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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 관한 시모음<7> [겨울 시] [겨울 나무 시]
    시모음 2022. 12. 18. 22:36

     

     

     

    겨울에 관한 시모음<7> [겨울 시] [겨울 나무 시]

     

    그해 겨울나무 / 박노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도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절대적이던 것은 무너져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 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굵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뿌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촉촉한 빛을 스스로 맹글며 키우고 있었다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에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겨울나무 / 김영래

     

    겨울나무

    매마른 가지마다

    겨울바람 불어와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그져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서

    수백년을 지켜보며

    당 당 하게 서있다

     

    흐르는 세월속에

    오늘도

    푸른 새싹을 꿈꾸며

    봄을기다린다

     

    마을입구에

    묵묵히 서있는

    져 나무는

     

    이제 잎이 무성 해질

    여름이 오면 그늘믿으로

    동네 사람 들이 모여들어

    한가로이 덕담을 나누리라

     

     

    겨울나무 / 오보영

     

    나 비록

    지금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볼품 없을지라도

    내겐

    희망이 있단다

    파릇한 새싹

    싱싱한 잎으로 단장을 해서

    기다리는 님께 기쁨을 주고

    풍성한 맘 안겨다줄

    꿈이 있단다

     

     

    겨울나무 / 김덕성

     

    아침 창밖에

    헐벗은 채 밤샘을 한 겨울나무

    안쓰럽게 보인다

     

    이상 기온이라 따스하다지만

    그래도 찬바람

    맨살을 헤집고 스쳐 가는데

     

    언젠가 다칠 칼바람

    노출된 채 보란 듯이 서 있으니

    어쩌면 좋아

     

    간밤에 가지에 내려앉은 달빛

    얄밉게 속삭이던 서리

    더 시리게 하고

     

    차라리 흰 눈이라도 펑펑 내려

    따뜻하게 덮어 주렴

    봄에 원대한 꿈을 이루게

     

     

    겨울나무 / 류인순

     

    지난가을

    벗어 던진 옷가지에

    시린 발목을 덮고

    나무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네

     

    겨울 한복판

    날을 세운 칼바람에

    온몸 맡긴 채

    골짜기 사이로

    묵은 추억 밀어내고

     

    하분하분 춤사위

    눈꽃 핀 가지마다

    연둣빛 설렘

    움 틔우기 위해

    옹골차게 숨 고르네.

     

     

    겨울나무 / 심억수

     

    새 날을 채워가는 겨울나무

    빈가지에 바람만 가득 걸렸다.

    가슴에 안았던 소망, 앗아간 바람

    기다림으로 걸어 두고

    여백의 미를 안으로 다스린다.

    버림으로써 초연해지는 너

    땅속의 별이 되고 싶은 인생

    당당한 알몸이 되기 위해

    난 무엇을 떨처야 한단 말인가

    채워서 비워지는 게 아니라.

    비워지는 걸 다시 채우려는

    나의 욕심을 거두고 나면

    내 생의 뒤안길에 시간만 둘 수 있을까

    모두를 버리고서야 모든 걸 얻은 듯

    마냥 자유로운 너.

     

     

    겨울나무의 마음 / 김덕성

     

    요즈음 거리를 걷다보면

    눈에 지피는 것이 겨울나무다

     

    애지중지 키워 온

    잎사귀들이 떠나가 애처롭게 보이던

    알몸이 된 나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할까

    나 같으면 분통이 떠졌을 텐데

    마음이 너그럽다

     

    숫한 원망을 들으면서도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내색 하지 않고

    그렇다고 화풀이도 없이

     

    겨울을 지키고

    새 봄을 여는 겨울나무를 보며

    내 마음에 담는다

     

     

    겨울나무에서 나를 보다 / 김덕성

     

    매섭게 불어오며 스치는 찬바람

    겨울나무의 마음을 흔들고

     

    받은 소명을 다하고

    모두 떠나간 빈 겨울나무엔

    아쉬움 보다

    내일을 바라는

    기다림이 있어 든든하다

     

    다가올 새 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창조를 산고를

    겪어야 하는 겨울나무

     

    나도 시 한편을 출산을 위해

    인고를 겪는데

    모두 함께 고된 내일의 기다림

    시작하누나.

