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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위에 관한 시모음<3> [강추위 시] [한파 시]
    시모음 2022. 12. 18. 22:53

     

    추위에 관한 시모음<3> [강추위 시] [한파 시] 

     

    추운 기억 / 이원문
     
    얼마나 더 추울까
    겨울날의 그 세월
    아련히 펼쳐지고
    부엌에 까만 끄림
    하얀히 스쳐간다
     
    춥다 추워도
    허기만큼이나 추울까
    눈 녹아 젖은 양말
    말리다 태우고
    고무신이 찾은 양지
    허기에 더 춥다
     
    짧은 해에 찾은 양지
    노루 꼬리에 매달린 몸
    이 양지 잃으면
    집으로 가야 하나
    죽 한 그릇에 새워야 하는 밤
    저녁연기에 얹어지고
     
    땔나무 아끼려 하니
    아랫목이 식어간다
    홋껍데기로 보내는
    화롯불에 녹이는 몸
     
    어느 겨울이 춥다 한들
    그 겨울만큼이나 추울까
    시린날에 초가의 지붕
    저녁연기 떠올린다

     


    동장군 / 이화숙

     

    ​날씨가 몹시 추우면
    동장군冬將軍이 온다고 한다
    겨울장군이 무서우냐
    시베리아 북풍이 추우냐 하면
    뭐라 할까
     
    겨울왕국에 들어선 요즘
    바깥세상과는 거의
    담을 쌓았다
    컴퓨터가 있고 핸드폰이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것은 내 손 안에 있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면
    겨울나무가 잎이 거의 떨어지고
    추위에 떨고 있다
    하지만 가지 마다 강한 기운이 서려있다
     
    올겨울 북풍한설北風寒雪과 맞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김장을 해 놓고 등이 따습하니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으리.

     

     

    강추위 / 오보영

     

    네 아무리
    꽁꽁
    세상을 다 얼어붙게 해도

    님 향한
    내 발걸음
    막아서지 못하리

    님 품은
    내 가슴은
    얼리지를 못하리

     


    혹한기의 노래 / 정연복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도
    풀은 죽지 않는다

    두툼한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경쾌하다

    칼바람 눈보라 맞으면서도
    나무는 몸을 움츠리지 않는다

    동장군의 심술 속에서도
    시간은 한결같이 흘러간다.

    지금은 사랑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너와 나의 몸을 비벼
    추위를 이기자

    너와 나의 가슴속에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자.

     

     

    강추위 (极寒극한) / 윤재철

     

    하늘도 움추리고 땅도침묵한

    몰강스런 날에

    바람은 회초리같다

     

    구겨진 종이조각 같이

    들녁은 널부러져 굴러가고

     

    저너머 얼어붙은

    성주산이 스멀스멀

    자꾸만 내게로 다가온다

     

    거리에 오가는 발자국이

    겅둥겅둥 빨라지고

     

    떠도는 나그네 바람만이

    내 창문에서

    밤새 두런거린다

     

     

    추위에 / 한인수

     

    갑자기 추워서인가?

    손이 시려 귀가 시려

    뺨 턱이 시려 워

    동동 구르는구나.

     

    해님은 안 보이고

    구름만이 덥혀 있으니

    게다가 찬바람까지

    그렇게 안 추겠는가?

     

    오늘 같은 날에는

    따끈따끈한 곳에서

    몸을 녹이는 것도

    일품일 것이다.

     

    아궁이에 불 땐 아랫목

    딱 끈 한 숭늉 생각이

    고향 어머님 생각이

    잊지 않고 간 절 하고나

     

     

    기습한파 / 오보영

     

    아무래도

    본때를 보여주어야 할까보다 !

