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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관한 시모음<4> [12월 시] [겨울 시]시모음 2022. 12. 14. 16:25
겨울에 관한 시모음<5> [12월 시] [십이월 시]
겨울사랑 / 고정희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겨울산에서 / 이해인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눈 속에 노을 속에
사라지면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여.
<104>
겨울 날의 희망 /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 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의 회상(回想) / 오광수
당신이
손 내밀 때 왜 내가 잡질 못했던가?
뿌옇게 색이 바랜 아쉬움 들을
가슴속에다 억지로
밀어 넣어도
회상(回想)의 실핏줄을 타고 튕겨나와선
가끔씩 가끔씩 심장을 꼬집으며
덮어두었던 노래를 열고
가슴을 데우려고 하지만
굳어진 현실의 시간 앞에선
그저 아랫입술만 꼭꼭 씹습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그 고백들은
이제는 탁한 숨소리가 되어
가슴이 아닌 세월에다 불을 붙이며
한 줄 나이테로
사라지는 오늘,
당신이 손내밀때 잡지 못했던 손은
지금 주머니에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겨울 나무에게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벋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을 듣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겨울 편지 / 김현태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겨울날 / 김광섭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 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 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을 건너는 이삿군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앉으니
어머님 한분만 오시쟎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갈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은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하늘에 푸른 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치 한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大地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나리고
구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나온다
어느날 목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번 못 하고
친구들의 손 한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겨울 노래 / 오세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겨울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그 겨울밤 / 안도현
한숨 자고
고구마 하나 깎아 먹고
한숨 자고
무 하나 더 깎아 먹고
더 먹을 게 없어지면
겨울밤은 하얗게 깊었지
겨울 바다 / 용혜원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파도가 휘몰아쳐 와
방파제를 깨물었다 놓았다
거센 파도의 아픈 비명에
시퍼렇게 멍든
바다를 보고 있으면
찬 바람이 매섭게 따귀를 때리고
가슴 시리게 뚫고 지나간다
갈매기들이 낯선 객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날개를 저으며 날고 있다
앞에 보이는 섬은
햇살이 끼어들 수 없는
산비탈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춥다! 춥다! 외칠수록
추운 선창가에서
항구를 떠나는 배는
시린 손짓 그리워
점점 멀어져 간다
겨울강 / 박남철
겨울강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 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의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는 녹아 흐를 것들아,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아,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흐를 것들이
쩡,쩡, 쩡, 쩡, 쩡
겨울 강가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수도 없이 돌들을 던져 본다
이 추운 계절 다 지나서야 비로소 제
바닥에 닿을 돌들을
쩡 쩡 쩡 쩡 쩡 쩡 쩡
눈위에 쓰는 겨울시 /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106>
겨울 나목 / 양광모
알몸으로도
겨울 이겨내는
네 삶 눈부셔라
한 백년쯤이야
하늘 높이 쭉쭉
가지 뻗으며 살아야 한다고
헐벗은 가슴으로도
둥지 한두 개쯤
따뜻이 품으며 살아야 한다고
눈 내리면 눈꽃 피우며
봅이 아니라 겨울을
열렬히 살아야 한다고
너는 아무런 말 없이도
알몸으로 눈시울 뜨겁게 만든다.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겨울 그리스도 / 김남조
오늘은
눈덮인 산야를 거닐으시네
눈같이 흰 옷 입으시고
눈보다 더욱 흰
그 옛날 물위를 걸으시던
강줄기도 얼어
오늘은
수정의 빙판 걸으시네
울고 싶어라
머리칼도 곤두서는
율연(慄然)한 추위에
물과 땅의 모든 깊은 곳으로부터
보혈을 섞어 빚은
새 봄의 혈액을
한 없이 자아 올리시는
설일(雪日)의 주님
겨울 잠 / 박목월
천장 구멍에서 쥐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두 개의 수염이 짝 뻗은
쪼붓하고 조그맣고 놀란 얼굴
쩡쩡 얼음이 어는 밤
얼음 위에 바싹바싹 달빛이
부서지는 밤
오오 추워라
아랫목 이불 속에 우리 아기가
고개를 푹 파묻었다
방에는
일렁일렁 흔들리는 그림자
아직도 아버지는
글을 쓰시는데
저절로 전등이 흔들리는 밤
천장 구석에 쥐가
쥐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새까만 두 눈이 또록한
쪼봇하고 조그많고 놀란 얼굴
오오, 추워라
찡 울린 저 소리는
추위에 날무대가리가 터진게지
추위에 독이 갈라진 게지
새끼 있는 구멍으로
어서가 자거라
초겨울 / 도종환
올해도 갈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111>
겨울나그네 / 김재진
비오는 밤 편지를 쓴다.
키보드 두드리는 전자 우편 아닌
만년필로 써나가는 고전적인 노동,
노동하듯 나는 네게
힘들여
사랑한다는 한 마디 하고 싶다.
사랑한다.
