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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관한 시모음<5> [12월 시] [겨울 시] [겨울강 시] [겨울나무 시]시모음 2022. 12. 14. 16:33
겨울에 관한 시모음<5> [12월 시] [겨울 시] [겨울강 시] [겨울나무 시]
겨울강의 나 / 김찬일
겨울로 가는 그 강가 걸어갔을 때
물새 울음에 섞인 내 생애 지난날
겨울강으로 흘러가는 것이
눈에 보였네
목말랐던 사랑도 갈꽃처럼 하얗게
흔들리던 꿈도
강 안개였음을 그 날 알았네
십리 갈밭에 서서 보면
멀리 저 멀리 걸어 온 길들이
노을에 물들어 지워지고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강물 소리에 젖어 겨울강으로
흘러가는 나를 보았네.
겨울강 / 하재봉
해가 진 뒤 그대는
바람의 손을 잡고 안개 속으로 말달려가고
나무 그늘 아래 빈 몸으로 앉아 있는 내 귓가에선
무수히 작은 눈물로 부서지는 강물소리
겨울 강물소리
저물녘엔 강안의 갈대숲마저 깊숙이 가라앉히는
바라보면 즈믄 달이 알알이 맺혀 있는 것을
강이 처음 시작한다는 설산의 상류에서
내 천상의 도끼날로 모질게 마음 가다듬고
붉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물어 던지우니
허리에 구름 두르고 삼림 속으로
걸어들어가 석달열흘 가부좌틀고 기다려도
도무지 잠들지 않던 그대의 산에서
그대의 강으로 채 피다만 눈꽃 같은
내 사랑이 흘러간다
맑은 살결 부비며 아프게
산 밑둥이를 적시기도 하는, 지난 가을
그대 손끝에서 영글던 즈믄 달도 데불고
세상의 눈물 위를 지나 보이지 않는 꿈 곁도 지나
어디서 다다를지 흐르는 어둠 위에
나는 또 무엇을 버려야 하나
오늘도 그대는 안개 덮인 강 저편에 나가 있고
나는 발목에 피먹은 이슬 적시며
갈대숲 걸어걸어 이렇게
눈 먼 강물 앞에 다시 섰다
겨울강 / 한상숙
어머니의 치마자락 붙들고
철부지는 굶주렸던 욕심을 채우려
떼를 쓰고 있었다
마음처럼 해 줄수 없었던
부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얼음처럼 단단한 응어리 안고 자랐다
깊이 숨어있던 그리움 피어오르고
옷속으로 찬바람 스며들어
소름이 돋는 겨울
단단하게 감추어진 사랑속으로
어머니의 강이 흐르고
아버지의 강이 흐르는것을 알았다
얼음장 밑으로 강이 흐르는것을
확인으로 알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어른이 된 후로 느낌으로 알수가 있었다.
겨울강 / 최원정
쪽빛 하늘이 얼비치는
저 차운 곳에
헤일 수 없는 마음 토해 놓으면
몽그락몽그락
피어오르는 물안개 사이로
알싸한 그리움만 더해가는
가슴 시린 강
겨울강2 / 김민홍
이젠 떠나야 하리.
바람 불 때마다
뼈만 남아 잠시
흔들리는 겨울강.
묵묵히,
묵묵함도 버리고
어둡게 파묻던
네 얼굴도 버리고
내가 껴안은
시간의 고리들도 풀고
드디어 돌아갈 길마저 지우고
고립 되어야 하리.
겨울강1 / 김민홍
너의 얼굴에 눈물이 마르고
가을이 간다.
인연의 마지막 숨들을 거두어
긴 겨울울 준비하는들판.
내밀히 죽음의 싹들을 틔우고
지남 여름은
언제나 격열했다
폭양의 흔적들 희미 해지며
무모했음.허나
살았음을 일깨우고
심연으로 심연으로
옷을 벗는 겨울강.
왜 불안 했던가.
얼굴 시리게 바람은
미열 앓던 기억들만 거느리고
왜 나는
늘 배반을 예감했던가.
사는 일은
꿈을 꾸는 일이라고
너는 왜 말했던가
들판과 발정난 都市 사이에서
끝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며
겨우 당도한 겨울강
관절들만 낡아 가고
내륙 깊숙이 안개만 깊어진다.
