!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 허영자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묵은 편지의 답장을 쓰고

    빚진 이자까지 갚음을 해야 하리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하였으니 

    이른 아침 마당을 쓸 듯이

    아픈 싸리비 자욱을 남겨야 하리

     

    주름이 잡히는 세월의 이마

    그 늙은 슬픔 위에 

    간호사의 소복 같은 흰눈은 내려라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친구에게

    올 한해도

    친구가 제 곁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잘 있지? 별일 없지?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안부를 물어오는 오래된 친구 

    그의 웃음과 눈물 속에

    늘 함께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보다 깊은 신뢰로

    침묵 속에 잘 익어

    감칠맛 나는 향기

    그의 우정은 기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입니다

     

    친구의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친구의 가족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12월 그리고 하얀 사랑의 기도 / 안성란 

     

    빠르다고

    세월 흐름이 참 빠르다고

    한숨을 쉬기보다

    또 다른 세상에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고통이었다면

    소득이 있는 새날에

    바람이 꽃을 피워서

    우리네 삶에 새로운 희망을 뿌려 주는

    12월 기도 안에서

    지나온 날을 곱씹으며 활짝 웃을 수 있는

    뜻깊은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어깨 토닥여 줄 수 있는

    따듯한 손길로

    힘내라고 열심히 살았으니

    용기를 내라고

    마주치는 눈길에

    사랑이 피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뒤 돌아본 시간

    아쉬움을 남기지만

    아쉬움 속에 한숨짓고

    고개 숙인 아픔이 없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남은 시간

    조급한 마음이기보다

    앞날의 희망을 꿈을 꾸며

    아직도 못다 한 말

    남아 있는 예쁜 마음으로

    하얀 사랑의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년의 기도 / 정연복

     

    한 해를 보내며

    깨끗이 이별하게 하소서

     

    내 안에 오래 살아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미움과 시기와 불평

    쓸데없는 불안과 걱정

     

    가슴속에서

    말끔히 도려내게 하소서.

     

    단 한번뿐인 나의

    소중한 생을 갉아먹는

     

    나쁜 생각들과 습관들을

    한데 모아

     

    활활 불태워 버리고

    새 삶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송년의 강 / 백원기

     

    세상 존재하는 것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가지 않는다

    애타게 붙잡아도

    속절없는 세월은

    욕심껏 앞으로 가다가

    기어이 해를 넘고 만다

     

    늦은 저녁 한숨일랑 걷어내고

    내달리는 세월의 강에

    흘려보낼 것은 보내고

    씻을 것은 씻어야지

     

    버려야 할 것들

    잔뜩 껴안고 있으면 뭣하나

    갈등 속에 몸부림치다가

    송년의 강에 띄워 보내는

    근심 걱정 후회 실망...

    그 대신 너의 빈자리를

    사랑과 감사로 채워줄게   

     

     

    송년에 즈음하면 / 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 길 막돌멩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송년의 시 / 김사랑

     

    우리가 사는 세상

    , 여름, 가을, 겨울

    돌고 돌아 세월은 가고

    우리가 사는 인생

    그 세월을 따라

    흘러 흘러만 가네

     

    우리의 만남과 이별도

    인연따라 시작되고

    운명인 듯 끝인가 싶다 가고

    다시 이어지는 사랑

    이런 게 우리 연분인가요

     

    그러니 그대여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

    지난 추억에 슬픔만 있다 해도

    이제는 깨끗이 잊고

    우리 다시 시작해봐요

     

    지금은 절망할 때가 아니라

    인내의 시간이 흐를 뿐

    시련의 계절도 지나가겠죠

    한 방울 눈물보다

    환한 웃음이 필요해요

     

     

    송년의 시 / 이명희

        

    가진 것 없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눈치가 없어 우둔한 척

    유순하게 살았습니다

     

    정제되지 못한 것들의 균열이

    심하게 범람해도

    뜨거운 입김 토해내며

    견디고 살았습니다

     

    내려놓지 못한 삶의 무게

    수많은 시간의 결을 거처

    무의식의 심연에 도달한

    가벼움 얻기까지 무거웠던 그 세월

     

    이젠 아름답게 곧추세우는

    배려의 감성 맛보며

    시린 무릎 쓸어주렵니다

     

     

    섯달 그믐날 /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길

    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연말결산 / 이외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나간 날들은 망실되고

    사랑한 증거도 남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자폐증에 빠져 있는 겨울풍경

    속으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면

    시간이 깊어진다

    인생은 겨울밤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강물이다

     

     

    12, 그대에게 / 이영균

     

    나는 아직 그대를 못 보냅니다

    흰 눈이 무릎을 덮는데 어찌 가렵니까

    눈길에 절름거리며 사라지면

    힁한 계절

    나만 홀로 남겨지려니

    서러워서 그대 못 보냅니다

     

    옥빛 하늘아래 위풍당당하던 그대

    그 화려했던 순간들 다 시들어

    한잎 두잎 낙엽이 되었구려

    천하의 절경과 풍요 다 무너져

    간 곳이 없이

    저렇듯 눈밭에 벌거숭이로 섰구려

    곤하였던 길 하얗게 덮으며

    지난 한 해 화려함 되새길 그대

    나목이려니 생각하니

    서러워서 나는 그대

    정녕 못 보냅니다

     

    흰 눈이 다 녹고

    남겨진 가지에 새순 움 틔울 그날까지

    찬란한 봄 기약하며 나는 기다릴 테요

    가려거든 저 눈 다 녹아

    싸리 빗질로 길 훤히 열리거든

    꽃피는 봄날에나 사뿐히 가시구려

     

     

    마지막 달력 / 진장춘

     

    섣달 달력 한 장이

    벽에 붙어 떨고 있다.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달력이 한 장씩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철이 바뀌고

    추억과 상처가 낙엽처럼 쌓인다.

     

    마지막 달력이 떨어지면

    나무는 나이테를 만들지만

    인간의 이마엔 주름이 늘고

    인간은 한해를 역사 속에 꽁꽁 묶어놓는다.

     

    새 달력이 붙고

    성장과 쇠퇴가 계속되고

    그리하여 역사는 엮어진다.

    크리스마스, 송년모임, 신년회

    모임에 쫓겨 술에 취하다 보면

    후회할 시간도 없이 훌쩍 세월은 넘어간다.

     

    마지막 달력이 남으면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한숨짓는다.

    그러면서 또 한해가 역사 속으로 떨어져 나간다.

     

     

    송년회 / 목필균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

    무심했던 내가

    무심했던 너를

    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

    지폐 한 장이면 족한

    그 집에서 일년 치 만남을

    단번에 하자고

     

     

    송년 편지 / 윤보영

     

    무심코 뒤돌아 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와있다.

     

    내일 모래가 새해!

    그래도 한 해 동안

    웃는 날이 더 많았기에

    그런 나에게 감사를 전한다.

     

    아쉽지만, 내 한 해를

    아름다운 시간으로 마무리 해서

    새해에게 전해 주련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덥다가 시원하고

    눈까지 다시 내릴 새로운 한 해!

     

    여건을 내게 맞추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환경에 적응해서

    내가 주인 된 한 해를 만들어 가야겠다.

     

    그러다 무심코 돌아봤을 때

    오늘처럼, 내 멋진

    한 해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게

    가슴 가득 웃음꽃 활짝 피워

    향기를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송년 / 김규동

     

    기러기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에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 같이

    짓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어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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