     

     

    겨울나무 스케치 / 홍수희

     

    구부렸던 손가락을

    하나 하나

    펴보니 나무가 된다

     

    휘감았던 두 팔을

    느슨히

    놓아주니 나무가 된다

     

    저절로 무성했던

    잎새, 가거라

    보내니 나무가 된다

     

    그 또한 겨울나무가 된다

     

    더 이상은 바랄 것 없네

    가난은 이리도 자유로워라

     

     

    겨울나무 / 박동수

     

    색색 단풍잎들

    숨 가쁘게 둘러댄 것은

    아픔을 감추고 싶었던 너

     

    훌렁 벗고 보면

    온통 검은 상처뿐인 산

    칼날세운 가을비의

    송곳 끝 같은 몸살에

    날 선 겨울나무

     

    알몸 들어낸 겨울 날이어도

    저 시퍼런 무리들보다

    내리는 하얀 눈

    두둑하게 솜 이불처럼

    덮어주는 이 은총

    날 선 마음 내려놓으려나

    민초 같은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순정 / 김덕성

     

    따뜻하게 감싸주던 잎새가 떠나

    체온 떨어져도

    실망하지 않은 겨울나무

     

    순리의 역사로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루려는 마음

     

    내일을 아름다움으로

    순고한 꿈꾸며

    새로운 창출로 승화하려는 의지로

    오랜 기다림으로 떠나는

    순정어린 겨울나무

     

    기다림은 아름다움이요

    내일이 있고 꿈이 있는 삶이기에

    나도 겨울나무와 함께

    기다리리.

     

     

    겨울나무 / 배귀선

     

    남은 잎 살며시 보듬었더니

    아스스 모습 없이 부서져버린다

     

    미처 몰랐다

    보여진 모습이 전부인줄

    네 안의 옹이마다 서린 세월의 흔적을

     

    철마다의 화려함이 전부인줄

    가파른 시간 묵묵히 견디어낸 인고의 날들을

     

    나 아픈 날 겨울나무 앞에 서

    그 안의 마음을 살짝 훔쳐보리라

    나 슬픈 날 겨울나무 앞에 서

    뿌리 깊은 곳 치열한 신음을 들어보리라

     

    울분과 서러움을 조각내어

    무게 안의 나를 일깨우는 시간

    혹독한 추위에도 올곧은 삶의 길

    뜨거운 생애가 여기 있다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은 다시 안녕하신가요.

    별처럼 수많았던 이야기들

    풀잎들의 속삭임처럼 도란도란

    꽃들의 주고받은

    별빛 같은 무지개의 아름다움들은

    소소한 이야기로

    마음까지 감동시키는

    꽃잎들은 서둘러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향기의 중심에 서고

    종달새들은 이미 둥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하얀 새알을 만들어

    별처럼 빛나는 태어남의

    단 하나의 감동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당신이여

    이제 당신에게 드릴

    단 하나 남아있는 것은

    그것은 바스락 거리는 가을날의 속삭임

    낙엽들의 소리만을 모아서

    당신의 기억 속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가을이 수레바퀴 앨범 속에 넣어서 노래를 만들고 있는 시간입니다

    노을이 걸어온

    가을 산 둘레마다

    그리움이 걸어갈 수 있는 단풍잎의 길을 하나 만들고

    별처럼 빛남 때문에

    이제는 슬퍼할 수도 없는

    마음 한곳에 또 다른 공허함이 있을지라도

    당신의 마음처럼

    아침이슬의 눈물처럼

    단풍잎의 생각처럼 다시 마음을 씻어봅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고결함처럼

    가을이 다시 올수 있으면

    나의 마음을 붉게 물들일 수 있는 곳에

    그렇게 별빛으로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순수의 시대에서

    꿈과 낭만과 그리고

    당신을 향한 아름다움을 위해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겨울나무의 생애 / 성백군

     

    나뭇잎 한 잎 두 잎

    떨어져 땅 위에 뒹굴 때 나무의 생은

    끝인가 싶었는데, 발가벗고도

    어느 잔가지 하나 기죽지 않고 당당한 것을 보면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가 봅니다

     

    하늘 향하여 쭉쭉 뻗은 가지들

    “윙윙” 소리가 납니다

    닿기만 하면 배어버릴 칼날입니다

    바람이 토막 나고 허공이 찢어지고

    겨울을 잘 견뎌야 봄에 싹을 틔울 수 있다며

    찬바람이 “쌩쌩” 돕니다

     

