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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관한 시모음<2> [첫눈 시] [눈 시]시모음 2022. 11. 30. 20:48
첫눈에 관한 시모음 [첫눈 시] [눈 시] 첫눈 오는 날 / 정호승 남한테 비굴하게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첫눈이 내릴 때 첫눈한테는 무릎을 꿇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첫눈 오는 날 길 잃어 쓰러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첫눈 / 목필균 까아만 밤에 내리는 함박눈 바라만 보아도 순결해지는 가슴속에 기척 없이 남겨진 발자국 하나 한 겹, 두 겹, 세 겹 덮히고 덮히고 덮혀서 아득히 지워졌던 기억 선명하게 다가오는 얼굴 하나 첫눈 / 박인걸 첫눈을 맞으며 마냥 좋아 날뛰던 그 시절 추억도 이제는 희미한 그림자로 황혼이 내려앉아 찬바람에 뼈가 시린 수척한 나그네는 눈이 와도 감격이 없다. 가로등 언저리에 벌떼처럼 나는 순백의 눈발을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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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관한 시모음<1> [눈 시] [첫눈 시]시모음 2022. 11. 30. 20:37
첫눈에 관한 시모음 [눈 시] [첫눈 시] 첫눈 내리는 아침 / 안희선 지난 밤, 한 겨울의 기나 긴 추위가 뼛 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아직도, 내 가슴에 속절없이 살아있는 하얀 그리움 그곳에 날아가 못 박히는, 눈물겨운 그대가 아침 햇살처럼 따스합니다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 정호승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은 너와 처음 만났던 도서관 숲길이다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던 버스 종점이다 아니다 버스 종점 부근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지 위의 까치집이다 아니다 네가 사는 다세대주택 뒷산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어나던 강아지 무덤 위다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었다 진 원추리의 이파리다 아니다 외로운 선인장의 가시 위다 아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소년의 똥무더기 위다 아니다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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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관한 시모음<4> [12월 시]시모음 2022. 11. 30. 20:13
12월에 관한 시모음 [12월 시] 12월의 촛불 기도 / 이해인 향기 나는 소나무를 엮어 둥근 관을 만들고 4개의 초를 준비하는 12월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 함께 촛불을 밝혀야지요? 그리운 벗님 해마다 12월 한 달은 4주 동안 4개의 촛불을 차례로 켜고 날마다 새롭게 기다림을 배우는 한 자루의 초불이 되어 기도합니다 첫 번째는 감사의 촛불을 켭니다 올 한 해 동안 받은 모든 은혜에 대해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음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억울했던 일, 노여웠던 일들을 힘들었지만 모두 받아들이고 모두 견뎌왔음을 그리고 이젠 모든 것을 오히려 '유익한 체험' 으로 다시 알아듣게 됨을 감사드리면서 촛불 속에 환히 웃는 저를 봅니다 비행기 테러로 폭파된 한 건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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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관한 시모음<3> [12월 시]시모음 2022. 11. 30. 19:59
12월에 관한 시모음 [12월 시] 12월이라는 종착역 / 안성란 정신 없이 달려갔다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간 길에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니 지나간 시간이 발목을 잡아 놓고 돌아보는 맑은 눈동자를 1년이라는 상자에 소담스럽게 담아 놓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여유를 간직할 틈도 없이 정신 없이 또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남겨 버린다 지치지도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고 시간은 또 흘러 마음에 담은 일기장을 한쪽 두 쪽 펼쳐 보게 한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인생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삶이라지만 무엇을 얻었냐 보다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하며 인생을 그려놓는 일기장에 버려야 하는 것 을 기록하려고 한다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하겠지만 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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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관한 시모음<2> [12월 시]시모음 2022. 11. 30. 19:49
12월에 관한 시모음 [12월 시] 12월의 기도 / 양애희 축복의 하이얀 그리움 따라 훨훨 날아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 모두 만나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하는 가슴 오려붙인 1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문 시간들 사이로 깊은 침묵이 어른거리는 어둠 지나 길게 흐르는 아픔 여의고 한 그루 맑은 인연 빗어대는, 빛이 나는 1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장 깊이 동여맨 나뭇잎 바스락바스락, 온몸이 아파올 때 푸른 약속 흔들며 바람을 덮는, 따뜻한 12월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색 불빛 찬란한 거리, 그 어딘가, 주름진 달빛 사이로 허기진 외로움 달래는 영혼 살포시 안아주는, 그런 1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문 강가, 뉘 오실까 깊은 물소리만 허망한 심장에 출렁거릴 때 가슴 빈터에 흠뻑 적셔줄 꽃씨 하나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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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관한 시모음<1>[12월 시]시모음 2022. 11. 29. 21:16
12월에 관한 시모음[12월 시] 12월의 길목에서 / 안숙자 11월 곧게 뻗은 길에 잠시 굽은 등을 숨길 곳도, 배회할 곳도 없어 낭만과 감성이 잠들어버린 레일 위를 등 떼밀리듯 생각 없이 달리다가 삼나무 숲에 정화된 산소를 호흡하며 12월의 오솔길로 들어가 보자 끝과 끝이 훤히 보이지 않아 여유를 부려도 좋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도의 에움길에 서서 텅 빈 하늘이라도 좋다 올려다볼 여유가 있다면 눈썹에 앉는 순간 흘러내릴 진눈깨비라도 좋다 죽은 듯 잠들어버린 감성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면 무색무취의 바람 그 향기에도 취할 소녀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아낙이 되어보고 싶다 12월의 무언극(無言劇) / 김종제 새들이 숲을 버리고 일제히 비상한다 나무들도 거친 옷을 벗어버리고 뒤를 좇아 비상한다 깃든 자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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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끝자락(마지막)을 보내는 시 모음<2>시모음 2022. 11. 29. 18:40
11월의 끝자락(마지막)을 보내는 시 모음 11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 / 최하림 11월이 지나는 겨울의 굽이에서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으며 가지를 늘어뜨리고 골짜기는 입을 다문다 토사층 아래로 흘러가는 물도 소리가 없다 강 건너편으로 한 사내가 제 일정을 살피며 가듯이 겨울은 둥지를 지나 징검다리를 서둘러 건너간다 시간들이 건너간다 시간들은 다리에 걸려 더러는 시체처럼 쌓이고 더러는 썩고 문드러져 떠내려간다 아들아 너는 저 시간들을 돌아보지 말아라 시간들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들은 거기 그렇게 돌과 같이 나둥그러져 있을 뿐 ... 시간의 배후에서는 밤이 일어나고 미로 같은 안개가 강을 덮는다 우리는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아직도 골짜기에서는 나무들이 기다리고 새들이 기다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