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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가을에 관한 시모음<1>
    2022. 11. 2. 18:00

    늦가을의 저녁때 2 / 나태주

    마지막 저녁 햇빛 비쳐 빠안히 건너다 보이는

    저 건너 황토 언덕길로

    생선장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신가,

    늙수그레 시골 아낙네 한 사람

    함지 이고 가는 게 보인다.

    예닐곱 살쯤 되었음직한 계집애 하나

    그 아낙네 치마꼬리 잡고 따라가는 것도 보인다.

    강아지 한 마리 쫄래쫄래 뒤 따라 가는 것도 보인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사람 사는 재미가 뭐 별건가,

    생선장사 갔다간 저물어 돌아오기도 하고

    막내딸년 마중 나오기도 하고

    우리네 살림살이 가난해서 빡빡하고 옹색하긴 해도

    마음만은 아기자기 색동옷 입고 사는 사람들.

    늙수그레 내 어머니와

    안 낳을 걸 늦게 하나 낳아 좀 창피하구나,

    어머니 늘 그러시던 내 막내누이 같은 사람들 세상.

     

    늦가을 밤 / 용혜원

    가로등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

    늦가을 밤

    까맣게 칠해진 하늘에

    어설프게 떠오른

    별들의 눈빛이 작다

    어둠은 자꾸만

    더 짙게 파고드는데

    마음은 텅 빈 터널이 된다

    견디다 못해

    아직 떠나지 못한

    낙엽들이 쌓인 길을

    서성거리며 걸어가지만

    홀로 된 가을

    나도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아

    진한 커피라도 뜨겁게 마셔야겠다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늦가을을 제일로

    숨겨놓은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살아도 살아갈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과일을 다 가져가고

    비로소 그다음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혼자서

    다 바라보는

    저곳이

    영리가 사는 곳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못 살았지

     

    늦가을의 책갈피에서 / 신형건

     

    무심코 펼쳐본 책갈피에서 팔랑

    노랑나비처럼 은행잎 하나가 날아왔습니다

    그대였지요, 언젠가 그 날

    곱게 물든 이 은행잎을 건네준 이는

    그대 눈에 비쳤던 그 빛깔 그대로

    고이 간직하려고

    내 마음의 갈피에 살며시 끼워두었는데

    그 순간뿐, 금새 까맣게 잊고 말았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것들은

    처음 본 순간 쉽게 토해냈던 감탄사만큼이나

    또 그렇게 너무도 쉬이 잊혀지나 봅니다

    은행잎은 고치 속의 누에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참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보는 밝은 빛이 너무 눈부셔

    숨을 죽인채 내 손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 어느새 한 마리의 노랑나비로 살아나

    내 마음 속으로 날아듭니다

    그 빛깔 그대로

    이제 다시 내 마음의 갈피에 소중히 간직하렵니다

    그러나 맨 처음의 그 약속처럼

    영영 잊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섣불리 하지 않으렵니다

    늦가을 석양빛에 / 오애숙

     

    해거름의 들녘에서 하늘 시리게

    가을이 그리워 요동치는 심연에

    풍성한 날갯짓으로 가슴 벅차게

    외기러기로 남겨진 까닭이런가

     

    그 옛날 그대와 갈대밭 사이로

    석양빛에 첫사랑의 고백 피어

    오늘따라 오롯이 그리움 속에

    석양 낙조 물결로 일렁인 마음

     

    빛바랜 커튼 사이 세월 지나도

    고여든 잔잔한 호숫물 모양새로

    연한 파문 만들어 깊어가는 이밤

    그대 얼굴 가을 되어 아른거린다

     

    가을 길섶에 피는 들국화 향그럼

    어느 사이 내 가슴에 그대의 향기

    한 송이 시어가 심연에서 날개 쳐

    갈 하늘의 시린 가슴에 피어나요

     

    늦가을 비 / 박인걸

     

    늦가을 찬비가 내리면

    가슴 지층에 가득 고인다.

    그렇게 고인 빗물은

    오래전에 고인 빗물과 곶자왈이 되어

    이따금 밖으로 솟구친다.

     

    깊이 고인 빗물에는

    고운 추억이 分子로 떠돌고

    혹은 슬픈 粒子로 방황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은 와 만나

    가슴을 뒤흔들며 치솟아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빗물에 젖은 나뭇잎에 동정을 느끼며

    지층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바람이 없어도 한쪽으로 쏠리며

    그리움의 출처로 달려가고프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가을비는 그리움 병을 도지게 한다.

    늦가을 / 김행숙

     

    넘실넘실 춤추며 허수아비가

    풍경처럼 걸어온다

    밭고랑을 넘어 둔덕을 넘어

    거인처럼 걸어온다

     

    장마도 이기고

    태풍도 견디고

    지금은 늦은 가을

     

    어깨에 둘러맨

    북치며 장구치며

    어릿광대처럼 걸어온다

    꽹과리 치며 날라리 불며

    남사당패처럼 걸어온다

     

    늦가을 풍경 / 김상현

     

    슬픔이 옷을 벗어 슬픔에게 준다.