    누가 감히

    생애를 담보로

    온몸을 까맣게 죽음으로 칠하고 싹을 키우는

    나목의 모성애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약하다고 얕볼 수 있겠습니까

    감동 없이 볼 수 있겠습니까

     

    함박눈이 쏟아지며

    나목에 하얀 꽃을 피웁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낙엽이 여력을 다해 일어나

    다시는 허튼수작 말라고

    찬바람을 밟는 “바스락” 소리

    겨울 창가에서 듣습니다

     

     

    겨울나무 / 서연정

     

    가슴에 입술에 어깨에

    손톱 그 끝에까지

    빠진 데 없이

    푸르게 멍든 눈을 뜨리라

    먼지 낀 하늘만 보이고

    삶의 시궁창만 보이는 것이 다

    이 눈이 모자란 탓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뼈를 뚫고 아니 수백 번 살을 찢어서라도

    온몸을 가득

    핏물 밴 눈으로 채우리라

     

    허리에 다리에

    그리고

    발톱 끝에까지

     

     

    겨울나무 / 곽상희

     

    여기 온 사람들은

    옛적 쓰던 말을 잊어버렸다.

    낯설고 이상한 말을 잡으려

    가슴 깊이 잠겼던

    아름다운 그 모든 말들을

    망각의 늪으로 던져버렸다

    ㅡ 그래 생활에 때묻고 낡은 그 모든 언어들은 신선하고 찬란한 것 ㅡ

     

    이제는 그것들 다시 끄집어내어

    여기 바람과 햇살 아래

    버젓 내놓으며 갈고 닦아야지

    버리고 온 망각의 창문가

    아직은 녹슬지 않고

    세월 물살 바람에 떠내려가지 않고

    그때 그 자리 어엿 지키고 있는 것

    그대와 나의 가슴으로 부를 그 이름

    그래, 봄을 기다리는 경루나무처럼.

     

    찬 바람에도 끄덕찮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난 우리들이 불쌍해진다.

    어쩌다 돈만 알게 된 우리들 불쌍해진다.

    아이들 뿌리, 꿈 잊어버리고

    내일 숫자 던지고 사는 우리들 가여워진다.

     

     

    겨울나무 / 김영호

     

    외롭다는 것은 가슴이 따듯하다는 것이다.

    쓸쓸하다는 것은 사람 하나 있다는 것이며

    가야할 먼길이 있다는 것이다.

    무거운 침묵은 절실한 인연

    그에게 흐르는 기도의 강물소리다.

     

    홀로 있다함은 현실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다는 꿈의 그림자다.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없는 집,

    집없는 마음이다.

     

    저토록 상한 무릎은

    먼 순례의 길에서 돌아왔다는 약속이다.

     

    삐걱대는 지구의 받침대

    낮달의 지팡이다.

     

     

    겨울나무 아래에서 / 구재기

     

    가난은

    가슴에 머무르되 고이지 않는다

    가난은 오직

    홀로인 진리일 뿐

    결코 이브의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이여

    세상은 네가

    참됨을 말하여도 믿지를 않는구나

    가난은

    겨울숲 겨울에 머물러

    내일의 보상을 꿈꾸지 않는다

    위장된 축복을

    끝내 기다리지 않는다

     

     

    겨울나무 / 손광세

     

    물결선 그 위로

    고개 내민 안테나

    청자빛 고운

    전파를 수신한다.

     

     

    겨울나무 / 안은주

     

    눈 잠그고

    가만히 숨 멈춘 그녀 몸에 손 넣어

    빗장을 풀었다

    완강한 고요에 날이 서고

    놀란 세포가 실눈을 뜨고 무릎으로 기어 온다

    엿 듣던 천 개의 귀가 붉어진 숨소리를

    신음처럼 내뱉었다

     

    그리고 몇 개의 나이테 문을 더 지났다

    금줄 쳐진 자궁이 보인다

    그녀의 감빛 자궁이 환하다

    저것 좀 봐!

    땅 냄새나는 진액을 빨며 잠들어 있는

    저 고운 핏덩이 싹들을,

     

    감추었던 그루잠이 밀린다

    마음속 옹이를 반질반질하게 밀고

    새싹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그녀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 근질근질 탯줄이 솟고

    혈관을 따라 그녀 몸 깊숙이 흡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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