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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 관한 시모음 <1> [동지 시]시모음 2022. 12. 22. 07:38
동지 팥죽 / 이문조
화산지대
팥죽이 끓어 오른다
뽀글뽀글
새하얀 새알만
퐁당 빠뜨리면
맛있는 팥죽이 되겠지
머리에
흰 수건 두른
어머니
매운 연기에 눈물 연신 훔치며
뽀글뽀글 동지 팥죽을 끓이신다.
동천(冬天) / 서정주(未堂)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지 (冬至) / 김옥자
첫눈이 펑펑 내리는 동짓날
마음은 이미
고향 언덕으로 달려가
포근한 어머님 품에 안긴 듯
깊은 밤 참새처럼 지저귀며
구들목에 모여 앉아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함께 즐겨먹던 팥죽의 별미
천지 신명님께 조상님에게
자식들의 앞길에
식구들의 건강을 사업의 번창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생각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이 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의 미래에 호화로운 삶보다
소박한 꿈을 키우고 싶어요
동지 팥죽에 빛인 삶 / 하영순
김치에 된장찌개
평생을 길 드려진 혀
어쩌다 한번 맛본 외식
아련한 미각도 한 두 번
느끼하고 느글거려
담백하고 깔끔한 김치 맛을 돌아본다
외식에 의존 하는
직장 생활
때만 되면 어찌 괴롭지 않으리
보글보글 끓는 된장 냄새
사랑이 있고
너그러움이 있는 아늑한 주방
그 속에서
몇 해를 보냈던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두 손 모아
참회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알을 비빈다
동지섣달 / 한재만
무성영화의 푸른 필름들이 먼저
하얀 달빛에 빼앗기고 있어요
타다 남은 붉은 노을 빛이 길을 잃고
벌거벗은 기억의 살 몇 점 마저
길섶 질경이의 뿌리 아래에서
방황해요, 얼굴 없는 바람의 검이 쏜살같이
우리들의 건강한 입맞춤을 가르고
아버지의 아버지 적 풍장이 입을 벌려
한 점 점액을 강탈해 가요
칼바람을 토해 내며
거구로 일어서는 저 어둠의 수렁,
봄은 아직도 기별이 없어
동지 / 김상현1
새벽녘까지 잠이 없는 밤엔
찬 서리 내리는 뜨락에 나와
새벽달 보듯 하려고
남겨둔 홍시를
무슨 원한이 깊기로
저리도 찍고, 찢고, 헤집어서
내장만 걸어두었는지
까치소리 요란한 아침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섣달 감나무 피투성이 듯
나는 또 뉘 마음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느라 뒤척이는 밤이면
까치소리 마냥 요란한 나날들에 대한
참회가 깊다.
동지팥죽 / 이영균
저 달은 해마다 동짓날 밤
팥죽 싣고 긴 은하수강 건너간다네
애 동지엔
팥죽을 쑤지 않아
불빛 죽여 숨어 가느라 밤이 어둡고
중 동지엔
죽 쑤어 사방 나누느라
불 밝혀 가느라 은하수 길 밝고
노 동지엔
죽을 많이 쑤어 차고 넘쳐
달빛 가려져 은하수 건너기 캄캄하다네
동짓날 죽었다던 망나니 역신
팥죽 먹고 오늘 밤만 피하고 나면
일 년 동안 무병 한다네
작년엔 먹기 싫어
새알심이 한 알 남겼는데
한살 더 먹고
역신 쫓아버리려면
올 노 동지엔
새알심이 두 알 더 먹어야겠네
가보지 않으려는가 / 권경업
지리산서부터 한달여를 걸어왔는데도 능선엔 사람 그림자
본 일이 없고 노루 산토끼 오소리 너구리 산돼지들이
까마귀 부엉이 방울새 박새떼와 어울려 놀고 있는
반도의 등줄기를
동지여
그대 가보지 않으려는가
능선 아래 자락과 골에는
동네마다 때맞추어 저녁 연기 피워올리고
거기 동지와 나의 얼굴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어매와 아배 이웃과 친구들이 도란도란 정겹게 지내는 곳
우리 손잡고 가보지 않으려는가
아마 북풍이 멎어들 때쯤이면 우리는 소백산 국망봉을 지나
태백을 넘고 두타 청옥이 보석처럼 빛나는 봄능선에서
창랑주 먼 바다로부터 던져 올려지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으리라
붉은 해 더 밝게 뜨는 아침에 통일을 기원하면서
흰머리뫼까지 가보지 않으려는가
설령 그것이 꿈일지언정
우리 가보지 않으려는가
冬至의 詩 / 서정주
시베리아의
카츄샤 마슬로봐의
二萬名分의
남긴
호흡 같은 날.
