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에 관한 시모음<3> [겨울 시] [12월 시]시모음 2022. 12. 14. 16:12
겨울에 관한 시모음<3> [12월 시] [십이월 시]
겨울강 / 오탁번
겨울강 얼음 풀리며 토해내는 울음 가까이
잊혀진 기억 떠오르듯 갈대잎 바람에 쓸리고
얼음 밑에 허리 숨긴 하얀 나룻배 한 척이
꿈꾸는 겨울 홍천강 노을빛 아래 호젓하네
쥐불연기 마주보며 강촌에서 한참 달려와
겨울과 봄 사이 꿈길마냥 자욱져 있는
얼음짱 깨지는 소리 들으며 강을 건너면
겨울나무 지피는 눈망울이 눈에 밟히네
갈대잎 흔드는 바람 사이로 봄기운 일고
오대산 산그리메 산매미 날개빛으로 흘러와
겨우내 얼음 속에 가는 눈썹 숨기고 잠든
아련한 추억의 버들개아지 따라 실눈을 뜨네
슬픔은 슬픔끼리 풀려 반짝이는 여울 이루고
기쁨은 기쁨끼리 만나 출렁이는 물결이 되어
이제야 닻 올리며 추운 몸뚱아리 꿈틀대는
겨울강 해빙의 울음소리가 강마을을 흔든다
겨울 마음 / 이상화
물장사가 귓속으로 들어와 내 눈을 열었다
보아라!
까치가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서 울음을 운다
왜 이래?
서리가 덩달아 추녀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가
내야 반가웁기만 하다 오늘은 따스겠구나
동면(冬眠) / 임보
겨울 산은 눈 속에서
오소리처럼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산의 체온을 감싸고 돋아나 있는
빽빽한 빈 잡목의 모발(毛髮)들
포르르르
장끼 한 마리
포탄처럼 솟았다 떨어지자
산은 잠시 눈을 떴다
다시 감는다.
겨울행 / 나태주
열 살에 아름답던 노을이
마흔 살 되어 또다시 아름답다
호젓함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들판 위에
추운 나무와 집들의 마을,
마을 위에 산,
산 위에 하늘,
죽은 자들은 하늘로 가
구름이 되고 언 별빛이 되지만
산 자들은 마을로 가
따뜻한 등불이 되는 걸 보리라
겨울 초대장 /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아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 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 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겨울 산사 / 목필균
긴 겨울
눈 속에서 묵언 수행 중인
대윤사에는
숫눈 위 쌩한 바람 소리로
명상에 잠기는 성엽스님
제 몸 부딪히며
수런대는 대나무들
독경소리 들으며
사철 다향을 가꾸는
부지런한 전처사님
입으로 지은 구업도
가슴에 얼룩진 상처도
평정심으로 돌려놓는
대각전 부처님이
정갈한 풍경소리로
머물러 있다
하얀 계절의 일기 / 오광수
어제 이 강가에서 만났던 노래는
반짝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돌틈속에 숨었답니다.
모질게 구는 바람이
무서워
조롱 조롱 그렇게 숨었답니다.
하얗게 하얗게 쌓인 눈밭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도
남은 낱알 찾던 철새의
소리도
숨구멍만 조금씩 내놓은 채
빠끔이 숨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한 움큼씩 고운 햇살을 주면
천사들의 따스한 손길
따라
뾰족 뾰족 생명들이 고개를 들고
숨었던 소리가 날아다니고
초롱 초롱 보고픔이 꽃이 필 테지요.
앙상한 나무를
마구 때리는 바람도
이젠 지쳐 힘이 없나 봅니다.
숨바꼭질했던 나무의 새 순들이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껍질을 벗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겨울강 / 정호승
꽝꽝 언 겨울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별들도 잠들지 못하고
왜 끝내는 겨울강을 따라 울고야 마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 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뜨린 울음인 것을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 김시천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깊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천지사방 고요히 내리는 눈발과 함께
세월이 남기고 간 그림자는 마냥 길고 적막한데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사람 하나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눈 내려 쌓일수록 밤은 깊어져
나마저 보이지 않는 외딴 산 마을
촛불 하나 켜지는가
보고 싶어집니다
겨울로 가는 길 / 최영희
수북이 낙엽으로 쌓인 숲 속 길
이제는 성근 가지로선 나무들
난, 지금 그 쓸쓸함 마져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어느 詩 낭송회장에서 노(老) 시인이 불던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을 떠올리며
푸른 날 새들의 살아 낸 이야기로 가득한
전설 같은, 내 가슴엔 아직은
그들의 이야기가 수런수런 들리는
빈 숲 길을 걷고 있다
은행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아슴히 비치는 햇살
추억으로 가득한,
내가 사랑한 바다도
이제는 하늘의 조각구름 가득 싣고
먼 여행을 떠나고
내게 주어진 고적한 이 시간이여!
나는 지금 나의 나에게 묻고 싶다
내 삶에서 그토록 사랑한 것이 무엇이며
지금도 목말라 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초겨울, 마지막
어미를 쫓아 길을 떠났을 산새소리
가슴이 젖어 오고
길가에 저 감나무도 아직은 곰 익은 감
떨구지 못하고 있구나
겨울로 가는 하얀 새벽 길
다 하지 못한
뭉쿨~한, 이 그리움처럼…
겨울 까마귀 / 김현승
영혼의 새
매우 뛰어난 너와
깊이 겪어본 너는
또 다른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호올로 남은 것은
가까워질 수도 있는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12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멀뚱거리다가
벽에 부딪쳐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까아욱
까각
이 겨울엔 / 홍해리
이 겨울엔 무작정 집을 나서자
흰눈이 천지 가득 내려 쌓이고
수정 맑은 물소리도 들려오는데
먼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
이 겨울엔 무작정 길 위에 서자.
겨울 노래 / 마종기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 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겨울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밤의 꿈 / 김춘수
겨울 한동안 가난한 시민市民들의
살과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게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食後에 석간夕刊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食後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煙炭가스는 가만히가만히
주라기紀의 지층地層으로 내려간다.
그날 밤
가난한 서울의 시민市民들은
꿈에 볼 것이다.
날개에 산홋빛 발톱을 달고
앞다리에 세 개나 새기 공룡恐龍의
순금純金의 손을 달고
서양西洋 어느 학자學子가
Archaeopteryx라 불렀다는
주라기紀의 새와 같은 새가 한마리
연탄煙炭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
제일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앉는 것을,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에 관한 시모음<5> [12월 시] [겨울 시] [겨울강 시] [겨울나무 시] (1) 2022.12.14 겨울에 관한 시모음<4> [12월 시] [겨울 시] (1) 2022.12.14 12월에 관한 시모음<9> [12월 시] [십이월 시] (1) 2022.12.14 12월에 관한 시모음<8> [12월 시] [십이월 시] (0) 2022.12.14 12월에 관한 시모음<7> [12월 시] [십이월 시] (1)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