겨울강 4 / 권경업
조개골
쌓인 눈 위로 오솔길 돋으면
흐르고, 흘러가고 싶다
아직은 시린 그대 품에
풍덩 뛰어들어 함께 가고 싶다
가다가 다리쉼할 어느 강나루
꽃그늘 한가한 주막 평상
곡차 몇 사발 청하고
그대 잔에 복사꽃 띄워, 권커니 자커니
쉬 가는 봄날을 노래하리니
정처 없을 물길
나를 품고 가달라며 졸라대지만
일없다 휘휘 손 저어
붙잡고 부여잡는 산자락 뿌리치고
물굽이 돌아보는 것도 잠시
그대 해맑은 모습으로 떠나겠지만
겨울강 3 / 권경업
얼음장에 묻은 가슴
쓰라린 기억으로 머무르지 마라
삶이란,
흔들리며 출렁이며 흘러가는 것
흘러가며 더러는 아파하는 것
새벽안개 피는 여울목, 때로는
소리 낮춰 울먹이기도 하는
우수(雨水)에 젖은 강이
언 몸을 깨트리며 간다.
겨울강 2 / 권경업
네가 얼어붙은 것은
머무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흘러가기 싫어서도 아니다
그저, 출렁이고 흔들리는
자신이 싫어서다
때론, 소리 낮춰 울던
여울목의 그 쓰라림을
바닥까지 말갛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때문이다
강물은 혼자 있을 때만 언다.
겨울강 3 / 김희경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허물어져도 좋았을 친구여
칼바람에 빛나던 자존
그건 성역이었다
너의 비명은 내 뼈마디를 흔들고
너의 눈물은 내 살을 적신다
언제까지나 꿈쩍 않으리라던
예감은 빗나갔다
어쩌면 예고된 불청객의 방문을
그처럼 쉽사리 맞아들릴 줄 알았더면
애초에 널 사랑하지도 않았으리
너의 얼굴을 기억하지도 않았으리
그러나 이제
헐거워진 몸 추스리며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까닭을
너는 밝혀야 하리 분명히.
겨울강 / 김지헌
눈앞이 흐려지고
병든 아버지의 육신이
묘지 뒤로 사라진다
말없이 다가와
침묵으로 사라진
아버지의 옷자락
겨울강은
여위어 반쪽이 된
그 분 모습
내 유년의 기억 속에
절절한 그리움
겨울강 / 정군수
검푸른 가슴을 열어놓고
겨울밤을 기다리는 강물은
차가움이 아니다
파도가 사나울수록 깊어지는 강물
검은 밤이 물어뜯는 시간에도
갈대숲의 얼음을 밀치고
겨울철새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겨울강물은 사나움이 아니다
강둑을 몰아치는 바람
차가울수록 철새의 발가락
피 더욱 맑아져
더워지는 가슴이
철새들이 뿌려놓은 겨울이야기들을
모으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숨죽이며 흐르는 저 겨울강이
봄이 오면 어떤 모습으로 넘쳐흐르는가를
넘쳐흘러 결빙의 대지를 적시는가를
겨울강에서 / 김선태
1.
소리가 죽고 있었다
소리가 죽어
거스름 없는 강물로 흐르고 있었다
꿈도 얼어붙고 있었다
꿈도 얼어붙어
깊이 모를 바닥에 잠들고 있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눈이 시린 겨울의
어제 그리고 오늘의 한복판을
강물은 엎드려 숨쉬는 침묵이었다
강물은 길게 누워 뒤척이는 아픔이었다
2.
하류로 흐르는 물위에 캄캄한 하늘
이름 모를 풀잎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몸져누운 강의 하류를 다독이며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따라와 하얗게 부서지던 진실이 있었다
강 기슭엔 아직 버릴 수 없는 꿈들이
어깨동무하며 뛰놀고 있었다
일어서면 넘어지는 절망과
넘어지면 다시 겨운 허리를 펴는 어깨 위
무수히 쌓이는 비명이 있었다
3.
어두워가는 저녁 강물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쓰다 버린 말들이 하얗게 빠져 죽고 있었다
낮게 엎드린 강 건너 마을의 불빛들이
제각기 물에 젖은 얼굴을 닦으며
강 어귀로 숨죽여 건너오고 있었다
무서운 공허로 출렁이는 갈대밭을 헤치며
쓸쓸한 노래를 부르는 바람소리
오랜 상처의 세월을 읽어 내리고 있었다
밤 깊어 눈발은 더욱 거칠어지고
어디선가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이따금씩
이를 악문 얼음장들이 깨어지는 소릴
강둑에 마른 풀잎들이
일제이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4.
