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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에 관한 시모음<2>시 2022. 11. 5. 15:27
갈대 섰던 풍경 / 김춘수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 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다시 일어설 갈대를 위해 / 목필균 마른 갈대 울음소리 들었다. 강가 모래톱, 아우성치는 갈대는 하얗게 흩어져간 네 흔적 때문에 겨우내 남은 수액 다 말리며 울어대다가 어린 물새 둥지로만 남아있는 걸. 불을 질러라, 마른 갈대 숲에 메마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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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관한 시모음<1>시 2022. 11. 2. 18:00
늦가을의 저녁때 2 / 나태주 마지막 저녁 햇빛 비쳐 빠안히 건너다 보이는 저 건너 황토 언덕길로 생선장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신가, 늙수그레 시골 아낙네 한 사람 함지 이고 가는 게 보인다. 예닐곱 살쯤 되었음직한 계집애 하나 그 아낙네 치마꼬리 잡고 따라가는 것도 보인다. 강아지 한 마리 쫄래쫄래 뒤 따라 가는 것도 보인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사람 사는 재미가 뭐 별건가, 생선장사 갔다간 저물어 돌아오기도 하고 막내딸년 마중 나오기도 하고 우리네 살림살이 가난해서 빡빡하고 옹색하긴 해도 마음만은 아기자기 색동옷 입고 사는 사람들. 늙수그레 내 어머니와 안 낳을 걸 늦게 하나 낳아 좀 창피하구나, 어머니 늘 그러시던 내 막내누이 같은 사람들 세상. 늦가을 밤 / 용혜원 가로등도 외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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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관한 시 모음<1>시 2022. 11. 2. 11:24
단풍에 관한 시 모음 단풍 숲속을 가며 / 오세영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붉은 잎 / 류시화 그리고는 하루가 얼마나 길고 덧없는지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그 다음 날이 왔고 그날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붉은 잎, 붉은 잎, 하늘에 떠가는 붉은 잎들 모든 흐름이 나와 더불어 움ㅁ직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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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시 모음... 나태주 외 10편시 2022. 11. 1. 11:17
11월 /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11월 - 배한봉 늑골 뼈와 뼈 사이에서 나뭇잎 지는 소리 들린다 햇빛이 유리창을 잘라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정오 파닥거리는 심장 아래서 누군가 휘파람 불며 낙엽을 밟고 간다 늑골 뼈로 이루어진 가로수 사이 길 그 사람 뒷모습이 침묵 속에서 태어난 둥근 통증 같다 누군가 주먹을 내지른 듯 아픈 명치에서 파랗게 하늘이 흔들린다 11월 - 박용하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만 그루 잎이 살았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1월 - 황인숙 너희들은 이제 서로 ..