     

    늦가을 / 허윤정

     

    소실댁 살림처럼

    아기자기 하더니

     

    오늘은

    본댁 마님

    다녀 갔는지 

     

    風飛雹散

    이 늦가을 오후

    늦가을 / 한상숙

     

    여름내 숲속에서 속앓이하던
    머루는 까맣게 물든줄도 모르고,
    다람쥐만이 슬픈 사랑을 알고 위로하듯
    온몸으로 조심스레 덩굴을 쓰다듬는다.
    풀벌레 쉬어가던 들풀 잎사귀는
    추억을 안고 그 자리에서 빛바랜 사진처럼
    엷은 갈색으로 물들어있다.
    붉은 나뭇잎은 흙내음새 그리워
    앞다투어 떨어지고
    향긋한 모과향이 슬픈 가을을 지켜주는 가운데
    한 마리 까치는 감나무에 올라
    올 겨울 제밥 잊을새라,
    몇개 남은 감 제것 알리듯 부리로 쪼아본다.
    산수유는 잎이 물들기전보다 훨씬전에
    붉게 익었는데,
    주름 패인 할머니 한분이
    그 밑에서 세월을 막았던 손으로
    어린 아이 볼처럼 탱탱한 빨간 산수유를 줍고 있다 

     

    늦가을 애상(哀想) / 김덕성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그렇게 곱던 가을빛이 부서지며
    그 빛을 잃은 거리
     
    곱던 단풍도
    흐르는 시간 따라 감성을 잃고
    초라해 가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계절에 쫓아오는 그리움도
    짙은 색으로 누런색으로 변해가고
    살며시 찾아오는 불안감이
    마음 비에 젖는다
     
    깊어 가는 늦가을
    찬비에 축축히 젖어 그만
    먼 길 여행을 포기하고 불시착
    가을비에 애원하는 낙엽
    거친 숨결을 듣는다

    늦가을 / 박태강

     

    낟알쪼는 멧 비둘기

    날아 오르면

    가을거지후 텅빈들은 더욱 넓어

    맷비둘기 따라

    푸른하늘

    더욱 높아지고

    높이 솟은 감나무

    붉은 감

    눈으로 찾아드는데

    내마음

    옛님

    생각에

    외로운 논두렁 길

    혼자 걸으며

    사그락 사그락

    텅빈 넓은들

    내 마음

    쓸쓸히 붙잡네

     

    늦가을 바랭이 풀밭에서 / 한도훈

     

    늦가을 바랭이 풀밭에 앉아

    치마끈 입에 물고

    하늘을 향해

    헤벌쭉 웃어 보이는 여인

    바로 도솔천이다.

     

    어디서 왔는지 검은 개 한 마리

    여인 곁에 다가와 

    큰 귀 세우며 웃어대고

    곰비임비 구경꾼으로 모여드는 햇살

    검은 개꼬리에서 빛난다  

     

    쌈지공원을 만들다 만 터에

    한삼덩굴은 소나무 가지를 덮고

    무작정 꼭대기로 오르는데

    무슨 속 깊은 꿍꿍이라도 있는지

    쇠무릎은 무릎을 발발 떤다

     

    자주 달개비 머리에 꽂고

    아주 작은 물웅덩이에 얼굴을 비쳐보는

    여인의 눈에서

    자꾸만 헝클어지는 바랭이풀

    어디로 가버렸는지

    검은 개 대신

    늦가을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린다

    늦가을 풍경 / 김순진

     

    비포장 도로가에 줄지어 피었다 진 코스모스 빈 대공들이

    볏짚 지고 가는 주름 패인 농부를 향해

    스산히 손을 흔들며 남은 아양을 떨려 하고

     

    누덕누덕 낙엽을 기워 입은 소년은

    쓸쓸함을 주머니 속 불알 두 쪽같은

    호두 두 알로 빠드득 빠드득 늦가을을 이기고

     

    새 쫒던 뚫어진 밀짚모자의 외로운 허수아비는

    유행 지난 큰 카라의 찢어진 와이셔츠 차림으로

    벌판의 승냥이같은 바람에 항전하며 외다리로 서 있고

     

    여름내 참 먹던 콩밭둑 북나무 정자의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유선형 붉은 잎새는

    최후의 가을인 양 울먹이다 목매어 매달리고

     

    쥔 게으른 콩밭의 장렬하게 목 바친 수숫대는

    누군가 콩서리라도 해먹었는지 분노하여

    목 잘린 수탉처럼 피흘리며 떨고 있다.

     

    늦가을 3 / 윤순찬  

     

    긴긴 여름은 어디 있나.

    작열하던 태양의 도가니

    그 잿빛의 화장터에서

    살아 남은 자와

    눈을 뒤집고

    광폭의 거품을 뿜으며

    세상을 흔들던 광기와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갈숲을 지나는 아낙이

    득도할 시간

    갇힘 없이 풀어 줄 시간

    영원히 잠들어

    다시는 잠들지 않을 시간

    늦가을의 굴뚝 / 이원문
     
    바람 쓸쓸히
    첫서리에 시렵더니
    곱던 단풍 한 두잎
    산 꼭데기부터 벗겨진다
     
    아직은 낮은 단풍
    드러난 논 바닥
    이맘때쯤 벼 이삭 줍던 아이
    그 아이 홋껍떼기에 얼마나 추웠을까
     
    시려운 들녘 바람 그 아이 옷 속 파고 들고
    고무신에 붙은 흙 물에 빠진 발
    오늘도 그 아이 벼 이삭 줍고 있나
    아련히 시린 고향 저녁연기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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