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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에 관한 시모음<2>시 2022. 11. 5. 15:27
갈대 섰던 풍경 / 김춘수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 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속에서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다시 일어설 갈대를 위해 / 목필균
마른 갈대 울음소리 들었다.
강가 모래톱, 아우성치는 갈대는
하얗게 흩어져간 네 흔적 때문에
겨우내 남은 수액 다 말리며 울어대다가
어린 물새 둥지로만 남아있는 걸.
불을 질러라, 마른 갈대 숲에
메마른 가슴으로 불씨 하나 던져지면
미련도 도화선이 되어 봄볕에 모두 타버릴 것을.
잿더미로 남은 빈터, 물새마저 떠나버리고 나면
새순 밀고 올라올 또 다른 갈대가
다시 한 계절 시퍼렇게 고개 세우게,갈대꽃 / 공석진
갈대꽃
바람을 맞아
흔적없이 사라지면
빈자리에
이별을 재촉하는
석양이 진다
구석진 곳까지
장대비 쏟아져
서러움이 턱 밑까지 차올라
어느
꽃피는 날
눈물이 뿌려지면
그리움은
갈숲을
서성인다.
갈대밭에서 / 박재삼
갈대가 바람에 쓸려가는 소리
이 세상이 망하는
마지막 소리가 있다면
저런 것인가.
가을은 열매를 거두련만
쓰리고 아린
肝臟은 모조리
저승을 향하게 하고
준비한 소리인가.
마지막 다음에는
다시 또 처음이 있는
간단한 이치 앞에 서서
그 소슬한 바탕 앞에 서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점 모르게 하는
이 미칠 것 같은 청승의 한때.
갈대 숲에서 / 복효근
이것은
모지러진 가슴마다
부서지는 이성의 방언들을
하늘로
하늘로 흩어날리는
오랜 그리움의 상형문자다이렇게
뼈마디 무너지도록
흔들려야 하는 것은
한 오라기 실핏줄까지
흔들어야 하는 것은
뜨건 곳에 뿌리박은 그 까닭으로두드려도
두드려도 닫혀진
사람의 마을엔
사랑만 꽃잎지고
모로 돌아선 목숨들의
모질은 풍경을 위하여
죽도록 살고 싶은 날들을
가슴께엔 칼잎을 감추고하얗게 목이 쉰 발음기호
꽃잎으로 흩뿌리며
목이 기-인 그 까닭으로
또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조난신호처럼
이렇게 흔들어야 하는 것이다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를 위하여 / 강은교
아마 네가 흔들리는 건 하늘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키 큰 바람이 저 쪽에서 걸어올 때
있는 힘 다해 흔들리는 너연분홍 살껍질을 터뜨린 사랑 하나
주홍빛 손을 내밀고
뛰어오는 구나흔들리면서
그러나 결코 쓰러지지는 않으면서흔들리면서
그러나 결코 끝나지는 않으면서아, 가장 아름다운 수풀을
살 밑, 피 밑으로 들고 오는 너아마 네가 흔들리는 건
흔들리며 출렁이는 건
지금 마악 사랑이
분홍빛 손을 내밀었기 때문일 것이다갈대의 행복 / 노정혜
겨울 들녘을 지켜온 갈대
텅 빈 들녘이 외로울라
바람에 춤춘다
지조가 없다고
천대받는 갈대
나르는 새들이 심심할까
바람에 춤추는 갈대
봄이 오면
완전히 자신을 지워
새싹 밥이 된다
수고함을 몰라줘도
갈대는 행복하다
봄이 오면
새싹 아기에게
들녘을 부탁한다
겨울이 오면 찾아온다
갈대의 다짐
영원히
겨울 들녘의 지킴이
갈대는 행복하다.
갈대 / 이상식
갈대를 누가 줏대 없다 했던가
서로가 의지되어 꺾이지 않고
푸른 공간 화선지에 일필휘지로
주야삼경 지나도록 쓰고 또 읽기를
글씨공부 이토록 평생을
쉬지 않고 하지 않는가
갈대를 누가 연약하다 했던가
찾아드는 철새들 품에 안아 보듬고
넓은 시야 바라보며
강한 젖줄 이어가지 않는가
갈대를 누가 추하다 했던가
힘에 부쳐 한 세상 다할 즈음이면
가진 것 훌훌 벗어 내려놓고
백발 한 올 한 올 흩날리며
바람 따라 마음 따라
승천하는 모습 장엄하지 않는가
갈대밭에서 / 이양우(鯉洋雨)
허물없이 피어나서
허물로 가는 구려!
초록빛에 피어나서
하얗게 가시나니,
당신의 육신은
밤별의 영혼이되고
당신의 소리는
낮달의 꿈이 됩니다.
갈대 밭의 빗소리는
민중의 슬픔이며
당신의 뜰악을 겁탈하는 발길은
독재자의 폭거라 하지요.
노예가 몸부림을 치든
그 광장에, 형극의 울음소리,
외마디를 꺾어 절룩이는
짝 잃은 산 노루 고통,
혹사에 지친 허리로
구름재에 홀로 누워서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물결칩니다.
갈대는 갈대는
귀먹고 눈 멀은 갈대는
귀밋머리 매만지며
속삭여 울든 정들
참 사랑이 노쇠하여
흰 머리 어정어정 가는 노인네,
서낭길에 뜨는 햇살마저도
사그러질 듯 애처롭습니다갈대밭에서 / 김종제
바람에 쉽게 꺾어진다고
결코 외면하지 말아라
눈비에
굳세게 저항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고개 돌리지 말아라
흔들리면서 살아온
어머니의 가는 허리 같다
키 낮추면서 살아온
아버지의 헤진 무릎 같다
무엇 때문인지
묻지 않아도 알리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뿌리채 뽑혀나갈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냈으니
물 가까운 곳에 너희를 낳아
대를 이어
문패 하나 걸어놓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냐
그러니 너희들
폭풍우에도 매달려 있어라
눈보라에도 굴복하지 말아라
살아 남아서
하늘을, 땅을, 이 가을을
흔들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갈대가
어제의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오늘의 나와 당신이고
내일의 우리 아이들이다
내 삶이 온전하게 들어있으니
부둥켜안고 살겠다고
갈대밭으로 한참을 걸어간다
갈대 / 주응규
발그레하게 터지기 시작한
가을 햇살은 갈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게도 부산을 떨었나 보다
가을밤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빛 서리찬 설움 안고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는
가을날을 애잔하게 물들이고
갈 바람에 일렁이는
쓸쓸함과 외로움들은
그대의 섧은 울음에서 오는가 보다.
갈대 / 박정순
바람이 스치는 빈 들녘
온몸으로 흔들리는
마른 울음
바람에 묻어온
너의 향기가
내 방에 가득차는 날
아득하여라, 그 모습
나도 네 가슴에 얼굴 묻고
석달 안거로도 그치지 않을
울음 한번 울고 싶은데
작별의 손 흔드는
잠긴 목소리
안 녕
아~ 안 ~ 녀 ~엉
갈대 / 안광수
노을이 저편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리 때면 소슬바람
타고 머릿결을 휘날리며
나의 감춰진 모습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바람도 쉬고 싶은 곳
구름도 머물고 싶은 곳에
어여쁜 내 모습에 숨을
거두며 지켜보는 자리
삶의 의지에 강력한 햇볕처럼
너의 그리움 강인함을
너의 부드러운 모습에 소박함을
천하의 여인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이젠 알리고
세상을 누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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