     

    때가 되면 올 테니

    미리 준비해놓고 기다리라고

     

    그리도 간곡히 일러줬건만

    예정대로 찾아온 날 반겨주기는커녕

     

    서둘러 왔다고

    너무 세게 몰아 부친다고

     

    움츠러든 몸으로

    원망만 하고 있으니

     

     

    한파 / 이경화

     

    길고 긴 결빙의 계절이 지나고

    봄이 오는 나들목

    날이 선 바람이 복병처럼

    길을 가로막는다

     

    비릿한 고통을 삼키며

    운명의 수레바퀴 앞에

    납작이 엎드려 숨죽인 부재의 삶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길을 걸으며

    오한으로 몸을 떨던

    그 긴 겨울의 끄트머리

     

    한줄기 미명으로 다가선

    임의 온기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내 마음 빈터에

    힘겹게 숨 틔운 여린 꽃망울 하나

    파리한 낯빛으로 내뱉는

    애달픈 신음

     

    생의 한 시절을 가로질러

    격정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은 멈추고

    또다시 몰아닥친 기습 한파에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살을 에는 예상치 못한 한기에

    잔뜩 움츠린 꽃잎의 힘겨운 사투.

     

     

    추위 / 이재환

     

    담배도

    안 피웠는데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고

     

    손이

    나두 모르게

    자꾸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급한 일도 없는데

    발걸음은

    나두 모르게

    종종걸음 되고

     

    운동

    나가야 되는게

    점점

    게으름 피우게 된다

     

     

    강추위 단상(斷想) / 임재화

     

    먼 산자락 저만치서 불어와

    치켜세운 옷깃을 열어젖히고

    귓가에 쌩하고 스치는 찬바람

    얼굴마저도 스쳐 지날 때

    날 선 면도날같이 날카롭다.

     

    코끝으로 다가오는

    싸늘한 향기는 너무나 맵고

    꽁꽁 언 손을 녹이려고 맞잡고

    호호 불면서 두 손을 비벼 녹인다.

     

    온종일 성난 북풍은

    사정없이 숲에서 불어오고

    모든 것 아낌없이 내놓은

    겨울 나뭇가지 위에 걸려있는

    잿빛 구름도 몹시 차갑다.

     

     

    한파 / 장광규

     

    인자하신 할아버지

    몹시 화가 나셨다

    말없이

    할아버지 얼굴만 쳐다본다

     

    누군가 군불을 때기 위해

    아궁이에 청솔가지를 넣었나 보다

    매운 연기 사방으로 번져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난다

     

    맞기보다 기다림이 더 떨리는

    계급 순으로 줄 서서

    맞는 매

    지금 그 순간이다

     

     

    강추위 / 박인걸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시베리아의 헥토파스칼이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또 한 번의 시련을 안겨준다.

    냉기는 살갗으로 파고들어

    뼛속까지 송곳으로 찌를 때면

    삶의 곤고함을 되뇌며

    겨울 한 복판을 걸어야 한다.

    강마저 얼어붙고

    밤하늘의 별들마저 창백한데

    겨울 초입이 두려우니

    어찌 넘어야 할 거나

    인간사는 이토록 버겁고

    혹독한 고통을 견뎌야만하나

    살아있음이 은혜라지만

    강추위가 나는 두렵다.

     

     

    강추위 / 권오범

     

    어제까지 패딩점퍼가 무색하리만치

    선량하게 놀던 겨울이

    밤사이 불량한 정치에 물들었는지

    복병처럼 달려들어 겁탈하는 아침

     

    반항조차 할 수 없도록

    예민한 부위부터

    맵게 물고 늘어져

    순식간에 얼얼해진 손

     

    목이 움츠러들게 귀를 사정 없이 핥더니

    매운 입김 앞세워 코가 훌쩍이도록 들락날락

    드디어 입술마저 굳도록 채워나가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

    아, 얼마 못가 무너질 것 같은 남자의 자존심 쌍방울 마지노선

     

    가만, 속수무책인 이목구비 늦게 범하는 걸로 보아

    생판에 정면충돌하려니 그래도 양심이 있었나

    아니면 평소 내가

    그렇게도 낯이 두꺼웠나

     

     

    강추위 / 권오범

     