슬픔이 밀려와
또 다른 슬픔과 만나 수런대는 하류의 다리 아래
핏줄이 하나이듯
하나의 슬픔을 이루어 흘러갈 수 없을까
상류와 하류가 만나지 못하는 강
미움이 미움으로 되돌아 강둑에 부서지고
사랑이 사랑으로 얼싸 안고 출렁이지 못하는 저
겨울강의 캄캄한 자유와 사랑
그러나 손을 내밀어 강심을 더듬어 보면
돌연 內省의 깊이로 눈 떠 있는 강
하여, 나는 볼 것이다
거대한 슬픔의 꼬리를 기일게 늘어뜨린 채
오늘도 숨죽이며 흐르는 저 겨울강이
봄이 오면 어떤 모습으로 넘쳐흐르는가를
넘쳐흘러 결빙의 대지를 적시는가를
겨울강 / 김남조
겨울 강은 결빙으로
가슴 닫은 지 오래,
강면엔 얼음이불이
이음새 없이 한 자락으로 덮이고
누군가
빙설의 전 중량을
어깨에 둘러멘 분
숨어 계시어
강산 아픈 곳에
진맥의 손을 얹으심을
정녕
누구신가 누구신가
깊이 심장을 감추셔도
그분 인기척 알듯싶어
밤에도 잠자지 않으시는
초능력의 깊은 사랑
알 듯만 싶어
하여
그 앞에 굴복하여
평생의 어른으로 섬기고 싶은
신비한 그분의
표현 못할 인기척을
나는 역력히
알 듯만 싶어
겨울강 / 한이나
저 강의 쪼개짐이 정선 길 같다
쩡,쩡,쩡, 큰 울음이
얼음 한복판에 꾸 불 길을 낸다
느린 세마치 장단을 늘였다 줄였다,
정선 아라리 길 길게 풀려 나간다
얼음장 밑으로 밑으로 물소리
삶의 막장 긴장하여 애 터지는 소리
겨울강이 울며 정선 길 간다
겨울강 / 구재기
강물은 겉으로
제 자리에 머물 뿐이다
강물은, 또, 속으로
제 흐름을 지킬 뿐이다
살아 있는 슬픔아
결코 아픔을 보이지 말라
강물은 제 자리에서 흘러
제 가슴에 고이게 할 뿐이어니
겨울강 / 강만
따뜻한 등불 하나 없다
겨울의 복판에 누워버린 강
가슴의 빈 공간에서
한떼의 청둥오리들이 몰려가
강을 쫀다
으스러지는 적막 위에
강이 쏟아내는
허무의 피
세상이 하얗게 젖는다
이 캄캄한 우주의 한 끝에서
만 년이 걸려도 닿지 못할 저 끝으로
꽃잎처럼 떠
나는 걷는다.
겨울강 / 이종화
이 밤도 하얗게
돌아누운 달빛,
얼어붙은 발등에
떠나지 못한 갈대들의
마른 한숨소리,
지나가던 바람은
제가 뭔데,
모든 것을 차갑게
질책하는지...
지나가는 기러기떼
흉을 보나,
빙판위에 미끄러지네,
하얀 울음소리만
겨울나무의 독백 / 정연복
떨칠 것 모두 떨치고
텅 빈 몸으로 우뚝 서리
긴긴 추운 겨울이
혹독한 시련이라 할지라도
불평하지 않으리
끝내 쓰러지지 않으리
매서운 칼바람도 폭설도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 안으리.
희망이 있는 고통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는 것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생명은 더욱 깊고 견고해지는 것
연초록 새순이 돋는 그 날을 위해
희망의 불꽃을 피우리.
겨울 나무 / 강현호
아무리 추운 날도
빈 나뭇가지마다
바람들이 몰려와 논다
동네 아이들처럼 재잘대며
앙상한 나무의 팔뚝에도 매달려
신나게 그네를 뛰는 겨울 바람
그래서
겨울 나무는 심심하지 않다.
겨울나무의 꿈 / 윤보영눈을 밟고 선
저 겨울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살면서
그리워 가슴 저미는
나 처럼
꽃피는 봄을 미리
꿈꾸고 있는지 몰라
봄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겨울나무 / 이재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더욱 단단한 겨울나무
겨울나무 / 정연복매서운 한파 몰아쳐
세상이 꽁꽁 얼어붙고
거리의 사람들
종종걸음을 치는데도
빈 가지들뿐인
알몸의 겨울나무들
참 의연한 모습이다
꿈쩍없이 곧게 서 있다.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까지는
어차피 견뎌야 할
혹독한 시련이라면
끝내 견디리라
끝끝내 참아내고 말겠다는
비장한 결의 하나로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나무들.
겨울나무 /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있는
흠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버릴 때
마음도 떼어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겨울나무에게 / 권달웅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귀를 자르겠다.
사나운 바람을
듣지 못하도록,
눈이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혀를 자르겠다.
모진 추위를
말하지 못하도록,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차단하겠다.
고통받고 살아가는
들어도 침묵하고 살아가는
추운 세상을
네가 알지 못하도록,겨울나무 / 복효근
꽃눈은 꽃의 자세로
잎눈은 잎의 자세로
손을 모으고
칼바람 추위 속에
온전히 저를 들이밀고 서 있네.
