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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뒤돌아보면 / 조철형시 2022. 11. 15. 14:49
언젠가 뒤돌아보면 / 조철형 바람 부는 날에 길을 떠난 이는 돌아보지 않는다 가슴에 가득 찬 아쉬움이 눈물 되어 앞을 가리면 길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길이 안 보여도 바람 부는 때 달려가야 한다 바람 부는 날에 멈추면 영영 더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야 할 길이 험난하여도 가지 않으면 또다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먼 훗날 하얗게 외로운 길에서 홀로 서러운 눈물 흘리더라도 가야 할 때는 가야 한다 언젠가 길의 끝에서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헛헛한 웃음 짓게 되더라도 바람 부는 날에 떠나야 한다 삶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용솟음칠 때는 바람부는 날에도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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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겨울 문턱에서 / 황동규시 2022. 11. 15. 14:37
또 다시 겨울 문턱에서 / 황동규 대놓고 색기 부리던 단풍 땅에 내려 흙빛 되었다. 개울에 들어간 녀석들은 찬 물빛 되었다.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이 없어도 될 것 같다. 눈 내리기 직전 단색의 하늘, 잎을 벗어버린 나무들, 곡식 거둬들인 빈 들판, 마음보다 몸 쪽이 먼저 속을 비우는구나. 산책길에서는 서리꽃 정교한 수정 조각들이 저녁 잡목 숲을 훤하게 만들고 있겠지. 이제 곧 이름 아는 새들이 눈의 흰 살결 속을 날 것이다. 이 세상에 눈물보다 밝은 것이 더러 남아 있어야 마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견딜 만한 한 생애가 그려 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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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에 관한 시모음시모음 2022. 11. 11. 12:43
가을비 소리 / 서정주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가을비 소리 / 오세영 바람 불자 만산홍엽萬山紅葉, 만장輓章으로 펄럭인다. 까만 상복喪服의 한무리 까마귀 떼가 와서 울고 두더쥐, 다람쥐 땅을 파는데 후두둑 관에 못질하는 가을비 소리. 가을비 / 나상국 미처 떨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어두운 골목길에 갇힌 밤 밤마다 늘 찾아와 맴돌며 서성이던 밤손님은 기다려도 오질 않고 저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와 잠들지 못하는 밤의 긴 머리를 감겨주는 가을비 가을비 / 김시탁 가을비는 외투보다 가슴을 먼저 적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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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와 커피에 관한 시모음시모음 2022. 11. 11. 12:26
가을비와 커피에 관한 시모음 가을비와 커피 한잔의 그리움 / 이채 가을비 촉촉히 내리는 날 외로움을 섞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은 살갗 트는 외로움이 젖은 미소로 기웃거리다 가을비처럼 내린다 해도 좋은 것은 젖은 그리움 하나 아직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던 기억 한 스푼으로 넉넉히 삼키는 커피 한잔이 비처럼 추억처럼 가슴 밑동까지 파고 듭니다 가을비 촉촉히 내리면 커피 한잔의 그리움으로 아늑하고 싶은 마음 달래어봐도 짐짓 쓴 커피 맛은 사라지지 않지만 아름다운 추억 한 스푼을 넣은 커피 한잔의 그리움으로 가을비 타고 올 그대를 그리고 싶습니다 가을비를 보며 / 오광수 이 비오면 모 진이 군화신고 성큼 성큼 다가오려나? 창을 두드리는 가을소리가 이젠 많이도 애처로운데...... 처음엔 하나 둘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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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관한 시모음 <2>...20 선시모음 2022. 11. 10. 08:39
단풍에 관한 시 ...20 선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숲속을 가며 / 오세영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