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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관한 시모음<8> [12월 시] [십이월 시]시모음 2022. 12. 14. 15:53
12월에 관한 시모음 [12월 시] [십이월 시] 12월 / 박인걸 시간이 휘황(輝煌)했던 잎들을 긁어모아 나무밑동에 골고루 분배하듯 나는 짐을 내려놓은 나귀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12월을 맞는다. 지저분한 거리를 헤집으며 보물찾기 하듯 샅샅이 뒤졌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 하나 없는 실망감에 자주 날밤을 세우며 괴로워했다. 새순처럼 꿈을 밀어 올리며 토란잎처럼 희망의 영역을 넓혔지만 코로나 19재앙에 갇혀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실감했다. 돌림병보다 더 무서운 괴질은 스스로에게 증여하는 절망감이며 포수의 기만전술에 속아 넘어간 어리석은 한 마리 사슴이었다. 가을 이파리들이 일제히 지던 날 미련하나 없이 사라지는 뒷모습에서 가벼워지는 삶의 진리를 구원 얻는 교리(敎理)처럼 터득했다. 일제히 일어선 나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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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관한 시모음<7> [12월 시] [십이월 시]시모음 2022. 12. 14. 15:44
12월에 관한 시모음 [12월 시] [십이월 시] 12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채 점점 멀어져 가는 시간을 앞에 두고 당신은 무슨 생각에 잠기시나요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멈추지 않고 걸어온 시간을 뒤로하고 당신은 또 무슨 꿈을 꾸시나요 날마다 정성스레 가꾸어 온 삶의 밭에 봄날의 푸른 잎과 향기의 꽃 뜨거운 눈물로 익은 보람의 열매를 기억하며 등잔 같은 당신의 겨울밤을 위해 마음의 두 손을 모으고 아늑한 평온을 기도합니다 당신은 지금도 당신보다 추운 누구에게 선뜻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지 않던가요 당신의 마음으로 세상은 따뜻해요 얼어붙어 깨질까 두려운 12월의 유리창에 당신을 닮은 하얀 눈이 인고의 꽃으로 피어나는 계절 또 한해의 행복을 소망하는 당신의 간절한 기도에 귀 기울이는 동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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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4> [폭설 시] [눈 시]시모음 2022. 12. 13. 20:40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 [폭설 시] [눈 시] 폭설 / 도종환 때묻은 내 마음의 돌담과 바람뿐인 삶의 빈 벌판 쓸쓸한 가지를 분지를 듯 눈은 쌓였어요 길을 내려 나갔지오 누군가 이 길을 걸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내게 오는 길을 쓸러 나갔지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먼지를 털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내 가슴 속 빈방을 새로 닦기도 했어요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내 사랑 누군가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꽂히기보다는 소리없이 내려서 두텁게 쌓이는 눈과 같으리라 느꼈어요 함박눈 / 김광석 가로등 불빛사이로 은은하게 함박눈이 소복소복 자연이 주는 선물이 사랑잃은 나무에 상고대 피어 겨울꽃 어여뻐라 어머니 영혼 함박눈 되어 하얗게 하얗게 백옥같은 따뜻함이 그리움 으로 내려오니 평화의 땅에 축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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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우리 만나리 / 김영근시 2022. 12. 13. 18:35
눈처럼 우리 만나리 / 김영근 눈처럼 우리 만나리. 삶에도 겨울이 있으니 마음이 추워지면 서로의 손을 잡고 삶의 추위를 녹이리. 눈처럼 우리 만나리. 어둠이 짙어지고 찬바람 매섭게 부는 날 꿈이 흔들리고 외로움이 가슴을 파고들 때 서로를 향한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따뜻하게 서로를 부둥켜안으리. 눈처럼 우리 만나리. 삶의 봄이 언제 올지 모를 가난한 시기에는 아담한 텃밭에서 만나 호미와, 괭이 들고 서로를 위한 꿈의 씨앗을 뿌리리. 눈처럼 우리 만나리. 서로의 가슴 속에서 눈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질지언정 서로를 위한 사랑의 존재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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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3>[폭설 시모음] [함박눈 시모음]시모음 2022. 12. 13. 17:57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폭설 시모음] [함박눈 시모음] 폭설 / 강윤미 공기 속에 숨어 있던 눈이 숨바꼭질을 끝내고 왁자지껄 흩어졌다가 모인다, 폭설 놀이터에 모여 노는 아이들처럼 눈송이들은 서로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내린다 누가 제일 빨리 내려갈까, 누가 바닥을 뭉치고 배신하고 다시 공중으로 튀어 오를까 내기하며 술래잡기하는 눈의 결정 폭설의 커튼을 열고 폭설 위를 걷는 사람들 폭설 속에 갇히면 세상은 가장 큰 담요를 덮은 듯 적요하다 가로등은 파스텔 빛으로 희미해지고 자동차들은 마리아나 해구에 갇힌 물고기처럼 침잠하다 잠잠하다 고립되는 것만큼 황홀한 것이 있을까 고립 아닌 것은 생각할 필요 없다 저녁 메뉴는 이제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이 남자와 저 남자 사이에서 거리 잴 것 없다 폭설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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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2> [폭설시모음] [함박눈 시모음]시모음 2022. 12. 13. 17:46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 폭설주의보 / 서재남 눈이 온다는데 와도 엄청나게 많이 온다고 기상대가 그러는데 어쩌고 있는가 몰라 그 까짓 거 라면박스 보다 못한 콘테이너 지붕 안 무너질라나 몰라 집이고 전답이고 마을을 죄다 휩쓸어 못쓰게 만들고 집채만한 바윗덩이 굴려다 마당 한가운데 처박아 놓고 유유자적 내빼던 지난 여름 그 징하고 징한 놈의 큰물 그 무서운 놈의 물 다시 그 자리에 터 다듬어 얼기설기 뼈대 세우고 지붕이나 얽었을 뿐 사람 들어가 살 집 되려면 미장해야지 장판 깔아야지 도배해야지 어쩌든지 이 겨울이나 무사히 나야지 빈한한 살림살이 부엌 구석에 쌓아 놓고 내려와 늙은 몸뚱이보다 부실한 콘테이너 문짝 밀치고 들어서면 밤짐승처럼 훅 달겨드는 냉기 어서 날 풀려야 살겠다 그런데, 또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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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1>[폭설 시] [함박눈 시]시모음 2022. 12. 13. 17:37
폭설, 함박눈, 대설에 관한 시모음 대설(大雪) / 안도현 상사화 구근을 몇 얻어다가 담 밑에 묻고 난 다음날, 눈이 내린다 그리하여 내 두근거림은 더 커졌다 꽃대가 뿌리 속에 숨어서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어도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뜨거워졌다 몸살 앓는 머리맡에 눈은 겹겹으로, 내려, 쌓인다 폭설2 / 권오범 변방으로 떠돌던 서름한 성깔끼리 우연히 만나 잠시 못마땅했을 테지만 피할 수 없어 서로 끌어안고 잠시 몸 좀 풀었을 것을 차들에겐 기압골 오르가슴 분미물은 치명적이라서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한 채 만취한 듯 사지가 뒤틀려 비틀비틀 철석같이 믿었던 지하철마저 덩달아 정신 나가 이 처참한 북새통을 어쩌라고 더러더러 손 놓고 하는 말 바쁘면 다른 방편을 찾아보란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