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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입동立冬 시모음카테고리 없음 2022. 11. 6. 17:15
입동 / 이외수 달밤에는 모두가 집을 비운다. 잠 못들고 강물이 뜨락까지 밀려와 해바라기 마른 대궁을 흔들고 있다. 밤 닭이 길게 울고 턱수염이 자라고 기침을 한다. 끊임없이 이 세상 꽃들이 모두 지거든 엽서라도 한 장 보내라던 그대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서 지금 쓸려가는 가랑잎 소리나 듣고 살자. 나는 수첩에서 그대 주소 한 줄을 지운다. 입동 / 나상국 저번 날 서리 내리더니 가는 가을이 아쉬운지 아니면 서둘러 다가오는 겨울이 싫은지 가을비 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경계가 모호한 비가 내린다 쉬 잠들지 못하고 온 밤을 서성대는 밤길 중량천 변을 따라 갈대밭을 저벅저벅 적시며 내린다 이 밤이 새면 입동인데 겨울 눈은 오지 않고 겨울비인지 마지막 가을비인지 모를 비가 입동을 향해 걸어가며 내린다 입동 /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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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시모음카테고리 없음 2022. 11. 6. 14:44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초겨울 아침 / 정유찬 왜 그리도 서러운지 바람에 잎새를 모두 바쳐 앙상한 나무 강물은 냉정하고 무심한 듯 차갑게 지나가고 모이를 찾아 이리저리 후드덕거리는 새들 찬 공기에 코끝이 찡 하면…… 그냥 아름다워 서글펐던 것이리라 그 허전함은 아마 싸늘한 바람 탓이리라 심장이 저려오는 상실의 아픔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초겨울 아침 한적한 강가에서 나는 내게 말하고 또 말한다 초겨울 낙엽 / 유일하 찌근거리던 만추도 살며시 꼬리 감춘 날 모가지 내민 초겨울바람 심장에 엄습하여 사랑싸움하고 있다. 보고픔의 혈관타고 그리움의 뇌혈관으로 깝죽거리다가 멈췄다. 정말 사랑의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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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에 관한 시모음<2>시 2022. 11. 5. 15:27
갈대 섰던 풍경 / 김춘수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 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다시 일어설 갈대를 위해 / 목필균 마른 갈대 울음소리 들었다. 강가 모래톱, 아우성치는 갈대는 하얗게 흩어져간 네 흔적 때문에 겨우내 남은 수액 다 말리며 울어대다가 어린 물새 둥지로만 남아있는 걸. 불을 질러라, 마른 갈대 숲에 메마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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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노래 / 김용택카테고리 없음 2022. 11. 3. 21:42
11월의 노래 /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자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 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롬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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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에 관한 시모음<1>시모음 2022. 11. 3. 21:09
갈대에 관한 시모음 갈대 섰던 풍경 / 김춘수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 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갈대의 마음 / 김재덕 갈대는 살랑거리던 바람에는 웃었고 폭풍우에는 굽신거리며 고개 숙였다 그리 흔들며 춤추고 싶었을까 아니, 세파에 시달리고 괴로워 더는 흔들지 말라며 참아야만 했던 화를 감당치 못해 몸으로 흐느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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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에 관한 시모음<1>시모음 2022. 11. 3. 20:32
억새꽃 / 오세영 흐르는 것 어이 강물뿐이랴. 계곡의 굽이치는 억새꽃밭 보노라면 꽃들도 강물임을 이제 알겠다. 갈바람 불어 석양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의 일렁임, 억새꽃은 흘러흘러 어디를 가나. 위로위로 거슬러 산등성 올라 어디를 가나. 물의 아름다움이 환생해 꽃이라면 억새꽃은 정녕 하늘로 흐르는 강물이다. 억새풀의 고향 / 이원문 다랑이논의 논 둑으로 밭 둑으로 그 억새풀 없는 곳이 어디에 있겠나 욕심의 풀 한 줌에 가을을 모르고 손 베일까 긁힐까 귀찮게 베었던 그 억새풀이었는데 그 봄날에 여름이면 조심스레 꼭 잡아 베었던 풀이였고 이 가을날 하얀히 하얀 꽃으로 그 억새꽃 잊으며 살아온 타향인가 이제야 그 하얀꽃 다시 쓸어 안어 본다 옛 기억 더듬어 처음 쓸어 안어 보던 날 부끄럽던 그 느낌을 어떻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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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관한 시모음<1>시 2022. 11. 2. 18:00
늦가을의 저녁때 2 / 나태주 마지막 저녁 햇빛 비쳐 빠안히 건너다 보이는 저 건너 황토 언덕길로 생선장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신가, 늙수그레 시골 아낙네 한 사람 함지 이고 가는 게 보인다. 예닐곱 살쯤 되었음직한 계집애 하나 그 아낙네 치마꼬리 잡고 따라가는 것도 보인다. 강아지 한 마리 쫄래쫄래 뒤 따라 가는 것도 보인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사람 사는 재미가 뭐 별건가, 생선장사 갔다간 저물어 돌아오기도 하고 막내딸년 마중 나오기도 하고 우리네 살림살이 가난해서 빡빡하고 옹색하긴 해도 마음만은 아기자기 색동옷 입고 사는 사람들. 늙수그레 내 어머니와 안 낳을 걸 늦게 하나 낳아 좀 창피하구나, 어머니 늘 그러시던 내 막내누이 같은 사람들 세상. 늦가을 밤 / 용혜원 가로등도 외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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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 관한 시 모음<1>시모음 2022. 11. 2. 12:08
그리움의 가을 낙엽 / 도종환 당신이 보고픈 마음에 높은 하늘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가슴에서 그리움이 복받치는데 하늘을 올려다 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움의 흔적이 목을 타고 넘어갑니다 당신 보고픈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까 봐 하늘을 향해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리움이 가슴에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파란 가을하늘처럼 맑은 눈 속에서 당신 보고파 자아내는 그리움의 흔적이 가슴을 적시어 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그리움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처럼 내 마음에도 고운 가을의 낙엽을 쌓아보렵니다 책장 속에 넣어서 훗날 추억의 가을을 꺼내보듯이 훗날 아름다운 사랑의 가을이 되렵니다 낙엽은 한데 모여서 산다 / 이기철 낙엽, 그 이름만큼 시적이고 낭만적인 것은 없다 때로 추억이다가 때로 노래가 되는 낙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