길뜬 지 달포가 넘는 내 石榴 가지의 루비들은
얼마 전 無欲 色界의 그 친정에 들러
골방 錦枕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고,
간 봄의 내 草原長堤의 쑥대밭의 翡翠들은
몇 달을 가서 쉬고
無雲天에서 다시 내려올 채비들을 하느라고
수런거려 쌓는다.
아아 내 키만큼한 翡翠의 空閨.
아아 내 아내의 키만큼한 비취의 空閨.
친정 간 내 아내와 남은 내 키만큼한 翡翠의 空閨.
아아 내 아들의 키만큼한 루비의 空閨.
아아 내 며느리의 키만큼한 루비의 空閨.
친정 간 내 며느리와 남은 내 아들의 키만큼한 루비의 空閨.
돋아날 민들레의 將來의 肉身을 재고 있는 대신
千里의 冬至旅行을 나도 다니어 오리.
冬至나물 / 김시태
小寒 지나 이맘때쯤
흰 눈이 쌓일 때면
그 길고 가느단 꽃대가
곧게 곧게 솟아올라
노오란 꽃 피우는
冬至나물!
뭐 그리 이쁠 것도
탐스럴 것도 없지만,
그래도 겨울 한철
우리 고장 식탁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別味.
어쩌면, 내 촌스런 사랑도
바로 그 冬至나물 김치의
그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영영 잊지 못하는 것일까.
冬至 / 김석송
茶禮는 마치었다
우리는 팟죽 상을 바닷다
家族一同이……
입울 속에서부터
팟죽:노래를 부르던
일곱 살 먹은 어린
누의동생까지
그러나 未久에
어린 누의동생은
수저를 노코
우두커니 안젓다-
할머니가 보시고
「아가 왜 안 먹니?」
하고 부르시엇다
「한 그릇 다 먹으면
한 살 더 먹으니까……」
어린 동생은 이러케 부르지젓다
우리는 모다 크게 웃엇다
그리고 팟죽은
마츰내 不足했다
동지(冬至) / 유창섭
긴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저 끝에는
늘 푸른 바다에서 빨간 태양이
솟아 오르고 있을까요
투명한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앞뒤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 그 터무니 없는
붙잡아 둘 수 없는 생각들 쫓다가
석 잠인지 넉 잠인지 자다가 일어나
다시 환생하는
하얀 햇살 안고 들어가
문을 닫은 숱한 사연의 고치들
수북이 쌓아놓고
갈 길 찾아낼 수 있기를
빌면서
그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눈 발, 어둠으로 쏟아져도
아무데에나 닿을 수 있는
하얀 길이 보이는 밤입니다
동지冬至ㅅ 달 기나긴 밤을-시집읽기17 황진이 / 한명희
언니 언니 진이 언니
오늘따라 밤이 왜 이리 길으우
울리지도 않는 전화통
부수지도 못하고 붙어 서 있수
이 뒤숭숭한 심사
아무리 날씨 탓일까
허기사 추적추적 비오는 날은
생각이 갑절로 많다우
하고픈 마음이야
애써 끊어낸다지만
오늘 일당 공친 건 어쩌우
현지처 노릇하는 언니 팔자
부럽수
동지밤 / 박남준
개울물 소리 저리 시리도록 푸르른가
동지 까만 밤 부쩍이나 귀는 밝아져서
산 아랫마을 뉘 집 개가 짖는다 먼 장닭이 운다
눈이 오는가 누가 오는가
처마 끝 알전구 불을 밝혀두었나
심심한 날이 또 밝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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