나무는
잠들면 안 된다고
눈감으면 죽는다고
바람이 들려주는
회초리를 맞으며
낮게 읊조리네.
두타의 수도승이었을까
얼음 맺힌 눈마다 별을 담고서
나무는 높고 또 맑게
더 서늘하게 눈뜨고 있네.
두타(頭陀)-산야를 떠돌면서 빌어먹고 노숙하며
온갖 쓰라림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불도를 닦음,
또는 그런 수행을 하는 중을 뜻한다.
미루나무의 겨울나기 / 김한백
곁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나는 것
저 나무를 못난 생이라 누군가 말한다
그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질긴 생명력을 거친 손에 움켜쥐고 추위를 견딘다
뼈를 드러내며 죽은 것같이 위장하지만
잎이 떠난 자리를 하소연하듯 별을 매달고 있다
허전한 마음이 새끼 잃은 아비 고라니 눈빛인
저 미루나무
속이 영 비어 있는 것 같아도
밤알같이 응집한 채 희망 틔우고 햇살 모아 군불 피운다
여름의 아린 기억이 거름이 되었고
장대비가 회초리가 되었고
회오리바람이 죽비가 된 미루나무의 늦가을
기저에 꽉 들어차
아파도 보통 아픈 것이 아닐 법한데,
수액이 얼기 전
한 톨의 수혈마저 다 내어주고도 꼿꼿한 저 나무 곁에서
늙은 아비가
눈 내린 옷 털어내고 문장 밖으로 걸어 나온다
소복이 쌓일 고봉밥을 덜어 줄 생각으로
미소 짓는 저 나무 곁가지
거듭나는 겨울 오기도 전에 벌써 반짝거리며
우주를 횡단하고 있다
나목(裸木) / 정연복
봄, 여름, 가을
잎새들 무성한
찬란한 세 계절에는
스치는 바람에도 뒤척이며
몸살을 앓더니
겨울의 문턱에서
그리도 빛나던 잎새들
털어 내고서는
생명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너
떨칠 것 미련 없이 떨치고
이제 생명의 본질만 남아
칼바람에도 미동(微動) 없이
의연한 모습의
오! 너의 거룩한 생애
겨울 나무 / 홍수희
하릴없이 눈 내리는 이 벌판에
나 이대로 서 있겠네
고독이 그대로 사랑이 되기까지
어둠이 그대로 별이 되기까지
침묵이 그대로 노래가 되기까지
수천의 고독과
수천의 어둠과
수천의 기나긴 침묵이 모여
그리운 그대의 얼굴이 되기까지
나 여기
있었고 있었던 그대로 서 있겠네
겨울 나무야 / 용혜원
생생 불어대는
찬바람이
심장의 온도를 떨어뜨려
오들오들 떨고
서 있는 내 앞에
보초병마냥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겨울 나무야
여름날
찬란한 햇살 아래
푸르른 옷을 입고
자태를 마음껏 뽐내더니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칼질하는
한겨울에도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목이 되어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구나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우리가 연인 사이였다면
난 반하여
청혼하고 말았을 것이다
겨울나무 / 김승동
혼자서 쳐다보는 하늘이 왜 그리 시린지
소매 끝에 바람 한 점 묻지 않아도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눈가에 마른 물기가 반짝이는지
어둠이 하얗게 바랜 아침
찢어진 편지지를 날리듯 흩어지는 눈발아래
왜 그렇게 울음이 나오는지
땅 속 깊이 다리를 묻고 서있어도
어찌하여 온 몸이 비틀거리는지
밤을 지샌 귀앓이에 세상 인연을 끊고
아픔을 삭여 가지 끝에 보내 보지만
어찌 속껍질마저
차가운 불면에 빠져드는지
우두커니 서서
목젖이 아프도록 바람을 삼키다가
삭정이를 쪼아대던 딱새 마저 떠나간 날
서럽도록 적막한 이 낯선 사실이
부디 사실이 아니었음을
겨울나무의 시 / 홍수희
내게는
최소한의 수분만 남겨놓습니다
흰눈이 내 어깨에 쌓이고 쌓여
당신 없는 어둠 하얗게 견디도록
따스한 위로의 한 말씀 안 주셔도
침묵 속의 기약을 읽을 수 있도록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술잔처럼
늘 목마르고 무작정 슬픈 일이었지만
겨울이 깊으면 깊을수록
내 것으로 내가 얼어붙지 않기 위하여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뿌리 아래 조용히 흘러보냅니다
이제 내가 당신의 빈 잔을 채워드릴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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