잘 못 걸려온 전화처럼 수화기 내려놓으며
나 이제 너를 향해
한 통의 전화조차 할 수 없지만.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려오는 네 음성 듣고서도 아무 말 할 수 없지만,
바깥에는 비 내리고
나는 지금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처음 본 지붕과 낯선 길들
끈질기게 따라온 절망을 버리기 위해 나는
정류장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쉴 새 없이 물건을 사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말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듯
혼자 있는 방에서도 지껄였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말을 하고,
아무도 읽어주는 이 없는 글을 썼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듯 확인하는 일,
한때 네가 확인하던 내 마음처럼
두드리고 만져보는 일,
눈 대신 바깥에는 비 내리고
아무 것도 더 확인할 것 없는 너를 향해 나는
쓰고는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
전화조차 할 수 없는 너,
사랑한다는 말이 죄가 되는 너,
나는 너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
겨울강 / 도종환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얼음 속에 갇힌 빈 배같은 그대를 남겨 두고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굽이굽이 강길을 걷는다
그대와 함께 걷던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어
새벽의 바다에 이르렀음을 끝까지 믿기로 한다
내가 이 길에서 끝내 쓰러진 뒤에라도
얼음이 풀리면 그대 빈 배만으로도 내게 와다오
햇살같은 넋 하나 남겼다 그대 뱃전을 붙들고 가거나
언 눈물 몇 올 강가에 두었다 그대 물살과 함께 가리라
겨울밤 / 복효근
감나무 끝에는 감알이 백서른 두 개
그 위엔 별이 서말 닷 되
고것들을 이부자리 속에 담아와
맑은 잠 속에
내 눈은 저 숲가에 궁구는 낙엽 하나에까지도 다녀오고
겨울은 고것들의 이야기까지도 다 살아도
밤이 길었다
겨울밤 /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닭이라고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겨울 저녁 서산에서 / 황동규
어른대던 사람들 둑에서 내려가고
한참 만에 사람 하나가 새로 올라간다
하늘과 땅을 가르고 있던 금 천천히 풀어지고
언제부터인가 눈이 자꾸
안 보이는 것을 찾고 있다
바티칸이 감추어 두었다
이따금 꺼내 보여주는 미켈란젤로 그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 얼굴의 눈이
열심히 미켈란젤로를 찾는 그런 겨울 저녁
눈 친 벌판을 둘러보는 동박새의 눈
한 점 두 점 눈발이 시작되다
빗방울이 되어 날기도 하는
그런 저녁
가창오리 몇 마리 날아올라 허공을 휘돌다 사라진다
김용배의 설장구, 그 시원한 끄트머리!
빗방울 몇이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손사래를 친다
지금 이곳이 지구 속인가 밖인가?
생각하다 말고 바람이 불고 있다
겨울강 두물머리 / 나상국
한 무리의 행락객 철새떼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발자국마저도 휑한 두물머리
사백 년의 나이에도
거칠게 불타오른 느티나무의 열정
한 잎 나뭇잎으로 힘없이 떨어지고
모로 두러 누운 색바랜 풀들이
너을 너을 춤추던 쓸쓸한 강둑
강한 비바람이 몰려왔다가
스스로 몸을 낮추어
한 바퀴 돌아보고
에둘러 떠나간 두물머리
노만 덩그러니 남겨진 배 한 척
사공 잃은 황포돛배
새벽 안개에 갇혀
쨍쨍 강울음 소리에
머리채를 낚아채인듯
무릎 끓는다
금강산 골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북한강
태백산 검룡소를 힘차게 박차고 발원한 남한강
처녀 총각 만나듯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깊은 포옹으로 한몸이 되어 흐른다.
겨울강 / 이채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흘러
이제 차가운 겨울강이 되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
추위는 몸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는 것이라고
겨울강은 제 가슴도 보이지 않고
저 강물 소리없이 깊어가듯
당신과 나도 그렇게 꿈을 꾸며
하루 하루 깊어가는 것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송이 만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시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강바람 따뜻한 날
한마리 새가 분명 날아 올 것이라고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눈물을 모두 제 가슴에 가두고
겨울강은 유달리 말이 없다
겨울강에서 /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다소곳한 귀일 뿐
겨울, 동강 / 서원동
문산나루 질퍽한 삼들
어라연 휘돌아 돌며 숨차 헐떡거리다
얼음짱 되어 문득 발걸음 멈춰 선곳
겨울 동강은
지친 몸 기대 술 곳초차 없이
삭막하다
산잠승들 뛰놀던 협곡 사이로
자갈톱 스쳐온 찬바람만
길게 한숨소리 내뿜고 있다
아무도 없다
앙상하고 고즈넉하다
응고된 피딱지인 듯
여기저기 나뒹구는 녹슨 깡통들
넝마 되어 펄럭대는 폐비닐 조각들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숨겨진 상처 마냥 한없이 삐걱거릴 뿐
겨울 동강은
이빨 빠진 늙은이가 뜯어먹다 남긴
풀빵처럼 곳곳에서 찐득거린다
겨울강가에서 겨울바람을 잡으며 / 정세일
겨울이 만든 강얼음위에 네모나게
얼음을 잘라 그 위에 사다리를 놓습니다.
차거운 물속에다 그믈을 쳐놓고
삼촌이 대나무 삼지창으로
강 바닥에 엎드려있는 겨울강을 잡고 있습니다.
큰 나무로 돌을 살짝 옆으로 비키면
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옵니다.
대나무에 동그랗게 철사를 말아 만든
뜰채로 고기를 잡아 노란 양동이에 넣습니다.
잡혀지는 고기는 노란양동이속에 퍼뜩거립니다.
양동이속이 너무좁아 고기들이 업어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동그랗게 모여서서 겨울강을 잡는 구경을 합니다.
겨울강을 잡는 것은 기나긴 겨울바람을 잡는 것입니다.
겨울강 / 김세영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무성하게 출렁이는
바람의 치마 밑으로
때로는 춤추며
달려가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앙상하게 얼어붙은
바람의 고샅 밑으로
때로는 포복하며
웅크리고 걸어가면서
등허리의 긴 상처를
달빛으로 꿰맬 때만
살얼음 덮인 알몸을 보일뿐
얼음 비늘의 황톳빛 잉어들이
바다의 도마 위에 지친 몸을 누이고
파도의 칼날이 잘게 다져서
바닷물 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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