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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 관한 시모음<2> [동지 시]시모음 2022. 12. 22. 08:33
冬天의 별 하나 / 양채영
미당의 동지 섣달 매서운 새는
冬天의 밤하늘을 비끼어 갔다
그 막막한 빈 자리에
아득한 별 하나
불덩이 같다가도
꽃덩이 같이 환한 별
별의 이름을 내가 지어줄까
뒤돌아보는 깊은 눈빛 같이
겨울밤 하늘의 먼먼 길
언제쯤 내게 와 닿을까
흰 눈발에 묻어서
자작나무숲에 와 내릴까.
자작나무숲에 와 내릴까.
동지행복 / 윤보영
동짓날은
밤의 길이가 제일 길잖아.
길어진 만큼
너를 생각하는 내 생각도
길어지겠지.
보고 싶은 마음에
고생은 하겠지만
고생한 만큼, 내 안의
널 만나는 행복도 늘어나겠지.
동짓날 / 정연복
한 해 중에 밤이
가장 긴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부터는
밤은 짧아지고 낮이
점점 더 길어지리.
생의 어두운 밤도
그렇게 가는 것
흘러 흘러서 가는
세상살이에
끝없는 어둠이나
슬픔 같은 것은 없어
내 가슴속 어둠이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어둠은 내리막을 걷고
빛의 시간이 차츰 늘어나리.
코로나 19와 겨울밤 / 오애숙
모두들 기다리던
춘삼월 향그럼에
화사한 웃음속의
초청장 만든 들녘
나비는
환희 날개로
프러포즈 하건만
코로나 여파인해
맘의 문 닫은 채로
빚장을 걸어 잠귄
이웃의 그 추임새
긴 겨울
동지섣달을
슬그머니 문여네
동지섣달 어머니 / 최명운
동지섣달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호롱불은 꺼질 듯 기울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어머니 심지 같았습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밤
어머니는 다듬이 방망이로
心身을 다스렸습니다
정겹게 들리다가 갑자기 빨라지며
리듬과 박자를 맞추며 한을 달랬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쪼들림 때문에
부잣집 옷을 풀칠 다듬이질 해야
그 옛날엔 한 푼을 벌었으며
고구마나 감자가 주식이었으니
콩나물밥이나 무채 밥을 그것도 어쩌다
한 번 해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옛날 동지섣달 그때는
정말 눈이 많이 내린듯하고
계곡에서 부는 삭풍도
더 차갑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새벽녘 산골짜기 덫에서
산토끼 한 마리 잡아올 때는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한 어머니 심기도
활짝 갠 봄날이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밤
어느 곳 어디 추운 곳에서
또 다른 친구가
달을 보고나 있지 않을까요.
동지 다음날 /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밥은 굶지 않는가?
—아이들은 잘 크는가?
동짓날 밤이 오면 /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 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 짖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 새끼 꼬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간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동짓날을 기다리며 / 정민기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꿈속의 새 한 마리처럼
다가온 그녀는 동짓날에 태어났다
아침에 미역국 대신
동지팥죽을 먹을 그녀가
입가에 팥죽 미소를 묻히고
인사를 해줄 것만 같다
긴긴 동짓날 밤처럼 지루한 어둠은
모든 헛된 꿈을 버리고
이루어질 꿈만 꾸게 한다
그녀는 생일인 동짓날 전에 내 시집
한 권을 받으면 뒤표지부터 볼 것이다
그녀의 이름 석 자가
꿈처럼 뒤표지에 적힌 까닭이다
그녀의 생일인 동짓날을 기다리며
또 나는 긴긴밤에 태어날 시 한 편을 꿈꾼다
그녀만큼이나 따뜻한 그녀의 어머니
엄마의 베틀 / 하영순
내 어릴 때 어머니는
동지섣달 긴긴 밤 늘 물레를 자았지
솜 꼬치로 실을 뽑아 모아둔
무명 실
베를 날아 베틀에 걸어
한 올 한 올 역어 베를 짜서
우리 옷을 만들어 주셨지
우리는 호롱불 아래서
그 실로
양말도 짜고 장갑도 짜고
그러다가 나이론 양말이 나왔지
이것이 우리 삶의 역사
천년 섬유
무명이 요즘 다시 좋아 지면서
추억속의
어머니 베틀이 생각난다.
오늘은 동지冬至날 / 박노해
오늘은 동지冬至날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차가운 어둠에 얼어붙은 태양이
활기를 되찾아 봄이 시작되는 날
나는 눈 내리는 산길을 걸어
찢겨진 설해목 가지 하나를 들고 와
방안 빈 벽에 성탄절 트리를 세운다
그 죽은 생 나뭇가지에 오늘 이 지상의 춥
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걸어둔다
해가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것은 순환한다 절
정에 달한 음은 양을 위해 물러난다
오늘은 동지冬至날
신생의 태양이 다시 밝아오는 날
숨죽이고 억눌리고 죽어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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