    밤새 옆집 수도계량기 조몰락대다 결딴 내

    물난리 나자

    미친 물 바스라지게 끌어안고

    온동네 시끄럽게 마당에서 뒹굴더니

    출근하는 날 보자마자

    어떻게 해보려고 집적거려보지만

    강도 같이 복면한 내 매무새

    도대체 빈틈이 있어야지

    애먼 눈이나 찔러대며

    지하철역까지 밥맛 없게 따라오더니

    무임승차 마음에 걸렸는지

    슬그머니 에스컬레이터 타고 도로 나가버린 엉큼한 것

    생면부지 아가씨와

    어깨 맞댄 채 온기 나누느라

    아까 당한 섬뜩한 일들은

    까맣게 잊었건만

    내가 나갈 종로3가 구멍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계단으로 복병같이 달려들어

    할 얘기가 있으니 복면 좀 벗으라며 또 사정사정

     

     

    추위와 외로움 / 최홍윤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외딴 집은

    집이 외로워서,

    창문을 꼭 잡고 있던 문틀이

    해프게 입을 벌려 헐거워서,

    황소바람이 방구석, 구석을 헤집다가

    노파(老婆)의 가슴에는 불어주지 않았다.

                                

    바람의 세월을 이겨내다

    또 한 번의 바람을 맞았으나

    외풍은 오래된 먼지만 건드려놓고

    황소 구멍으로 헹하니 달아났다

                              

    뼈가 시리고

    가슴 시린 지독한 고독에 장작불을 지피고

    내 연한 입김을 불어넣어 보지만

    외로움에,

    사시 나뭇잎 떨듯 떠는 가슴을

    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 입김으로 쓰는 詩다

                              

    외로움은

    이 나라의 외딴 마을의 현주소다.

    정작, 들녘에 나가보니

    구비구비 칼바람은

    강 언덕에 휘휘 돌고만 있었다.

     

     

    입춘 추위 / 권오범

     

    평년보다 유별나게 행세했던 동장군

    제 기념일인 대한도 모른 채 한눈 팔아

    꼬리를 사리나 싶더니

    그러면 그렇지 제 성깔 남 주랴

     

    정상적으로 오르내리던 온도계 혈압이

    봄의 문턱에서

    지하로 급격히 추락해

    온기 사라진 살벌한 세상

     

    계절도 시기가 만만찮아

    호락호락한 봄에게

    그렇게 쉽사리

    자리 비켜주기가 싫은 게야

     

    다짜고짜 다가와 주물러대는

    뻔뻔스런 봄의 끄나풀 아양 못 이겨

    제풀에 지쳐 스러지는 그날까지

    또, 얼마나 발악을 할는지

     

     

    대한(大寒)추위 / 박인걸

     

    시베리아에서 달려온 동장군

    한 반도 남쪽까지 점령했다.

    나뭇가지들은 철사가 되고

    어떤 물고기들은

    피란을 못가 동사(凍死)했단다.

     

    새벽을 여는 잡부(雜夫)들

    심장(心腸)근육이 저리고

    인력시장(人力市場)에 품꾼들

    주머니가 비어 더욱 춥다.

     

    하얀 입김을 토하는

    길거리 차들도 줄고

    오가는 사람들 발길도 뜸해

    시장(市場)도 얼어붙었다.

     

    한랭한 대한(大寒) 추위야

    삼한사온(三寒四溫)에 떠난다지만

    미국 발 금융한파는

    어느 누가 무찔러 줄거나.

     

     

    첫추위와 사랑 / 박태강

     

    겨울 추위에

    하늘 땅이 얼고

    삶이 얼어도

     

    유독 얼지 않는 것은

    사랑

    이어라

     

    고드름 따다

    각시방 방안에

    걸어 두어도

     

    사랑은

    사랑은

    더더욱 자라

     

    핑크 빛 사랑

    고드름으로

    더욱 영글어 지지요

     

    <76>

    다시 봄에게 / 김남조    

     

    올해의 봄이여

    너의 무대에서

    배역이 없는 나는 내려간다

    더하여 올해의 봄이여

     네게 다른 연인이 생긴 일도

    나는 알아 버렸어

     

    어설픈지고

    순정 그 하나로 눈흘길 줄도 모르는

    짝사랑의 습관이

    옛 노예의 채찍자국처럼 남아

    올해의 봄이여

    너의 새순에 소금가루 뿌리려 오는

    꽃샘눈 꽃샘추위를

    중도에서 나는 만나

    등에 업고 떠나고 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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